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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22화 (122/670)

# 122

귀환 마교관

122화

용자림 앞 너른 공터.

사비강과 특목반 생도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천세명과 단리추 역시 숲 쪽에 서 있었다.

단리정은 먼발치에서 숲 쪽 나무를 향해 활을 쏘기로 했다.

한데 그 거리가 어마어마했다.

대략 백여 장.

사람조차도 손가락만 하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다.

나무 기둥에 직접 과녁을 칼로 새겨 넣은 사람은 단리추였다.

둥글게 파놓은 과녁 중앙을 맞추면 아들의 재능을 인정하기로 했다.

단, 모두 세 자루의 화살을 명중시켜야만 한다.

단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단리정은 용천관을 떠나 일성검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언뜻 까다로운 조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타고난 재능이란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비강의 말대로 초절정 영역에도 오를 정도의 재능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단리추 곁에 선 천세명은 내심 혀를 찼다.

‘쯧쯧. 사 교관이 결국 무리한 도박을 저지르는군.’

그는 내심 조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보아도 단리정이 서 있는 곳은 까마득하게 멀다.

저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생도들 중 누가 단리정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한데 저렇게 먼 곳에서 나무 기둥에 새겨 놓은 과녁을 맞춘다?

어불성설이다.

나무 기둥에 새긴 과녁이 보이기나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여기까지 화살이 날아오기나 할지도 모르겠다.

‘후후후. 사비강, 어디 한 번 망신 좀 당해 봐라.’

단리추 역시 천세명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과녁이 멀어도 너무 멀었다.

다만, 그래도 자신의 아들이다 보니 과녁을 맞춰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렇게 엇갈린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단리정이 서 있는 곳에서 붉은 기가 올라갔다.

곧 쏘겠다는 신호였다.

천세명과 단리추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잠시 후 단리정이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시위를 놓는 순간.

쒸쒸에에에엑!

허공을 가르는 매서운 파공음에 단리추와 천세명은 내심 깜짝 놀랐다.

화살이 날아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줄 알았는데, 시위를 놓는 것과 동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화살은 빠르게 날아왔다.

팍! 팍!

두 자루의 화살을 동시에 날린 것인지, 화살 두 대가 나무 기둥에 각각 처박혔다.

‘생각보다 빠르구나.’

‘과연. 활에 소질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만은 없겠군!’

두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로 빠르게 날아들 줄은 몰랐기에 두 사람은 화살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놓쳤다.

하지만 역시….

‘과녁을 맞지 않았군!’

단리추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반면 천세명은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후후후. 그럴 줄 알았지.’

천세명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 시험은 단리정에게 조금 무리였나 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건을….”

“가만.”

단리추가 손을 들어 천세명의 말을 잘랐다.

그가 천천히 과녁을 새긴 나무로 다가갔다.

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이건…!”

“왜 그러십니까?”

천세명이 다가오며 묻자, 단리추가 얼른 몸을 날리더니 나뭇가지에 각각 박힌 화살을 단숨에 낚아챘다.

그의 표정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이걸 보시오.”

“이건…!”

천세명이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화살촉에 엄지만한 풍뎅이가 꿰뚫려 있었다.

두 자루 모두 그랬다.

“허헛! 이 녀석이 이제 보니 풍뎅이를 맞춘 게 아니겠소?”

“하, 하지만… 저 먼 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두 자루의 화살이 모두 풍뎅이를 맞췄소. 우연이라고 보기엔 힘들겠지.”

“아무리 그래도 믿기 어렵군요. 다시 한 번 쏘게 해보심이….”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인가 보군.”

“예에?”

천세명이 고개를 들자, 단리추가 턱짓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마침 단리정이 있는 곳에서 붉은 기가 다시 올라갔다.

활을 쏘겠다는 신호.

두 사람은 얼른 과녁을 새긴 나무로부터 물러났다.

다음 순간.

쒸엑! 쒸엑! 쒸에엑!

날카로운 파공음이 두 사람의 고막을 찔렀다.

곧이어.

콰콰콱!

부르르르르!

세 자루의 화살이 일제히 과녁 안에 날아들어 박히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세명은 물론 단리추 역시 눈을 크게 뜨고는 화살을 보았다.

그런데 그때 또 다시

쒸엑! 쒸엑! 쒸에에엑!

콰콰콱!

쒸쒸쒸에에엑!

콰콰콱!

연신 화살이 날아들며 나무 기둥의 과녁에 틀어박히는 것이 아닌가?

천세명과 단리추는 그저 넋을 놓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화살은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그 간극이 워낙 짧았기에 마치 여러 명의 궁사가 한꺼번에 화살을 쏘아 날리는 듯했다.

쒸쒸쒸에엑! 쒸쒸에엑! 쒸에에엑!

콰콰콱! 콰콰콱! 콰콰콱!

마침내 수십 자루의 화살이 과녁을 쪼듯이 박혔을 때.

꾸구웅…!

한쪽 면만 깊게 파인 나무 기둥이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기울어져 갔다.

마침내.

우지끈, 쿠우웅!

거대한 나무 기둥이 그대로 부러지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근처에 있던 천세명과 단리추는 얼른 몸을 날려 피했다.

