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귀환 마교관
255화
쩌엉!
천지가 격동할 듯 엄청난 소음이 일어났다.
베르타스와 석탄강의 환도가 서로 맞부딪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비강이 석탄강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매를 치켜 올렸다.
“좋은 시도였다.”
석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격렬했던 일격은 석탄강이 포권을 취함으로써 완전히 마무리됐다.
한편, 한쪽 옆에 서 있던 유송령은 입을 척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확실히 늘었어! 아니 이건 늘었다고 표현할 만한 수준이 아니잖아?’
그래, 이건 달라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거다.
석탄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정말, 정말 강해진 거다.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자신은 오늘 사비강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한데 석탄강은 달랐다.
사비강이 검을 뽑아 들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까지 사비강은 신생조를 상대하면서 검을 뽑아 든 적이 많았다.
하지만 늘 본인의 의지에 의해 뽑아 든 것이었다.
지금처럼 검을 뽑지 않고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오늘 사비강이 검을 뽑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석탄강은 사비강의 옷깃이라도 베었을 것이다.
석탄강의 성장이 반가우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이기심일까?
‘나는….’
유송령이 두 손을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쿡 씹고는 톡 쏘아붙이듯 말했다.
“제 거신도는 왜 돌려주지 않는 거예요?”
“기다려라. 그렇잖아도 그 거신도를 손보러 갈 생각이니까.”
“거신도를 손본다니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거신도는 지금 균형이 안 맞아. 그걸 조정하려면….”
“그딴 건 상관없으니까 돌려 달라구요!”
“흐음.”
사비강이 유송령을 빤히 바라보더니 저벅저벅 다가갔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위압감에 유송령이 주춤 물러서는데,
빠악!
“아악!”
유송령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사비강이 발끝으로 그녀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찬 것.
갑작스런 구타에 석탄강은 물론 추량도 깜짝 놀라서는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사부님! 갑자기 왜 그러…!]
하지만 사비강은 추량에게 전음으로 대답하는 대신 유송령을 향해 손을 척 뻗더니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덤벼라.”
“이익…! 갑자기 다짜고짜 발로 차다니! 아무리 교관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거예요?”
“열 받으면 덤벼 봐.”
“크익!”
타앗!
순간 유송령이 바닥을 차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비록 거신도는 들고 있지 않았지만, 품에는 비수 몇 자루를 꽂아 놓고 있었다.
쉭쉭! 쉭!
세 자루의 비수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차차착!
사비강은 한 차례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 비수 세 자루를 모두 회수해 버렸다.
대신,
짜악!
“악!”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사비강이 유송령의 뺨을 후려치는 게 아닌가?
“큿!”
지켜보고만 있던 석탄강이 발끈한 표정으로 나서려는데,
스르르르.
어느새 그의 앞을 막아서면서 흑귀가 나타났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석탄강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돌발적인 행동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추량이 얼른 나서며 석탄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사부님이 생각이 있으시겠지. 이 녀석은 사실 내 밑인데… 앞뒤가 꽉 막혀서 말이야. 그냥 좀 더 지켜보자고.”
석탄강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몸에서 힘을 빼자, 그제야 흑귀도 스르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야말로 대단한 은신술이었다.
한편, 뺨을 맞은 유송령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사비강을 향해 일장을 뻗어 갔다.
펑!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의 공격은 사비강이 마주 뻗어 온 일장에 상쇄되면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왜 이것밖에 안 되지? 평소보다 영 못한데?”
사비강이 놀리듯 묻자, 유송령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야 비겁하게 다리를 먼저 걷어차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렇죠!”
“확실히 왼쪽 다리를 절뚝이는군.”
“호호. 제가 한 번 교관님 다리도 걷어차 볼까요? 절뚝거리게 할 수 있는데.”
“사양하지.”
“이이익!”
“도도 마찬가지다. 네가 도신에 새겨 놓은 그 같잖은 글귀 때문에 상처를 입은 거지. 그래서 균형이 맞지 않는 거다.”
“……!”
