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귀환 마교관
198화
쉬이이잇!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검신이 목단화의 가슴을 노리며 베어 들어왔다.
하지만 목단화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예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낮추면서 그대로 검을 내질러 갔다.
쒸이이잇!
놀랍게도 그녀의 검은 날아드는 검보다 더 빨랐다.
“하앗!”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까앙!
결국 날아들던 검이 진로를 틀면서 목단화의 검을 막았다.
상대가 튕겨 나가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곧장 뒤로 돌아서면서 다시 검을 내질렀다.
쒸에에엑!
까앙!
또 다시 청명한 금속성이 터지면서 배후에서 공격하던 상대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랬다.
그녀는 현재 두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때문에 쉴 틈은 없었다.
먼저 튕겨낸 상대가 그녀의 등을 노리면서 공격해 왔다.
목단화는 그대로 보법을 밟으면서 발을 뻗었다.
파앙!
“꺄악!”
발길질에 당한 백미령이 비명을 터뜨리며 물러났다.
목단화는 그대로 다시 돌아섰다.
그런데,
쒸에에엑!
‘헛!’
민유향이 그녀의 목을 향해 그대로 검을 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되받아치기는커녕 방어하기도 힘든 상황.
그 순간, 민유향이 주춤거렸다.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목단화가 그 틈을 타서 검을 불쑥 뻗었다.
쉬이이이잇!
그녀의 검봉은 민유향의 목에 다다라서는 정확히 멈췄다.
민유향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을 들었다.
“항… 항복.”
“정말 대단해, 단화야.”
등 뒤에서 백미령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하지만 목단화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다시.”
그 소리에 민유향과 백미령이 제발 봐달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래? 응? 이만하면 충분하잖아.”
“그, 그래. 우리가 같이 공격해도 널 이기지 못했어. 더 이상은 의미도 없고….”
“거짓말!”
목단화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민유향과 백미령이 움찔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목단화의 시선이 민유향에게 날아들었다.
“마지막 공격을 할 때, 넌 충분히 날 제압할 수 있었어. 하지만 멈칫했지?”
“그, 그건….”
“말했지? 손속에 사정을 봐주지 말라고! 너희들도 내가 하찮게 보이는 거야?”
“그런 게 아니잖아.”
“그래, 우린 그저 네가 너무 무리를 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판단해.”
목단화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녀가 입술을 꾹 씹고는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자, 다시 덤벼. 최선을 다해서.”
민유향과 백미령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벌써 세 시진 째였다.
손속에 사정을 두긴 했다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수련을 했으니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허기도 졌다.
한편, 목단화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이래서는 안 돼!’
그녀는 최근 들어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늘 자신감이 넘쳤다.
또래의 그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예전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단리정이 천멸대주가 되었고, 까불기만 할 줄 알았던 조문탁은 누구보다 빠른 장점을 가졌다.
곡보옥 역시 권법의 대가를 꺾어 버릴 정도로 강해졌다.
연우경과 염자량은 자신의 기량을 넘어섰다.
어디 그뿐인가?
무공에 있어서 가장 뒤처져 있던 담우기는 천멸대의 두뇌가 되었다.
정녕 그는 타고난 천재였다.
한데…
‘나는 아직도…!’
목단화는 자신의 손에 들린 사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비강이 구해준 연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비강 덕분에 구할 수 있었던 검이다.
하지만 아직 연검이 낯설기 때문일까?
이전에 사용하던 검 역시 얇긴 했지만, 이 정도로 휘청거리진 않았다.
한데 사심자는 정말이지 뱀의 혀처럼 제멋대로 휘청거렸다.
그래,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혹시 국주님이 일부러 내게 이런 검을 준 걸까? 애초에 내가 너무 모질게 굴어서?’
사실 그렇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녀가 처음 특목반으로 배정 받았을 땐 정말이지 사비강이 죽도록 미웠으니까.
물론, 지금도 그때의 앙금이 말끔히 가시진 않았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그가 정사대전을 종료시키고, 감찰국주가 되었으며, 생도들을 감찰대로 편성하게 될지.
그야말로 문제아들로 구성되었던 그 특목반이 단숨에 최정예 집단이 된 것이다.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지난 사 년에 걸친 동굴 수련은 더욱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아직 너무 미숙해.’
물론 용천관에 있는 또래의 생도들에 비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특목반 생도들의 발전 속도에 비하면 확실히 더디다.
상대적으로 진전이 없다 보니 불안증이 생기고 조급해진다.
‘연검이든 뭐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사심자가 좋은 검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마음을 굳힌 그녀가 검을 콱 쥐고는 소리쳤다.
“어서 덤벼! 이번엔 사정을 봐주지 말고!”
“단화야….”
“어서!”
민유향과 백미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검을 들어 올렸다.
그때,
“동기들을 괴롭히는 것도 습관이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돌아보니 조문탁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목단화가 미간을 팍 구겼다.
“무슨 상관이지?”
“에이, 너무 그렇게 박하게 굴지 마. 나도 같은 소속인데.”
목단화의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굳었다.
예전 같았으면 감히 자기 얼굴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을 녀석인데….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천멸대에게 있어서 조문탁이 자신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작전에서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그에 비하면 나는…!’
최근 들어 제외당한 작전이 많다.
목단화가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상관 말고 꺼져.”
“그건 안 돼. 소집령이 떨어졌거든.”
