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48화 (348/670)

# 348

귀환 마교관

348화

“흐이익! 살, 살려… 크아아악!”

“아아악! 이 괴물들! 죽…. 커억!”

여기저기에서 정도맹 무인들의 비명이 솟구쳐 올랐다.

폭마병의 폭발에 휩쓸려 사지가 절단된 채 죽어 가는 무인들, 굴마병에게 난자당하는 자들, 바올드의 촉수에 사로잡혀 질식사 하는 자들.

지옥이 정말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게다가 거마병의 움직임은 웬만한 무인들이 절대로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자고로 몸집이 크면 움직임이 둔하기 마련이건만, 거마병은 그 모든 것이 절정 고수 이상의 수준이었다.

심지어 거마병은 죽어 가는 마병들을 손으로 집어 들어 뜯어먹기까지 했다.

“우욱…!”

“저, 저런 괴물…!”

그 엽기적인 모습에 정도맹 무인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병들을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거마병의 신체가 점점 변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동류인 마병들을 뜯어먹으면서 양분으로 삼는 듯했다.

피부는 더욱 단단해져 갔고, 근육은 더욱 커졌으며, 안광에 깃든 살기도 더욱 짙어졌다.

“하등한 마물 따위에게 기죽지 마라!”

저만치 먼 곳에서 능운파가 소리치며 살검을 펼쳤다.

시종 냉엄함을 유지하던 그의 두 눈빛도 이제는 살기등등해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미 꺾일 대로 꺾인 사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많은 무인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싸움을 포기하기 일쑤였다.

“다 끝났다….”

“정의가… 패했어.”

정도맹 무인들은 충격과 공포 속에서 그렇게 목숨을 잃어 갔다.

**

‘어찌 이럴 수가…!’

총군사 구윤은 참담한 표정으로 서화평원을 바라보았다.

그와 같은 곳에서 평원을 바라보는 장로회주 욱청풍(郁淸風)과 천호당주(天虎堂主) 묵양제(墨陽霽)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척 벌리고 있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도대체 저 괴물들은 어디서…?”

그들 곁에서 묵묵히 서화평원을 내려다보던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이제 내 말에 좀 더 신빙성이 생겼군.”

이쯤 되니 구윤도 완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비강을 믿었지만, 그럼에도 사비강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예언 같은 것은 의구심을 가진 게 사실이었다.

한데…

“저런 것을 보았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겠군요.”

구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만치 보이는 바올드와 거마병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아니 존재해서는 안 될 괴물들이었다.

퇴각 명령이 떨어진 후에도 전투에 참전한 몇몇 장로들이 호승심을 품고 바올드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절정을 훌쩍 뛰어넘은 고수들조차도 바올드 앞에서는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어디 그 뿐인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퇴각하던 무인들은 앞을 가로막은 거마병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들은 거마병이 휘두르는 거대한 주먹 한 방에 온몸이 터져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시체가 되고 말았다.

‘애초에 생각을 잘못했다!’

구윤은 이번 싸움에서 혈사련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 보니 혈사련보다 두려운 적은 마령교다.

아마 지금쯤 그 사실을 혈사련도 짐작했으리라.

‘련주… 당신은 도대체 무슨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거요?’

그 실수 때문에 정도맹뿐만 아니라 혈사련도 위험해지게 생겼다.

다만…

‘우리에겐 이를 짐작한 자가 있었다는 게 큰 위안이군.’

구윤이 고개를 돌려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은 이번 전쟁에서 마령교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가 미래에서 회귀했다는 건 이미 들었다.

물론, 자신과 맹주에게만 언질을 해준 부분이다.

하지만 맹주는 물론, 자신도 그 말을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사실 저런 마물들을 실제로 보기 전에는 믿을 방도가 없지 않은가?

‘한데… 진짜였어.’

물론, 지금도 실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믿지 않을 방도도 없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구윤이 사비강을 슬쩍 돌아보았다.

사비강이 뭐냐는 듯 바라보자,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진작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야 수뇌부 회의에서….”

“아니지 않습니까?”

“……?”

“당신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무시하고 나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원래 그런 사람이지 않습니까?”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구윤의 말이 맞다.

자신이 언제부터 그런 탁상공론에 귀를 기울였던가?

구윤이 조금은 원망 서린 눈동자로 사비강을 바라보았다.

“진작 나섰더라면 저런 피해는 입지 않았겠지요?”

“그랬을 거요.”

사비강은 부인하지 않았다.

구윤이 다시 말했다.

“한데 왜 그러셨습니까? 수뇌부를 향한 반발심이라고 하기에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

“하면?”

“지금의 희생은 추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사비강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었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정도맹이 절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 닥칠 재앙에 대해서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려고 할 것이다.

아니, 사비강의 말을 아예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번 전쟁은 미래에 닥칠 재앙에 대한 경고와 같은 개념이었다.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좌절과 절망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경각심을 가지게 될 테니.”

구윤은 가만히 사비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로서도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사비강이 말하는 뜻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돌렸다.

“뭐, 그런데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젠 내가 나서야겠군. 현재 맹에 남은 조직이 있소?”

“아직 신협단(信俠團)이 남아 있습니다.”