“네가 지금 한쪽 다리를 절면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계속 그 상태로 싸우게 된다면 너는 언젠간 일그러진 균형에 맞춰서 너의 무공도 변질시킬 거다.”
“그야….”
“절뚝이는 왼쪽 다리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듯이.”
이쯤 되자 유송령도 사비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 채고는 투기를 거두고 말았다.
사비강 역시 자세를 바로하며 말을 이어 갔다.
“균형이 깨진 무기를 계속해서 휘둘러대다간 자세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 번 무너진 자세를 되돌리는 건 무공을 새로 배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균형을 새로 맞출 때까지 거신도는 압수다.”
유송령이 입술을 쿡 씹었다.
‘쳇! 할 말 없게 만드네!’
이래서야 정강이가 퉁퉁 부어올랐지만, 뭐라 반박도 못하겠다.
애초에 멀쩡한 거신도에 그 같잖은 문구를 새겨 넣은 게 본인이니.
어쩐지 언제부턴가 무공이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그런 이유였을까?
하지만 겨우 글귀 몇 개로 그렇게 될 줄이야.
그렇게 따지면 연습용 병기는 어찌 사용하란 말인가?
사비강이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다른 병기를 사용하는 건 다른 문제다. 네가 쓰는 거신도는 네가 사용하는 무공과 최적화 되어 있는 거야. 보검이나 보도에 가까울수록 무기에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럼… 거신도가 보도란 말이에요?”
“그걸 이제 알았냐? 훌륭한 보도지.”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귀하게 여기거나 한 적이….”
“당연하지. 그 녀석은 거칠게 다뤄야 제 가치를 발휘하니까.”
“……!”
유송령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눈을 크게 떴다.
문득 오래 전의 일화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거신도로 나무를 베고 있을 때였다.
왜 아껴 줘야 할 병기로 나무나 베고 있냐고 묻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녀석은 내 생활의 모든 부분을 함께 하는 것일 뿐이란다. 막 다뤄 줄수록 손에 감겨 오거든.”
왜 잊었던 기억이 이제야 생각나는 것일까?
착각했다.
생활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막 다뤄도 된다는 것을, 얼마든지 상처를 내도된다는 것쯤으로.
“굉장히 보기 드문 도다. 그런 만큼 네가 저지른 멍청한 짓을 돌려 놔야지. 나 참, 그런 보도에 글씨는 어떻게 용케도 새겼는지 모르겠군.”
사비강이 무심히 걸음을 옮기며 투덜거렸다.
한편, 추량은 곁에 선 석탄강을 넌지시 올려다보았다.
석탄강 역시 사비강의 속뜻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생각에 잠겨 있었다.
추량이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하하하. 이제 알겠나? 사부님이 다 뜻이 있어서 그런 거야. 나는 그걸 진작 알고 자네가 나서지 못하도록 막은 거지. 암. 무공에 있어서 균형이란 매우 중요한 법이지. 한 번 자세가 무너지면 다시는 되돌리기가… 어? 이봐! 어디가?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벌써 저만치 멀어진 석탄강과 유송령을 향해 추량의 고함소리만 커져 갔다.
**
티 없이 맑은 눈을 가진 소녀의 이름은 금자연(金慈然)이었다.
외딴 산골 마을에 사는 소녀는 비록 부유하진 않았지만, 아직은 남부러울 것 없는 아이였다.
낮이면 산나물을 캐는 엄마, 주화영(主嬅零)을 따라 다니며 자연을 벗 삼아 뛰어놀았고, 해 질 무렵에는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다.
최근 들어 흉흉한 소문이 나돌면서 마을에 무사들이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 마을 사람들이 고용한 호위무사였으므로 문제될 건 없었다.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는 무사들을 고용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런 고민 또한 어른들의 몫일뿐이었다.
“자연아, 저녁 먹자!”
친구들과 자갈치기 놀이를 하고 있던 금자연은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하필 내 차례가 되어서 부를 게 뭐람?’
