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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16화 (116/670)

# 116

귀환 마교관

116화

성주전의 소란을 듣고 성내에 주둔하고 있던 멸살단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사비강은 삽시간에 자신을 포위한 무인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앞서 보인 무위가 있기 때문인지, 적들은 살기를 드러내면서도 섣불리 덤벼 오진 않았다.

사비강이 싸늘하게 웃었다.

“쓰레기들이 다 모였구나.”

“노옴! 정체가 뭐냐? 맹에서 온 놈이냐?”

대주 중 한 명이 칼을 겨누며 소리쳤다.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거참, 왜 자꾸 다들 맹맹 거리는지 모르겠군. 난 그냥 나라니까.”

“미친놈. 쳐라!”

대주의 명이 떨어지자 수많은 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앞세워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사비강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망자에 대한 예를 다하지 않은 죄, 죽은 자를 능멸한 죄, 지옥불로 내가 너희들의 죄를 다스려 주마!”

찰나.

화아아아아악!

사비강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장의 대지가 붉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벌떼처럼 달려들던 무인들이 멈칫거리는 사이.

화르르르륵!

뜨거운 불길이 땅바닥에서부터 거세게 솟구쳐 올랐다.

파이어 필드(Fire field).

일정한 범위를 화염의 대지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이었다.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 무인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살아남은 자들은 섣불리 사비강에게 달려들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기만 했다.

사비강이 전음을 흘렸다.

[문탁, 잘 봐 두어라. 이 ‘검은 벌집’이라는 물건은 이렇게 쓰는 거다. 뭐,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거지만. 크크.]

다음 순간, 그의 벨트에서 수백 개의 돌기가 허공으로 촤아아, 날아올랐다.

벌떼처럼 보이는 돌기들은 순식간에 적진을 누비며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뾰족한 침에 온몸을 난자당한 무인들이 하나둘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헉! 크아악!”

“으아악!”

순식간에 수많은 무인들이 원인 파악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목숨을 거두자, 살아남은 무인들은 사기를 잃고 말았다.

“괴, 괴물이다.”

“귀신의 장난이다!”

하나둘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자가 생기더니, 이윽고 성주전 안마당에 머문 무인이라곤 시체밖에 남지 않았다.

촤라라라라.

제 역할을 끝낸 검은 벌떼가 벨트로 돌아와 다시 돌기처럼 틀어박혔다.

그 모습을 본 척기량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어떤 속임수를 쓴 거지?”

“믿음이 부족한 친구로군. 속임수 따윈 없다.”

“흥, 개소리!”

척기량은 전혀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데없이 불의 장벽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멀쩡한 땅바닥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지 않았던가?

타앗!

더 이상 말을 섞어 봐야 건질 것이 없다고 판단한 척기량이 바닥을 차며 쏘아져 나갔다.

쑤아아아앙!

그의 칼에서 강기가 맺히면서 길이가 세 배쯤 늘어났다.

찰나.

쩌엉!

그의 칼이 베르타스와 부딪치며 다시 한 번 요란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촤촤촤촤촤악!

두 사람이 동시에 멀어지면서 십여 장 정도 떨어졌다.

사비강은 손끝에 저릿하게 전해 오는 감각을 느끼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상당한 무공이군. 이렇게 죽이기엔 아까울 정도로.”

“여전히 개소리를 하는구나.”

“크크크. 네놈이 동혈에 깔려 죽지 않았더라면 미래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지는군. 하긴, 그래봐야 마왕의 앞잡이가 되거나, 곧 죽어 버렸겠지만.”

“네놈의 헛소리를 들어 주는 것도 지겹다. 그만 끝내도록 하지.”

척기량은 사비강이 정말로 미친 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마어마한 마공을 익혀 몸은 강해졌지만, 정신이 주화입마에 걸려 돌아버린 인간.

딱 그 정도쯤으로 생각했다.

그가 내뱉는 말은 하나같이 허황된 이야기였기에.

타앗!

척기량이 다시 한 번 바닥을 차고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찰나, 사비강이 뒤로 훌쩍 물러나면서 베르타스를 손에서 날려 보냈다.

