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200화 (200/670)

# 200

귀환 마교관

200화

‘국주님?’

아군이 왔다는 생각이 들자 없던 힘이 갑자기 솟아났다.

“하앗!”

퀴리리리리리링!

목단화가 빠르게 회전하자 사심자가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녀를 에워싼 무인들 중 상당수가 비명과 함께 쓰러지거나 멀찍이 떨어졌다.

무인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는 잠시 경계하며 멈칫거렸다.

그러는 사이 목단화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마침 지붕 위에서 팔짱을 낀 채 이곳을 내려다보는 사비강이 보였다.

‘문탁이 성문을 열었구나!’

안도와 함께 긴장이 탁 풀렸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안 도와줄 생각이야?’

사비강은 냉랭한 표정으로 목단화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죽어라! 계집!”

호신위 한 명이 검을 앞세우며 빠르게 짓쳐들었다.

목단화가 얼른 빙그르 회전했다.

검이 그녀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목단화는 사심자를 후려쳤다.

휘리리리링!

마치 채찍처럼 휘청 굽으며 날아간 사심자가 호신위의 어깨를 쿡 찍었다.

사심자의 검봉은 흡사 뱀 대가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때론 꼿꼿하게 목을 세웠고, 때로는 지금처럼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뱀처럼 유연하면서도 날렵하게 움직였다.

“크윽!”

상처를 입은 호신위가 주춤 물러나는데,

“이년이!”

이번에는 또 다른 호신위가 배후에서 검을 내질러 왔다.

그것을 신호로 사방에 있던 무인들이 다시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어랏!”

퀴리리리리리링!

목단화가 얼른 몸을 회전하자, 이번에도 사심자가 요란한 울음을 터뜨렸다.

까라라라랑!

금속성에 이어 불꽃이 마구 튀어 올랐다.

달려들던 무인들이 잠시 흩어지며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목단화가 버럭 소리쳤다.

“안 도와주고 뭐해요!”

그 바람에 호신위들을 비롯한 무인들이 흠칫거리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목단화가 바라본 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간 목단화가 당황했다.

‘뭐야? 어디 간 거야?’

호신위 한 명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년이 하찮은 수로 우릴 속이려고 하는군. 뭣들 하느냐? 저년을 찢어 죽여라!”

“예엣!”

무인들이 다시 살기를 피워 올리며 목단화에게 달려들었다.

목단화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제길!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녀는 다시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다.

하지만 날아드는 무기가 너무 많았다.

찰나, 그녀가 미처 막지 못한 검신이 어깨를 베며 지나갔다.

슈카아악!

“아악!”

목단화가 비명을 터뜨리고는 주춤 물러났다.

빠르게 혈을 짚어 지혈하고는 다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후우, 후우!”

무인들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파바바밧!

쉬쉬쉬쉬쉭!

섬뜩한 예기가 여기저기에서 마구잡이로 날아들었다.

‘이익…!’

목단화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갔고, 적들의 기세는 갈수록 거세졌다.

‘정말 도와주지 않을 생각인가?’

이젠 어딜 둘러봐도 사비강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점점 힘에 부쳤다.

두 다리가 다시 후들거렸다.

“헉, 헉, 헉!”

그녀가 악착같이 버티자, 호신위들이 이를 갈았다.

“지독한 년이구나.”

“짖어대지 말고 덤벼. 아직 멀었으니까!”

“후후. 원하는 대로 해주지!”

다시 적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처음 두세 번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공격은 그녀의 옆구리와 허벅지를 베며 지나갔다.

“크익!”

주춤거리며 물러난 그녀가 버럭 외쳤다.

“젠장! 좀 도와달라고요!”

그러자,

[스스로 해결해야지.]

사비강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흠칫 돌아보니, 이번엔 다른 건물의 지붕에서 달빛을 등지고 선 그가 보였다.

목단화가 검을 콱 움켜쥐었다.

