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
귀환 마교관
361화
눈가에 시퍼렇게 멍이 든 추량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맞을 짓을 한 건 너다.”
“전 그냥 사부님을 도와드리려고 했을 뿐입니다!”
“두 번 도와주었더라면 고자가 되었겠군.”
“그런데… 정말 괜찮으십니까?”
추량의 시선이 사비강의 소중한 부위로 향했다.
사비강이 눈을 치뜨며 물었다.
“안 괜찮다면? 네가 호 해줄 거냐?”
“죄송합니다. 이제 묻지 않겠습니다.”
추량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하자, 사비강이 한숨을 내쉬고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이 인간이 우리를 가지고 놀았겠다.”
“이 인간이라면…?”
“무랑도사 말이다. 우리가 보름 동안이나 그 꼴이 되었던 건 전부 그 도사의 술법에 걸려든 것 때문이 아니겠냐?”
“아… 그렇군요. 하지만 사부님이 당할 정도면 그 도사의 도량이 정말 대단한가봅니다.”
“정류광의 말로는 기문둔갑술에 있어서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으니….”
“그런데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보름 동안 죽 한 그릇도 못 먹고 정기를 빨렸더니… 허기가 져서 죽을 것 같아요.”
“이 마당에 지금 밥이 넘어 가냐?”
사비강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그 역시 배가 고픈 것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점소이가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왔다.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게 뭐지?”
“국수지요! 고기 육수를 우려내서 맛이 끝내줍니다요.”
“그럼 그걸로 두 그릇.”
“예이, 잠시만 기다리십쇼! 곧 맛있는 국수를 대령하겠습니다요!”
잠시 후 점소이는 고기 국수 두 그릇을 가져왔다.
그의 말대로 육수 향이 구수하게 풍겨 식욕을 자극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루루룩!
“캬아! 이 집 국수가 대단하네요!”
“배가 고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맛있군.”
추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극찬을 쏟아냈다.
“면발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맛이 끝내주는군.”
두 사람은 연신 국수 맛을 극찬하며 정신없이 먹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 그릇을 해치운 두 사람은 다시 또 한 그릇을 더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이런 국수라면 하루에 열 그릇도 먹겠습니다.”
추량의 말에 사비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잊은 게 생각 난 듯 점소이를 불러 세웠다.
“그런데 잠깐, 하나 물어보지.”
“예, 말씀하십쇼.”
“혹시 무랑도인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점소이가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처음 듣는 이름인뎁쇼?”
“정말인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러자 돌아서던 점소이가 멈칫거리더니 서늘한 표정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만하고 돌아가지?”
“뭐라고?”
사비강이 눈썹을 꿈틀거리고 되묻자, 점소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귀찮으니까.”
“뭐, 이런…”
다음 순간, 사비강은 눈앞의 점소이가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비강과 추량이 마을 어귀의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국수를 먹던 추량이 화들짝 놀라면서 튀어 올랐다.
“우와아아악!”
그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놓친 그릇과 국수를 보았다.
아니, 그건 국수가 아니었다.
그릇에 담긴 채 꿈틀거리는 것들은 바로 지렁이였다.
“우웁! 쿠웨에에에엑!”
추량이 그 자리에 엎드려서 구토를 하자 토막 난 지렁이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으윽! 우웨에엑! 쿠웨에에엑!”
그는 내장까지 끄집어낼 정도로 격렬하게 구토했다.
사비강은 내공을 운기해서 속을 다스리고는 이를 뿌득 갈았다.
“이 지렁이 같은 놈이 또 나를 놀려먹었어!”
“크흑, 사, 사부님…! 그냥 돌아가시죠. 아무래도 그분은 교관이 될 생각이 없나봅니다.”
추량이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사비강은 절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만약 직접 대면해서 말로 정중히 거절했다면, 차라리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절대로 그냥 물러갈 수는 없지.’
이젠 오기가 생겨서라도 포기할 수 없다.
사비강이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저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추량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사부님… 또 가시렵니까?”
“당연하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
“그자의 술법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데… 이번에도 당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렇다면 저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여서라도 찾아내고 말겠다.”
“헉, 사부님! 잠깐만요!”
하지만 사비강은 추량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갔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았을 때, 그는 결국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추량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매설란 전 국주님?”
추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앞서 걷던 사비강도 움찔거리고 돌아보았다.
과연 바위 앞에 매설란이 와 있는 게 아닌가?
그녀는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숨을 헐떡이며 사비강을 보고 있었다.
“다행이에요. 아직 저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군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보다 어째서 설란이 여기에 있는 거야?”
사비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오자, 매설란이 와락 달려들며 안겼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저 마을에 들어가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당신이 찾는 무랑도사. 그자가 제 꿈에 나타나서 경고했어요. 당신이 저 마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요.”
“무랑도사가?”
“네. 그가 말하길, 때가 되면 자연히 당신 앞에 나타날 거라고 했어요.”
“정말 그랬단 말이야?”
“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저 마을에 들어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어요. 그래서 난 걱정이 되어서….”
“흐음. 그랬군.”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매설란이 입술을 덮쳐 왔다.
“당신을 잃을까 봐 걱정했어요.”
“걱정 마. 난 강하니까.”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건 없으니까요.”
“설란…”
사비강이 부드럽게 웃음 지으며 매설란에게 입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저어… 사부님?”
