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귀환 마교관
299화
“사부님. 여긴 왜 다시 오신 겁니까?”
추량이 언덕 아래의 싸리 울타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전에 두 사람이 하오문주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던 그 허름한 집이었다.
사비강이 싸리 울타리 사이의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대답했다.
“데려갈 사람이 있다.”
“데려갈 사람이요?”
“그놈을 악몽에서 깨워야지.”
“그놈이라면….”
“맨날 처자는 녀석이 한 놈밖에 더 있냐?”
옹기승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추량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이곳을 처음 찾아왔던 때처럼 돌담 미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 후로 진법의 보강이 있었는지, 돌담은 그때보다 훨씬 더 높이 치솟아 있었고, 사위는 칠흑처럼 어두워 일 장 앞도 내다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침 나지막한 하늘에서 우르릉 천둥이 울리더니 웅혼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마치 천계의 어떤 존재가 말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너희들은 감히 금역으로 들어섰다. 이에 천벌을 내릴지니 죽음을 각오하라.”
추량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부님… 갑자기 여긴 어디죠?”
분명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싸리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찰나지간에 그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추량으로서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한 세계에서 사비강과 함께 덩그러니 떨어진 느낌이었다.
기문둔갑 자체가 영력의 작용을 받다 보니 싸리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추량에게는 최면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 것.
“그 사이에 많은 발전이 있었군.”
반면 사비강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 부숴버리기 전에 장난은 그쯤 하지? 오늘은 갈 길이 바쁘다.”
추량으로서는 그런 사비강의 행동이 마치 신에게 대항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이 격노한 듯 먹구름 낀 밤하늘이 더욱 요란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꽈르르릉! 짜르릉!
“으헉! 사, 사부님! 그만하세요. 천신의 노여움을 사서 어쩌자는 겁니까?”
추량이 머리를 감싸 쥐고는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사비강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추량은 기문둔갑술을 이용한 진법에 빠졌을 때,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주변 환경의 변화를 깨지는 못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목소리를 정말 천신의 것이라고 오인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한데 지금은 완전히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적의 술법이 더욱 정교해졌다는 뜻이리라.
“기문둔갑술이라는 게 무공하고는 좀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하루아침에 실력이 늘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재미있군. 어쨌거나 데려갈 필요성이 더 생겼다.”
그러자 다시 천신의 목소리가 천둥번개와 함께 떨어졌다.
쿠르르르릉!
“노오옴! 네놈은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그 주둥이를 놀리…!”
쑤아아앙!
천신의 목소리가 끝맺어지기도 전에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더니 돌담을 향해 대각선으로 베어 올렸다.
그러자 거대한 강기가 뻗어 나가면서 높게 치솟은 돌담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꽈과과과앙!
마치 대포라도 맞은 것처럼 돌담 한 부위가 일직선으로 터져 나갔다.
“헉…!”
추량이 입을 딱 벌리고는 무너져 내린 돌담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미로처럼 얽힌 돌담들이 차례로 부서져 나간 끄트머리에는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보았던 그 초라한 집이 절반이나 날아간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사비강이 거대한 강기를 날려 보내면서 집의 일부가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그렇잖아도 금방 쓰러질 듯 낡은 집이었기에 더욱 쉽게 부서진 것인지도 몰랐다.
마침 부서져 나간 집 안쪽에서 누군가 쿨럭거리며 걸어 나왔다.
머리부터 어깨와 등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아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색이었다.
“저 사람은….”
추량이 멍하니 중얼거리는데 사비강이 조소를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네가 두려워해 마지않는 천신이시다.”
그제야 추량은 지금껏 진법에 갇혀서 벌벌 떨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편, 부서진 집에서 걸어 나온 하오문 총관 정류광은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마당과 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면 어쩌오?”
“어쩌긴. 다시 수리하면 되지. 그러게 왜 쓸데없는 장난을 쳐?”
“원래 당신을 노리고 만든 진법이 아니었소. 다만 예상치 못하게 당신이 찾아왔기에….”
“내게도 통하나 시험해 보고 싶었다는 거군?”
“커험, 그렇소.”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추량만큼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안이랄까?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부서진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간의 기간을 생각하면 술법이 상당히 늘었더군. 어떻게 한 거지?”
“내가 말해 줄 이유가 없소.”
정류광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시선을 외면했다.
사비강이 피식 웃더니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는 검강을 입혔다.
그러자 정류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거참, 뭔 성격이 그리 급하시오?”
“말했잖아. 갈 길이 바쁘다고.”
“알았소. 지, 지금 말해 드리지. 내게도 사부가 있소.”
“사부?”
“그렇소. 내가 뭐 날 때부터 천재라서 이런 술법을 익히진 않았을 것 아니오?”
“사부라… 누구지?”
“사부님의 성함은 나도 모르오. 나도 기연이 닿아 그분을 만나서 술법을 익혔지만, 지금은 날 만나 주지 않소.”
“어째서?”
“강호와 엮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분이오. 그저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살아가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되오.”
“흐음.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술법이 향상된 건 그 사부의 지도를 받아서 그런 게 아닌가?”
