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32화 (132/670)

# 132

귀환 마교관

132화

타닷!

혈사련에서 정찰 임무를 맡은 호웅태(胡雄太)가 바닥을 차고 빠르게 달려갔다.

그 바로 곁을 정찰조 수하인 장십랑(張十郞)이 따랐다.

협곡 언덕을 오르기 시작할 무렵, 장십랑이 불쑥 말했다.

“정찰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차피 정도맹에서는 지금쯤이나 패배 소식을 전해 들었을 텐데요.”

“지형이 위험한 만큼 악 당주님께서는 신중을 기하고 싶으신 거겠지.”

호웅태가 무뚝뚝하게 대답했지만 내심은 장십랑과 같은 생각이었다.

정도맹 무인들이 호작곡에서 대패한지 하루 반나절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이런 곳에 매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장십랑의 말대로 지금쯤이나 정도맹은 패배 소식을 전해 들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악천괴는 정찰조를 보냈다.

그는 우선 포로들의 빠른 이송을 위해서 인력을 백 명의 정예로 축소했다.

그리고 지형이 험한 지름길을 이용하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호웅태가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이송만 확실히 끝내면, 두 계급 정도는 가뿐히 진급할 거다.”

“하긴 정도맹 요인들을 이송하는데 기여했으니까요. 이런 임무를 맡은 것도 다 조장님 덕분입니다.”

“후후. 조만간 내 자리에는 네가 앉을 거다.”

“조장님은 타격대로 배정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지도.”

호웅태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격대 조장을 맡게 된다면 정찰조장과는 확연히 대우가 달라질 거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생각에 젖은 채 언덕 위로 오른 두 사람은 저만치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구겼다.

“저게 뭐죠?”

“가보자.”

가까이에서 보니 바위와 돌무더기가 높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쌓아 둔 것이 틀림없었다.

“이건….”

정찰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호웅태는 단숨에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불길한 예감을 떠올리며 주위를 살피던 그 순간.

쒜에에엑! 푹!

호웅태의 몸이 뭔가에 맞고 붕 떠오르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조장님!”

장십랑이 비명을 내지르며 얼른 호웅태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진 호웅태는 목을 쥔 채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화살이 목을 완전히 관통한 모양이었다.

“조, 조장님!”

“컥…! 커륵…!”

입에 피를 한 움큼 머금은 호웅태가 몇 차례 껄떡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 축 늘어지고 말았다.

특진을 꿈꾸며 들떠 있던 그는 그렇게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도 모른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장십랑은 얼른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그가 하늘로 그것을 채 던지기도 전에.

쒸에에엑! 푹!

화살 한 대가 그의 뒤통수를 뚫고 이마로 튀어나왔다.

“이런 씹…!”

장십랑은 눈동자를 모아 미간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두 사람이 새로 나타났다.

조문탁과 염자량이었다.

둘은 쓰러진 자들이 가지고 있던 홰에 불을 붙이고는 높이 치켜들어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

저 멀리에서 횃불이 원을 그렸다.

이상이 없다는 신호다.

말에 올라타고 있던 악천괴는 피식 웃었다.

당연한 결과다.

호작곡에서 전투가 벌어진 지 겨우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정도맹에서 구원 인력을 보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를 대비했을 뿐이다.

‘이제 총타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이 작전을 지시한 류여중은 혈사련의 정식 총군사로 임명되리라.

그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이 작전을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총군사가 될 터다.

때문에 그의 지시에 따랐다.

대신 총군사 다음의 실세는 자신이 되리라.

여전히 정도맹에 대해 온건적인 입장을 가진 백호당주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으리라.

정도맹의 핵심 요인들을 모두 포로로 잡았으니, 이보다 더한 공이 어디 있으랴.

“출발하지.”

악천괴의 지시에 무리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공진철에 구속된 정도맹 요인들은 이제 모든 희망을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살아서 맹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들은 그저 퀭한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광들을 보았다.

이윽고 행렬은 좁은 협곡으로 들어섰다.

대낮에도 빛이 잘 들지 않는 협곡이다 보니 공기는 차갑고 서늘했다.

덜그럭. 덜그럭.

이리저리 수레가 흔들릴 때마다 삭신이 쑤셔 왔다.

그들이 갇힌 철창은 낮았다.

일부러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때문에 흔들리는 수레 위에서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해야만 하는 포로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오죽하면 차라리 죽어서라도 허리를 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일까?

그렇게 협곡을 따라 얼마나 이동했을까?

쿠르르르.

머리 위에서 흙먼지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쿠구구구…궁!

콰콰콰콰콰콰콰콰!

느닷없이 바위 더미와 돌무더기가 마구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천만다행인 점은 선두에 선 무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이었다.

“우왁! 피해라! 절벽이 무너진다!”

“흩어져!”

혈사련 무인들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세우며 허둥거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악천괴는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멍청한 것들! 이건 기습이다! 말머리를 돌려라!”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바위 더미와 돌무더기는 왼쪽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른쪽 비탈길을 타고 굴러 내려오고 있었다.

즉 누군가 고의로 밀어서 떨어뜨린 것이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자신들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은 극비 사항이었다.

정도맹에서 매복시킨 것이라고 하기에는 패배 이후의 대처가 너무 빠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

“하앗!”

퍼쾅! 콰장! 쾅!

허공으로 솟아오른 악천괴가 사방으로 장력을 발산했다.

그의 손에 얻어맞은 바위 더미들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가루가 되어 비산했다.

