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
귀환 마교관
260화
인왕채의 일을 겪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귀영단이 사비강에게 접선해 왔다.
일전에 알아보라고 지시했던 만생검살의 행방을 찾은 것이었다.
사비강은 이어서 인왕채와 관련된 인신매매에 대해서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인왕채가 고정적으로 거래한 곳이 있는 만큼 조사를 하다 보면 현재 중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한편, 강서에 위치한 정강산으로 가기로 했던 사비강은 강서 지역으로 들어가기 직전,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괴형산(怪形山)으로 걸음을 옮겼다.
괴형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마을에 다다랐을 때, 사비강은 일행들과 함께 객잔에 머물렀다.
하룻밤 묵기로 한 일행들은 이 층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했다.
인왕채의 사건을 접한 후로 일행들은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였다.
추량은 추량대로 깨달은 바가 있었고, 석탄강과 유송령은 그들대로 느낀 바가 있었다.
적무린의 경우에는 이러한 납치 사건들이 혈사련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 못내 불쾌한 듯했다.
때문에 그는 다른 의미로 이번 일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다섯 사람은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추량이었다.
“그런데 왜 이쪽으로 오신 겁니까? 원래 정강산으로 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구나 여긴 정강산으로 가는 길도 아니잖아요.”
“뭐, 월척을 낚으려면 미끼라도 준비해야겠지.”
“월척? 미끼요? 낚시하러 가시게요?”
추량이 눈치 없게 떠들자, 적무린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자가 월척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자입니까?”
“뭐, 따지자면 월척 그 이상이지.”
“궁금하군요.”
적무린의 말끝에 이번에는 유송령이 물었다.
“정말 그가 내 거신도의 균형을 맞춰 줄 수 있는 거예요?”
“할 수 있다.”
“쉽지 않을 텐데. 그 글귀를 새겨 넣은 사람도 보통 솜씨를 가진 게 아니었거든요.”
“그렇겠지. 근데 그 보통 이상의 솜씨로 그딴 짓을 했으니 답답할 노릇이지.”
사비강의 비아냥거림에 유송령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 그거야 내가 강렬히 원했으니까 그런 거구요!”
“그렇다면 넌 강렬한 바보군.”
“뭐라고요?”
쉬이이익!
순간 유송령이 젓가락을 날려 보냈다.
명백한 살수였다.
화가 나서 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암살 시도였다.
그러나 그 젓가락은 사비강의 눈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사비강이 젓가락으로 젓가락을 낚아챈 것.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 법이야.”
“개는 안 건드려도, 죽일 사람은 건드려야죠.”
“뭐, 좋은 자세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송령에게 젓가락을 휙 던져 주었다.
유송령이 얼른 젓가락을 낚아채고는 다시 식사를 이어 갔다.
한편, 뒤늦게 사비강의 뜻을 이해한 추량이 물었다.
“그런데 그 미끼는 어디서 구하시려고요? 말씀하시면 제가 사오겠습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
“노력과 정성이지.”
사비강이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건네며 히죽 웃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아래층이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마침 점소이가 얼른 달려 올라와 사비강 일행에게 다가왔다.
“저어, 손님들.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자리를 비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요. 음식들은 제가 객실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추량이 묻자 점소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혈사련 무인들이 또 찾아왔습니다.”
“혈사련 무인이?”
“예, 사실 최근 들어 그 녀석들 횡포가 너무 심해서 장사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십시오. 방에서 나오시지만 않으면 별 일 없을 겁니다요.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대신 숙식료는 절반만 받겠습니다.”
그러자 적무린이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소. 우린 여기서 계속 먹을 테니.”
“하, 하지만… 그놈들은 정말 악랄한 혈사…!”
“술이나 더 가져오시오!”
적무린이 강한 어조로 말을 뱉자, 점소이도 더 이상은 어쩌질 못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조심하십시오.”
점소이가 돌아가고 나자, 일단의 무리가 이 층으로 올라왔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그들은 창가에 앉은 사비강 일행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호오, 강호인들인가?”
그러더니 헤실헤실 웃으며 창가의 옆자리로 걸어와 앉았다.
“이봐! 여기 주문 받으라고!”
그들은 바로 옆에 사비강 일행이 앉아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곧 점소이가 올라오자 음식들을 이것저것 시키기 시작했다.
흘려듣기에도 엄청난 양이었다.
점소이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주문하신 음식 준비하겠습니다요. 그런데 오늘은 밀린 금액을 좀 지불해 주시면….”
“뭐? 지금 나보고 돈을 내라는 거냐?”
“물, 물론 지금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어이, 네놈들이 여기서 장사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 그야 물론 나리들께서 저희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있으니….”
“그걸 알면서 우리더러 돈을 내라고? 그 반대라고 생각하지 않아?”
“예?”
“봐라. 우리 옆자리에도 저렇게 무시무시한 칼을 찬 놈들이 밥을 처먹고 있잖아. 저런 녀석들이 난동을 피우지도 않고 조용히 밥만 처먹는 건 전부 우리 혈사련이 이 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중에서도 특히 나, 이강주(李岡主)가 여길 자주 와서 그런 거지. 그래, 안 그래?”
“물,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요.”
“그럼, 네놈들이 나에게 돈을 받아야겠냐? 내야겠냐?”
“헤헤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요. 주문하신 요리 곧 대령하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다고.”
“예, 예!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점소이가 부리나케 달려가자, 이강주를 비롯한 무인들이 낄낄거리며 웃어젖혔다.
그러는 동안에도 적무린의 표정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이토록 화가 난 이유는 이강주를 비롯한 저들이 진짜 혈사련 무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은 틀림없이 혈사련에서 제공한 정복이었다.
