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91화 (291/670)

# 291

귀환 마교관

291화

“이게… 뭐죠?”

“홍묘께 전해 주시면 고맙겠소.”

적무린의 무뚝뚝한 목소리를 들으며 매설란은 손에 들린 새까만 돌을 보았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흑요석.

흔한 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값비싼 보석도 아니었다.

이내 매설란이 빙긋 웃고는 답했다.

“알겠어요. 전해 드리죠.”

“고맙소.”

예의 그 무감한 표정으로 돌아선 적무린이 어디론가 저벅저벅 걸어갔다.

한편, 주변에서는 천멸대원들과 신생조원들이 기묘한 분위기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백 형의 무공은 훌륭했소.”

곡보옥이 손을 내밀었다.

백공보도 피식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곡 형도 나쁘지 않았소.”

“후후. 다음에 또 만나면 제대로 한 번 겨뤄 봅시다.”

“원하는 바요.”

“…….”

“…….”

두 사람이 손을 맞잡은 채 꿈쩍도 하지 않자, 옆에서 지켜보던 염자량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 이제 그만 손 좀 놓지 그래? 그러다 혈관 다 터질 것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곡보옥과 백공보의 손등으로는 힘줄이 도드라지면서 당장이라도 핏줄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입매를 비틀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염자량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돌아서다가 마침 저만치 걸어가는 유송령을 보고는 얼른 달려갔다.

그가 유송령 앞에 다다라 포권했다.

“유 소저의 무공에 감탄했소.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그런데 석탄강이 불쑥 끼어들더니 유송령을 끌고 가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만날 일 없을 거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석탄강과 이끌리듯 따라 걷는 유송령의 뒷모습을 보면서 염자량이 푸념을 했다.

“거참… 너무하네.”

한편 조문탁과 도비천은 여전히 나무 기둥을 모조리 부술 것처럼 비수를 날려대고 있었고, 목단화와 설서린은 서로에게 화사한 웃음을 보내며 살기를 마구 섞어 갔다.

능소소는 쭈뼛쭈뼛 옹기승에게 말을 걸었다.

“옹 대협도 조심히 돌아가세요.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

“그럼,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뵙도록 해요.”

능소소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데, 마침 옹기승이 부스스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흐아암. 아, 능 소저의 무공은 참으로 독특했습니다. 견문을 넓히고 갑니다.”

“아! 감사해요!”

능소소가 손을 모으고는 활짝 웃었다.

하지만 옹기승은 다시 잠에 빠져든 후였다.

능소소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돌아서는데, 문득 그녀의 귀에 실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자와 가까워지는 건 반대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능소소는 걸음을 옮기며 태연히 반문했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귀신의 목소리라도 들었나 싶어 기겁을 했을 테지만, 능소소에게 이러한 실프의 목소리는 지극히 예사로운 일이었다.

-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안 좋은 냄새가 나요.

‘옹 대협이?’

- 네. 그자는 멀리하는 게 좋겠어요.

‘그럴 리가. 그는 좋은 사람이야. 잠이 좀 많지만.’

능소소가 고개를 저으며 옹기승을 돌아보았다.

선 채로 꾸벅꾸벅 졸던 옹기승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까지 인사를 나눈 능소소를 찾는 듯했다.

능소소가 풋 웃어 버리자, 그녀의 귀 옆에서 살랑살랑 날갯짓을 하던 실프가 팔짱을 끼며 부루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왠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흐음. 잘 안 씻는 걸까? 뭐, 냄새 정도야 아무렴 어때? 그리고 무엇보다….’

능소소가 손을 내젓고는 몸을 돌렸다.

마침 매설란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비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는지 매설란이 발개진 얼굴로 소리쳤고, 사비강은 바보 같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그를 교관님이 지도하고 있으니까.’

- 흐음. 저 바보 같은 사람이 무슨 상관이죠?

실프의 말에 능소소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교관님이 가르치는 제자라면… 잘못될 리가 없을 테니까.’

**

사비강이 천상궁으로 귀환했을 때, 그의 위상은 달라져 있었다.

