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귀환 마교관
330화
국주전 후원을 깊이 팠다.
그곳에 사비강이 들어 있는 관을 매장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관의 덮개에 쇠관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운데가 뚫린 쇠관은 사비강의 얼굴이 위치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에 꽂혀 있었다.
대략 일 장 정도 길이의 쇠관은 중간 중간에 수십 개의 구멍이 옆으로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은 얇은 종이로 막혀 있었는데, ‘흡기지(吸氣紙)’라는 종이였다.
이 역시 사천당문이 개발한 것으로 각종 약재를 조제할 때 거름종이처럼 자주 쓰이는 것이기도 했다.
창호지보다도 얇고 투명하지만, 비단보다도 질긴 재질이었다.
관 위에는 흙을 얇게 깔았다.
그 다음에는 놀랍게도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을 넣었다.
그때만큼은 매설란과 천멸대원들이 기겁을 하며 당이협을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당이협은 이 방법만이 유일한 길이라며 매설란과 대원들을 설득했다.
이후에 그는 다시 흙을 깔았고, 그 위에는 온갖 약재와 약초를 특별한 방식에 따라 깔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흙, 그 다음에는 숯, 그 위에 흙, 다음에는 약재와 약초, 다시 흙…
마치 지층처럼 단계를 나누어서 그렇게 관을 덮어 갔다.
어찌 보면 사비강은 뜨거운 숯 더미 아래에 깔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흙을 덮고 있을 때, 마침 구윤이 찾아왔다.
그의 표정이 해쓱해져 있었다.
“사 교관이 왔다고요? 심각한 상태라고 들었는데,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흙을 내려다보았다.
구윤의 시선이 그들을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땅에서부터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흙 위로 올라갔다간 신발이 모두 타 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설마… 이 안에…?”
당이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예,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매장을 하면 숨은 쉴 수 있는 겁니까?”
당이협이 흙더미 위로 한 뼘 정도 올라온 쇠관을 가리켰다.
쇠관의 입구 역시 흡기지로 막아 둔 상태였다.
“저 쇠관을 통해 호흡은 가능합니다. 다만 기력이 너무 약해진 상태라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구윤이 맥이 풀린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저렇게 뜨거운 땅속에 파묻어 놓고 고작 저런 구멍만 뚫어 놓으면 산소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리라.
한데 기력이 약해진 사비강을 저렇게 파묻어 놓았으니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나 독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당이협이 이 방법뿐이라고 하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옆을 힐끔 보니 매설란은 넋을 놓은 사람 마냥 흙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무천이 당이협 곁으로 다가왔다.
“대주님, 약수(藥水)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암영대원들이 커다란 나무통을 한가득 들고 왔다.
성인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나무통에는 펄펄 끓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그 빛깔이 붉은 것도 있었고, 누런 것도 있었고, 시퍼런 것도 있었다.
당이협의 지시에 따라 암영대원들이 나무통을 순서대로 줄 세웠다.
“지금부터 약수를 계속 뿌리도록 해라. 도중에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존명.”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암영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그들이 물을 뿌리기 시작하자 ‘치이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렇잖아도 약향이 짙게 풍기고 있었는데, 약수까지 뿌리기 시작하니 알싸한 냄새가 후원에 진동했다.
당이협이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이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주님.”
“고생했어요.”
매설란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후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 굳은 표정으로 땅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를 바라보았다.
**
재령산 기슭.
정도맹에서 파견된 무인들과 혈사련의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조만간 마령교를 상대로 한 바탕 전쟁을 벌일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다만 유달리 넋을 놓고 눈물을 글썽이는 자도 있었으니….
“흐윽… 도대체 나의 낭군님은 어디로 가셨단 말이야?”
시커먼 하늘을 바라보면서 설서린이 울먹였다.
마침 그녀가 곁을 지나가던 방각의 어깨를 붙잡더니 애걸하듯 물었다.
“혹시 아는 거 없어? 응? 우리 낭군님이 어디로 간 건지….”
“윽…! 왜 이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발… 뭐라도 알면 얘기라도 좀 해줘. 이러다 나… 상사병 걸려서 죽을 지도 몰라….”
“글쎄, 모른다니까!”
방각이 얼른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는 곧 설수민의 품에 안겨 서럽게 흐느꼈다.
방각이 그 모습을 돌아보고는 혀를 찼다.
“나참, 도대체 교관님의 어딜 보고 저렇게 반할 수 있는 거지?”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마침 바위에 걸터앉은 맹가숙이 구절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상하긴 해.”
“뭐가?”
방각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맹가숙이 단검으로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답했다.
“교관님 말이다.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지? 이제 곧 마령교와 한 바탕 일이 벌어질 텐데.”
“원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잖수?”
“그래도 이렇게 뜬금없이 잠적을 한 적은 없었단 말이지.”
“흐음.”
그제야 방각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추량도 뭔가 숨기는 것 같고.”
“하긴.”
“또 하나 이상한 게 있어.”
불쑥 말을 꺼낸 사람은 유송령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돌아갔다.
유송령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적무린 조교. 하필 이렇게 엄중한 시기에 고작 선물을 전하러 정도맹으로 갔다는 게 뭔가 이상하지 않아?”