그러고도 두 사람은 여전히 넋을 놓은 표정으로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천세명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더듬거렸다.

“이, 이, 이게… 도대체….”

그의 곁에서 비슷한 표정으로 서 있던 단리추.

그가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하!”

그 웃음이 어찌나 호탕한지 멀찍이 떨어져 있던 단리정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비강이 단리정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무래도 아버지도 기뻐하시는 모양이구나.”

“예, 교관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너희들 덕분이야.”

단리정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생도들을 향해서도 활짝 웃어 보였다.

연우경은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한편, 단리추 곁에 있던 천세명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불렀다.

“저어… 문주님?”

“크하하하하! 이거 참. 대단하군. 정말 놀랐소.”

“그, 그러게 말입니다.”

“단리정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보았소? 내 아들이 저 커다란 나무를 쓰러뜨리는 것을?”

“예… 보긴 보았습니다….”

“하하하하! 이것이 재능이 아니면 무엇이겠소? 안 그렇소?”

“그, 그렇지요.”

“으하하하하!”

단리추는 다시 한 번 앙천대소를 터뜨리더니 단숨에 단리정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단리정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쭈뼛쭈뼛 다가왔다.

“아버지… 만약 제가 활을 잡는 게 싫으시다면, 다시 검을 쥐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물론, 나는 네가 검술을 게을리 하진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너에게는 활이 어울린다는 것을!”

“아버지…?”

단리추가 사비강에게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내 사비강 교관께 무례했음을 인정하오! 기분이 언짢았다면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라오! 또한 내 아들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소!”

“후후후. 이제라도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단리추는 천세명에게도 다가가 인사했다.

“천 부장께서도 이제는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소. 이제 보니 사비강 교관님은 아주 훌륭한 분이오.”

“그, 그렇습니다. 역시 괜한 기우였군요.”

천세명이 얼른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마지막으로 단리추는 단리정에게 다가갔다.

“정아, 너는 사비강 교관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도록 해라. 나도 미처 보지 못한 네 재능을 사비강 교관님이 발견해 주셨구나.”

“아버지….”

“이 아비 역시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욱 정진해야겠구나. 하하하!”

단리추는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용천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들 모두 사비강 교관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방문을 창밖으로 바라보던 등부형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사비강의 명성을 드높여 준 셈이 되어 버렸군요.”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소.”

천세명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등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사비강을 곤욕스럽게 만들려던 천세명의 계략은 완벽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단리정의 사건은 오히려 사비강의 명성을 드높이는데 일조할 뿐이었다.

그날 이후, 중원 곳곳의 문파에서 사비강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대부분 용천관에 입관한 생도들의 부모나 후원자들이었다.

단리정의 재능을 찾아내 발전시켜 준 것처럼, 다른 생도들의 후원자들 역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

“아, 힘들다.”

사비강이 의자에 앉은 채로 퍼졌다.

모처럼 수업을 쉬는 날이었지만, 쉬기는커녕 하루 종일 방문자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맞은편에 선 당이협이 넌지시 말했다.

“오늘 저녁엔 혜성문(慧星門)의 임천백(林千栢) 장로와 면담이 있습니다. 인근 객점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임천백 장로?”

“예, 오래 전부터 면담 요청이 있었던 곳이라 오늘 저녁에는 만나셔야 합니다.”

“거긴 또 뭐 때문인데?”

“이년생 적랑반(赤浪班) 생도 한 명이 혜성문에서 왔지요.”

“아니, 왜 특목반 애들도 아닌데 날 찾아오냐고.”

“뭐, 생도를 한 번 만나보고 관심을 좀 가져 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으, 이젠 지겹다. 지겨워.”

“그래도 임천백 장로는 그 지역에서 인품이 좋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인맥을 쌓아 둬서 나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알았어. 가서 만나면 되잖아. 젠장, 맨날 늙은이만 찾아와. 예쁜 여자가 오는 것도 아니고.”

사비강이 투덜거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그 역시 단리정의 재능을 증명하면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적하성.

환살단주 요신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가 창밖을 바라보는 서래향에게 포권을 취하며 보고했다.

“희소식입니다. 틈이 생겼습니다.”

서래향이 슬쩍 그를 돌아보았다.

“어떤 틈이죠?”

“최근 사비강을 찾는 인사가 무척 많아졌다고 합니다. 거기에 손을 쓰면 될 듯합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요신은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빠르게 나열했다.

대략의 자초지종을 들은 서래향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좋은 조건입니다. 이보다 자연스럽게 그자에게 접근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좋은 기회군요.”

“예, 생도 하나의 후원자인 걸로 해서 사비강 교관을 만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직접 가실 생각이신지요?”

“물론이에요.”

사비강을 처리한다면 직접 나서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또 확실하다.

그래야 공을 가로채일 위험도 적다.

환살단주 요신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손을 써 두었습니다.”

“손을 써 두다니. 어떻게?”

“홍묘께서는 이제 청옥파(靑玉派)의 장로 진소미(振昭美)가 되는 겁니다.”

환살단주 요신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집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것은 한 여인의 인피면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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