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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07화 (207/670)

# 207

귀환 마교관

207화

“좋았어!”

나뭇가지 위에서 은신한 채 천리경으로 먼발치를 살피던 반조가 쾌재를 불렀다.

노인이 수레의 손잡이를 힘껏 들어 올린 것이다.

그 바람에 수레에 실려 있던 나무 상자가 미끄러졌을 거다.

그렇다면 뒤에서 수레를 밀려고 했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무 상자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

뭐, 나무 상자가 미끄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수레에만 손이 닿아도 암기는 여지없이 발사될 테니까.

그 어떠한 살기도 내뿜지 않은 채.

반조의 입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가락이 흘러나왔다.

“후후후. 사람 죽이는 게 제일 쉬웠답니다아.”

그런데…

“음?”

순간 반조가 눈을 끔뻑이고는 천리경을 바짝 들이댔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수레 뒤편으로 간 두 사람은 이미 독침을 맞고 쓰러졌어야 했다.

곧바로 죽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독침을 맞는 순간 각혈을 하며 쓰러지게 되어 있다.

한데 수레가 번쩍 들어 올려 지더니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

수레에 가려졌기 때문에 뒤로 돌아간 두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수레가 계속 움직이는 걸로 봐서는 두 사람이 아직 독침을 맞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마침내 두 사람이 수레 앞으로 돌아왔다.

수레는 구덩이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노인이 감사 인사를 하는 듯 허리를 숙이는 게 보였다.

그러고는 묵직한 주머니를 건네주고 있었다.

“뭐야? 사례는 왜 하는 거야?”

반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

“설마… 저것들이 먼저 대가를 요구한 건가? 이거 완전 파락호만도 못한 새끼들이잖아?”

이런 경우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정파 놈들 중에 사파만도 못한 놈들이 수두룩할 테니까.

하지만 감찰총국주였던 자가 저렇게까지 썩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노인이 처음 도움을 청할 때, 저 두 사람은 손사래를 치지 않았던가?

뭐, 다 좋다.

문제는 어째서 암기가 발사되지 않았냐는 거다.

분명 최종 점검까지 확실히 마쳤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장치다.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다.

‘제길!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반조는 천리경을 내리고는 입술을 쿡 씹었다.

**

“은자 서른 냥을 더 주셔야겠소.”

노인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조가 눈썹을 팍 구기고는 소리쳤다.

“뭔 개소리냐? 맡은 일도 똑바로 하지 못했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도움을 받았소. 그 과정에서 은자 서른 냥이 나갔소. 당신은 사례금이 발생한다면 그 또한 대신 지불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소? 난 그 말만 믿고 사용한 거요.”

“시끄럽다. 그 늙은 목숨 며칠이라도 연장하고 싶거든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런…!”

노인은 더 따지려고 했지만,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반조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어 나왔기 때문이다.

“쳇!”

노인이 혀를 차고는 저벅저벅 걸어가 버렸다.

반조는 노인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반조는 지금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계획은 완벽했을 터다.

‘그런데 어째서 발사되지 않았지? 정말 발사 장치에 문제가 생긴 건가? 그래, 그것밖엔 없겠지. 손을 봐야겠군.’

반조가 착잡한 심정으로 나무 상자를 만졌다.

그런데 그 순간,

슈슈슈슈슈슈슉!

가느다란 침이 반조를 향해 무더기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컥! 제, 젠자앙…!”

그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쿠웨에엑!”

순간 각혈을 하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독침에 당하고 만 것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발사 장치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놈들 손을 대지도 않고 수레를 들어 올렸어! 하지만 어떻게?’

발사 장치는 사람의 손이 닿았을 때만 작용한다.

이 장치에 선천지기를 감지하는 기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선천지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운.

때문에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도 수레나 나무 상자에 손을 대면 암기가 발사될 수 있었다.

그만큼 민감한 녀석이었다.

한데…

‘손을 대지 않았다니!’

점점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낀 반조가 얼른 해독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거무죽죽하게 변하던 그의 얼굴색이 차츰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

“어째서 처음부터 돕지 않으셨습니까?”

추량이 사비강을 힐끔 보며 물었다.

“의심이 습관이라서. 그러는 너는 왜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지?”

“흔적이 좀 이상해서요.”

“흔적?”

“예. 길에 난 바퀴자국. 그걸로 보면 실수로 미끄러진 게 아니었거든요.”

“그럼?”

“정확하진 않지만 마치 일부러 구덩이에 밀어 넣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감은 좋은 녀석이다.

이 정도의 눈썰미가 있었으니, 미래에서도 마계의 군단을 정확히 추적할 수 있었겠지.

한편, 추량은 추량대로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사비강은 손도 대지 않고 수레를 들어올렸다.

이는 사실 텔레키네시스 마법이었지만, 추량이 거기까지 알지는 못했다.

다만 사비강이 엄청난 무공을 소유했나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추량이 문득 돌아보며 물었다.

“누구였을까요? 그저 단순한 도적이었을까요?”

“후후후. 글쎄. 언젠간 알게 되겠지.”

사비강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

“젠장!”

반조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두 번이나 실패했다.

그는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돋아난 붉은 반점을 보았다.