“…….”
“사부님!”
“왜 그러냐?”
사비강이 입맞춤을 멈추고 퉁명스럽게 돌아보았다.
추량이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부터 왜 그렇게 나무를 끌어안고 핥아대십니까?”
“뭐?”
“그 나무… 맛있나요?”
사비강이 흠칫거리고 돌아보자, 매설란은 온데간데없고 비쩍 마른 고목만 서 있는 게 아닌가?
“헉, 퉤! 퉤! 제기랄! 무랑!”
“예? 무슨 말입니까?”
“무랑! 이 개 같은 도사가 감히 나를 놀려 먹어!”
“무랑…? 그건 또 누굽니까?”
추량의 말에 사비강이 짜증스럽게 답했다.
“말했잖아! 우리가 찾으러 온 자가 무랑도사라고!”
“금시초문인데요.”
“뭐?”
추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갑자기 나무를 끌어안고 핥아대시더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사비강은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물었다.
“우리가… 여기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지?”
“반각도 지나지 않았을 걸요?”
“반각…? 그럼 홍화루에 갔다가 술법에 당한 기억은 나는 거냐?”
“홍화루라뇨? 설마 사부님 저 몰래 기루에 다녀오신 겁니까?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됐고. 그럼 국수 대신 지렁이를 먹은 건?”
“엑? 지렁이를 왜 먹어요? 뭐, 지렁이가 몸에 좋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별로 먹고 싶진 않은데요.”
사비강은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그가 추량의 양 어깨를 콱 움켜쥐고는 소리쳤다.
“확실한 거냐?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게 아직 반각도 지나지 않았다는 게!”
“으윽. 아, 아픕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분명 조금 전에 도착해서 잠시 쉬다가 가자고 하셨잖아요. 왜 당연한 걸….”
“이런 제길! 무랑! 무랑!”
사비강이 이를 빠득 갈고는 저만치 아래의 마을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홍화루에 간 것도, 지렁이 국수를 먹은 것도 모두 허상이라니!
아마도 무랑도사는 사비강만 저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리라.
‘감쪽같이 속았어.’
무랑도인의 도량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봤소, 무랑!’
사비강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저어… 괜찮으세요?”
“너 같으면 괜찮겠냐? 고자가 될 뻔했는데.”
“헉,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그런 게 있어. 일단 저 마을부터 통째로 날려 버려야겠다.”
“예에? 마을을 날려 버리다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추량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사비강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후 그가 레비테이션 마법을 펼쳐서 밤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곧이어,
“무랑은 들어라! 당장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도향 마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
공력을 잔뜩 담은 사자후가 밤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벽력과도 같은 목소리에 추량은 물론, 도향 마을 사람들 모두가 화들짝 놀라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하늘에 뜬 사비강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맙소사, 저, 저게 뭐야?”
“신, 신령인가?”
추량은 도대체 사비강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나무를 끌어안고 핥아대시더니 갑자기 불바다 타령이라니. 이건 너무하잖아요, 사부님?’
평소 이해하기 힘든 사부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설마 정말로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은 아니시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진심이었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무랑! 마을을 지워도 좋다는 뜻으로 알겠다!”
사비강이 다시 쩌렁쩌렁 소리치더니 왼손을 쭉 뻗었다.
시뻘건 오러가 그의 왼손에 맺혀 가더니,
“볼케이노!”
우렁찬 고함소리 끝에 땅이 갈라지며 지진이 일어났다.
꽈르르르르릉! 쩌엉!
“우와아아악! 지, 지진이다!”
“모, 모두 조심해! 위험해!”
“맙소사,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도향 마을 주민들이 우왕좌왕거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추량이 입술을 질끈 씹었다.
“사부님!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이런 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비강은 추량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았다.
마침내 갈라진 땅에서 용암이 분출했다.
츄아아아아아!
화륵! 화르르르륵!
“끄아아아악!”
“피해라! 으아아악!”
“살, 살려줘엇!”
비명과 고함소리가 마을에 난무했다.
하지만 대로 복판을 가르며 솟아난 용암은 무자비했다.
순식간에 범람한 용암이 거리를 덮치고 건물을 덮쳤으며 사람들을 불태워 녹여 갔다.
용암에 닿은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맙소사…”
추량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사비강이 사용한 볼케이노 마법은 술법도 무엇도 아니다.
엄연한 현실.
추량은 뜨거운 열기를 안면으로 고스란히 느끼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
용암이 분출한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용암덩어리 위를 걷는 사비강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뒤를 묵묵히 따라 걷는 추량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꼭 이래야만 했습니까?”
“그래.”
“어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십…!”
“호들갑 떨지 마. 죽은 사람은 없으니까.”
“뭐라고요? 절규하던 마을 사람들은….”
“다 장난감이야. 무랑도사가 만든.”
“그게 무슨…”
“그 증거다.”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들어 저만치 보이는 오두막집을 하나 가리켰다.
놀랍게도 모든 마을이 용암에 삼켜졌는데, 야산의 오두막집 하나 만큼은 기적처럼 멀쩡한 모습이었다.
“저긴 어째서…?”
“눈에 보이는 저기가 저기가 아닌 거지.”
“저기가 저기가 아니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 이제 알아보자고. 저기가 어디인지.”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