[정말 보고만 있을 거예요?]

[독단적인 행동을 했으면 그 책임도 끝까지 스스로 져야 할 게 아니냐?]

목단화가 울컥해서 소리쳤다.

“그러고도 당신이 교관이야?”

느닷없는 외침에 이번에도 호신위와 무인들이 움찔 거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호신위가 실소를 터뜨렸다.

“이년이 이젠 미쳤나보군!”

쒸에에엑!

그가 몸을 날렸다.

까앙!

목단화가 사심자를 들어 그를 막아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뒤로 밀려났다.

지쳤다는 증거다.

다른 호신위들이 싸늘한 웃음을 머금고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무인들은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자신들이 호신위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저 만약을 대비해 목단화를 포위만 했다.

까강! 까앙!

정신없이 공격을 막아내는 목단화의 귀에 사비강의 전음이 다시 흘러들었다.

[교관은 무슨. 지금은 국주지.]

[국주든 교관이든! 수하가 위험에 처했잖아요!]

[우습군. 그렇게 잘났다는 듯이 나설 때는 언제고? 그 기세는 전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애초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게 아니었나? 실전이라는 건 그런 거다. 언제든 죽어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지.]

[이익…! 됐어! 당신 따위는 필요 없어! 나 혼자 싸우겠어!]

괜히 악에 받쳤다.

애초에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눈에 보이고, 전음이 들렸으니 조금 의지했을 뿐이다.

한데 이렇게 매몰차게 대할 줄이야!

필요 없다.

애초에 마음에 들지도 않던 교관 나부랭이가 아니었나?

잠시나마 그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짜증났다.

그때 다시 사비강의 전음이 약 올리듯 들려왔다.

[많이 힘들어? 좀 도와줄까? 어디 사정해 보면 다시 생각을 해볼…]

[꺼져요! 필요 없으니까!]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자, 말이 험악하게 튀어 나갔다.

진심이었다.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의 도움을 받지 않으리라.

적어도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무인답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지 않은가?

오래전 쌍괴에게 납치당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불순세력의 수장까지 제거했으니 가문에 먹칠은 하지 않은 셈이다.

[흥! 힘이 다하는 데까지 버티고 버티겠어!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혼자 해내겠어!]

[이야, 멋있다. 그래, 그래야지. 처음부터 넌 혼자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그치?]

쉬이이이익!

까앙!

목단화가 날아든 칼을 쳐내고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이젠 대꾸도 하지 않았다.

“헉,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래, 우선 차근차근 해나가자.

눈앞에 보이는 이 녀석부터 처리한다.

하나씩 풀어 나가는 거다.

타앗!

목단화가 이를 악물고 달려 나갔다.

“이년이!”

호신위가 얼른 검을 내뻗으며 마주쳐 왔다.

퀴리리리링!

사심자가 몸을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콰라라락!

사심자는 마치 뱀처럼 상대의 검을 휘어 감으며 올라갔다.

푹!

사심자의 검봉이 상대의 손목을 찍었다.

“크악!”

뎅그렁!

호신위가 비명을 지르며 검을 놓치고 말았다.

곧이어,

퀴리리리링!

푹!

허공을 가른 사심자가 이번에는 호신위의 목을 찍어 버렸다.

“커억!”

하나 처치했다.

사심자가 뽑혀 나오자, 호신위는 목을 움켜쥔 채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 개 같은 년! 죽어랏!”

놀란 호신위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목단화는 그중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았다.

타닷!

그녀가 오른쪽 상대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쉬이이이잇!

“헛!”

느닷없이 옆구리 쪽으로 창날이 불쑥 튀어 나오는 게 아닌가?

호신위가 죽고 나자 무인들 중 한 명이 가세를 한 것이다.

“이익…!”

까앙!

사심자가 창날을 쳐냈다.

대신 앞서 표적으로 삼았던 호신위는 그대로 목단화를 향해 쇄도했다.

