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337화 (337/670)

# 337

귀환 마교관

337화

촤아아악!

치이이이!

펄펄 끓는 물이 흩뿌려질 때마다 후원에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매설란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보면서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나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게 당신 특기잖아요.’

마침 후원 쪽으로 당이협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 쉬시지요.”

“전 괜찮아요. 그보다 홍묘 쪽은 어떻게 됐나요?”

“적무린과 함께 용문산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두 사람이 정사를 치르고 세혼폭멸고를 처리했을 겁니다.”

“그럼… 적무린 그자는….”

“죽습니다.”

당이협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했다.

세혼폭멸고는 어지간한 독으로 제거할 수 없다.

제멸고독단은 그런 세혼폭멸고도 녹여 버릴 만큼 엄청난 독이다.

어지간한 고독도 제멸고독단에 비할 수는 없다.

매설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령산 쪽은 어떻습니까?”

“구 군사님이 밀서를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전서는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직접 발 빠른 자를 보낸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도착할 때가 되었겠군요.”

“그렇습니다. 동시에 재령산 인근 지단에 사람을 보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혹시 모를 일이라면 역시….”

“마령교와 혈사련이 본맹을 칠 것을 대비하는 것이겠지요.”

매설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재령산 인근 지단에서 뒤를 받쳐 준다면 혈사련과 마령교를 견제할 여력은 충분하리라.

그렇게 조금만 버텨 준다면 주변의 다른 지단에서도 지원군을 파견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당신밖에 없군요.’

매설란의 시선이 다시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에 끓는 물을 뿌려대는 암영대원들은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을 겹겹이 쌓은 땅 위로 펄펄 끓는 물을 연신 뿌려대니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고 습했다.

“아직 칠주야는 더 지나야 합니다.”

당이협이 매설란의 눈치를 슬쩍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매설란도 알고 있었다.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지났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시지요. 지난 사흘간 잠 한 숨 못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당이협이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매설란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시기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일까요?”

그때였다.

우우우웅…!

미약한 여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동시에 묘한 기운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무슨…?’

매설란과 당이협이 동시에 표정을 굳히고는 후원을 돌아보았다.

그때,

우우우우웅…!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반응이 일어났다.

그 미묘한 진동 때문에 열려 있던 창문이 다르르 떠는 소리를 내질렀다.

매설란과 당이협이 서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당이협이 얼른 암영대원들을 재촉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약수를 계속 뿌려라!”

“옛!”

잠시 주춤거렸던 암영대원들이 다시 끓는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치이이이이!

그런데 다음 순간,

쑤아아아아앙!

갑자기 후원 복판에서 붉은 기운이 기둥처럼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퀴이에에에에에!

마치 적룡이 포효하듯 붉은 빛 기둥이 꿈틀거리며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는 레드 드래곤의 기운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곧이어,

쑤아아아아앙!

이번에는 녹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쿠아아아아아아!

마치 악령의 포효를 듣는 듯 천지가 쩌렁쩌렁 울렸다.

창문과 기왓장이 다르르 떠는 소리를 내질렀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매설란이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는 크라니온에 저주를 걸었던 나타스의 기운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운이 더해지고 나서, 마지막으로 푸른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쑤아아아아아앙!

푸른 기운은 처음 두 기운과 달리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사비강의 선천지기를 비롯한 내공이었다.

세 가지 빛을 띤 기운이 허공에서 마구 뒤엉켰다.

처음에는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 같았지만, 이내 세 가지 색깔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뒤섞인 기운이 후원 한가운데에 떠서 완전한 구체를 이루었을 때였다.

퍼콰아아앙!

순간 후원의 바닥이 불룩 솟구치는가 싶더니 요란한 폭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우악!”

“엎드렷!”

암영대원들이 저마다 몸을 던지면서 엎드렸다.

당이협과 매설란 역시 훌쩍 물러나면서 몸을 낮췄다.

갑자기 튀어 오른 파편들 때문에 몇 개의 창이 박살이 나버렸고, 지붕 일부가 부서져 내렸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당이협조차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헛! 저건 독무…!”

뿌옇게 흐려진 시야 너머로 녹빛의 기운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암영대원들이 저마다 목을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했다.

“크어억! 숨, 숨이…!”

“우욱…!”

그 고통은 곧 매설란과 당이협에게도 찾아왔다.

두 사람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가 싶더니 곧 통증으로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욱! 독기가…!”

“어떻게 된 거죠? 당 대주…! 크윽!”

매설란 역시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짰다.

그러는 사이, 녹색 안개를 뚫으며 그림자 하나가 저벅저벅 나타났다.

동시에,

슈우우우우우!

안개에 섞여 퍼졌던 독무가 거짓말처럼 그림자에게 흡수되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허공에 떠 있는 기의 구체 역시 그림자에게 순식간에 흡수되어 갔다.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암영대원도 독기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온전한 혈색을 되찾아 갔다.

슈우우우웃!

마침내 모든 독기를 흡수해 버리자, 하얀 안개를 뚫고 나온 그림자의 형상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매설란과 당이협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았다.

“당신…!”

“주군!”

사비강의 눈동자가 녹빛으로 잠깐 물들었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가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지?”

**

“으으읍!”

우광이 눈을 부릅뜨면서 발작하듯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한참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처음 보는 곳.

뒤늦게 자신을 보니 몸이 꽁꽁 묶여있는데다 옷을 훌렁 벗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도리질을 친 다음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래, 자신은 분명 명리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더니….

‘기억이 안나. 제길!’

우광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그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혼혈(魂穴)을 짚은 것이리라.

‘날 이런 곳에 가두고 혼혈을 짚었다는 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미치지 않고서야. 미치지 않고서는 명리각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겠지… 그래… 설마….’

