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
귀환 마교관
292화
짜악!
뺨이 휙 돌아갔다.
천장이 핑글핑글 돌고 정신이 없었다.
어린 옹기승은 왼쪽 뺨을 감싸 쥐고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 아버지…”
아버지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옹기승을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이렇게 화를 낸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늘 자신에게는 형보다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낯선 눈빛을 받게 되자 절로 자라목이 되어 움츠러들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그렁그렁 맺혔다.
옆에 선 형도 깜짝 놀란 것인지 입을 딱 벌리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 역시 아버지가 이토록 화내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리라.
옹기승은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왜지? 완벽했을 텐데. 내가 깨닫지 못한 실수라도 한 것일까?’
아버지에게 자랑스럽게 검초를 펼쳐 보였다.
정말이지 스스로 생각해도 처음 검을 잡은 사람답지 않게 훌륭한 검초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버지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더니, 마침내 초식이 끝났을 때는 성큼성큼 다가와 뺨을 올려붙인 것이다.
‘도대체 왜…’
마침내 아버지의 무거운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너는 아비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게냐!”
옹기승이 움찔거리고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염라대왕만큼이나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절대 너에게 무공을 익히지 말라 했거늘. 어째서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절… 때린 이유가 그거였습니까?”
멍하니 쳐다보던 옹기승이 용기를 짜내어 물었다.
아버지의 미간에 내천 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다! 어째서 아비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옹기승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 주먹을 콱 말아 쥐었다.
갑자기 울분이 치밀었다.
초식이 엉망이어서도 아니고, 실수를 해서도 아니라니.
그저 무공을 익혀서는 안 된다니!
“왜 전 안 됩니까! 아버지도 형님도 되는데, 왜 저만 못하는 겁니까! 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짜악!
다시 한 번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뺨이 휙 돌아가고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얼른 다리를 벌리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았다.
아버지가 지엄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감히 네놈이 아비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이냐?”
“이익…! 아버지는 도대체 절…!”
옹기승이 다시 한 번 따지려는 순간, 옆에 서 있던 형이 불쑥 나서더니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제 잘못입니다! 제가 동생을 자극해서 그만….”
“한심한 놈!”
퍼억!
“크욱!”
콰당탕탕!
아버지의 발길에 얻어맞은 형이 저만치 날아가 탁자까지 부수며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더없이 냉혹한 눈초리로 형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놈은 어찌 형이 되고서 동생 하나 돌보지 못한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놈이 형이라고 할 수 있느냐!”
“형님!”
옹기승이 얼른 달려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벼락처럼 소리쳤다.
“제자리에! 아직 내 말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 정말 너무하신…!”
“닥쳐라!”
“형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제가 배우고 싶어서 배웠을 뿐이라고요!”
“한 번만 더 네가 무공을 익히려고 한다면 너와 부자의 연을 끊겠다.”
“……!”
옹기승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옹기승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전… 누구보다도 잘 할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시끄럽다. 이 집안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자는 나와 네 형으로도 족하다. 너까지 손을 더럽히는 건 원치 않는다. 넌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 죽은 네 어미의 유언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옹기승은 이를 빠드득 갈고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건… 내 인생이란 말이에요! 아버지나 누군가가 날 꼭두각시처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옹기승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고개를 들었을 때는 어느새 일 년의 시간이 지난 겨울이었다.
눈보라가 치는 언덕 위에는 검은 누더기 옷을 걸친 사부님이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사부가 옹기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옹기승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대꾸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네 아버지는 왜?”
“제가 사부님에게 이렇게 무공을 배운다는 걸 들킨다면… 아버지는 호적에서 절 파 버릴 거예요.”
“후후후. 하긴, 그 친구 성격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 걱정 마라. 비밀은 죽을 때까지 지켜 주마.”
“감사합니다, 사부님.”
“자, 집중해라. 다음 초식이다.”
“예, 사부님!”
후우우웅!
사부가 초식을 펼치며 시범을 보이는 순간, 눈보라가 다시 세차게 흩날렸다.
차갑게 불어 닥치던 겨울바람은 어느새 꽃잎이 날리는 봄바람이 되었고, 또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위로 변해 있었다.
계절이 유수처럼 흐르는 가운데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배경을 옹기승의 검로가 무수히 쪼개어 갔고, 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옹기승이 열세 살이 된 어느 날,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콰다앙!
문짝이 거칠게 떨어져 나가면서 싸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아버지가 나타났다.
운공을 하던 옹기승은 서둘러 운기조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아버지…!”
옹기승이 사색이 되어서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침내 옹기승 옆에 서 있는 사부를 보았다.
“허참, 이 친구… 왜 이리 거칠게…”
“백로(白鷺)! 이게 뭐하는 짓인가!”
“너무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얘기하지.”
“네놈이 감히 내 아들을 데리고… 아니, 더 말할 것도 없다!”
휘익!
아버지가 훌쩍 몸을 날리더니 순식간에 사부를 향해 날아갔다.
깜짝 놀란 옹기승이 얼른 경공을 펼쳐 그 앞을 막아섰다.