조문탁이 배시시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적하성을 함락한 불순분자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식 명칭부터 새로 정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칭은 무림맹.
그들은 정도맹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혈사련과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는 사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다수의 정파 무인들을 규합하기 위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강호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설백과 등왕패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극에 달했기에 그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정도맹으로 찾아오는 자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다만 감찰국에서 담당하던 중 달아난 자들인 만큼, 사비강은 끝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노라 공표했다.
이후 사비강은 천멸대와 철혈단을 이끌고 적하성 인근으로 가서 진을 쳤다.
그는 천멸대주인 단리정과 철혈단주 고적산을 데리고 성문 가까이 걸어갔다.
굳게 걸어 잠긴 성문 위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의 사기꾼, 사 교관이 아니신가?”
성벽 위에서 버럭 소리친 자는 막충(幕忠)이라는 무인이었다.
그는 원래 정도맹의 장로였는데, 설백과는 유난히 각별한 사이였다.
일전에 가장 먼저 설백을 임시 맹주로 추대한 인물이기도 했다.
‘무림맹’이라 자처하는 그들 사이에서 맹주로 추대된 모양이었다.
얼굴에 유난히 털이 많은 그가 곱슬곱슬 자란 턱수염을 매만지며 소리쳤다.
“설 장로님을 모함하고 우리를 여기까지 내몰더니, 어인 일로 찾아오셨는가?”
사비강이 픽 웃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고.”
“뭐?”
“불순분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일일이 찾아가느라 피곤하잖아.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일 처리하기도 쉽고. 도대체 누구 생각이냐?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너, 이 새끼가….”
“뭐,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줄게. 하지만….”
사비강의 입매가 더욱 치켜 올라갔다.
“너희들은 항복 안 하겠지?”
“당연하다! 네놈이 맹주님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농간을 부린다는 걸 내 모를 줄 아느냐?”
“확실히 뻔뻔하군. 그렇게 나와 줘서 또 고맙다.”
“뭣이?”
“그래야 너희들을 마음껏 쓸어 버려도 찜찜하지가 않거든.”
“무엄한지고!”
그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그 순간,
처처처처처처척!
성벽 위로 궁수들이 빼곡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시커먼 화살 떼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사비강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추잡한 짓을 하는군.”
다음 순간,
“스톤 월(Storn Wall)!”
그가 외치자 지면에서 느닷없이 돌벽이 솟구쳐 올랐다.
쿠구구궁!
투타타타타탕!
쏟아지던 화살들이 일제히 돌의 장벽에 부딪치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튕겼다.
잠시 후,
쿠구구구구…!
돌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성벽에 올라선 막충이 다시 보였다.
막충은 눈을 부릅뜬 채 연신 끔뻑거렸다.
‘제기랄! 방금 그건 뭐지?’
순간 사술에 홀려 헛것을 본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화살에 떨어진 수많은 화살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실 사비강은 일부러 화려한 마법을 썼다.
조금 전의 화살 공격 정도는 간단히 실드만 사용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그들에게 좀 더 절망감을 심어 주고 빠른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거창해 보이는 마법을 쓴 것이다.
그 효과는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다수의 궁수들이 믿기지 않는 현상을 목격하고는 투기를 잃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사비강이 싸늘하게 일렀다.
“대화를 하자고 왔는데, 죽자고 달려드는군.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아주 독한 녀석으로 먹여 주지. 흐흐흐.”
서늘한 웃음소리에 궁수들은 저마다 해쓱한 표정이 됐다.
“그전에… 화살이라면 이쪽에도 좀 쏘는 녀석이 있지.”
사비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패애앵!
단리정이 시위를 놓았다.
그야말로 시위를 당기고 쏘는 일련의 과정이 무척이나 빠르고 깔끔했다.
쒸에에에엑!
“노옴!”
막충이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일장을 뻗어냈다.
꽈아앙!
폭음과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화살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막충 역시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이런…!’
막충이 눈을 크게 뜨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화끈거리고 욱신거렸다.
한낱 생도였던 녀석이 쏜 화살에 이 정도로 자신이 흔들릴 줄이야!
사비강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
그날 밤, 사비강은 천멸대를 막사로 불러들였다.
“녀석들의 수장은 막충 장로다. 오늘밤 놈의 모가지를 따도록 한다.”
“오늘밤이요?”
대원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함락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적하성이다.
성내로 침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적의 수장을 죽이겠다니.
대체 무슨 수로?
사비강이 말을 이었다.
“적하성에 비밀 통로가 있다. 그런데 막충 장로는 그걸 모르지.”
“비밀 통로라니….”
“혈사련이 장악한 이후에 만든 것이거든.”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그는 서래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제아무리 천애의 요새라고 할지라도 재수 없으면 함락당할 수도 있죠. 그래서 난 그곳에 머물고 있을 때, 만약을 대비해서 비상 탈출구를 만들어 뒀어요. 급히 만든 거라 기관 장치도 뭣도 없죠.”
사비강이 적하성으로 떠나기 전 날, 그녀가 직접 알려 준 내용이었다.
서래향은 출구의 위치까지 세세하게 표시해 줬다.
그녀로서는 적하성에 머물다가 죽은 수하들에 대한 복수의 의미이기도 했다.
대략의 사정을 전한 사비강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저 늙은 여우의 모가지를 따 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