쒸아아아앙!

‘헛!’

척기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웬만하면 무기를 던지는 방법을 쓰지 않는다.

고수들의 영역에서는 무기를 든 것과 들지 않은 것은 큰 차이였다.

한데 들고 있던 무기를 던져?

뜻밖의 공격이었지만 위협이 되는 것만은 분명했다.

검강을 입은 베르타스였기에, 척기량은 재빨리 호신강기를 발휘하면서 칼을 앞세웠다.

그런데.

파캉!

반투명한 실드가 속절없이 부서져 나가더니, 이번에는 호신강기마저 가볍게 깨뜨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거짓말 같은…!’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척기량으로서는 억겁의 시간처럼 길고 생생하게 느껴졌다.

베르타스는 그대로 척기량의 검과 부딪쳤다.

하지만 튕겨 나간 것은 척기량의 검이었다.

베르타스는 무거운 돌파력을 과시하면서 그대로 척기량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곧이어 척기량의 몸이 부웅 떠올라 건물 벽까지 날아가 베르타스와 함께 처박히고 말았다.

“커억! 쿨럭!”

건물 벽에 처박힌 척기량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날까지 강호를 종횡무진 하면서 이처럼 처절하게 당한 적이 있었던가?

“뭐, 이런 개 같은… 커헉!”

말을 꺼내던 척기량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그의 얼굴이 악마처럼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가 느끼는 심정은 절망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감히… 네놈 따위가… 감히… 내게…!”

언제나 살가운 웃음만 짓던 척기량의 얼굴에 야차와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양손으로 심장에 박힌 베르타스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부들부들 떨던 그가 마침내 심장에 박힌 베르타스를 팍,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터지지는 않았다.

이미 심장에서 흘러나온 혈액의 상당량을 베르타스가 흡수했기에.

그 때문인지 베르타스는 검붉은 검신으로 변해 있었다.

탁탁탁.

척기량이 얼른 자신의 혈도를 짚어 지혈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본 사비강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살짝 스쳤다.

“호오. 그 지경이 되어서도 그 정도 정신력이라니. 과연 칭찬해 주지.”

“닥쳐라!”

“하지만 이걸 어쩌나? 베르타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 바로 너 같은 살인귀들이거든. 그놈은 그런 녀석들의 갈망을 좀먹어 가면서 성장하는 녀석이지.”

“개소리 집어 치우라고 했다!”

팟!

순간 척기량이 바닥을 차고 날아올랐다.

과연 베르타스를 손에 들었기 때문인지 부상을 입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찰나.

쒜에에에에엑!

화살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척기량에게 날아들었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단리정이 쏜 것.

“방해하지 마라!”

일갈을 터뜨린 척기량이 베르타스를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까앙!

튕겨 나간 화살이 사비강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어둠 고리의 실드가 발동되기도 전에 이뤄진 행동이었다.

그만큼 척기량의 반응은 빨라졌다.

척기량 역시 자신의 무공 수위가 한층 상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쿠쿠. 이거 꽤나 마음에 드는 물건이군. 아무래도 네놈의 것이 내 것이 되게 생겼어.”

그가 싸늘하게 웃으며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댔다간 어떻게 되는지 알려 줘야 할 것 같군. 이번 계도는 그런 내용으로 하지.”

“흐흐흐. 그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더 이상 놀리지 못하게 해주마!”

탓!

베르타스를 쥔 척기량이 순식간에 사비강의 코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척기량의 눈에는 모든 것이 느리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슈카아아악!

베르타스는 정확히 사비강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바닥에 착지한 척기량이 허리를 꺾어 들고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하! 벴다! 네놈이 졌구나!”

척기량이 베르타스를 불쑥 뻗으며 바닥에 쓰러진 사비강을 가리켰다.

그런데….

없다?

분명 목을 베지 않았던가?

한데 사비강의 시체가 쓰러져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잔상?’

그의 미간이 팍 구겨지는데.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사비강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 보니, 저만치 성벽 위에 사비강이 우뚝 서 있었다.

