# 397
귀환 마교관
397화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추량이 천천히 사비강에게 다가갔다.
척 보기에도 사비강의 상태는 어딘지 심상치 않았다.
“사…부님?”
“크르…!”
“접니다. 추량입니다.”
“크으…!”
“진정하세요. 사부님을 모셔 가려고 왔습니다. 괜찮으…!”
“크아아아!”
사비강이 느닷없이 허리를 꺾으며 포효하더니, 곧장 추량을 향해 쇄도했다.
쒸이이익!
“헉!”
추량이 반사적으로 왼손을 내밀자,
후아아아앙!
파공성과 함께 마나 방패가 만들어졌다. 뒤이어,
꽈아앙!
“크윽!”
촤아아앗, 꽈앙!
베르타스에 부딪친 추량이 뒤로 밀려나다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쳤다.
“커억!”
추량이 울컥 피를 토하고 앞으로 고꾸라지자, 사비강이 무신경한 표정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사비강은 순식간에 추량 앞에 다다라 있었다.
콱!
사비강이 손을 뻗어 추량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크으…! 사, 사부님! 접니다! 저 추량이라고요! 사부님에게 하나밖에 없는 제자! 추량이란 말입니다!”
“크르…!”
“큭…! 정말… 너무 하시네. 보통 이럴 땐… 극적으로 알아보고… 눈물의 포옹을 해주는…!”
꽈앙!
사비강이 그대로 장력을 발출하자, 포탄처럼 날아간 추량이 이번엔 바위마저 깨부수며 호숫가를 나뒹굴었다.
“크어억!”
온몸이 터져 나가는 듯한 고통에 추량이 마구 몸을 비틀었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제자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크르르르…!”
온갖 부정적이고도 혐오스러운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끓어오르듯 넘치고 있었다.
그는 이 강맹한 기운을 어떻게든 발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이 갈가리 찢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은 그 기운을 발출하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바로 눈앞에 있었을 뿐이다.
팟!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 바로 곁으로 이동한 사비강이 손을 뻗어 추량의 머리채를 다시 휘어잡았다.
그때였다.
쉬이이이잇!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기도가 느껴지면서 뭔가가 날아들었다.
사비강이 추량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는 돌아섰다.
쩌엉!
기파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검을 맞댄 두 사람이 훌쩍 멀어졌다.
사비강을 기습한 것은 바로 흑귀였다.
그는 사비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진작 눈치 챘지만, 추량처럼 무모한 짓을 하지 않고 몸을 숨기고 있었다.
차마 사비강에게 선공을 할 수 없어 지켜만 보다가 마침 추량이 위험에 빠지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었다.
튕기듯 날아간 흑귀가 거짓말처럼 몸을 숨겼다.
일반인 아니, 초절정에 이른 고수라고 할지라도 흑귀가 작정을 하고 모습을 감춘다면 절대로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거친 호흡만 쏟아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팟!
순간 사비강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이십여 장 정도 떨어진 허공에 팟, 하고는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쉬이이잇! 꽈앙!
베르타스가 뻗어 나가더니 어둠 속에서 뭔가와 부딪치며 불꽃이 일어났다.
번쩍하면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흑귀의 신형이었다.
놀랍게도 사비강은 흑귀가 어디에 숨어 있는 지를 단번에 찾아낸 것이다.
까강! 쩌저엉!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검이 서로 맞부딪쳤다.
그때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흑귀가 귀신처럼 번쩍 번쩍 나타나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마침내 사비강의 발이 흑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퍼억!
“커어억!”
흑귀가 입을 쩍 벌린 채 유성처럼 호숫가에 추락했다.
츄아아아아아!
길게 물갈래를 이어 가면서 쓰러진 흑귀는 곧바로 일어나려다가 다시 무릎을 꿇으며 엎드리고 말았다.
“쿠웨에엑!”
흑귀가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내상을 격심하게 입은 것인지 뱃가죽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흑귀!”