“아버지! 사부님은 아무 잘못이 없…!”
“방해 말고 비켜라!”
퍽!
아버지가 그대로 일장을 날려 옹기승을 쳐냈다.
슈우우욱! 꽈다앙!
집안 한쪽 구석에 처박힌 옹기승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사부가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그래도 자네 아들인데 너무한 게 아닌가?”
“네놈이 할 말은 아니다!”
쉬이이잇!
아버지가 칼을 뽑아 들더니 그대로 사부를 향해 내질러 갔다.
까앙!
순간 불꽃이 튀어 오르면서 두 사람이 멀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무섭게 몰아쳐 갔다.
아버지의 도는 묵직하고 힘이 실린 반면, 사부의 검은 날아갈 듯 가볍고 우아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쉬이 결판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듯 사부에게 살초를 사용했다.
사부 역시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다는 듯 최선의 공방을 펼쳤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 모두 깊은 상처를 입어 갔다.
두 사람의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사부가 미간을 슬쩍 구기며 말했다.
“어째서 자네는 아들의 재능을 썩히려고 하나?”
“재능? 그걸 감히 재능이라고 말하다니! 백로! 네놈이 어찌…!”
“보기에 따라 다른 법. 저 아이가 지닌….”
“닥쳐라!”
아버지가 바닥을 찼다.
보다 못한 옹기승이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제발!”
“방해다!”
아버지가 다시 옹기승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퍼억!
슈우우욱! 쿠당탕!
한쪽 벽에 처박힌 옹기승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아스라이 도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때 옹기승은 천천히 의식을 회복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금속성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옹기승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두 분… 제발 이제 그만….”
희뿌연 시야 너머로 사부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부…님?”
사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옹기승은 흠칫거렸다.
사부의 심장에 칼이 꽂혀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사부의 앞에 서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 사부님…!’
몸이 덜덜 떨려 왔다.
다음 순간 옹기승은 자신의 행동을 끊어질 듯 말 듯 기억했다.
그는 스르르 귀신처럼 일어났다.
곧이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 아버지의 얼굴을 콱 움켜쥐었다.
“커억! 너, 너…! 정신 차려라!”
“어째서 죽인 겁니까?”
“크억…! 어쩔… 수가… 내 모든 걸 설명할 테니…. 커억!”
“어째서엇!”
“끄아아악!”
옹기승이 힘을 팍 준 순간, 무언가가 퍼억 터져 나갔다.
**
“크윽! 이, 이것… 놔!”
옹기승은 흠칫거리고는 실눈을 떴다.
‘유송령…?’
어찌된 일인지 유송령이 자신의 손에 목 줄기가 잡힌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제길…! 또 그 꿈을…!’
찰나,
쉬이이이잇!
옆에서 뭔가 날카로운 소리를 이끌며 날아들었다.
옹기승이 재빨리 물러서면서 검을 뽑아 들고는 그것을 쳐냈다.
까아앙!
어둠 속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다음 순간, 옹기승 코앞으로 석탄강의 시커먼 얼굴이 훅 다가서더니,
쒸이이잇!
대각선 아래에서 사슬낫을 훅 쳐올리는 것이 아닌가?
“헛!”
옹기승이 얼른 허리를 젖히고는 뒤로 재주를 넘으며 피했다.
“콜록, 콜록…! 하아, 하아!”
마침 옆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유송령이 기침을 토해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석탄강이 그녀를 힐끔 돌아보고는 물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그녀는 죽음의 문턱을 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석탄강이 옹기승을 노려보면서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잠을 자려면 곱게 처잘 것이지, 이게 무슨 짓이지? 잠버릇이 너무 더럽군.”
그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
옹기승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유송령의 목을 움켜잡았던 왼손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제길…!’
그 모습을 보던 석탄강이 미간을 슬쩍 좁히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또 그 악몽인가 보군.”
옹기승은 대답 대신 입술을 꾹 씹고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콱 움켜잡았다.
스스로 떨림을 멈추도록 하려는 것처럼.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한 옹기승은 차츰 떨림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는 뒤쪽 바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유송령이 목을 매만지며 일어나서는 투덜거렸다.
“괴로워보여서 깨우려고 했더니 된통 당해 버렸네.”
나무에 걸터앉아 잠든 옹기승이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깨우려고 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공격을 당할 줄은 몰랐던 것.
석탄강이 옹기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유송령에게 시선을 던졌다.
“령아.”
“아아, 아. 남자들끼리만 그렇고 그런 얘기를 좀 해보시겠다는 거지?”
눈치 빠른 유송령이 핀잔을 주자, 석탄강이 미안한 듯 웃었다.
“미안해.”
“됐어. 나중에 술이나 사라고 해. 비싼 걸로 먹을 테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무조건 받아낼게.”
석탄강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유송령이 멀어지는 것을 본 석탄강이 옹기승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가 옹기승 옆에 걸터앉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툭 던지듯 물었다.
“이제 그만 지울 때도 되지 않았나?”
옹기승의 눈빛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