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33화 (233/670)

# 233

귀환 마교관

233화

홍등가(紅燈街)의 끝자락에 위치한 소화루.

“오라버니, 어서와. 처음 보는 얼굴이네?”

“하으응. 한창 나이 같은데 이런 곳엘 다 왔네?”

“찾는 언니라도 있어?”

속살을 여실히 드러낸 퇴기들이 뱀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소화루는 그야말로 타락의 끝자락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퇴폐적인 분위기였다.

곳곳에 놓인 놋그릇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혼향(迷魂香)이 타오르고 있었고, 붉은 연기가 자욱하게 가라앉아서 시야를 뿌옇게 가렸다.

방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않은 객실에서는 벌거벗은 남녀가 낯 뜨겁게 뒤엉켜 열락의 신음을 흘려냈다.

소화루를 찾는 다수의 남정네들이 인생 밑바닥을 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비강은 그야말로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내였다.

반듯하게 생긴 얼굴에 다부진 체격, 깔끔한 옷차림과 젊은 패기.

어느 것 하나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그가 소화루를 찾았으니, 퇴기들은 군침을 흘리며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나이도 훨씬 많을 것 같은 여인들은 잘도 ‘오라버니’라는 소리를 붙여대며 사비강에게 들러붙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곧 정색을 하고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사비강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때문이다.

“찢어진 꽃잎을 붙이러 왔는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불나방들은 거짓말처럼 흩어져 날아갔다.

이는 암어(暗語)였다.

이곳 소화루의 안주인을 불러내는 암어.

이 역시 귀영단에서 조사한 것이었다.

잠시 후 퇴기들과 달리 단정한 옷차림에 어딘지 품위가 있어 보이는 노파가 다가왔다.

“절 따라오시지요.”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파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올라 높은 곳의 객실로 향할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노파는 계단 뒤쪽의 작은 문을 열고 나가더니 낭하를 따라 별채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낭하는 구불구불 길게도 이어져 있었다.

‘진법이군.’

사비강은 단순한 길이 아님을 몸으로 느끼고는 말없이 노파를 따라갔다.

마침내 그녀가 미닫이문을 열면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드시지요.”

“그러지.”

객실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마치 귀한 손님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어마어마한 상차림이었다.

사비강이 상석에 앉자, 노파가 허리를 숙이고는 말했다.

“소화를 불러오겠습니다.”

그들은 소화루의 안주인을 ‘소화’라고만 불렀다.

사비강은 술을 들이켜고는 음식을 먹었다.

음식 하나하나가 무척 맛있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있다 보니 인기척과 함께 문이 열렸다.

여인이 들어섰다.

사비강은 멈칫거리고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소화를 찢어진 꽃이라고 했던가?

누가 소화를 낙화(落花)라고 했던가?

“소화입니다.”

옥구슬이 구르는 듯 청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그야말로 화용월태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과연 이 여자가 퇴기들로만 가득한 소화루의 안주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화는 사비강의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술병을 들었다.

“어디서 오신 고인이신지요?”

“나, 사비강이오.”

소화가 아주 잠깐 흠칫거렸다.

물론 사비강은 그 찰나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과연.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안다는 거군.’

모든 정보가 모여드는 곳, 하오문.

하오문과 연계되어 있다면 소화루의 주인 역시 어지간한 정보를 꿰고 있으리라.

하물며 정사를 막론하고 유명해진 자신의 이름을 모를 리야 없을 터.

소화 역시 더는 모른 척하지 않았다.

“높으신 분께서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로….”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녀가 내심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은 비록 혈사련에 거처를 두고 있다지만, 정도맹의 감찰총국주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 아닌가?

하오문에서 함부로 대하기에는 껄끄러운 인물이리라.

“맹과는 무관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볼일 때문이오.”

우선은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꺼낸 말이다.

소화가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비강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마주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만 같은 눈동자였다.

소화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구나.’

지금껏 많은 남정네를 접대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살아서 감정을 숨기는 것이 숨 쉬는 것보다도 쉬운 사람 같았다.

소화가 배시시 웃었다.

“개인적인 볼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비 장수를 만나러 왔소.”

사비강의 말이 떨어지자 소화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이 역시 귀영단을 통해서 입수한 정보였다.

보부상을 만나기 위한 암어였다.

그녀가 곧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고운 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진행합시다. 나도 그렇게 한가한 몸은 아니어서.”

“이곳은 소화루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소화루에 어울리지 않는 주인이지.”

“아무래도 착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소화가 다소곳한 자세로 일어섰다.

순간 사비강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앉아.”

하지만 소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문밖을 향해 낭랑하게 외쳤다.

“손님 나가신다.”

찰나,

휙휙!

사비강이 탁자에 놓인 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천장을 향해 날려 보냈다.

“크욱!”

“큭!”

털썩, 쿵!

천장에서 검은 그림자가 신음을 흘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들 모두 젓가락에 요혈이 뚫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소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소화루에서도 은신술 하나만큼은 으뜸가는 이들이었다.

한데 고작 젓가락 두 자루로 쓰러뜨리다니!

사비강이 소화를 올려다보았다.

“이들도 소화루에는 어울리지 않는군. 방을 잘못 찾은 모양이지?”

이쯤 되자 소화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나비 장수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백 장로를 통해서.”

소화의 표정이 다시 한 번 흔들렸다.

이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듯 그녀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오시지요.”

“진작 그랬으면 서로 좋잖아.”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추량이 창가에서 서성였다.