천신교를 토벌하는데 성공했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백호당주와 월섬당주 등 사비강에게 호의적인 인사들이 물밑 작업을 펼쳐 여론을 조성해 두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덕분에 사비강은 여기저기 축하 연회에 참석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추량은 지하 수련실에 남아 계속해서 플라탄의 알을 부화시키는 일에만 집중했다.

따로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마나 수련이 되므로 날이 갈수록 그의 마나 량은 증폭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짜작…! 짜악!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지속적으로 마나를 쏘아 보내던 추량이 흠칫거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웅웅웅웅…!

플라탄의 알이 전에 없이 강한 진동으로 떨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슬쩍 보기만 해도 선명한 균열이 새겨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플라탄의 알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마나의 기운은 이전과 분명 결이 다른 것이었다.

‘헛…! 자칫하다간 다치겠어!’

몹시 궁금했지만 추량은 다시 눈을 감았다.

모든 신경을 마나 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 마나의 흐름이 흐트러져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마나를 쏘아 보냈을까?

도도한 강물 같은 마나가 흘러나가는 것과 동시에 반사되어 오니, 그 회전이 반복될 때마다 점점 강물은 불어나면서 커다란 파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후우우우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쩌어어억! 짜르르릉!

지하 수련실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헉!”

마침 쏘아 보낸 마나가 더 이상 공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추량은 두 눈을 번쩍 떴다.

“알이… 깨졌다!”

추량이 경악한 표정으로 쩍 갈라진 플라탄의 알을 보았다.

단단한 돌인 줄만 알았던 알은 정말로 속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럼 마수는 대체 어디에…?’

추량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휘익!

“헉! 우아악!”

쿠당탕!

갑자기 난데없이 시커먼 그림자가 추량의 얼굴을 훅 덮었다.

**

혈사련의 수뇌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축하 연회에 참석했던 사비강은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추량이 보낸 서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서신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사부님, 부화했습니다.

혹여 다른 사람이 그 서신을 읽어 본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으리라.

하지만 사비강은 플라탄의 알을 가리켜 한 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기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드디어 깨어난 건가? 대체 어떤 녀석일까?’

마수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마계에서도 플라탄의 알은 구하기 힘든 것이기에 부화된 마수의 새끼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드문 경우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사비강이 지하 연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어어? 사부님!”

느닷없이 달려드는 추량을 보고는 사비강이 몸을 슬쩍 비틀었다.

그 바람에 추량이 사비강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와당탕!

“아구구…!”

“뭐하는 거냐?”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리고 묻자, 추량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뭐하긴요. 새끼 마수 잡으려고 그런 거지요.”

“새끼 마수?”

“예…”

“어디에 있지?”

“으음. 그게…”

추량이 미간을 좁히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녀석이 은근히 빨라서….”

그러는 사이 추량의 머리 위로 뭔가가 쏘옥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어…? 혹시 지금 제 머리 위에 있습니까?”

추량의 말에 사비강이 표정을 구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아, 네. 그 녀석입니다. 이 녀석 도대체 뭐죠? 뭐 생각보다 징그럽고 그렇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사비강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징그러운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예?”

사비강은 착잡한 표정으로 새끼 마수를 바라보았다.

추량의 머리 위로 올라온 그것.

어른 주먹 만한 크기의 새끼는 영락없이 고양이를 닮은 모습이었다.

다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하얀 얼굴과 몸에 검은 색으로 세로 줄무늬가 굵게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눈은 영롱한 옥빛이었기에 무척 신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본 적이 없는 녀석이군.’

그게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마계에 있을 때, 플라탄의 알에 흥미를 품고 마수에 대해서 한창 연구를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때의 지식 상당수도 메모라이즈 해두었다.

한데…

‘역시 저런 녀석은 본 적이 없어.’

처음 보는 녀석이다.

게다가 너무 작다.

마수는 태어날 때부터 덩치가 상당한 경우가 많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대지의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하면서 마나로 치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생후 반 각만 지나도 대부분의 마수들은 성체가 된다.

한데 저 녀석은…

- 니야앙.

이름도 모를 새끼 마수가 입을 쩍 벌리면서 하품을 한다.

