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98화 (298/670)

# 298

귀환 마교관

298화

신생조원들이 저마다 입을 딱 벌리고는 사비강을 쳐다보았다.

한참의 침묵 끝에 유송령이 겨우 입을 열었다.

“지금… 흑운성이라고 했어요?”

“그래.”

“그 흑운성에 구강룡 단주가 있다고요?”

“단주? 엄밀히 말해서 단주는 아니지. 신생조원일 뿐.”

“어쨌든 구강룡 그자가 있단 말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냥 가게 내버려두셨단 말이에요? 구강룡 그자가 어떤 자인지 모르세요?”

“어떤 놈인데?”

사비강이 귀를 파며 되묻자, 유송령을 비롯한 다른 신생조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저 인간이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우릴 놀리는 거야?

마침 가만히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등자경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구강룡, 한때 살풍단주로 그가 가는 곳은 어김없이 살겁이 일어났었지요. 그를 잘못 건드리면 혈사련 무인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제멋대로였던 자입니다. 특히 그자는 옹기승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지요. 그런데 옹기승이 거길 찾아가도록 두셨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흐음. 긴 설명 잘 들었다. 그런데 제 발로 찾아간 걸 왜 나보고 뭐라고 하는 거냐? 그리고 너….”

“…….”

“…누구냐?”

“윽…! 전 등자경입니다! 저도 어엿한 신생조의 일원인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녀석이군.”

“이래봬도 일전에 교관님을 암살할 계획도 세웠었다고요! 다만….”

등자경이 설 남매를 힐끔 보고는 중얼거렸다.

“갑자기 방해가 들어오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요.”

“뭐, 시도해 봐야 실패했을 테니 너무 아쉬워할 건 없다.”

“큭.”

“그나저나 구강룡이 왜 옹기승을 싫어한다는 거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옹기승이 구강룡의 배 다른 동생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호오, 그래?”

사비강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그 순간 신생조원들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사비강은 틀림없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 교관님은!’

유송령이 입술을 쿡 씹고는 말을 뱉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옹기승은 가문을 등지고 성을 갈아치웠어요. 원래 ‘구’ 씨였지만, ‘옹’ 씨로 개명했죠.”

“그랬군. 역시 내가 조사한 바와 비슷하군.”

‘역시… 이 인간은 다 알고 있었잖아!’

유송령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옹기승을 그냥 보냈어요? 그놈 때문에 강아도 위험하게 됐잖아요!”

“일단은 뭐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설마하니 형제지간에 살초라도 쓰겠어?”

사비강의 말에 신생조원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교관 도대체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마침 등자경이 불쑥 물었다.

“훈련이라… 그럼 저희도 가도 됩니까?”

사비강이 등자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희들이 언제 내 허락받고 움직였냐?”

그러자 신생조원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행동한 사람은 유송령이었다.

“교관님. 갑자기 배가 아파서 조퇴하고 싶습니다.”

“배탈이라도 난 거냐?”

“그런 것 같아요.”

“좋아, 배가 아프면 가봐야지.”

유송령이 다부진 표정으로 몸을 돌리더니 휙 달려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각이 나섰다.

“교관님, 허리가 아파서 조퇴하겠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쉬어야지. 가봐라.”

“감사합니다.”

방각이 달려가자 이번엔 맹가숙이 피식 웃더니 한 걸음 나섰다.

“요즘 내가 눈이 침침하고 가는귀가 먹었는지 말소리도 잘….”

“영감은 무조건 가서 쉬어야지. 그만 가봐.”

그렇게 하나둘 나서며 조퇴 사유를 밝힌 신생조원들이 이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사비강 곁에 선 적무린이 텅 빈 연무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입니까?”

“알잖아. 난 별로 생각 없이 산다는 것.”

적무린이 픽 웃어 버렸다.

동의를 해서가 아니다.

그는 사비강이 누구보다 치밀하고 생각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허술한 척하는 것일 뿐이지.’

마침 추량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사비강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실은 신생조원들이 옹기승과 석탄강을 구하러 갈 것이라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러신 거죠?”

“뭐? 그럼 조퇴 사유가 전부 거짓말이라는 거야?”

사비강이 심각한 표정으로 추량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추량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정말 몰랐습니까?”

“거긴 내가 지금부터 가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조원들을 조퇴시켰을 뿐이야. 그런데 이놈들이 지금 전부 흑운성으로 간단 말이지?”

“헐… 어떻게 그렇게 눈치가 없을 수 있습니까?”

“제길! 그렇게 감쪽같이 속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골치 아프게 됐군. 그놈들이 다 몰려가서 난장을 부리면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사비강이 진심으로 고민하며 중얼거리자, 적무린이 내심 속생각을 고쳤다.

‘어쩌면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자일지도….’

**

옹기승의 턱 끝에서 땀방울이 맺혔다가 뚝 떨어졌다.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은 전부 붉은 색이었다.

다른 자들의 피가 튀어서 얼굴에 묻은 것이다.

상단성 성문을 지난 옹기승은 비척거리며 공터로 들어섰다.

중단성을 지나오면서 체력을 꽤나 많이 허비한 탓이다.

옹기승은 꾸벅꾸벅 졸 듯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걸쳐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렇게 긴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공터 복판에 다다랐을 때였다.

슈슈우욱!