재빠른 해독제 복용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하마터면 저세상으로 갈 뻔했다.

그 후유증으로 몸에는 붉은 반점이 생겨났다.

아마 이 반점이 십 년은 갈 거다.

‘어쩔 수 없군. 직접 나설 수밖에.’

반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웬만하면 직접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최후의 수단으로 남기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 방법을 써야만 했다.

그는 품에서 단환 하나를 꺼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단환이었는데, 바로 ‘사령환(死領丸)’이라는 것이었다.

이 사령환을 복용하게 되면 최대 한 시진까지 시체와 다름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멀쩡하게 유지되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느 때든 곧바로 기력을 되살려 움직일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매우 비싸고 진귀한 단환이다.

‘내 이것만은 아주 특별할 때를 위해 아껴 두었건만.’

이 단환을 구하기 위해 그간 자신이 쓴 돈만 해도 얼마던가?

오늘 그 본전을 되찾아야만 한다.

조만간 사비강이 이곳을 지나갈 터다.

그때를 맞춰서 자신은 이 사령환을 복용한 후 관도 복판에 쓰러져 있을 거다.

완벽한 암습을 위해서 반조는 정파 무인들이 즐겨 입는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인근 정도 문파의 명패를 위조해서 허리에 패용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도 문파의 냄새를 풀풀 풍겨댔다.

이대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으면, 정파의 무인 누구라도 다가와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리라.

먼저 맥을 짚고 사망한 것을 확인할 터다.

그렇게 빈틈을 보이는 순간, 번개처럼 기습하여 놈의 명줄을 끊어 놓겠다는 것이 반조의 계획이었다.

‘좋아, 어서 나타나라! 사비강!’

마침 먼발치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사비강이 분명했다.

암살 임무에만 특화되었던 반조였기에 기감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가 얼른 사령환을 복용했다.

그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정지했다.

기의 순환도 멈췄다.

그야말로 시체와 다름없는 상태.

그럼에도 사령환 덕분에 생기는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유지되는 생기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반조의 의식은 너무나 또렷했다.

기회는 딱 한 번이다.

한 번 움직이게 되면 다시는 죽은 척할 수 없다.

마침내 사비강과 추량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관도를 따라 걷다가 길 복판에 쓰러진 무인을 발견했다.

“엇! 사부님, 저기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흐음.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일일까요?”

가까이 다가온 추량이 턱을 괴고는 중얼거렸다.

반조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후후. 그래, 어서 와서 살펴라! 나를!’

그런데 사비강은 반조 곁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며 중얼거리기만 했다.

“아무래도 몸에 나타난 반점을 보아서는 독살을 당한 게 아닌가 싶다.”

“역시…! 그런 비열한 수를 쓰는 녀석들이 누굴까요?”

“글쎄다. 알 수 없지. 참 안 된 일이야.”

사비강이 혀를 끌끌 찼다.

한편, 반조는 점점 조바심이 일어났다.

‘이것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어서 가까이 와서 살피지 않고!’

사비강과 추량은 정확히 다섯 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대로 공격을 해버려?

하지만 반조는 고개를 저었다.

성급해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의 완벽한 기회를 노려야 한다.

‘어서 다가와라. 어서…!’

마침 사비강이 걸음을 옮기더니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지!’

하지만 두어 걸음 다가선 사비강이 다시 멈춰 서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죽은 자를 이리저리 만져보는 건 실례가 되겠어.”

‘이런 썅! 상관없으니까 와서 살펴!’

하지만 반조의 바람과 달리 사비강은 몸을 돌리더니 숲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게 아닌가?

추량이 얼른 뒤따라가며 소리쳤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솔방울 좀 모으자.”

“솔방울요?”

두 사람이 그렇게 사라지고 나자 길바닥에 쓰러진 반조는 애가 탔다.

도대체 갑자기 웬 솔방울 타령이란 말인가?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사비강과 추량이 돌아왔다.

사비강이 쓰러져 있는 반조에게 솔방울을 툭툭 던졌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반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단지 사비강과 추량의 행동이 어이없을 뿐이었다.

그렇게 반조의 몸 위에 솔방울을 수북하게 쌓더니,

“자, 이제 화장해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빌어 주자.”

“예, 사부님.”

추량이 무거운 표정으로 품에서 화접자(火摺子 : 불붙이는 도구)를 꺼내 주었다.

하지만 사비강이 손을 내저었다.

“필요 없다.”

그러더니,

“파이어볼.”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자, 불덩이가 나타나면서 그대로 반조와 솔방울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후우웅!

화르르르륵!

순간 거센 불기운이 일어나면서 반조의 몸에 불이 붙었다.

모든 신체 감각이 사라졌던 탓에 반조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우와아아아악! 젠장! 뜨거워!”

그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사비강과 추량도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우와아악! 귀신이냐?”

“으헉! 죽은 자가 살아났다!”

한편, 반조는 길길이 날뛰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런 젠장! 불, 불, 불!”

그제야 사비강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쿠아 애로우(Aqua Arrow).”

순간 물의 화살이 연이어 날아가며 반조의 몸에 작렬했다.

촤촤촤아악!

그렇게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고 나서야 반조도 발작을 멈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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