까강! 까앙!

두 자루의 검이 목단화의 사심자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하지만 두 명의 호신위는 쉴 틈 없이 그녀를 압박했다.

까가가가강! 깡!

그야말로 정신없이 검이 쏟아졌다.

이따금씩 창날도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목단화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쳇, 적어도 두 명은 저승길 동무로 삼으려고 했는데!’

이 상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리라.

‘싫어! 조금만 더!’

그녀가 이를 악물고 사심자를 뻗어 냈다.

쒸이이잉!

까앙!

자칫 튕겨 나가는 사심자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그러는 사이 호신위 두 명이 양쪽 옆구리를 베며 파고들었다.

‘안 돼!’

순간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실드를 펼쳤다.

수카카앙!

파짓!

두 자루의 검이 그대로 부딪치면서 실드가 깨져 나갔다.

호신위들이 멈칫하는 틈을 타서 목단화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하아앗!”

사심자가 질풍처럼 날아가며 호신위 한 명의 목을 노렸다.

“어딜!”

호신위가 검을 들어 막으려는 순간,

‘걸렸어!’

목단화의 눈이 반짝 빛을 뿜었다.

그녀가 슬쩍 사심자를 흔들었다.

그 섬세한 힘에도 사심자는 요동을 치듯 꿈틀거리더니 막아서는 검을 휙 돌아나가며 그대로 상대의 얼굴을 찔렀다.

푹!

“크아아악! 내 누우운!”

호신위가 오른쪽 눈을 부여 쥐고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 사이에 다른 호신위가 배후를 노리고 쇄도했다.

“흐아아압!”

이번에는 사심자가 그대로 몸을 돌아가며 그의 가슴을 노렸다.

까앙!

호신위가 사심자를 쳐내더니, 그대로 일장을 뻗어 왔다.

콰아앙!

“꺄악!”

콰당탕!

한참이나 밀려난 목단화가 건물 벽에 부딪치고는 쓰러졌다.

“네 이년. 죽여 버리겠다!”

눈을 잃은 호신위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목단화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더는 무리야.’

사심자를 쥐고 있을 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한계를 초월한 정신력 때문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굽힐 수 없는 자존심과 독기가 그녀를 간신히 지탱해 주고 있는 것.

“끝이다!”

호신위 두 명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머릿속에 지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우던 순간부터 사비강을 만나 겪은 모험들.

돌이켜보니 하룻밤 꿈같은 인생이었다.

막상 죽음을 받아들일 순간이 되자,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해졌다.

그녀를 지탱하던 자존심과 독기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몸은 조금도 까딱할 수 없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라는 걸까?

왠지 지금부터 다시 무공을 수련한다면 더욱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너무 늦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깨닫는 어떤 것들을 진작 이루었으면 어땠을까?

하긴.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다.

그건 그대로의 의미가 있을 터.

목단화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둠을 뚫고 날아드는 두 자루의 검이 보였다.

눈을 감았는데도 보이는구나.

‘본다’는 것은 눈을 통해서만 얻는 감각이 아니었구나.

최후의 순간에 얻은 마지막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눈을 떠라.]

귓가로 흘러드는 전음.

동시에 그녀의 몸에 한 줄기 공력이 스며들었다.

뒤이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쉬이이이잇!

따다앙!

쇄도해 오던 두 자루의 검이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목단화가 눈을 부릅뜨고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사비강이 그녀 뒤에 바짝 다가서서는 양 손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녀의 뒤에서 몸을 잡고 자세를 교정해 줄 때처럼.

“국주…!”

“국주?”

“님…?”

“아깝잖아. 이대로 죽어 버리긴.”

“무슨…?”

“자, 이제 움직임에 집중해라. 지금부터 개인 교습이다.”

쉬쉬쉬잇!

사비강에게 붙들린 목단화의 몸이 거짓말처럼 날아가며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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