‘저놈이 언제 저기까지?’

척기량이 베르타스를 꽉 움켜쥐었다.

“하악, 하악.”

점점 척기량의 호흡이 가빠졌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 역시 붉게 충혈 됐다.

사비강이 차갑게 웃었다.

“넌 지금 두 번 같은 실수를 했다.”

“뭐?”

“바로 분수도 모르고 내 물건을 취한 것이지. 네 허리에 차고 있는 것과 네 손에 들고 있는 것.”

그러는 사이 척기량의 이마에서는 핏대가 툭툭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전신의 모든 힘줄이 도드라지면서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했다.

척기량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이 쥐새끼 같은 놈! 그만 찍찍대고 내려와라!”

“크크. 네가 들고 있는 그놈은 늘 피를 갈망하지. 한데 이걸 어쩌나? 주변에 흡수할 피가 없을 경우엔 제 주인의 목도 물어뜯으려는 녀석인 걸.”

“뭐야?”

다음 순간.

우우우웅!

베르타스가 반응이라도 하듯 검신을 떨어댔다.

“크웃! 이, 이건 무슨…!”

척기량이 순간 양손으로 베르타스 손잡이를 콱 움켜잡았다.

마치 검이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크이익!”

척기량이 이를 빠득 갈며 힘을 잔뜩 주었지만, 심한 부상을 입은 그가 베르타스를 제어하기엔 무리였다.

부들부들 떨던 척기량은 베르타스로 제 목을 겨누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내.

“안 돼애액!”

비명 같은 외침 끝에 베르타스가 그대로 척기량의 목을 뚫었다.

“커헉! 꺼으억…!”

털썩, 무릎을 꿇은 척기량.

그렇게 그는 퀭하게 뜬 눈으로 절명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베르타스는 척기량의 목에서 흘러 나오는 피를 꿀꺽꿀꺽 삼켜 갔다.

**

홍묘 서래향은 집무실에서 창밖의 달을 올려다보았다.

적하성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통각주이자 군사인 류여중은 정말이지 무섭도록 정도맹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사도가 천하를 통일시키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런 반면, 혈사련 내에서 자신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호투장 사건으로 책임을 피하지 못한 것.

게다가 호투장의 원흉인 가득삼의 정체와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하아.”

서래향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집무 책상으로 돌아와 용모파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제법 단정한 용모의 남자.

‘당신은… 도대체 누구지?’

최소한 이 남자를 찾아 제거하거나, 생포하지 않는다면 혈사련 내에서 자신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류여중이 ‘가득삼’이라는 가명의 청년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자만 처리한다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한 사내가 들어섰다.

환살단주 요신이었다.

그는 본래 사환당주였던 백토 휘하에 있었지만, 백토가 죽은 후로는 환살단이 독립적인 조직으로 분리됐다.

오늘 그가 홍묘의 집무실로 찾아온 것은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적하성으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군사인 류여중은 지속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는 멸살단을 계속해서 작전에 투입하는 대신, 서래향과 환살단을 적하성에 주둔시키기로 한 것이다.

비록 독립적인 조직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서열상 요신은 서래향 아래였기에 깍듯하게 예를 차렸다.

“환살단주, 요신이 홍묘 님을 뵙습니다.”

그가 포권을 취하자 서래향이 가볍게 웃었다.

“어서 와요. 서로 밀려난 처지니 예는 그쯤 해두죠.”

요신이 쓴 웃음을 짓다가 책상에 놓인 용모파기를 보고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반응을 눈치 챈 서래향이 슬쩍 질문했다.

“왜 그러나요?”

“아뇨. 왠지 낯이 익어서….”

“그러고 보니 환살단주는 처음 보겠군요. 혹시 누군지 알겠어요? 그가 누군지 알아낸다면 그대도 나도 또 다른 운명을….”

“알 것 같습니다.”

불쑥 들려온 대답.

서래향이 흠칫거리고는 물었다.

“뭐라고요?”

요신이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린 채 용모파기를 집어 들고 뚫어지게 응시했다.

잠시 후,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습니다. 이자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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