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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388화 (388/670)

# 388

귀환 마교관

388화

콰직!

욱청풍이 주먹으로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그는 노기 띤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탁자 한쪽이 완전히 부서져 나갔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꽉 말아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찰국주로 섭청을 임명하다니! 도대체 맹주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원!”

욱청풍은 씹어뱉듯 말하고는 뺨을 연신 씰룩였다.

그렇잖아도 그는 지난 대회의장에서 사비강의 묘한 사술에 걸려들어 잠에 빠져든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있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멸마관 개설이라는 중요한 안건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야말로 속이 뒤집어지는 줄만 알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일이 진행됐다는 것을 따지기에는 영 체면이 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공석이 된 감찰국주 자리를 자신과 뜻이 잘 맞는 묵양제에게 주기 위해서 내심 신경을 써 왔다.

한데…

“검영각의 섭청이라니! 허참!”

욱청풍은 거듭 납득하기 힘들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곁에 있던 묵양제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확실히 이번 인사는 파격적이었습니다. 검영각주님이 감찰국주가 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요.”

“이러다가 파격이 아니라 파탄이 날 지경일세. 어찌 이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신단 말인가!”

“설마 맹주님께서 독단적으로 결정하셨겠습니까? 총군사의 입김이 작용을 했을 테지요.”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군. 자네는 화가 나지 않는가?

시종 담담하게 대꾸하는 묵양제를 보면서 욱청풍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묵양제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에겐 과분한 자리였나 봅니다.”

하나 실은 묵양제 역시 내심 배알이 뒤틀리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감찰국주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물밑 작업을 열심히 하던 자였다.

한데 섭청이 임명되고 나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애초에 맹주께서 섭청을 내정하셨다면 따져서 될 일도 아니었을 터.’

그는 냉정하게 이 일을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총군사를 찾아가 삿대질을 하며 따지고 싶었으나, 어디 세상을 내키는 대로만 살 수 있단 말인가?

욱청풍이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멸마관이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고, 감찰국주는 생각지도 못한 자가 차지해 버렸으니 앞으로 맹이 어떻게 유지될지 답답한 노릇이로다.”

욕심도 지나치면 신념이 되는 법.

욱청풍은 자신의 욕심과 올바른 신념을 구분하기가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그는 지금도 진심으로 정도맹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욕심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곧 정도맹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묵양제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사비강 관주가 정말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강호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욱청풍이 실소를 터뜨리더니 묵양제를 돌아보았다.

“자네는 그 작자가 정말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온갖 묘한 술법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자를 어찌…!”

“그러니 그걸 철저히 검증해야겠지요.”

묵양제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욱청풍도 흠칫거리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검증이라…?”

두 사람의 시선이 한동안 얽혔다.

뒤늦게 묵양제의 속내를 짐작한 욱청풍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그런 뜻이었군.”

“특별감사를 나가는 겁니다. 멸마관의 위세가 대단해진 만큼 철저한 조사를 하는 거지요.”

“과연. 자네는 정말이지 옳은 소리만 하는구먼. 한데 감찰국이 직접 나서서 조사하겠다면?”

“그건 안 될 말이지요.”

묵양제가 단호하게 대답하더니 말을 이어 갔다.

“감찰국은 기존의 조직들을 감시하기도 바쁩니다. 또한 감찰국은 권력형 비리를 중점적으로 파헤치는 곳이지요. 하지만 멸마관은 이제 생긴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전담 감사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파견하는 게 정상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사비강 관주와 매설란 총관은 전 감찰국주였습니다. 그러니 감찰국에서 전 감찰국주들을 조사한다는 것은 자칫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과연 구구절절 옳은 말일세.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네.”

“뭡니까?”

“자네 말대로 멸마관은 이제 막 개설된 기관일세. 한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전담 감사 조직을 파견한다고 하면, 자칫 사기를 꺾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걸세.”

묵양제는 그 또한 생각해 두었다는 듯 막힘없이 말을 이어 갔다.

“신생 조직이든 구 조직이든 문제가 있다면,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라 하면?”

“최근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멸마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중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합니다.”

“아, 그 얘기인가? 나도 들었네.”

욱청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으로 인해 매일 같이 심각한 부상을 입는 환자들이 속출한다는 소식.

이미 정도맹 본단 내에서도 자자한 소문이었다.

묵양제가 말을 이었다.

“이미 몇몇 생도들 중에는 자진해서 퇴관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흐음. 과연 문제를 삼으려고 한다면 충분히 걸고넘어질 수 있겠군.”

“아무래도 사비강 관주가 무엇이든 자신의 뜻대로 하려다 보니 기고만장한 게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주의를 주어야겠지요.”

“그렇지. 좋은 지적일세. 그러고 보면 자네 같은 사람이야말로 감찰국주 자리에 딱 어울리는데 말이야.”