“물론 그렇소. 하지만 직접 대면 지도를 받은 게 아니오.”
“하면?”
“서면을 통한 지도요.”
“자꾸 되묻게 만들지 말고 자세히 말해 봐.”
“끄음. 사부님과 나는 이따금씩 연락을 주고받고 있소. 말하자면 전서구 같은 것으로 대화한다고 보면 되오. 일전에 내 술법이 당신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것에 난 상당히 충격을 받았소. 해서 사부님께 전서를 보냈고, 사부님이 내 술법을 보강해 줄 방법을 답해 주셨소.”
“겨우 그렇게 서면을 주고받은 정도로 이렇게 향상됐다?”
그러자 정류광이 짐짓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아무나 그럴 수는 없을 거요. 그건 내가 어디까지나 재능과 역량이 남들보다 뛰어난….”
“됐고. 그 사부의 가르침이 대단한 걸로 봐서는 분명 상당한 술법가임이 틀림없겠군.”
“끄흠. 사부님은 내가 아는 한 이 영역에서는 최고요.”
사비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는 술법가들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량을 높이 평하지도 않았다.
대부분 술법가들은 저잣거리에서 사기나 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또는 귀신을 쫓는다며 부적들을 팔아먹으면서 잇속이나 챙기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이 정도로 뛰어난 술법가라면 생각보다 도움이 될 만한 인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정류광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가 펼치는 진법은 마계의 결계에 비하면 크게 나은 것이 없다.
다소 신비로움은 있겠지만, 신비로움이 마족을 잡아 주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간 그 사부라는 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봐야겠군.’
사비강이 그렇게 속생각을 갈무리하고 있는데, 정류광이 미간을 구기면서 불편한 듯 물었다.
“한데 여긴 왜 다시 찾아온 거요?”
“당신을 좀 데려가려고.”
“날? 날 어디로?”
“일단 가면서 설명하지.”
“잠깐, 잠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요? 설마 날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럴 생각은 없지만 자꾸 이렇게 협조하지 않으면 귀찮다는 생각이 들긴 해.”
정류광이 해쓱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자,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지. 일전에 귀영단에게 넘긴 정보는 잘 받았다.”
“그 옹기승이라는 자에 대한 거 말이오?”
“그래. 그런데 중요한 사실만 요약해서 들었어. 그러니 이동하는 동안 그 녀석에 대해 좀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요?”
“옹기승이 집을 나온 후로 어찌 되었는지.”
“그야…”
정류광이 사비강의 뒤를 따르면서 말을 이어 갔다.
**
구기승은 달리고 또 달렸다.
련주 허무극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지만 멈추지 않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비극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다니…! 내 손으로 사부님의 수하들을 도륙했다니…!’
순간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거칠게 바닥을 구르며 넘어졌다.
구기승은 흙더미를 콱 움켜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분노와 좌절, 슬픔과 절망.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그의 가슴과 머릿속으로 일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 본 것은 마지막으로 봤던 형, 구강룡의 눈빛이었다.
늘 자신에게 온화하고 관대했던 형이었다.
아버지가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할 때도, 구강룡은 남몰래 자신에게 간단한 초식들을 일러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배다른 형제라고 해서 자신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구강룡은 부모님보다도 자신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형님…’
구기승은 슬픔에 젖은 눈빛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향해 울분에 찬 시선을 던지던 구강룡의 모습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구강룡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들었을 때, 련주 허무극이 나서서 그를 말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 자리에서 형에게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 지도….’
하지만 허무극은 구강룡을 막아섰다.
대신 자신의 양 어깨를 잡으며 진중한 표정으로 일러주었다.
“이제 보니 너는 선천마령지기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구나. 네 아버지가 너에게 무공을 익히지 말라고 한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네 삶이 무척 고달파질 것이다.”
구기승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구강룡은 분노에 찬 얼굴로 구기승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기만 했다.
그 압박을 견디지 못해 구기승은 그대로 내달려 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어딘지도 모를 곳에 홀로 쓰러져 있는 것이다.
손을 들어 보았다.
‘이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다.
입술을 질끈 씹었다.
‘나는 누구인가? 괴물인가? 선천마령지기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어째서 그런 걸 안고 태어난 것인가?’
겨우 몸을 일으킨 구기승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름이 흘렀다.
구기승은 그저 혼을 잃은 사람 마냥 끝없이 걸었다.
허기가 지는 줄도 몰랐다.
그저 이렇게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한참 만에 눈을 떴을 때는 어느 산간의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수염을 성성하게 기른 노인이 구기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은거기인의 모습이었다.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비극을 가진 아이로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이니, 내 너에게 도가의 신공을 전수해 주도록 하마.”
“누구신지요…? 저는 무공을 익혀서는 안 될….”
“염려 마라. 내가 너에게 전수할 것은 자아를 지울수록 강해지는 무공. 네 몸 속에 깃든 령은 자아의 욕망을 먹고 사는 녀석이니 이 신공이 널 강하게 만들고, 심마(心魔)를 멀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