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69화 (369/670)

# 369

귀환 마교관

369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무한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만검세가의 정문을 찾아가 보라고 했을 것이다.

질문을 한 사람이 무인이든 무인이 아니든 상관없이.

이유는 단순하다.

만검세가는 무한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문파였는데, 그 정문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독특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마치 만 개의 검을 쌓아올려서 만든 것처럼 지어진 정문은 그 누가 보더라도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심지어 현판조차도 검의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만검세가의 정문보다 더 유명한 곳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웅장한 정문을 올려다보며 한참이나 서 있었다.

사실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정문의 현판만 올려다보는 것은 그 장엄함에 압도되었다거나, 감개가 무량하다거나, 가슴 가득 차오르는 열정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이 길고도 긴 관명에 넋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절대지존… 최강무적… 사비강… 멸마관이라니….”

“이봐, 설마 이게 정식 관명은 아니겠지? 나는 그저 ‘멸마관’이라고만 들어왔는데….”

“소문에 의하면 사실 멸마관이 줄임말이라더군.”

“맙소사. 그럼 이게 정말 정식 관명이란 말이야?”

사람들이 현판을 올려다보며 연신 술렁거렸다.

중원 각지에서 멸마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무인들에게 있어서 단연 최고의 화두는 이 길고도 남세스러운 관명이었다.

어쨌거나 멸마관이 개관한 이래로, 이곳을 찾는 무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무인들이 멸마관을 지원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복수에 뜻이 있는 자들이었다.

지난 서화 평원 대전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자들이 마령교에 복수하기 위해서 자원하는 경우였다.

다음으로는 출세를 노리는 자들이었다.

정도맹의 유명 학관인 용천관은 돈이 있어야만 입관할 수 있지만 멸마관은 능력만 있으면 조건을 불문하고 받아 주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령교 토벌에 앞장서서 큰 공을 세우고 명성을 알린 다음, 세력을 구축하는 발판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꽤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호승심이 넘치는 자들이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생도로 입관을 희망했지만, 무공에 자신이 있는 몇몇 사람들은 교관을 지원하기도 했다.

정파와 사파가 한 자리에 모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는데, 그럴 때는 천멸대와 신생조가 각각 투입되어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주로 행정적인 업무는 고적산을 비롯한 철혈대가 맡았고, 입관생을 심사하는 일은 매설란과 당이협, 적무린과 서래향이 맡았다.

멸마관의 규모는 상당했는데, 관내에만 식당이 네 군데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전각 하나하나가 무척 화려하게 지어져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하면 입관을 희망하게 되는 분위기였다.

한편 관내 북쪽에는 땅을 높이 쌓아 만든 인공 언덕이 있었는데, 멸마관의 전체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그곳에는 관주가 머무는 멸마전이 있었고, 바로 앞 정원에는 정자 한 채가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었다.

사비강은 바로 그 정자에서 멸마관의 북적북적한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곁에는 단리정과 맹가숙 등 측근들이 말없이 서 있었다.

“제법 많이 모여드는군.”

사비강이 흡족한 듯 중얼거리자, 추량이 웃으며 답했다.

“아무래도 사부님이 신월문주와 비무를 한 것이 입소문을 탄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저자에서는 그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더라고요. 하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그만한 방법도 없겠지요.”

“이래서 인생은….”

사비강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한 방이라니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옆에 선 단리정이 애매한 표정으로 묻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가 딱 한 방에 날려 버렸잖아.”

마침 옆에서는 추량이 세필을 들어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사비강이 힐끔 보고는 물었다.

“뭐하는 거냐?”

“사부님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받아 적고 있습니다. 인생은 한 방!”

사비강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추량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걸 받아 적다니. 너도 참 제대로 된 제자구나.”

“그럼요! 열심히 해서 저도 사부님처럼 될 겁니다!”

