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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23화 (123/670)

# 123

귀환 마교관

123화

한때 명문 정파로 강호에 이름을 날렸던 청옥파는 여자들이 주축으로 이루어진 문파였다.

과거에는 그 위세가 막강하여 비구니들로만 이루어진 아미파(峨嵋派)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전대의 장문인이 사고로 갑자기 죽은 후, 그 세력이 점점 약해지더니 지금은 정도의 그저 그런 문파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 청옥파의 현 장문인에게는 ‘봉소옥(鳳小玉)’이라는 장녀가 있었는데, 바로 용천관의 이년생 생도였다.

이에 청옥파에서는 진소미 장로를 용천관으로 보내 봉소옥의 후원자로서 사비강을 만나 보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소미는 길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환살단 무인들과 마주치게 되면서 목숨을 잃고 만다.

환살단주 요신의 지시였다.

그는 진소미의 얼굴 가죽을 벗겨 인피면구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홍묘 서래향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서래향이 희미한 웃음을 머금었다.

환살단주의 빠른 처신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서 행하는 자.

이런 자를 측근으로 얻었으니,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위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과연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요. 문제는 사비강이 면담을 할 때 호위를 대동하느냐 인데….”

“그렇잖아도 그 부분 역시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요? 어떤가요?”

“지금까지 호위를 대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단 한 번도?”

“예, 둘 중 하나겠지요. 자신의 무공을 철저히 믿고 있거나, 세상에 의심이 별로 없는 인물이거나.”

“하긴, 한낱 교관이 호위무사까지 거느린다는 것은 좀 우습기도 하군요.”

서래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환살단주 요신이 넌지시 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비강은 색을 몹시 밝힌다고 합니다. 어쩌면 홍묘께서 작업을 하시기에 이점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호호.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홍묘 님을 보고 그냥 지나칠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신의 진지한 대답에 서래향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제 그를 만날 일만 남았군요.”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기다려라. 사비강.’

**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해산.”

사비강의 말에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던 생도들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구구… 드디어 끝났다.”

“요즘은 하루하루 수업이 너무 빡빡해.”

“이러다가 뼈마디가 남아나지도 않겠어.”

다수의 생도들이 투덜거렸지만, 그 중에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오늘 수업을 복습하는 자들도 있었다.

염자량과 연우경, 목단화 등이 그랬다.

최근 들어 사비강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도 높은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오전 대부분 시간을 음양환유마나심법 연마로 채웠는데, 그 자체가 심력과 체력을 굉장히 소모하기 때문에 오후 수업은 거의 녹초가 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도들이 지친 몸을 이끌며 흩어지는데, 사비강이 매설란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에 술 한 잔 어때?”

“지금 술이 넘어가요? 구 군사와 약조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제 곧 일 년이라고요. 이러고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거예요?”

매설란의 대답에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정말 태평하군요.”

“어때? 간만에 분위기 좀 내보자고.”

매설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 기회에 저도 좀 따질 일도 있으니까.”

“따질 일? 그게 뭔데?”

“그건 술자리에서 말하죠.”

매설란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사실, 그녀가 사비강에게 따지고 싶은 것은 지난 번 사비강의 경솔한 언행에 관한 것이었다.

‘정말이지… 생도들도 있는데 동침했다는 얘기를 왜 했담?’

그날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어쩐지 사비강이 그 사실을 당당하게 말했다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한 마디로 복잡 미묘한 기분.

‘아무튼 오늘은 그 일을 반드시 따져서 사과라도 받아내야겠어!’

매설란이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한 시진 후에 유수객잔(流水客棧)에서 보자고.”

“알겠어요.”

대답을 하고는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며 사비강은 집무실로 들어왔다.

‘매 소저와 오랜만의 술자리군.’

괜히 기분이 들떴다.

사비강은 깔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동경을 보며 머리카락을 손질했다.

‘이러고 보면 나도 제법 괜찮은 얼굴이란 말이야. 크크크.’

그렇게 도취감을 한껏 만끽하는데, 마침 당이협이 집무실로 들어서다가 멈칫하고는 말했다.

“아, 역시 준비하고 계셨군요.”

“음? 준비? 무슨 준비?”

“한 시진 후에 청옥파에서 온 진 장로와 유수객잔에서 약속이 잡혀 있지 않습니까?”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예? 지금 그 면담 준비를 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전혀 아닌데. 매 교관과 술이나 한 잔 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벌써 보름 전에 잡힌 선약을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습니다.”

“이거 곤란하게 됐군.”

“매 교관과는 어디서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유수객잔.”

“그럼 어차피 같은 객잔이니, 진 장로를 먼저 만나 이야기를 빨리 마무리 짓고, 매 교관님을 만나시면 될 듯합니다.”

“오, 그럼 되겠군.”

사비강이 손가락을 딱 튕기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늙은 영감과 길게 얘기할 건 없지.”

“아… 진 장로는 늙은 남자가 아니….”

“참, 진 장로는 누구의 후원자로 온 거지?”