그저 귀여운 고양이로 보일 뿐이다.

“아무래도 꽝인 모양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혹시 이 녀석은 마수 중에서도 좀 약한 편인가요?”

“몰라.”

“예? 웬만한 마수는 다 알고 계신다면서요?”

“내가 모른다는 건 그만큼 형편없다는 거지.”

“그런…”

추량이 입을 척 벌리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몸을 돌렸다.

“아쉽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럼, 이 녀석은 어쩝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그냥 죽이던가.”

“죽이라고요?”

추량이 뜨악한 표정으로 고양이 같은 새끼 마수를 손으로 들어 보았다.

- 니야앙.

보드라운 솜털을 가진 새끼 마수는 추량의 손바닥에 머리를 대고 연신 문질러대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봐서는 마수인지 고양이인지 구분도 안 되는군.’

그저 새하얀 털색에 검은 줄무늬 때문에 다소 특이한 고양이라고만 생각될 뿐이었다.

“그렇게 강한 녀석이 아니라면… 위험하지도 않을 테니 방생하면 어떻습니까?”

“흐음. 그건 불가능하다. 죽이거나 키우거나 둘 중 하나야.”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 녀석은 이미 널 어미로 생각하니까.”

“뭐라고요오오?”

“사실상 네가 어미 노릇을 했잖아. 플라탄의 알을 부화시킨 사람이 바로 어미가 되는 거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주시는 겁니까!”

“깜빡했어. 뭐, 당연히 짐작할 거란 생각도 했고.”

“못했다고요! 그런 짐작!”

“둔하군.”

“으윽.”

추량은 더 따지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어차피 말로 다투어 봤자 사비강을 이길 수는 없을 테니.

‘그나저나 괜히 기대를 했는데… 이제 어쩌지?’

- 니야아.

다음 순간 새끼 마수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추량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윽…! 뭐, 뭐야? 으히히히! 간지럽잖아! 으히힉! 어서 나오지 못해! 키키킥!”

한참이나 버둥거리던 추량이 겨우 새끼 마수를 낚아채고는 목덜미를 잡은 채 들어올렸다.

“제길! 확 그냥…!”

- 니야앙.

작은 입을 벌리고 우는 새끼 마수를 보자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 한숨을 내쉰 추량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 뭐… 그래도 동물이니까 냄새는 잘 맡겠지. 추종술에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구나.”

- 니야앙.

새끼 마수가 혀를 내밀어 추량의 뺨을 핥아 올렸다.

강아지의 혓바닥과는 달리 사포처럼 까칠한 혀가 피부를 긁어대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으윽…! 꼴에 맹수과인 건 분명한 것 같군.’

**

“아, 글쎄 그렇다니까. 신생조가 이번에 천신교의 씨를 말렸다더라고.”

“허참, 누가 알았겠나? 그 망나니들이 응천 분타에서 손도 못 쓰고 전전긍긍하던 일을 그렇게 깔끔하게 해결할 줄이야.”

“그러고 보면 사비강이라는 그자도 참 대단하긴 해. 그 개망나니들을 잘도 이끌지 않나?”

객잔에 모인 무인들이 침을 튀어 가며 떠들어댔다.

한편, 객잔 구석에는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며 국수를 먹는 남자가 있었다.

한쪽 뺨에 번개 모양의 자상이 새겨진 그는 단숨에 남은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방갓을 덮어쓰며 피식 웃었다.

“사비강이라… 재미있군.”

탁자에 돈을 던져 둔 그가 저벅저벅 걸어가다가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무리 중 한 명과 어깨를 부딪쳤다.

“어이, 이봐!”

남자가 지나쳐 가려고 하자, 무리 중 한 명이 이맛살을 구기며 불러 세웠다.

스윽.

남자가 돌아섰다.

순간 방갓 아래의 얼굴을 확인한 무리 중 한 명이 흠칫 몸을 떨더니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꺼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방갓의 사내가 다시 몸을 돌리고는 걸어갔다.

한편, 그 뒷모습을 보던 넋 나간 사람마냥 쳐다보던 남자는 멍하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분명히… 그자다…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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