추량이 눈을 빛내며 답하자,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억만 시간이 걸린들 대수랴. 그 각오를 높이 사마.”

“뭔가 기분이 묘해지는 칭찬이군요.”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지. 좋게 받아들여라.”

“알겠습니다.”

한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단리정은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가 사비강에게 물었다.

“교관… 아니, 관주님. 앞으로 멸마관의 구성은 어떻게 됩니까?”

“멸마관?”

“아… 절대지존최강무적사비강멸마관의 구성 말입니다.”

“우선 생도들은 그 능력에 따라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눈다. 일급부터 오급까지. 각 급수마다 반은 열 개다. 다만, 반의 구성원은 급수마다 다른데, 일급 반은 열 명씩. 이급은 스무 명씩. 삼급은 서른 명씩… 이런 식으로 하위 급수 반 구성원이 더 많다.”

“그럼 저희들은….”

“천멸대와 신생조는 조교 역할을 할 것이다. 실전 투입이 있을 시에는 조교 중에서 내가 임의로 몇 명을 가려서 생도들과 함께 투입할 거야. 그리고 이급 이상만 실전에 투입할 생각이다.”

그때 정자 한쪽에서 가만히 서 있던 무랑도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뭘 하면 되는가?”

“기문둔갑술과 진법, 각종 묘술에 재능이 있는 녀석들을 선별하여 키워 주시오.”

“흐음. 알겠네.”

그러자 또 한쪽에서 묵묵히 서 있던 조신량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대장간에도 쓸 만한 인재가 필요해.”

“그 부분도 중원 각지에서 손재주를 가진 자들을 알아보고 있소.”

“그렇다면 다행이군.”

실제로 사비강은 대장간의 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멸마관에서 생산될 무기들은 일반적으로 중원에서 만들어지는 것들과는 분명히 차별되어야 하기에.

때문에 그는 대장장이뿐만 아니라, 무공을 익힌 자라도 대장간 일에 더 어울리겠다는 판단이 생기면 조신량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이미 조신량에게는 마나를 다루는 법에 대해 기술한 책을 주어서 익히도록 한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교관을 지원하는 자에 한해서는 지금까지처럼 내가 직접 선별할 거다.”

“알겠습니다.”

단리정과 맹가숙이 동시에 대답했다.

잠시 후 맹가숙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교의 권한은 어디까지입니까? 말 안 들으면 패도 됩니까?”

“사파 무인을 안 패고 가르칠 수 있으면 해보든가?”

맹가숙이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나 해서 말인데….”

“……?”

“죽여도 됩니까?”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찌푸리는데,

“이렇게 말입니다!”

쒸이에엑!

느닷없이 맹가숙이 살수를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비강이 여유 있게 보법을 밟으며 훌쩍 물러났다.

터엉!

보이지 않는 막에 튕겨 나간 맹가숙이 혀를 차고는 곧장 구절창을 휘둘러 갔다.

찰나지간, 정자의 사방에서 신생조원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날아들었다.

쉭쉭! 쉬쉬쉬쉭!

팍! 파파팍!

사비강은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암기와 병장기를 요리조리 피하다가 전원이 동시에 합공을 해오는 순간, 마법을 캐스팅했다.

“익스플로전!”

찰나,

꽈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정자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동시에 사비강에게 날아들었던 신생조원들이 저마다 튕겨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단리정이 입을 척 벌리고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뭐, 일종의 과제 같은 거랄까?”

사비강이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하는 신생조들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부서진 부분은 알아서 수리하도록.”

말을 마친 그가 여유롭게 관주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

꽈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언덕 위의 정자가 박살났다.

그 바람에 멸마관에서 입관 심사를 받으려고 대기하던 사람들 중 몇몇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러자 단상 위에 서 있던 당이협이 무감한 표정으로 무인들을 둘러보며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거기, 거기, 거기… 그리고 거기. 접수증 반납하고 돌아가시오.”