땅거미가 드리운 자리에서 흑의를 입은 무인들이 귀신처럼 솟아났다.

그들은 손가락 모양의 갈퀴를 들고 있었는데, 석탄강이 사용하는 사슬낫처럼 쇠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옹기승을 가운데에 두고 팔방에서 나타난 여덟 명의 무인들은 굉장히 기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 느끼는 기운이군. 굉장히 낯설어.’

옹기승은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만약 평소의 몸 상태였다면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을 것이다.

수면신공의 특성상 깊은 잠에 빠져들어 무아지경에 가까울수록 무공의 위력이 강하기 마련이다.

즉, 후각이나 촉각, 시각 따위에 의존해 인위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면 수면신공의 오의를 깨우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수면신공은 도가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 만큼 지극히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어 가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적을 향해 뻗는 검은 바람이 부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하고, 살초를 피하는 움직임은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처럼 여유로워야 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과 판단에 의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에 녹아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데 지금 옹기승이 이처럼 기감에 의존해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은 수면신공에 몰입할 수 없을 만큼 심신이 지친 상태라는 반증이다.

옹기승이 천천히 검을 고쳐 잡아 갔다.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땅에서 솟구치듯이 나타난 저 흑의 무인들은 매우 요상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자신이 무아지경에 가까운 수면신공을 펼치는 중이었더라도, 살짝이나마 깨어날 만큼 강렬한 자극이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사슬에 달린 갈고리가 벌떼 같은 소리와 함께 원을 그리며 휘돌았다.

여차하면 옹기승을 향해 날아들 것이 분명했다.

동물의 뼛조각 따위로 만든 것 같은 갈고리는 마디마다 관절이 있었는데, 아마 내공을 이용해서 움켜쥘 수 있도록 만들어진 듯했다.

‘이거… 위험한데.’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중단성에서 너무 많은 공력을 쏟아낸 나머지 수면에서 상당히 깨어난 상태였다.

그때,

“과연 훌륭한 먹이요.”

전방의 건물 지붕 위로 낯선 사람이 나타나더니 구슬을 든 채로 중얼거렸다.

그는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져서 항상 웃는 인상이었는데, 역시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기운이 갈퀴를 든 흑의인들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바로 인피면구를 쓴 흑면인이었다.

“마음에 들 줄 알았지.”

이내 대답을 하면서 나타난 사람은 옹기승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구강룡.

옹기승의 미간이 슬쩍 일그러졌다.

“형…님…!”

구강룡의 미간에 내 천 자 주름이 새겨졌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옹 씨 성을 가진 동생을 둔 적이 없다.”

구강룡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찌 보면 분노로 구겨진 것처럼 보였고, 또 어찌 보면 한껏 비웃음을 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인피면구를 쓴 흑면인은 손에 든 구슬을 보면서 점점 더 놀라워했다.

“대단하군. 선천마령지기(先天魔靈之氣)를 가진 몸이라니!”

원래 영롱한 비취색이었던 구슬은 이제 핏빛을 띄다 못해 검은색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슬 안에서 너울거리는 기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꿈틀거렸다.

심지어 가늘게 진동까지 울려댔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옹기승의 기운과 반응한 것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옹기승은 피곤한 음색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미친놈. 내가 묻지.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

“대답해 봐라.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런 동생아.”

“그건…”

옹기승이 뭐라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구강룡은 아버지의 죽음을 따지는 것이다.

구강룡의 입매가 비틀렸다.

“그래, 그 입 잘 다물었다. 만약 네놈이 뭐라고 떠벌렸다간 난 매우 화가 났을 테니까.”

“…미안하오.”

“뭐가 말이냐?”

구강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옹기승은 답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당장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낼 수 없었다.

구강룡의 눈썹이 팍 일그러지더니 소리쳤다.

“잡담은 끝났다! 할 말이 있거든 훗날 저승에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고해라!”

옆에 선 흑면인이 구강룡의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곧 팔방에서 갈퀴를 든 흑의인들에게 명했다.

“질 좋은 실험체인 만큼 생포해야 한다. 각별이 신경 쓰도록.”

“존명!”

여덟 명의 흑의인들이 대답과 동시에 갈퀴를 던져 왔다.

촤르르륵!

옹기승이 검을 후리며 마주쳐 갔다.

타앗!

**

“헉, 헉, 헉!”

거친 숨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어린 옹기승 아니, 구기승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희뿌연 시야 너머로 어깨를 들먹이며 숨을 헐떡이는 사람이 보였다.

누구였더라?

본 적이 있는 사람인데…

‘아, 이 분은…!’

혈사련주 허무극!

그는 해쓱한 표정으로 구기승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괜찮으냐? 다친 데는 없느냐?”

“어찌… 된 겁니까?”

구기승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주변에 온통 피투성이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곳에는 아버지와 사부의 시체도 있었다.

“이, 이게 대체…!”

“기억이 나지 않느냐?”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설마… 설마…?”

순간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킨 단편적인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섬뜩한 파육음과 비명, 사지가 절단되면서 죽어 가는 무인들, 광기에 휩싸여 살초를 써 나가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허무극이 참담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그래, 네가 저지른 짓이다.”

“그럼, 제가 아버지도…?”

허무극은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툭, 챙그랑.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허무극과 구기승이 돌아보니, 그 자리에는 구강룡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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