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89화 (189/670)

# 189

귀환 마교관

189화

“그럼 상처 없이 죽여주지!”

말을 마친 사비강이 이번에는 선공을 취했다.

팟!

시야에서 사라진 사비강이 어느새 노인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기감으로 위치를 파악한 노인이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지르며 쌍도를 머리 위로 휘둘렀다.

“흥! 꼼수 따위!”

까강!

두 자루의 칼날과 베르타스가 부딪치면서 사비강이 노인의 등 뒤로 내려섰다.

노인이 돌아서는 찰나, 사비강이 곧장 베르타스를 내질렀다.

쒸이이잉!

까아앙!

분명 몸을 찔렀음에도 금속성이 울렸다.

동시에 노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의 가슴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노인이 히죽 웃었다.

“그러게 소용없대도.”

사비강의 표정이 굳었다.

베르타스가 베지 못할 정도로 단단한 신체라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사공을 익힌 거지? 혹시 마법 도구를 이용한 건가?’

하지만 상대에게서 마나가 느껴지진 않는다.

메모라이즈해 둔 기억을 헤집어 보아도 노인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비강은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베르타스를 고쳐 잡았다.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공을 익힌 것이 분명하리라.

정공이나 마공과 달리 사공의 종류는 워낙 방대하니 그것들을 일일이 알 방법은 없다.

‘그래도 어지간한 건 다 파악한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다소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무공이라는 것은 없다.

분명 어딘가에 약점은 있으리라.

노인이 스스로 금제를 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저런 상태로 오랫동안 몸을 유지할 수 없으니 금제를 둔 것이다.

즉, 이대로 시간을 끌면 언젠간 저 노인이 버티지 못할 순간이 온다는 뜻이다.

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한 시진이 될지,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그러니 버티기 방법은 쓸 수가 없다.

그전에 자신이 지치고 만다.

“클클클! 대갈빡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파앙!

바닥이 움푹 파이면서 노인이 눈 깜빡할 사이에 사비강 앞에 나타났다.

그가 두 자루의 칼을 번쩍 치켜 올리고는 그대로 내려쳤다.

투카아앙!

“크웃!”

사비강이 신음을 뱉으며 뒤로 주르륵 밀려갔다.

그의 등이 벽에 닿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크크크! 자신만만하던 태도는 어디로 간 게야?”

우람한 덩치의 노인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사비강이 날아드는 칼을 보며 얼른 옆으로 굴렀다.

콰자악!

칼날이 그대로 사비강이 있던 자리를 베면서 그대로 벽을 뚫어 버렸다.

사비강이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강기를 일으켰다.

쑤아아아앙!

시퍼런 검강이 솟아오르자 노인의 눈동자에 가소로움이 스며들었다.

“클클. 소용없대도!”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이 재빨리 달려가며 베르타스를 내질렀다.

쒸아아앙!

“흐아압!”

노인이 기합성을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검강을 호신강기로 막아낸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노인은 그 미친 짓을 해내고 있었다.

투카앙!

놀랍게도 베르타스가 튕겨 나갔다.

동시에 노인이 도를 날렸다.

강기를 잔뜩 머금은 칼이 그대로 베르타스와 부딪쳤다.

쩌엉!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놓치고 말았다.

콰장!

콰콰자앙!

노인의 칼과 베르타스가 그대로 한쪽 벽을 완전히 뚫으며 안마당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사비강이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강하다.

악천괴와 싸울 때보다 더욱 긴장된다.

노인은 악천괴 만큼 요란하지 않지만, 응축되어서 밀도 높은 기를 제대로 운용하고 있었다.

웬만한 고수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상대라면 지금쯤 절망감을 느끼고 있으리라.

하지만 사비강은 그러지 않았다.

마계에서는 이보다 더한 절망감도 수도 없이 느꼈기에.

지금보다 약할 때, 지금보다 강한 존재와 만나서도 살아남은 적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짚어 가야 한다.

마침 사비강의 시야에 서래향이 들어왔다.

그녀는 이 엄청난 싸움을 지켜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감탄을 하는 중이었다.

사비강이 툭 던지듯 물었다.

“괜찮소?”

“네, 아직까지는요.”

“다행이군.”

“그나저나 부서진 걸 복구하려면 고생 좀 하겠어요.”

“후후. 뭐, 살아있다면 그게 대수겠소?”

사비강이 농담처럼 말하다가 흠칫거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서래향의 말을 들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간 것이다.

이윽고 사비강이 깊어진 눈동자로 노인을 응시했다.

‘복구라….’

한편 노인은 어깨를 돌려 우두둑 소리를 내고는 칼날을 혀로 핥았다.

“이제 싸움도 슬슬 지겨워지는데 그만 끝내도록 하자꾸나. 오랜만에 몸 풀기 정도는 되어 주었다.”

“그거 다행이군. 죽기 전에 몸이라도 풀었다니까.”

“클클클. 시건방진 놈!”

파앙!

노인이 다시 바닥을 차며 달려들었다.

찰나, 사비강이 몸을 굴려 피하면서 바닥에 꽂힌 대침 하나를 낚아챘다.

팟!

뒤이어 블링크 마법을 쓴 사비강이 노인의 등 뒤에 나타났다.

이미 기감으로 눈치 챈 노인이 몸을 휙 돌렸다.

그와 동시에 사비강이 대침을 내려찍었다.

까아앙!