이번에는 확실히 자기가 이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금자연이 집으로 들어오자, 아빠가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우리 딸, 왜 그렇게 뿔이 났을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금자연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말했지만, 아빠의 눈에는 그마저도 귀엽게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빠엄마 모두 말이 많았고, 자주 웃는다는 것이었다.
대략의 사정을 엿들어 보니, 무사들을 고용하는 비용을 앞으로 한 달 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인 듯했다.
무사들이 자진해서 비용을 깎아 주었다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금자연은 그저 오늘 저녁 반찬으로 고기가 한 점 올라왔으면 할 뿐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저녁 시간은 화기애애했다.
금자연은 오늘 있었던 일을 신나게 떠들었고, 아빠는 늘 그랬듯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화목했던 시간은 바깥에서 갑자기 들려온 한 여인의 비명 소리와 함께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 비명 소리가 어찌나 처절하고 잔혹한지 식사를 하던 세 식구가 동시에 멈칫거리고는 창 쪽을 돌아보았다.
“아빠, 무슨 소리야?”
금자연이 천진하면서도 두려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아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이 놀라지 않게.”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자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끔찍한 비명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 금자연이 엄마 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심각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던 아빠가 문 옆에 세워 둔 도끼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나가봐야겠어. 여기선 잘 모르겠군.”
“여보…!”
엄마가 두려운 표정으로 아빠를 불렀다.
“걱정 마. 별 일 없을 테니. 마을 호위무사들도 있으니까.”
아빠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자 엄마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간 아빠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 왜 안 와?”
“쉿.”
엄마가 얼른 금자연에게 주의를 주었다.
어디선가 아스라이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금자연도 그 소리를 듣고서는 엄마의 허리춤을 꽈악 붙들었다.
“자연아, 잠깐만.”
엄마가 몸을 빼내더니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는 창가로 다가갔다.
바깥에 불이라도 난 건지 밝은 빛이 창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창밖을 슬그머니 살피던 엄마의 눈이 점점 커졌다.
마침내,
“자연아, 이리와.”
엄마가 다가오더니 금자연의 손길을 거칠게 끌어당겼다.
놀란 금자연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물었다.
“왜 그래? 엄마? 무서워….”
“쉿. 지금부터 절대 소리 내면 안 된다. 절대 움직여서도 안 되고, 나와서도 안 돼! 알았지?”
“싫어, 엄마. 왜 그러는 건데?”
“아무 일도 아니야. 숨바꼭질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알았지? 절대 나오면 안 돼?”
“엄마….”
금자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그녀가 바닥의 깔판을 치우고는 고리를 잡아당기자, 바닥의 나무판이 덮개처럼 열렸다.
그 안에는 아이 한 명 정도가 들어가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주화영은 얼른 덮개를 닫고 돌아서더니 서둘러 식탁으로 가서는 밥그릇과 접시를 바닥에 던져 깨 버렸다.
젓가락 역시 모두 부러뜨렸다.
‘이렇게 하면 식구가 몇 명인지 모를 거야!’
다음 순간,
콰자앙!
느닷없이 문짝이 떨어져 나가면서 사내 세 명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주화영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고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마침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달려 들어오더니 마지막으로 들어선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건 또 뭐야?”
사내가 미간을 팍 구기며 돌아보았다.
피투성이 남자를 본 주화영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여보…!”
남편이 사내의 허리에 매달린 채 애절하게 소리쳤다.
“제발… 아내만은…!”
하지만 사내는 피식 웃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검을 휘둘러 남편의 목을 찌르고 말았다.
“여보!”
주화영이 비명처럼 소리쳤지만, 이미 죽어 버린 남편은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무너져 내리듯 주저앉자, 사내들이 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따라와, 이년아.”
“아악!”
그들은 주화영의 머리채를 휘어잡더니 가축처럼 끌고 가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던 집은 그들이 떠나면서 조용해졌다.
그리고 금자연이 몸을 숨겼던 그 바닥도 오랫동안 미동조차 없었다.
그 아래에서는 눈물이 범벅이 된 금자연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숨바꼭질일 뿐이야… 숨바꼭질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