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
귀환 마교관
304화
사비강은 이번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흑면인의 머리를 잡았던 손을 놓고 오른쪽으로 쭉 뻗으면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토네이도.”
다음 순간,
휘아아아아앙!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풍이 후원을 가득 메우며 솟구쳐 올랐다.
그 바람에 허공답보를 펼치며 달려들던 구강룡이 강렬한 바람에 휩쓸리면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우아악!”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솟아오르는 구강룡을 보면서 흑면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초절정 수준의 고수를 저리도 가볍게 가지고 놀다니!
물론 사비강이 마음먹는다면 구강룡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구강룡이 마법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도 한몫했다.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싸움 방식에 구강룡은 미처 대응 방법을 모색하기도 전에 속수무책 당하는 중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구강룡의 도발로 인해 흑면인은 사비강이 뿜어내던 의념의 결박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뒤로 튕겨나듯 물러났다.
타다닷!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얼른 마기를 운용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공을 운기하니 사비강의 의념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사비강이 그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언제 거기까지 도망간 거야? 아까는 바로 앞에 있었으면서.”
‘역시…’
무섭다.
마공을 운기해서 심력을 강화했지만, 그래도 사비강을 마주 보는 것은 살 떨릴 정도로 두렵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온 건가?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리가 없다.
그동안 이자에 대해 과소평가된 것이리라.
‘모든 정보를 수정해야겠군.’
한편 토네이도가 소멸되자, 구강룡이 하늘에서 운석처럼 쾅 떨어져 내렸다.
쿠당탕!
지붕의 기왓장을 부수며 그대로 떨어져 내린 구강룡은 잠시 후 무너져 내린 지붕 틈으로 솟아올라 왔다.
“카악, 퉷!”
그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피 섞인 가래침을 뱉어냈다.
공교롭게도 다시 나란히 옆에 선 구강룡과 흑면인은 지붕 끝에 마주 선 사비강을 빤히 노려보았다.
흑면인이 먼저 구강룡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기다리던 자가 아닌 모양이군.”
“쳇, 저딴 놈은 계획에 없었다.”
“당신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건 유감이지만, 우선은 저자부터 처리하는 게 어떤가?”
“적의 적은 동료로 삼는다는 건가?”
“물론 일이 마무리되면 배신의 대가를 따져 물을 생각이지만.”
“좋을 대로.”
구강룡이 입매를 히죽 치켜 올리고는 사비강을 빤히 노려보았다.
이걸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을 거두고 사비강에게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흑면인으로서는 여전히 불안한 심정이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흑마단(黑魔團)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궤멸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운이 좋아 구강룡과 손을 잡고 저 녀석을 이긴다고 해도….’
차후 구강룡이 기다리는 자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천마령지체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제길!’
이래서 사비강에게 달려들던 흑의인들에게 멈추라고 소리쳤던 것인데….
이미 지나간 일.
그들의 육신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나가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빨리 사비강을 처리하고, 구강룡으로부터 선천마령지체를 빼앗아 복귀하는 수밖에 없다.
‘일이 묘하게 꼬여 버렸어….’
흑면인이 힐끔 시선을 돌려 하단성 쪽을 바라보았다.
적면인이 적마대를 이끌고 온 것을 보았는데, 지금은 소식도 없다.
모두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 구강룡이 피식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이봐, 좋지도 않은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 집중해. 아무래도 저 교관 녀석은 허투루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놈이 아닌 것 같으니까.”
“흥!”
흑면인이 콧방귀를 뀌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다음 순간,
“간닷!”
타닷!
두 사람이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찰나,
스팟!
“헛!”
“응?”
사비강에게 달려들던 두 사람이 움찔거리는 것과 동시에 뒤로 돌아서며 검을 후려쳤다.
“거기냐!”
따다앙!
요란한 금속성이 일어나면서 사비강이 뒤로 주륵 미끄러졌다.