추량이 절룩이면서 달려와서는 얼른 부축했다.
“괜찮냐?”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이 자식은… 선배가 걱정을 해줘도 지랄이야.”
흑귀가 피식 웃어넘겼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한 채 일어서자, 대여섯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사비강이 내려섰다.
“조심해라.”
흑귀가 검을 앞세우며 말하자, 추량이 피식 웃으며 흑귀 앞으로 끼어들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선배 뒤에 딱 붙어 있어라.”
“또 멍청하게 아는 척하지 말고. 지금 주군은 평소의 주군이 아니다.”
“알아. 그래도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 이상, 내 방패가 더 낫지 않겠냐?”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사비강이 다시 바닥을 차고는 날아들었다.
“사부님! 정신 좀 차려요!”
추량이 버럭 소리치며 왼팔을 내밀었다.
후아아아앙!
찰나지간 마나 방패가 형성됐다.
그런데,
- 니야아앙!
갑자기 추량의 품에서 반묘가 불쑥 튀어 나오더니 그대로 사비강에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으엇! 안 돼!”
추량이 얼른 손을 뻗으며 소리쳤지만, 반묘는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사비강에게 달려들었다.
한편, 사비강은 갑자기 얼룩덜룩한 게 자신을 향해 뛰어드는 것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쒜에에에엑!
아슬아슬한 차이로 베르타스를 피한 반묘가 곧장 날아올라 사비강의 오른팔을 물어뜯었다.
- 니야아앙!
“크르르렁!”
사비강이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오른팔을 휘두르자, 반묘가 낙엽처럼 날아갔다.
콰다앙!
- 캐앵, 캥!
반묘가 피를 토하고는 일어서다가 다시 고꾸라지길 반복했다.
“반묘!”
추량이 얼른 달려가려는데,
“멍청아! 피해라!”
흑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추량이 움찔거리고 돌아보자, 어느새 사비강이 코앞에 다다라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가장 의지했던 사부가 이토록 무서운 존재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온몸의 솜털마저 곤두서는 순간, 추량이 눈물마저 글썽이며 소리쳤다.
“사부님! 저 추량이라고요! 이젠 정말로 좀 안아 주실 때도 됐잖아요! 사부님의 하나 밖에 없는 제자…!”
그 모습을 본 흑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병신… 또…”
흑귀의 예상대로 사비강은 아랑곳하지 않고 베르타스를 휘둘렀고, 추량은 본능적으로 왼팔을 뻗으며 마나방패를 형성했다.
쒸이이이잇!
후아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추량은 자신이 펼쳐낸 마나 방패가 평소와 달리 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번개처럼 떠오른 궁금증은 금방 해결됐다.
반묘 때문이다.
평소에는 반묘가 마나를 보강해 주었지만, 지금은 사비강에게 당하면서 미처 자신을 보조하지 못한 것이다.
‘윽! 이대로라면 깨진다!’
마나방패가 깨져 나가는 순간 베르타스는 그대로 자신의 팔을 썩둑 잘라낼 것이다.
“제길!”
추량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따앙!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몸이 뒤로 부웅 날아갔다.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막, 막았어?’
촤아아앗!
바닥에 미끄러지듯 착지한 추량은 뒤에서 흑귀가 받쳐 주는 바람에 가까스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네가 잘한 게 아냐.”
추량의 의문을 해결해 주려는 듯 흑귀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추량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비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강줄기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반묘!”
그제야 추량은 자신이 어떻게 베르타스를 막아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반묘는 사비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을 약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사비강이 말했던 디버프 효과였다.
그 바람에 사비강은 공격에 집중하지 못했고, 베르타스가 어정쩡한 강도로 마나방패를 때리고 만 것이다.
“반묘… 도대체 넌 지금 뭘 하는 거냐?”
추량이 걱정스런 얼굴로 반묘를 바라보았다.
사비강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은 분명 반묘가 있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정작 반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반묘가 서 있던 자리가 온통 핏빛 기운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기에 눈을 제대로 뜨고 보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크아아아아!”
