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
귀환 마교관
343화
사비강이 신생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나 있어라.”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신생조원들이 저마다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멀찍이 물러났다.
차가운 눈빛으로 잠시 주위를 쓸어보던 사비강이 적면인을 응시했다.
“……!”
단지 시선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한데 적면인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그가 발작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우, 우선 저 녀석부터 처리해야 한다! 대, 대열을 갖춰라! 어서!”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마병들이 저마다 특이한 보법을 밟으면서 사비강을 에워쌌다.
적마단 역시 적면인 앞에 진을 치며 다시금 살기를 피워 올렸다.
사비강이 싸늘한 시선으로 적들을 훑어보더니 나직이 읊조렸다.
“블레이즈 가디언(Blaze Guardian).”
순간,
후끈한 열기가 사방에서 불어오는 것 같더니 사비강을 중심으로 공간이 이지러지는 듯했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완전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 듯하다.
곧이어,
콰아아아아아아!
사비강의 몸이 뜨거운 불덩이로 변하는가 싶더니, 반경 오 장 정도까지 화마가 폭발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퀴이이익!”
“크우우우!”
모든 것을 무로 돌려놓는 심판의 화염이 솟구치자 사비강을 에워싸고 있던 마병들 중 삼분지 일이 흔적도 남지 않고 증발해 버렸다.
“크읍!”
“이렇게 강렬한…?”
마병의 뒤에 자리한 적마단 역시 움찔거리며 그 열기에 놀라 한 걸음씩 물러났다.
잠시 후,
휘오오오오!
화르르르륵!
이글거리던 화마의 열기가 응축되는가 싶더니 사비강의 몸으로 완전히 흡수됐다.
블레이즈 가디언.
8서클에 이르는 극 초열 마법이다.
헬파이어가 초고온의 열기로 광범위한 지역을 불태우는 것이라면, 블레이즈 가디언은 초열을 시전자의 몸에 집중하여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때문에 그 열기만큼은 헬파이어보다도 뜨거웠다.
사비강이 천천히 눈을 떴다.
파괴적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그의 동공마저 화마가 집어삼킨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 마령공을 운용해라!”
적면인의 절규와 같은 외침에 적마단이 급히 마령공을 운용하며 숨통을 텄다.
마침 사비강이 발을 들어 한 걸음 내디뎠다.
화르륵. 화륵!
사비강이 내딛는 자리마다 불길이 옮겨 붙으며 활활 타올랐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이 나가 버린 적면인은 뒤늦게 정신을 수습하고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뭐, 뭣들 하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화르르륵!
사비강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자 뜨거운 열기가 더욱 짙어졌다.
동시에 그 열기와는 반대로 차갑게 식은 사비강의 목소리가 창날처럼 날아와 적면인의 가슴을 때렸다.
“어지간하면 수단 가리지 않고 재활용을 하려고 했지. 이유가 뭔지 아나?”
화르르륵!
또 다시 내디딘 걸음에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지금… 뭔… 소리를…”
“좀 미안해서다. 그놈들과 어울리면서 대공의 자리까지 오르는 동안, 혼자라도 살아남겠다고 발악했던 세월이 미안해서.”
화르르륵!
사비강의 눈빛은 모처럼 진중했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적면인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도저히 재활용을 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더라고. 가령 동족인 인간을 이용해 먹는 너 같은 것들 말이지.”
휘오오오오오!
순간 사비강의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가 광풍처럼 소용돌이쳤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적면인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으익! 저 미친놈을 당장 죽여 버려라! 어서!”
그러자 마병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며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
“쿠위이이익!”
쒸에에엑!
그 와중에도 사비강은 오로지 적면인만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적면인은 보았다.
모든 분노가 집약되어 있는 사비강의 두 눈에서 묘한 희열이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멈춘 듯한 시간이 다시 흐르면서 사비강에게 수십 명의 마병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콰아아아아!
퍼캉! 퍼퍼퍼퍼퍼펑!
쉬르르르르!
놀랍게도 마병들의 무기가 사비강의 몸에 닿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져 나가면서 연소되는 것이 아닌가?
마병들 역시 순식간에 온몸이 터져 나가면서 잿더미로 변해 바람에 흩날렸다.
그야말로 뜨거운 불길에 한 몸을 던져 잿더미로 변해 버리는 불나방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고통과 공포를 모르는 마병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쿠와아아아!”
“쿠우우우우!”
퍼캉! 퍼퍼퍼퍼퍼펑!
쉬르르르르!
마치 사비강의 전신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모든 마병들이 일제히 연소되면서 잿더미로 휘날리니, 주변은 금세 자욱한 연기로 휩싸이고 말았다.
적면인은 입을 딱 벌린 채 넋을 놓았다.
‘악…마다. 인, 인간이… 아니야.’
잿더미가 구름처럼 휘날리는 가운데 사비강이 꾸준히 걸음을 옮겨 왔다.
퍼퍼퍼펑!
쉬르르르!
사비강이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고는 말했다.
“사실 난 쓰레기를 재활용할 때보다, 깔끔하게 청소할 때 기분이 더 좋아.”
그를 지켜보던 신생조원들 역시 입을 딱 벌린 채로 다물 줄을 몰랐다.
“니미럴…! 저런 인간을 어떻게 죽이라는 거야?”
맹가숙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소린가?”
백공보가 맥 빠진 소리로 농을 던졌지만 웃는 사람은 없었다.