베르타스를 이용해 두 사람의 검을 막아낸 사비강이 입매를 비틀었다.
“제법이군.”
“흥! 얕보지 마라!”
타앙!
구강룡이 먼저 일갈을 터뜨리며 사비강을 향해 날아들었다.
과연 초절정 고수답게 눈으로 쫓기도 힘들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동시에 사비강이 발로 기왓장을 툭 걷어찼다.
가볍게 차 올린 것 같았지만, 구강룡을 향해 날아드는 기왓장은 그야말로 살상 무기나 다름없었다.
슈타앙!
날아드는 기왓장을 검으로 막아낸 구강룡은 팔이 저릿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기왓장에 강기를 실어?’
이건 정말이지 미친 수준이 아닌가?
대체 저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 정도로 강맹한 무공을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손발에 힘이 쭉쭉 빠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멍하니 서 있을 수도 없는 일!
타다앗!
이번에는 흑면인과 동시에 양옆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흑면인이 좌측, 구강룡이 우측을 맡았다.
찰나,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그대로 내려찍으며 외쳤다.
“그라운드 웨이브!”
투콰콰콰콰콰앙!
비록 3서클의 마법이었지만, 시전자가 하이 레벨의 능력을 지닌 만큼 그 파괴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지붕 위에서 펼친 마법이다보니, 지붕이 통째로 물결치듯 밀려나면서 기왓장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마구 튀어 올랐다.
투타타타타탕!
졸지에 디딜 지붕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흑면인과 구강룡은 허공답보를 펼치며 날아드는 기왓장들을 마구 쳐내기 바빴다.
사비강이 노린 것은 바로 여기까지였다.
어차피 그라운드 웨이브를 사용하는 주목적은 대량 살상이나 치명타를 입히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간 끌기.
구강룡이 기왓장을 쳐내느라 정신없는 사이, 사비강의 신형이 번쩍거리며 허공을 날아 흑면인에게 다가갔다.
“허억!”
흑면인은 날아오르는 기왓장을 밟아 가면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비강을 보면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 앞에서 입 꼬리를 올리는 사비강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익…!”
그가 급하게 검을 내지르자,
따앙!
사비강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흑면인의 검신을 때렸다.
“크읏!”
휘리리릭!
흑면인의 검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는 사이 베르타스가 짓쳐들면서 흑면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푸욱!
“크억!”
쑤욱, 푹! 푹!
순식간에 세 군데에 구멍이 생겨 버렸다.
흑면인이 떨어져 내리는 동안,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휘두르며 상대의 몸을 난자했다.
쉭쉭쉭쉭쉭쉭!
마침내 사비강이 바닥에 내려설 때는 베르타스를 검집에 완전히 갈무리한 뒤였다.
한편 흑면인은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바닥을 두 발로 딛고 섰다.
그는 몸을 가늘게 떨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사지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진다고 느낀 순간,
피츗, 츄아아아아!
얼굴에 사선으로 선혈이 생겨 나더니 이내 온몸에 균열이 가면서 그 틈으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웅!
화려하게 피를 뿌린 흑면인이 그대로 큰 대자로 뻗으면서 넘어가 버렸다.
한편 기왓장을 모두 쳐낸 구강룡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흑면이…!’
저리 간단히 당할 줄이야.
초절정에 이른 자신이라고 해도 흑면인과 정면 승부를 했을 때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한데 사비강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그를 제압하지 않았나?
탁!
바닥으로 내려선 구강룡이 어금니를 꾹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교관을 잘못 판단했군.”
“틀렸다.”
“……?”
“생도가 교관을 판단하는 법은 없지. 판단은 내가 한다. 너의 자질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하지만 그전에 먼저 계도를 좀 해야겠군. 자세가 글러먹었거든.”
“잘도 씨불여대는…”
“그 말투도 우선은 고쳐야겠다.”