하지만 이미 꽤 많은 바위 더미와 돌무더기가 선두의 무인들을 깔아뭉개며 협곡의 출구를 완전히 막아 버린 상황.

혈사련 무인들이 얼른 방향을 돌려 입구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칫! 역시 매복이구나!”

악천괴가 소리치기 무섭게 이번에도 비탈진 언덕 위에서 바위 더미와 돌무더기가 마구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

“크아악!”

“아악!”

후미에서 가장 먼저 움직였던 무인들이 이번에도 떨어지는 바위와 돌무더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놈들!”

악천괴가 노호성을 터뜨리며 다시 몸을 날렸다.

퍼퍼펑! 콰앙!

그의 장력에 연신 바위가 터져 나갔다.

하지만 쏟아져 내리는 바위가 너무 많았다.

“크윽! 제기랄!”

마침내 집채만 한 바위 하나가 악천괴의 등을 찍어 내렸다.

퍼억!

쿠쿵! 쿠웅! 쿵! 쿵!

협곡을 빼곡하게 매우며 떨어져 내리는 바위 더미를 이겨내지 못한 악천괴가 결국 그 아래에 깔리고 말았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바위가 쏟아져 내리며 산처럼 쌓여 갔다.

이윽고 모든 바위와 돌이 떨어졌을 때, 협곡에는 희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끼었다.

푸스스스스.

“쿨럭! 쿨럭!”

무사한 자들이 저마다 기침을 토해냈다.

먼지구름이 서서히 가라앉자 생존자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대략 삼십여 명.

비교적 행렬 가운데쯤에 속했던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공진철에 갇혀 있던 포로들 역시 무사했다.

비교적 선두나 후미에서 가까운 포로들은 단단한 공진철이 오히려 그들을 바위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주작당 소속 흑풍대주(黑風隊主) 곽규(郭圭)가 주위를 살피며 소리쳤다.

“무사한 자들은 대열을 정비하고 사방을 경계….”

쒜에에엑! 퍽!

“… 컥!”

곽규가 입을 딱 벌린 채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곧이어.

“우와아아아!”

비탈진 길을 따라 함성이 쏟아져 내려왔다.

협곡의 특성상 함성소리가 절벽에 부딪치며 왕왕 울리니, 기습하는 적의 수가 수백인지 수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희뿌연 먼지구름 너머로 그림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살아남은 혈사련 무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적, 적이 나타났다! 기습이다!”

“놈들을… 커억!”

여기저기서 소리치던 혈사련 무인들이 비명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기습의 효과는 확실했다.

이미 부상을 입은 자들도 상당수였기에 혈사련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제, 제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포로 감시를 맡고 있던 사내가 검을 콱 움켜쥔 채 사방으로 눈알을 굴렸다.

마침 바로 곁의 철창 안에 갇혀 있던 석지평이 창살을 콱 움켜쥐고는 소리쳤다.

“여기요! 여기 있소! 나, 천랑단주 석지평이오! 나뿐 아니라, 이곳에 천안각주님과 두 단주님도 갇혀 계시오! 어서 우리를 구해 주시오!”

“시끄럿!”

혈사련 무인이 철창을 거칠게 내려쳤다.

석지평이 사내를 올려다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네놈도 끝이다. 감히 내게 오줌을 싸? 맹에서 구출대가 온 이상, 나는 살고, 네놈은 반드시 죽는다!”

“이 새끼가 어디서… 오줌이나 받아 처먹던 주제에…!”

사내가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그러는 사이 사위는 점점 조용해지고 있었다.

퍽!

“으악!”

이따금씩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단말마와 같은 비명 소리가 울릴 뿐이었다.

이쯤 되자 석지평에게 오줌을 눴던 사내 역시 두려움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욱하던 먼지는 가라앉았지만, 횃불을 들고 있던 자들이 모두 쓰러지는 바람에 한 치 앞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저벅저벅.

어디선가 울리는 발걸음 소리.

사내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어, 어디냐? 덤, 덤벼라! 아니지! 가까이 다가오면 이 녀석을 죽여 버리겠다!”

사내가 갑자기 칼을 고쳐 쥐더니 불쑥 철창 안을 겨누는 게 아닌가?

의기양양하던 석지평의 표정이 다시 해쓱해지고 말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짓인가? 이런 비열한 방법을 쓰다니…!”

“닥쳐! 후후후. 다시 한 번 말한다! 나, 나를 공격하면 이놈을 죽여 버릴 거다!”

사내의 목소리가 협곡에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협박이 먹힌 걸까?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움직임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때, 사내의 뒤통수에서 서늘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딱히 상관은 없는데.”

등골이 오싹해진 사내가 휙 돌아섰다.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어, 어느새…!’

사비강이 귀신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닌가?

“으, 으이익!”

사내가 기합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서컥!

그보다 빨리 베르타스가 그의 목을 날려 버렸다.

툭, 데굴데굴…!

한편, 철창 안에 갇혀 있던 석지평은 사내의 머리가 누군가의 칼날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꼴좋구나! 감히 내게 그런 짓을 하고도 네놈이 무사할 줄 알았더냐? 하하하하!”

그는 한참이나 웃어대다가 어둠 속 구원자를 향해 말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고맙소! 덕분에 살았소! 맹에서 오신 분이시오?”

저벅저벅.

어둠 속에서 누군가 철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마침내 상대가 철창 가까이 얼굴을 불쑥 들이민 순간, 석지평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 버렸다.

‘이, 이놈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히죽 웃는 상대는 바로 사비강이었다.

“이야아, 이런 우연이! 이렇게 여기서 또 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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