방해를 받은 것에 화가 난 것인지, 사비강이 포효를 내지르더니 곧장 반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휙휙! 꽝! 카앙! 쩡!
“도, 도대체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사비강이 반묘가 서 있던 자리로 들어가자 붉은 기운은 그대로 사비강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연신 터져 나오는 마찰음과 괴성.
그때마다 붉은 기운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커다란 구의 형태로 움찔움찔 떨어댔다.
“제길, 반묘를 구해야 해!”
“기다려! 들어갔다간 넌 뒤진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자칫하면 반묘가…!”
추량은 감히 짐작한 바를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그간 반묘는 자신의 곁에서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다.
그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반묘는 매번 싸울 때마다 마나를 보강해 주었다.
일전에 동면인이 그를 공격했을 때도, 반묘가 보강해 주지 않았더라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대신 그 자리에서 방패가 깨지고 목숨을 잃었으리라.
반묘는 더 이상 추량에게 있어서 애완 짐승이나 마수 따위가 아니었다.
동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추량이 다시 달려가려고 하자, 흑귀가 힘을 주어 그의 어깨를 콱 틀어쥐었다.
“말했잖아. 가면 넌 뒤진다고. 반묘를 구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 말이… 맞네… 쿨럭!”
마침 뒤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옹해인이 숨을 헐떡이며 겨우 서 있었다.
추량이 눈을 부릅떴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말을 마친 옹해인은 다시 그대로 쓰러졌다.
추량이 얼른 달려가 받쳐 주었기에 가까스로 바닥에 머리를 찧진 않았다.
하지만 옹해인은 그야말로 기적처럼 생존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의술을 모르는 추량이 봐도 옹해인은 이제 곧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기다려… 보게… 어쩌면… 저 아이가… 기적을… 만들지도… 인간이 할 수 없는 걸… 저 아이라면… 단 일 푼어치의 힘을… 쿨럭, 쿨럭!”
옹해인이 다시 격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추량이 그를 꽉 붙들면서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붉은 기운이 운집한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반묘…! 사부님…! 제발…!”
둘 중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크르르렁!”
“크르르!”
까강, 깡깡! 쩡! 퍽! 꽈앙!
연신 불꽃이 터지면서 포효 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쩌저엉!
천지가 격동하듯 큰 울림이 터져 나오더니,
슈우우우우욱, 꽈앙!
붉은 안개 속에서 화살처럼 튀어나온 사비강이 그대로 날아가 오두막집에 부딪치는 게 아닌가?
“헉! 방금 분명…?”
“그래, 주군이시다.”
흑귀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두막집을 박살내며 쓰러졌던 사비강이 벌떡 일어났다.
“크아아아!”
그가 허리를 꺾으며 한 차례 포효하더니 곧장 바닥을 차고는 붉은 안개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런데 그때!
휘이익!
느닷없이 붉은 안개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 나오며 사비강을 덮쳐 가는 게 아닌가?
동시에 근방에 퍼져 있던 안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엇!”
추량과 흑귀, 옹해인 조차도 깜짝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터뜨렸다.
- 크르르렁!
거친 포효를 터뜨린 것은 사비강이 아니었다.
바로 그 그림자였다.
놀랍게도 그림자는 바로 반묘였다.
한데 좀 달라진 모습이었다.
“커, 커졌어.”
“그것도 아주 많이… 커졌군.”
백색 털에 검은 줄무늬가 그려진 반묘는 이제 ‘고양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커진 상태였다.
마치 백호처럼.
녀석은 붉은 안광을 휘날리며 사비강의 어깨를 강하게 물어 버리더니, 휘젓듯이 날려 보냈다.
꽈다아앙!
이번에도 사비강이 속수무책으로 날아가면서 오두막집을 완전히 무너뜨리며 쓰러졌다.
- 크르르르…!
바닥에 착지한 반묘가 콧잔등을 구기며 나직이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