이따금씩 그는 목을 길게 빼고는 홍등가 쪽을 바라보곤 했다.

‘지금쯤 뭔가를 알아내셨을까?’

대략의 내용은 사비강에게 전해들은 터였다.

마계의 도구들을 파는 보부상.

그가 하오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

“흐음.”

추량은 침상에 걸터앉아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사뭇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진중한 모습이었다.

잠시를 앉아 있지 못한 그가 다시 일어나 창가로 걸어와 목을 빼고 내다보았다.

날은 벌써 저물었지만 홍등가와 가까운 객잔이어서 그런지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왁자하게 지나다녔다.

‘왠지 불안하다.’

애써 떨쳐 내려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인 모를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런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럴 때면 늘 사달이 일어나곤 했다.

이건 그만이 가진 특유의 직감이었다.

왠지 모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였다.

“어?”

순간 그가 눈을 끔뻑이고 홍등가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그 사람은 분명히…!’

추량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경공을 펼쳐 건너편 지붕에 안착한 후, 곧장 홍등가 쪽을 향해 달려갔다.

지붕을 타고 달린 그가 마침내 조금 전에 보았던 노년의 사내를 발견했다.

‘설백…!’

틀림없다.

죽립을 깊이 눌러쓰고 홍등가를 지나가는 저 남자는 설백이었다.

‘어째서 설백 장로가 이곳에…?’

가슴이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홍등가 모퉁이에 멈춰 선 설백이 주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추량이 지붕을 타고 재빨리 설백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홍등가를 벗어난 설백은 점점 으슥한 곳으로 걸음을 옮겨 갔다.

마침내 더 이상 건너갈 지붕이 없어진 추량이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굽은 골목길이었기에 설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추종술로 유명한 흑랑대 출신이 아니던가?

설백의 흔적을 찾아 뒤를 밟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복잡한 골목을 얼마나 걸었을까?

추량이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맞은편에는 달빛을 등지고 선 죽립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죽립을 밀어 올렸다.

초승달처럼 차가운 눈빛이 죽립 아래로 드러났다.

설백이었다.

“쥐새끼가 따라 붙는다 싶었지.”

“설… 장로!”

“그러고 보니… 너는 안면이 꽤 익구나.”

추량은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 가는 것을 느꼈다.

설백에게서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죽을… 지도!’

다음 순간,

팟!

추량이 바닥을 차고는 날아올랐다.

하지만 설백은 곧장 뒤쫓지 않았다.

대신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쯧… 뛰어야 손바닥인 것을….”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

지하 동굴을 따라 한참이나 걸어갔다.

그렇게 동굴 끝에 다다라서는 계단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왔다.

숲속의 낡은 사당이었다.

홍등가 끝에 위치한 소화루에서 어느새 야산의 숲속까지 이동한 것이다.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소화의 말에서 사비강은 이번에도 평범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마도 잘못 들어섰다가는 온갖 기관장치가 작동하고 진법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소화는 거침없이 발을 놀렸다.

사비강은 그녀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그대로 보법을 밟았다.

자칫 까다로운 진법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두 사람은 산기슭의 한적한 장원에 도착했다.

“저긴가?”

사비강의 말에 소화가 미간을 슬쩍 찡그렸다.

뭔가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왜 그러지?”

타닷!

소화가 대답 대신 얼른 몸을 날려 장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거침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분타주님!”

사비강이 소화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이곳이 하오문의 분타였군.’

하지만 한가로운 감상은 오래 이어질 수가 없었다.

장원 안마당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시체들.

소화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 보았다.

모두 절명한 상태였다.

“무슨 일이지?”

사비강의 말에 소화가 휙 돌아서며 소리쳤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당신이 한 짓인가요?”

“아냐.”

사비강의 말을 소화는 반신반의하는 듯했다.

사비강은 그녀를 두고는 안채로 달려 들어갔다.

그곳에도 곳곳에 무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체들의 상처와 사방에 남은 흔적들로 보아서는 한 사람의 소행이 아닌 듯했다.

“누군가 이곳을 쳤군.”

“분타주님!”

마침 뒤따라 들어온 소화가 안채의 문지방에 걸쳐 쓰러진 노인에게 달려갔다.

눈을 허옇게 뒤집은 노인은 가슴과 복부를 관통당한 채로 죽어 있었다.

‘한 발 늦었군!’

사비강이 입술을 쿡 씹었다.

일단 흉수를 찾아야 할 터.

그리고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은….

‘추량을 불러와야겠군.’

그가 막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타닷!

“거기 누구냣!”

인기척에 이어 소화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사비강조차 지금껏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니, 은신술에 특화된 무인이리라.

파앗!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는 그림자를 쫓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그림자는 무척 빨랐다.

은신과 경공에 특화된 자가 틀림없었다.

숲을 헤집으며 달려가는 상대는 그야말로 날다람쥐 같았다.

하지만 이미 사비강의 시야에 들어온 자다.

끝까지 숨을 죽이고 은신을 하고 있었더라면 몰라도, 눈에 보인 이상 결코 놓치진 않으리라.

달려가는 중에도 사비강은 숲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시신들을 확인했다.

숲에도 설치된 기관장치가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상당한 규모의 전투가 있었군!’

누군가 하오문을 노렸다.

대체 왜?

하지만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퍼억!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그림자가 달아나던 그림자에게 일장을 날린 것이다.

촤아아앗!

사비강이 급히 멈춰 서며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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