“총 몇 명이오?”

“일천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내가 저들을 구해 보겠소.”

그렇게 사비강이 언덕을 내려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문득 그 앞을 천호당주 묵양제가 막아섰다.

그는 정도맹에서 다섯 번째의 실권자로서, 은휘가 죽은 후에는 네 번째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이기도 했다.

사비강이 이맛살을 푹 찡그리며 물었다.

“뭐요?”

사비강이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짓자, 묵양제는 내심 욱하면서도 근엄한 척 말했다.

“신협단은 본맹의 조직이오. 사 대협이 임의로 이끌 수 있는 조직이 아니란 뜻이오.”

사비강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도 탁상공론이나 펼치고 있는 묵양제가 한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지켜보던 장로회주 욱청풍이 묵양제를 거들었다.

“묵 당주의 말이 옳소. 지금 전황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오. 자칫 사 대협이 신협단마저 위험에 빠트리면 본맹은 회생할 기회마저 아예 잃고 말 거요.”

사비강이 슬쩍 구윤을 돌아보았다.

전시에 결정권을 가진 이인자로서 이 사태를 해결해 달라는 뜻이었다.

구윤이 그 의미를 눈치 채고는 나섰다.

“두 분의 염려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비강 전 국주님께 희망을….”

“군사께서는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어찌 그리 무책임하게 말하실 수 있소?”

욱청풍이 질책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제아무리 총군사라지만 장로회주에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

구윤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사비강 전 국주님은 이번 일을 예견하신 만큼….”

“예견은 예견이고! 이건 실전이오! 군사께서는 지금 저기 펼쳐진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시오? 이제 와서 사비강 대협이 신협단을 이끈다고 한들 본맹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오?”

구윤의 시선이 자연스레 전장으로 향했다.

사실 그로서도 욱청풍의 말을 반박할 근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전세가 많이 기울었다.

그래도 무위가 고강한 맹주님만큼은 어떻게든 살아남으실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무인들은 거의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시기에 과연 천 명의 신협단을 투입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평소라면 자신도 절대 반대했을 것이다.

그건 불구덩이에 천 마리의 나방을 풀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하지만 사비강이라면… 어쩌면…

이런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논리로 설득해야 할 군사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자신은 사비강의 실전 무공을 견식한 적은 없지 않던가?

구윤의 말이 궁해지니, 이번에는 묵양제도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시겠소? 사 대협의 의기는 높이 사나, 전쟁은 수많은 무인들의 목숨이 달린 거요. 만약 신협단을 이끌고 달려들었다가 전멸이라도 당하면 본맹은 재기의 기회마저 날려 버리는 거요. 그땐 누가 책임을 지겠소?”

사비강이 묵양제를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조소를 지었다.

“해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지금은 무인을 아끼고 맹주님의 무사귀환을 빌 수밖에….”

“방법이 없으면 손 놓고 구경하는 게 당신들 특기인가보군.”

“뭐, 뭣이! 지금 나를 도발하는 것인가!”

묵양제가 격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곳은 전장이다.

더구나 아군의 패망이 눈앞에 보이는 시점이다.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데, 사비강이 울고 싶은 아이 뺨을 때린 격이었다.

묵양제는 여차하면 검도 뽑아 들 기세로 살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사비강도 이번에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묵양제의 두 눈을 빤히 노려보았다.

“비켜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아군이 죽어 가고 있다.”

느닷없는 반말.

그만큼 사비강도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묵양제도 순한 양은 아니었다.

“노옴! 감히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는구나! 아무리 상황이 급박한들 네놈이 천 명의 신협단을 사지로 끌고 들어가도록 내버려 둘 줄…!”

“비켜. 마지막 경고다.”

“흥! 절대 못 간다! 네놈은 여기서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는 안 될 것…!”

쉬이이이익!

찰나, 금속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베르타스가 묵양제의 목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사락사락.

시퍼런 예기를 뿜는 베르타스의 날에 묵양제의 수염이 잘려 나가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비강이 뽑아 든 것은 아니었다.

베르타스가 저절로 검집에서 뽑혀 나와 묵양제의 목을 겨눈 것이었다.

검봉이 목을 살짝 찌른 것인지 핏방울이 맺혔다.

물론, 그 핏방울은 맺히자마자 베르타스가 스르륵 흡수해 버렸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묵양제는 물론 욱청풍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안했으니 상관없겠지?”

꿀꺽…!

묵양제가 마른 침을 삼키자 핏방울이 다시 맺혔다가 베르타스에 금세 흡수되었다.

사비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고인 물은 썩는다지만 이건 좀 심하군. 그 사이에 벌써 세력이 생겼다고 알력다툼부터 하다니.”

실제로 천호당주 묵양제는 설백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 기도 펴지 못했던 자였다.

그 당시 그는 힘없는 정의였지만, 지금 실권을 얻은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비열한 속성에 젖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이 권력을 쥐는 것인지, 권력이 인간을 주무르는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싸늘하게 말을 뱉는 사비강의 전신에서 한기가 풀풀 휘날렸다.

지금 이 순간 묵양제는 사비강의 두 눈을 마주하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