“도대체 네깟 놈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악에 받친 구강룡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면서 바닥을 찼다.
파앙!
순식간에 사비강 앞으로 다다른 구강룡이 검을 대각선으로 후려쳤다.
쉬이이이익!
탁.
다음 순간 구강룡은 두 눈을 부릅뜨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이, 이게… 어떻게…!’
놀랍게도 사비강은 손을 들어 구강룡의 검신을 잡고 있었다.
초절정에 이른 자의 검공을 손으로 낚아채다니!
사비강이 그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은 초절정이어도, 그 안에서 단계가 나뉘는 법이지. 그리고 넌 이제 막 초절정 초입이지만, 나는 끝자락이라는 차이라고나 할까?”
“이… 기고만장한…!”
“아니지. 그런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지.”
퍽!
“크억!”
졸지에 날아든 주먹질에 구강룡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얼른 그의 손목을 낚아채 튕겨 나가지도 못하도록 만들었다.
대신 다시 한 번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퍽!
“컥!”
퍽퍽퍽!
“아악!”
코피가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사비강이 물었다.
“아프냐?”
“너… 이 새끼… 죽인…”
“나도 아프다.”
“뭔 개솔…!”
“내가 가르칠 녀석이 아프다니, 내 마음은 오죽 아프겠냐?”
퍽! 휘익! 퍽!
“크억! 억!”
사비강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며 연신 주먹을 휘둘러댔다.
구강룡은 연신 얻어터지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만치 멀어졌다 싶으면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사비강이 다시 주먹을 휘둘러 왔다.
그야말로 어른과 아이의 수준도 넘어서는 차이.
원래 산도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한 걸음의 고도차가 큰 법이다.
무공의 영역도 마찬가지.
두 사람 모두 무공의 경지로 따지면 봉우리에 가까운 지점에 있었지만, 사비강이 다다른 영역은 감히 구강룡이 넘보기에는 너무나 아득한 높이였다.
퍽! 퍼퍽! 퍽!
본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얻어터진 구강룡은 이제 아픔조차 잊을 만큼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휘두르는 주먹과 발마다 강기가 가득 실려 있으니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진작 뼈도 못 추리고 죽었으리라.
“씨…버얼…! 너… 뭐…야…”
마침내 사비강의 손에 머리채가 휘어잡힌 구강룡이 온통 부어오른 얼굴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서 진득한 피가 침과 섞여서 걸쭉하게 늘어졌다.
사비강이 냉엄한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말했다시피 널 가르칠 교관이다. 지금까지는 수업에 무단 불참한 죄를 물었다. 이제부터 형제지간의 우애를 배반한 죄를 묻겠다.”
“이런… 씨…발! 네깟 놈이 뭘 안다고… 지랄이야!”
구강룡이 피 섞인 침을 튀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마지막 공력을 실은 발작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한 줌의 공력이 아쉬운 판국에 겨우 고함이나 지르려고 낭비하다니.
사비강이 그런 구강룡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세상은 쉽게 변하고,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고. 내 보기에 옹기승 저 녀석은 네가 생각하는 놈이 아니다.”
“……?”
구강룡이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게다가 인생을 오래 살긴 개뿔!
척 보기에도 자신보다 어려보이지 않는가?
살면서 별의 별 꼰대를 다 만나봤지만, 이런 새파란 꼰대는 또 처음 본다.
“네깟 놈이 뭘 안다고….”
“네놈이 아는 게 사실과 다르면 어쩌려고 그러나?”
“뭔… 개소리냐?”
“내가 저 녀석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봤거든. 아, 물론 너에 대해서도 샅샅이 알아봤지. 내가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정보력이 꽤 훌륭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뭔 헛소리냐고!”
“네놈이 알고 있는 게 사실과 다르다면 넌 어쩌겠냐고 묻는 거다.”
사비강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구강룡이 뺨을 씰룩였다.
‘이 새끼… 아까부터 뭔 소리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