대침이 노인의 가슴을 찔렀지만, 그대로 금속성이 울리면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어딜!”

노인이 일장을 뻗어 왔다.

사비강이 얼른 실드와 호신강기를 동시에 펼쳤다.

퍼카앙!

기의 폭발과 함께 그가 뒤로 훅 튕겨 나갔다.

촤아아앗!

바닥에 미끄러지듯 멈춰 선 사비강이 심호흡을 했다.

“칫!”

노렸던 바는 실패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가능성을 엿보았으니.

반면, 노인은 공격을 무사히 막아냈음에도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제법 기특한 생각을 떠올렸구나.”

“후후. 이래봬도 내가 생존 본능이 강한 편이어서 말이야.”

“고얀 놈.”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비강은 확신했다.

‘확실히 민감하군.’

그가 떠올린 방법은 뜻밖에도 단순했다.

원상복구.

애초에 금제가 풀리면서 강해진 것이라면, 다시 금제를 걸어 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완전히 복구하려면 꽤나 고생하겠지만, 굳이 완전히 복구할 필요가 있겠나?

그런 생각으로 대침 하나를 주워 들고 내찌른 것이다.

다만, 원래 대침이 박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그대로 쑤셔 넣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듯했다.

조금 전, 공격을 실패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클클. 기특하다만 쉬운 일이 아니지.”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게 나란 놈이거든.”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양손을 펼쳐 들었다.

완전히 무방비나 다름없는 자세에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자는 게냐?”

“수십 개를 동시에 처박으면 몇 개는 명중하지 않겠어?”

“흥! 네놈은 손이 수십 개씩이나 된다더냐?”

“후후. 텔레키네시스라고 들어봤나?”

“뭐?”

노인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섬뜩한 예기를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벽과 천장, 바닥에 흩어져 있던 수십 개의 대침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둥실 떠올라 있는 게 아닌가?

“능공섭물처럼 단순하지도, 이기어검처럼 강하지도 않지. 하지만 훨씬 정교한 조절이 가능하지. 젊은 놈아.”

“뭔 개수작이냐!”

위기의식을 느낀 노인이 바닥을 차며 달려들었다.

찰나,

파밧!

사비강의 양손이 교차했다.

동시에,

쒸쒸쒸에엑!

사방에 떠올라 있던 대침들이 벌떼처럼 날아들며 노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크이이익!”

투타타타타타타탕!

대침들이 노인의 몸에 부딪치면서 다시 한 번 기름튀기는 소리가 울렸다.

잠시 후,

“커흐억!”

노인의 등이 활처럼 휘는가 싶더니,

“우욱!”

이번에는 팔이 기괴한 모양으로 꺾이는 것이 아닌가?

‘들어갔군!’

사비강의 시야에 세 자루의 대침이 몸에 박힌 것이 보였다.

목에 하나, 옆구리에 하나, 허벅지에 하나.

사비강이 다시 두 손을 펼쳐 들었다.

촤아아아아!

텔레키네시스 마법으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내린 수십 자루의 대침이 다시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노오오옴!”

다음 순간,

쒸쒸쒸에엑!

투타타타타타타탕!

다시 한 번 수십 개의 대침이 노인을 향해 마구 쏟아져 내렸다.

“크아아악!”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대침이 꽂혔다.

노인의 움직임이 둔해진 탓에 조준하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먼저 박힌 것과 합해서 총 여덟 개의 대침이 노인의 몸에 박힌 상태!

사비강이 몸을 훌쩍 날렸다.

노인의 몸이 변형되는 이 찰나의 순간이 유일한 기회가 되리라.

이때를 놓친다면, 노인은 다시 기를 운용해서 대침을 스스로 발출해 내고 말 것이다.

파바박!

단숨에 노인의 어깨 위로 올라가 다리를 휘어감은 사비강이 목에 꽂힌 대침을 뽑아 들었다.

“크이익! 떨어져라! 이 거머리 같은 놈!”

“시끄러워!”

사비강이 노인의 정수리를 향해 대침을 내려찍었다.

콰자악!

“끄아아아악!”

정확히 대침이 꽂혔던 혈 자리다.

원래 박혀야 할 깊이 보다 오 촌이나 더 들어가 버렸으니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노인이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사비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등에 박혀 있던 대침 두 자루를 뽑아 들고는 양쪽 관자놀이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콰지익!

콰직!

“크히익! 크아아아아악!”

몸이 괴이하게 꺾여 가는 노인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라, 이 개 같은 놈아!”

노인이 허우적거리며 괴성처럼 내질렀다.

사비강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렇게 원한다면.”

말을 마친 그가 손을 뻗자 저만치 박혀 있던 베르타스가 손 안으로 휙 날아들었다.

동시에 사비강이 노인의 어깨 위에서 뛰어내리며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서커엉!

단단한 무언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발작 같은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툭, 데굴데굴….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것은 노인의 머리였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츄아아아아!

잘려 나간 목의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털썩, 쿠웅!

마침내 절대 쓰러질 것 같지 않던 거구의 몸이 고목처럼 넘어갔다.

“후우!”

사비강이 긴 숨을 내쉬고는 뺨에 묻은 피를 슥 닦아냈다.

그가 고개를 드니, 방 한쪽 구석에 선 서래향이 입을 딱 벌린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이어서.”

“별, 별 말씀을요.”

서래향이 멍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비강이 입매를 올렸다.

“그럼 하던 대화, 마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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