‘과연 저 모습을 보고도…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사비강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백여 명의 마병들이 전소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지막 마병까지 잿더미의 구름 속으로 들어간 다음 돌아 나오지 못하자, 적면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주춤 물러났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사비강에게 맞서고 있던 적마단원들 모두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주체하면서 조금씩 물러섰다.
“악, 악마다…!”
“단, 단주…! 물러나야 합니다!”
몇몇 이들이 본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비강의 살기에 사로잡힌 적면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침내 잿더미가 바람에 씻기듯 날아가 버리자, 불길에 휩싸인 사비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처음보다 훨씬 냉엄해져 있었다.
“모두 백두 명. 내게 죽은 자들이다. 신생조가 처리한 녀석들까지 합하면 더 되겠지? 이백 명인가?”
“무슨…?”
적면인이 눈썹을 꿈틀거리자,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병들 말이다. 아무래도 식태마를 이용한 듯한데….”
적면인의 눈동자가 더욱 커졌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네가 데려온 녀석들만 이백이면 적어도 마령교가 일이천 명의 마병을 이끌고 있다고 봐야겠군.”
적면인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갔다.
‘이자가… 어째서 마병을 아는 거지? 게다가 마병을 식태마로 만든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다. 도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처음에는 한낱 괴짜 교관인줄 알았다.
한데 그가 사용하는 무공을 본 이후로는 사이한 술법을 익힌 은거기인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령교만 알고 있을 사항들에 대해서 저리도 술술 풀어내다니?
‘혹시… 교내에 간자가 있다는 건가?’
머릿속이 뒤숭숭한 가운데 사비강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적어도 같은 인간으로서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고로, 너희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오늘 여기서 소각될 것이다.”
“개, 개소리는 작작해라! 뭐, 뭣들 하느냐! 쳐라! 저놈을 치란 말이얏!”
몇몇 적마단원들이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며 도검을 휘둘러 갔다.
“흐아압!”
“죽어라! 이 괴물아!”
하지만,
퍼퍼펑!
쉬르르르르!
마기를 두르고 몸을 보호했음에도 사비강의 열기에 닿자마자 그들 역시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이쯤 되자 적마단원들 다수가 전의를 상실하고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익…! 저건… 못 이겨!”
“단주,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사비강은 시종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달아나는 적들을 훑어보더니,
“말했을 텐데. 이 자리에서 쓰레기는 모두 소각해 버리겠다고.”
말이 끝나자마자 사비강을 두르고 있던 화염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는 불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휘르르르륵!
“흐억! 우아아악!”
“크아아악!”
그야말로 불지옥이 따로 없었다.
불줄기에 덮쳐진 적마단원들은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잿더미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말았다.
‘어째서 이렇게 된…?’
적면인의 눈동자가 퀭해졌다.
이런 자를 도대체 누가 막아낸단 말인가?
이 정도면 선천마령지체는 문제도 아니지 않나?
마령교는 사비강에 대해서 훨씬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자는 중원을 뒤흔들 존재다.
어째서 강호인들은 그동안 이런 자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마침내 모든 적마단원이 잿더미로 변해 숨을 거두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적면인은 완전한 공포에 사로잡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슈르르르…!
마침내 사비강의 온몸을 뒤덮었던 불기운도 서서히 사라지더니, 적면인 바로 앞에서 멈추었을 때는 온전한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적면인에게는 그조차도 또 다른 공포일뿐이었다.
사비강이 적면인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네놈들은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
적면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에.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별로 듣고 싶진 않았어.”
다음 순간,
샤샤샤샤샥!
수 가닥의 빛줄기가 허공을 베며 지나갔다.
범인이 보았더라면 가만히 서 있는 사비강 앞으로 빛줄기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사비강은 베르타스를 쥐고 적면인을 향해 휘두른 것이다.
적면인은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사지가 서늘하다고 느꼈을 뿐.
잠시 후,
피츗, 피츗!
츄아아아아!
전신에서 가느다란 선혈이 생기는가 싶더니 이내 핏줄기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적면인이 눈을 부릅떴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결국 선천마령지체를 이번에도 눈앞에 두고 실패하고 말았다.
털썩!
이윽고 적면인이 무릎을 꿇었다.
그가 울컥거리면서 핏물을 토해내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막상 죽음을 목전에 두자 살을 엘 것 같은 공포감도 사라졌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존야께서… 네놈을…!”
쉬컥!
다시 한 번 한 줄기 섬광이 횡으로 스쳐 지나가더니 적면인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툭, 데굴데굴.
사비강은 바닥을 구르는 적면인의 머리를 무신경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미안하지만 그 목소리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아.”
사비강이 돌아서서 신생조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죽진 않았군.”
잠시 얼음처럼 굳어 있던 신생조원들이 그제야 조금 긴장을 풀었다.
추량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다가왔다.
“안 죽어서 아쉽다는 소리처럼 들리잖아요.”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자들. 역시 인간인 거겠죠?”
“그런 건 깊이 생각할수록 손해다. 괜한 감정 소모하지 말고, 마음이 복잡할 땐 단순하게 정리해. 이 녀석들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알겠습니다.”
“그래야지. 앞으로의 싸움을 버티려면.”
마침 맹가숙이 절뚝거리며 다가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가야지.”
“간다면 역시….”
“재령산으로 간다. 모처럼 소각해야할 쓰레기들이 모여 있으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지.”
“그렇다면 굳이 재령산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겁니다. 녀석들도 지금쯤 정도맹 본단을 치기 위해 올라오는 중일 테니까요.”
“그럼, 더 일찍 조우하게 되겠군.”
사비강의 표정이 다시 서늘하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