하지만 점점 자신이 없다.

강호에 어디 정신 멀쩡한 사람만 살던가?

따지고 보면 미친놈이 더 많은 강호가 아니던가?

게다가 옷을 벗고 있다는 건….

‘제길!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억측에 가까운 추측이 틀림없다면, 분명 누군가 자신을 이곳에 가둬 두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명리각에 잠입하려고 한 것이리라.

한데 대체 여긴 어디란 말인가?

천상궁에서 자신을 기절시킨 후 밖으로 옮길 정도면 다른 사람의 눈에 띌 확률이 매우 높았을 터다.

그럼에도 상대는 자신을 이곳에 가두는데 성공했다.

어떻게?

은신의 귀재가 아니고서야.

아니, 은신의 귀재라고 하더라도 기절한 사람을 들고 옮기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천상궁에 머물고 있는 무인들이 눈 뜬 봉사도 아니고.

안면이 있는 자가 아니고서야….

“……!”

우광이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

상대는 천상궁 무인들이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안면이 있는 자이리라.

그러니 백주대낮에 천상궁에 나타나 자신을 부른 것이 아니겠나?

그렇다면…

‘여긴 천상궁 안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대략의 상황이 파악된다.

그러는 중에도 우광은 부지런히 움직여 밧줄을 기둥 모서리에 갈아 갔다.

다행히 내공은 상당히 회복된 상태였다.

살이 좀 빠진 것으로 보아서는 의식을 잃은 지 꽤 지난 모양이었다.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해!’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밧줄을 갈았을까?

투둑, 툭!

마침내 양손을 묶은 밧줄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뚝 끊어졌다.

우광은 얼른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내고는 발목을 묶은 밧줄도 풀어 버렸다.

쇠사슬 따위로 구속한 게 아닌 것을 보면, 상대는 아마 이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구속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리라.

‘멍청한 놈. 누군지는 몰라도 잠입할 곳을 잘못 찾았다!’

우광은 제일 먼저 얼굴을 더듬었다.

혹시나 자신의 안면 가죽을 벗겨 인피면구로 사용했을까 봐 걱정한 탓이다.

다행히 얼굴을 건드리진 않은 것 같다.

확실히 이상하다.

고작 옷만 갈아입고 가면 명리각에 쉽게 들어갈 수 있으리라 착각한 것일까?

우광은 창고 같은 공간에서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익은 풍경이었다.

“여긴…!”

뒤를 돌아본 우광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신생각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이곳에 가둔 자가 사비강이거나 신생조원이라는 뜻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짐작대로라면 신생조보다는 사비강일 확률이 높다.

‘우선 명리각부터!’

우광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명리각으로 달려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그가 헐레벌떡 달려가서 명리각 안마당에 도착하자, 번을 서는 무인들이 슬쩍 돌아보았다.

물론 그들은 인피면구를 뒤집어 쓴 살막의 무인들이었다.

하지만 경황이 없는 만큼 우광은 그 사실까지 인지하지는 못했다.

그가 명리각 입구로 달려가 줄을 잡아당겼다.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잡아당겼다.

“…….”

역시 반응이 없다.

‘설마…!’

무슨 사고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자신이 실종된 지 한참이 지났을 텐데, 명리각이 너무 조용한 것도 이상하지 않나?

“자네!”

우광이 우측에 선 문지기 한 명을 불렀다.

문지기가 어딘지 어색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그간 명리각에 아무 일도 없었나? 그보다 잠깐… 자네 뭔가 이상한….”

푸욱!

다음 순간 우광은 자신의 가슴을 비집고 튀어나온 검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크헉!”

붉은 핏덩이가 입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그의 귓가에 서늘한 목소리가 닿았다.

“확실히 옷을 벗고 있는 쪽이 깔끔하게 죽이기에 좋군.”

츄아아아악!

검이 뽑혀 나오자 피가 흩뿌려지면서 그대로 우광이 고꾸라졌다.

그를 죽인 자는 바로 살막의 이살이었다.

옆에 선 일살이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그런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게 무슨 짓이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앞마당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두 사람이 돌아보니, 어느새 무인들이 한 가득 몰려온 것이 아닌가?

우광이 벌거벗은 몸으로 명리각으로 달려올 때, 그 모습을 본 무인 하나가 이상하게 여기고는 상부에 보고를 올린 탓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있던 살막의 살수들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은밀하게 암살을 가하는 살수 집단이 아니던가?

한데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 채 전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날카롭게 소리친 자는 암혼당주(暗魂堂主) 강여구(姜如九)였다.

현재 혈사련에 남아 있는 세력 중에서는 가장 힘 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가 기감을 활짝 펼치더니 곧 미간을 팍 구기고는 소리쳤다.

“네놈들은 본련의 무인들이 아니구나! 대체 어디서 나타난 놈들이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살과 이살이 얼른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섰다.

한편, 암혼당의 무인들 역시 빠르게 대응했다.

부당주는 곧바로 수하들을 향해 련주가 있는 재령산으로 전서를 날리도록 지시했다.

이를 막기 위해 살수 몇 명이 쫓아가려고 했지만, 강여구가 그 앞을 막아서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놈들! 본좌가 하는 말이 우습더냐!”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상궁 내에 있는 다른 무인들까지 우르르 명리각으로 몰려들었다.

이살이 얼른 일살에게 전음을 보냈다.

[틀렸습니다. 이제 그만 몸을 빼내는 게 좋겠습니다.]

[할 수 없지. 막주님께 돌아간다!]

일살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살수들이 돌연 몸을 돌리고 흩어져 날아올랐다.

강여구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바닥을 박찼다.

“곱게 보내 줄 것 같으냐! 뭣들 하느냐!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저것들을 잡아라!”

“존명!”

암혼당 무인들이 대답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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