게다가 이강주의 팔뚝에 새겨진 표식은 ‘대주’라는 직위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자들의 팔뚝에 새겨진 표식은 조장을 뜻했다.
한 마대로 무공을 꽤나 익힌 진짜 혈사련의 무인들이었다.
사비강이 적무린을 놀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괴형분타가 있었던가? 꽤나 무서운 곳이었잖아.”
적무린이 어금니를 꾸욱 씹더니 사비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곳에 얼마나 머물 생각입니까?”
“글쎄? 하루나 이틀 정도? 미끼를 구하면 곧바로 떠날 생각이니까.”
“그렇군요. 그럼 시간이 좀 있는 셈이군요.”
말을 마친 적무린이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났다.
뭘 하려고 그러냐는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사이 점소이는 이강주에게 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주문하신 고량주입니다요.”
“뭐? 우리가 언제 고량주를 시켰어?”
“예? 하지만 아까 분명히….”
“장난해? 이깟 싸구려 술을 들고 와서 목구멍에 처넣으라는 거냐?”
점소이는 난감한 표정이 됐다.
또 시작이다.
분명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렇게 생트집을 잡는 것이리라.
아마 옆에 있는 손님들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왔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리라.
“이딴 싸구려 술 말고 좋은 걸로 가져오란 말이다!”
이강주가 고량주를 내던지기 위해 치켜들었다.
그런데,
탁.
“음?”
손에 든 고량주를 누군가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니 어느새 다가온 적무린이 고량주의 마개를 뽑더니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쾅!
그가 술을 완전히 들이켠 후 빈병을 탁자에 거칠게 내려 두고는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맛만 좋군.”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이쯤 되자 점소이는 아예 사색이 되어서는 적무린의 눈치를 살폈다.
“저어, 손, 손님…?”
그러자 이강주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이건 또 뭐야? 너 뭐하는 놈이냐?”
말을 마친 그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감히 자신의 손에서 술병을 낚아채?
미치지 않고서야!
혈사련 괴형분타의 자귀대주(刺鬼隊主)인 자신에게 도발을 걸다니.
적무린이 입가를 훔치고는 물었다.
“어디 소속이냐?”
“뭐?”
“세 번은 묻지 않겠다. 소속이 어디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강주가 조장들을 돌아보고 툴툴 웃음을 흘렸다.
다른 조장들도 재미있다는 듯 피식하고 웃었다.
이강주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눈을 부라렸다.
“이런 미친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찰나,
슈커억!
한 줄기 빛이 대각선으로 솟구쳐 올랐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이강주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파악도 하지 못했다.
그는 먼저 바닥에 툭 떨어진 자신의 손을 보았고, 이어서 싹둑 잘려 나간 왼쪽 팔꿈치 아래와 터져 나오는 피를 보았다.
츄우우웃!
“아아악! 이런 개씨발 새끼!”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그제야 조장들이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차차차차앙!
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는 적무린을 겨누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적무린 뒤로 말없이 다가서는 석탄강과 유송령을 보고는 해쓱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세 사람에게서 뿜어지는 사기와 강렬한 기운은 그들이 감당하기에도 너무나 센 것이었다.
“뭐, 뭐야? 네놈들은?”
조장 하나가 더듬거리며 묻자, 적무린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은 내가 한다. 어디 소속이냐?”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찰나, 이강주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자,
쉬이이익!
다시 한 번 섬광이 번뜩이더니, 이번에는 왼쪽 어깨까지 팔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크아아악!”
이강주가 몸을 비틀며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다.
압도적인 무위에 조장들은 아예 대항할 의지력마저 잃고 말았다.
그들이 후들후들 떨며 바라보기만 하자, 적무린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 분타주 좀 만나야겠다.”
“모, 모시겠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달은 조장들이 눈치껏 대답했다.
적무린이 시선을 돌리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내가 미끼를 찾아올 때까진 자유 시간이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대신 돌아왔을 때는 곧바로 떠날 거다.”
적무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흑귀야.”
“…….”
“어이, 흑귀!”
“…….”
추량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흑협. 대답 좀 해주시오.”
“왜 부르시오?”
그제야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이지 자존심은 더럽게 세군.’
추량이 침상에 걸터앉으며 투덜거렸다.
“혈사련 녀석들은 분타주에게 따지러 가고, 사부님은 미끼인지 이끼인지 찾으러 가신다고 떠나고. 이제 이곳에는 우리만 남지 않았소?”
“그렇소만?”
“어차피 사부님도 안 계시고, 다른 녀석들도 없는 마당이니 모습이나 좀 보이시오. 햇빛도 없는 마당에 굳이 그렇게 어둠 속에 있을 필요가 있소?”
“흐음. 그렇다면 뭐….”
스르르르.
흑귀가 객실 한쪽에서 귀신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기분 나쁜 녀석이라니까. 그래도 뭐 눈에 안 보이는 것보단 낫지.’
추량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술병과 잔을 들었다.
“뭐, 적적한 상황인데, 서로 같은 처지이기도 하니 술이나 한 잔 합시다.”
“흐음.”
“괜찮소, 괜찮아. 이리 오시오. 한 잔 합시다. 어차피 사부님도 안 계시지 않소?”
“뭐, 그럼….”
흑귀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탁자에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깊은 밤중에 술잔을 기울여 갔다.
한참 후,
“크하하하하! 이제 보니 너 참 재미있는 녀석이군! 아주 마음에 들었어!”
추량이 파안대소를 하며 흑귀의 어깨를 두드렸다.
흑귀 역시 그런 추량이 싫지는 않은 듯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추량이 혀가 꼬부라진 채로 주절거렸다.
“구나저나 우우리 싸부니므은 도대체 그 미끼를 구하러… 히꾹, 어딜 가싱 걸까아?”
그 시각, 추량이 궁금해 하는 사비강은 꽤나 난감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