욱청풍이 못내 아쉽다는 듯 혀를 차자, 묵양제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꼭 감찰국주 자리만 자리겠습니까?”

“허허허! 그렇지. 감찰국주가 아니어도 자리는 많지. 가령 ‘멸마관주’라든지 말일세.”

묵양제가 대답 대신 희미한 웃음만 지었다.

욱청풍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했다.

“오늘 저녁에 있을 회의에서 바로 건의를 하세. 이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엄중히 다뤄져야 할 걸세.”

“회주님이 힘을 실어 주신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요.”

“암! 내 당연히 맹을 위해서 힘을 써야지.”

그때였다.

묵양제가 아주 잠깐 흠칫거렸다.

그 낌새를 챈 욱청풍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

묵양제가 미미한 미소를 머금더니 욱청풍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감사 임무는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방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소식?”

“사비강 관주가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뭣이?”

욱청풍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가만히 전음을 듣던 묵양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강서 지역으로 마물 토벌대를 구성해서 출정을 한 모양입니다만….”

“거기서 사비강 관주가 실종됐다?”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 사망자와 부상자까지 꽤 되는 모양입니다.”

“허참! 멸마관이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관주가 실종되고 사상자가 발생하다니! 도대체 어떤 마물을 상대했기에?”

“그걸 지금부터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묵양제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말하자, 욱청풍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어.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

무랑전 생도들이 커다란 목판을 지고 연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랑전 앞에 다다른 매설란이 생도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전주님이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제단?”

“천지를 잇고 공간을 잇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천지를 잇고 공간을 이어?”

매설란의 거듭된 질문에 생도도 더 이상은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매설란이 심호흡을 하고는 무랑전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무랑을 만나지 못했다.

무랑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싶으면, 어느새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 버렸다.

무랑도사의 술법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리라.

처음에는 약이 오르고 화가 났다.

아니, 애초에 그를 찾을 때부터 화가 나 있었다.

분명 사비강이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 그가 아닌가?

어찌 보면 그 일을 따지기 위해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세 번째 문전박대를 당하는 동안, 매설란은 꽤나 차분해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격랑처럼 일어났던 감정들이 어느새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이성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이제는 따지기보다는 대책을 논의하고 싶어 찾아온 것이다.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이젠 더 이상 문전박대하지 말아요. 그럼 정말 화가 날 지도 모르니까.’

마음을 굳힌 매설란이 무랑전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아…!’

다행이다.

무랑전 내부의 모습이 보인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무랑이 그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이리라.

곧장 전주실로 찾아가자 무랑도사가 정좌를 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오셨소?”

“네 번을 찾아서야 받아주시는군요.”

“그동안 좀 바빴소.”

무랑의 심드렁한 대꾸에 매설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따질 생각은 없으니까. 부탁드리려고 왔어요.”

“최선을 다할 것이오.”

내용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무랑이 대답부터 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말을 막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겠지만, 매설란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어요. 이미 그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시라는 걸요. 그래도 꼭 한 번은 더 부탁드리고 싶었어요. 반드시 그를 찾아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소.”

“감사해요.”

매설란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돌아섰다.

이걸로 무랑에게 볼 일은 끝났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거면 된 거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예전 같으면 무랑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두 손 모아 기도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마계’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싸우는 사비강을 보면서 삶을 대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

마음을 다잡은 매설란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내게 들르라고 하시오.”

“네?”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매설란이 돌아보았다.

“사람을 보낼 생각 아니었소?”

“그걸 어떻게…?”

“총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능동적으로 변했으니. 뭐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소.”

매설란이 멍하니 서 있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이 영감은 정말 못 당하겠다.

무랑이 말을 이었다.

“내게 오면 부적 두 장을 써 줄 거요. 도움이 될 거외다.”

“무슨 부적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나는 운을 돕는 부적일 거고, 다른 하나는 나와 연결고리가 될 거요.”

“알겠어요.”

매설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래, 반드시 찾고 말겠어! 당신… 돌아오면 내가 혼내 줄 거야! 여자를 이렇게 맘 고생시키다니!’

학관 전체가 침울한 분위기에 젖어 있더라도, 총관인 자신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곧장 총관실로 돌아온 매설란은 추량과 흑귀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총관님.”

두 사람이 총관실로 들어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두 사람은 지금 바로 관주님을 찾아오세요.”

“명 받들겠습니다!”

추량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 전에, 무랑전을 찾아가면 부적을 건네 줄 겁니다. 받아 가세요.”

“알겠습니다!”

추량과 흑귀가 곧장 몸을 돌리고 나갔다.

두 사람이라면 잘 해내리라.

특히 추량은 추종술에 있어서 달인이라고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설란도 저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자신에겐 또 할 일이 있다.

정도맹에서 감사 조직을 파견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뭐든 오라고 해. 다 이겨 줄 테니.’

그녀의 표정이 다부진 각오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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