“봉소옥이라는 이년생 생도입니다.”

“하여간 특목반 생도도 아니면서 자꾸 찾아온다니까.”

“단리추 장문인이 워낙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시니…. 아, 그리고 진 장로는 늙은 남자가….”

“아무튼 알겠어. 얼른 끝내고 술이나 마셔야겠어.”

사비강은 당이협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

**

유수객잔 오 층 황룡실(黃龍室).

황금빛 비단으로 둘러진 황룡실은 유수객잔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객실답게 온갖 장신구와 화려한 치장으로 둘러져 있어 눈 둘 곳을 모를 정도였다.

너른 탁자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갖가지 술이 고급스러운 자기에 각각 담겨 있었다.

황룡실 창가에 꼿꼿하게 서 있는 여인.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창문을 닫고는 화접자를 이용해 초에 불을 붙였다.

방안이 은은한 조명으로 밝혀지니 분위기가 더욱 그윽해졌다.

마침 점소이가 들어와 마지막 술병을 내려 두자, 그녀가 나직이 일렀다.

“준비는 끝난 건가?”

“예, 이걸로 말씀하신 건 모두 준비해 드렸습니다.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아니, 필요 없다. 손님이 오더라도 너희들은 방까지 안내만 하면 된다. 누구도 이 방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말을 마친 여인이 손가락을 튕겨 은자 두 냥을 점소이에게 던져 주었다.

점소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를 말이겠습니까요?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요!”

“훗, 그럼 가보도록.”

“예이, 예!”

점소이가 얼른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잠시 후, 탁자 앞에 앉은 여인.

그녀는 휘황하게 차려진 탁자를 흡족한 듯 바라보고는 손을 턱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부우우욱!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있었다.

인피면구였던 것.

피부를 벗겨낸 그녀의 얼굴은 바로 서래향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는 동안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 청옥파의 진소미로 변장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비강은 진소미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진소미의 얼굴은 필요 없다.

어차피 이곳에 들어온 사비강은.

‘살아서는 나가지 못할 테니까.’

서래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사락. 사라락.

그녀의 몸에 걸치고 있던 비단 옷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발끝에 걸렸다.

그녀는 이제 속살이 훤히 비치는 망사 옷만 걸쳤다.

그야말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옷이다.

서래향은 고혹적인 자태로 탁자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다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자, 이제 강호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친 대가를 치르게 해줄 때다.

**

“오 층에서 선약이 있다고요?”

매설란이 미간을 곱게 찌푸렸다.

그럴 거면 자신을 왜 이곳으로 불렀는지 따지려는 눈치였다.

사비강이 얼른 말했다.

“아, 금방 정리하고 올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정리한다니… 도대체 무슨….”

“보나마나 자기 자식 좀 잘 봐 달라는 거겠지. 하여튼 문주니, 장로니 하는 영감탱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찾아온다니까.”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당이협에게 ‘진 장로’라는 말만 들었기에 나이 많은 남자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탓이다.

매설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다녀오세요.”

“미안해. 금방 올게. 대신 오늘 술은 내가 산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매설란이 목소리를 살짝 높이자 사비강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하. 그런가? 아무튼 다녀올게.”

말을 마친 사비강이 얼른 계단을 올라갔다.

“아, 잠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말을 꺼내던 매설란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미 사비강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녀가 턱을 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청옥파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영감일 리가 없을 텐데….’

**

오 층 객실은 입구부터 화려했다.

척 보기에도 비싼 객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진 장로인지 뭔지 하는 영감은 돈이 엄청 많은가 보군.’

지금까지 자신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뇌물을 갖다 바쳤다.

물론, 사비강은 그 뇌물들을 모두 돌려 줄… 리가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

때문에 이런 호사스러운 객실에서 만나는 것이 이젠 그리 낯설지도 않았다.

‘좋아, 받을 것만 받고 일찌감치 자리를 정리하자고. 크크크.’

사비강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객실 앞으로 다가섰다.

객실 문 앞에는 점소이 한 명이 서 있었다.

“용천관에서 온 사비강이다.”

“아,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점소이가 넙죽 인사를 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사비강이 들어서자 점소이는 곧바로 문을 닫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객실 안으로 들어선 사비강은 화려한 내부 구조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지금껏 이렇게 비싼 곳으로 초대 받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우선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바로 보이는 것은 복도에 걸린 산수화였다.

복도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작은 공간이 나타났는데, 그곳에도 온갖 장식품이 꾸며져 있었다.

마침 한쪽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맛있는 냄새도 풍겨 왔다.

‘정말 돈 많은 늙은이가 온 모양이군.’

사비강이 헛기침을 하고는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 장로, 계십니까? 사비강입니다.”

그때였다.

실내의 다른 쪽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나오다가 움찔거리고는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어머, 사비강 교관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

“아… 예?”

사비강이 넋을 놓고 멍하니 되물었다.

‘여자가…?’

그것도 매우 아름다운!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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