“흐음. 그러고 보니….”
“역시 감이 좋지 않아.”
“맞아, 감이 좋지 않군.”
유송령과 맹가숙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망나니 소리를 들어가면서 제멋대로 행동해 오던 신생조원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체계나 논리적인 판단보다도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드는 기분과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감에 의하면 지금 뭔가 자신들도 모르는 큰일이 벌어지려고 한다.
그때 등자경이 넌지시 나섰다.
“내가 이 모든 상황을 미루어 논리적으로 추리를 해보았을 땐, 분명….”
“역시 감이 좋지 않다, 추량에게 찾아가 봐야겠다.”
갑자기 맹가숙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조원들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래, 그게 가장 확실하겠지. 실토를 하지 않는다면 거꾸로 매달아서라도 불게 만들자고!”
“좋아, 가자!”
맹가숙이 앞장서자 다른 조원들이 우르르 그 뒤를 따라갔다.
홀로 남은 등자경이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내 논리적인 추론은… 들을 생각이 없는 거냐?”
**
“뭐요?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거요!”
맹가숙이 빽 소리를 지르다가 얼른 주변을 의식하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진작 우리에게도 알려 줬어야 할 것 아니오!”
“흐음. 사부님의 지시였소. 최대한 비밀에 붙이라는.”
“그런데 이제 와서 말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아서 말이오. 사부님이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으실 리가 없으니.”
추량의 말에 신생조원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지금껏 말없이 상황만 주시하던 구강룡이 불쑥 나섰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내가 아는 련주는 한 번 추진한 일에 있어서만큼은 망설임이 없는 자야.”
맹가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정말 위험하군. 재령산에 정사가 모두 모여 있으니….”
“일을 저지르기에는 지금이 가장 적기일지도.”
마지막으로 석탄강이 못을 박았다.
마침 듣고만 있던 설서린이 이를 빠득 갈면서 귀신같은 얼굴로 읊조렸다.
“만약 낭군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련주든 나발이든 가만 안 둘 거야.”
‘그러니까 저기… 누가 네 낭군님이냐고….’
추량은 속에서 떠오른 말을 애써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아 당신들에게도 알려 주려고 했소.”
“련주가 정말로 맹주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래서 적무린 조교를 이용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군사를 주시해야 해요.”
“내가 직접 군사의 막사를 살피도록 하지.”
유송령의 말끝에 구강룡이 나섰다.
그러자 다른 조원들도 직접 가보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맹가숙은 일단 조원들을 진정시킨 후, 도비천과 방각에게 말했다.
“두 사람만 더 가도록 해. 우리 중에서는 제일 은신이 뛰어나고 빠르니까.”
“알겠어.”
그때, 그들 곁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내려섰다.
“나도 가겠다.”
흑귀였다.
맹가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만약을 대비해서 우리는 진열에서 외곽으로 빠져 있는 게 좋겠소.”
추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
“시작하겠습니다.”
류여중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허무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련한 뭔가를 떠올리듯 천장을 보았다.
류여중이 흑견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견이 막사 한쪽에 마련된 탁자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애벌레처럼 작은 생물체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바로 세혼폭멸고의 암컷이었다.
작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흑견이 일순 망설임 없이 힘을 주었다.
픽!
희미한 소리와 함께 세혼폭멸고가 시퍼런 액체를 뿜어내며 터져 나갔다.
흑견이 돌아서며 보고했다.
“이제 곧 홍묘의 몸에 기생한 세혼폭멸고가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허무극이 처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또 하나를 버렸다.
지금까지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버려 왔던가?
오래 전,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사부의 말이 생각났다.
“소중한 것을 버릴수록 얻는 것 또한 커지는 법이다.”
그는 그 말을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중얼거리고는 돌아섰다.
“제거해라.”
“네…?”
흑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데, 갑자기 그의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뚝 떨어져 내렸다.
쉬컥!
그림자는 순식간에 단검을 이용해서 흑견의 목을 그어 버렸다.
“꺽…!”
흑견이 눈을 부릅뜨고 쓰러지면서 허무극을 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어째서?’라는 물음이 가득했다.
지금껏 그는 명을 충실히 따른 적밖에 없지 않은가?
혹시 선천마령지체의 기억을 완벽하게 조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징벌인가?
하지만 그가 죽는 이유에 대해서는 류여중만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저… 소중한 것을 잃게 한 칼을 부러뜨리고 싶은 것일 뿐.’
그는 돌아서는 허무극의 등을 물끄러미 보았다.
언젠간 련주의 칼끝이 자신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를 통해서 이 강호를 마음껏 즐겼으니, 그만한 대가는 감수해야 하리라.
“이제 지켜볼 일만 남았습니다.”
“붉은 색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여기서 죽은 세혼폭멸고의 체액이 붉게 변하면, 수컷 역시 죽었다는 뜻입니다.”
그건 곧 대폭발을 일으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
고개를 끄덕이던 허무극이 문득 미간을 모았다.
순간 그가 손을 뻗으며 날카롭게 외쳤다.
“웬 놈이냐!”
슈슈슈우욱!
막사에 있던 병장기들이 저절로 뽑히더니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쒸쒸쒸쒸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