졸지에 지목당한 무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이협을 보았다.

“접수증을 반납하고 돌아가라니. 무슨 말이오?”

텁석부리 사내가 미간을 푹 구기고는 물었다.

당이협은 두 번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서류를 보며 답했다.

“말 그대로 입관 심사를 받을 자격이 없으니 그냥 돌아가란 말이오.”

“아니 왜? 대체 뭐가 문제요? 갑자기 돌아가라니. 이유라도 알아야지!”

“이유 따위도 모른다니 더더욱 빨리 돌아가야겠군.”

당이협이 시큰둥하게 중얼거리자, 텁석부리 사내가 발끈해서 외쳤다.

“아니, 무슨 말장난 같은 소리야! 대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야?”

이쯤 되자 당이협도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잠시 후 그가 장내를 훑어보며 말했다.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와 그저 주변에서 나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소음조차도 구분 못해서 움찔거릴 정도라면 본관에 입관할 자격이 없다.”

그러자 텁석부리 사내가 얼굴이 벌게져서 외쳤다.

“받아들일 수 없소! 이건 엄연히 반사 신경이 뛰어난 거요!”

“그런 반사신경은 본관에 필요 없다.”

“흥! 과연 직접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지 보겠소!”

말을 마친 텁석부리 사내가 창을 들고는 곧장 경공을 펼쳐 당이협을 향해 날아갔다.

답답한 나머지 자신의 무공 실력을 직접 증명하고픈 욕심에 나선 행동이었다.

하지만 당이협은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며 피하더니 가볍게 일장을 내질렀다.

퍼엉!

“크아아악!”

꽈다앙!

단 일격에 저만치 날아간 텁석부리 사내가 벽에 부딪치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 버렸다.

이를 본 무인들이 저마다 입을 척 벌리고는 웅성거렸다.

결국 지목 당한 자들이 하나둘 걸음을 옮겨 돌아가기 시작했다.

**

언덕 위에 선 등부형은 저만치 아래에 펼쳐진 무한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뺨을 상쾌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과연 넓구나.”

등부형이 들뜬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내 삶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이 검과 함께.”

등부형이 허리춤에 패용한 검을 꺼내 들고는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곳 무한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까?

등부형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저잣거리를 지나 객잔으로 들어섰다.

역시 대도시여서 그런지 건물들이 모두 크고 화려했다.

그런데 그가 막 객잔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툭!

마침 객잔에서 나오던 사내와 어깨를 부딪치고 말았다.

살짝 기분이 상한 등부형이 미간을 좁히고는 돌아보았다.

하지만 흑립에 검은 무복을 차려 입은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내심 발끈한 등부형이 목소리를 깔고는 외쳤다.

“이봐!”

멈칫거린 흑립의 사내가 스윽 돌아보았다.

하지만 흑립을 눌러썼기에 그 눈은 보이지 않고 꽉 다물어진 입만 겨우 보였다.

등부형이 헛웃음을 짓고는 검집을 내밀어 흑립을 들어올렸다.

“앞이 안 보이면 이렇게 들고 다녀야 할 것 아닌가? 대체 눈은 어딜….”

호기롭게 말을 뱉던 등부형이 순간 움찔거렸다.

‘뭔 사람 눈이….’

뱀처럼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한 그가 침만 꿀꺽 삼키자, 흑립의 사내가 탁한 음성으로 물었다.

“뭡니까?”

“아니, 뭐… 다친 곳은 없나 싶어서… 내 어깨가 워낙… 강하니까….”

흑립의 사내가 가만히 등부형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제야 등부형이 참았던 숨을 탁 토해내며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과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군. 아니지. 괜히 분위기만 잡는 초짜일지도 모르잖아?’

생각해 보니 괜히 괘씸한 생각이 일어나서 다시 쫓아가 따져볼까 싶었다.

하지만 허기가 진 그는 곧 체념하고는 객잔 이 층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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