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96화 (96/670)

# 96

귀환 마교관

96화

쉬익! 샤악! 타다닷!

매설란은 허공을 가르며 가뿐하게 몸을 놀렸다.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귀에 걸린 귀고리가 빛에 반짝였다.

‘대단해.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아!’

그녀는 내심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확실히 내공이 증진됐다.

사비강이 알려 준 심법을 이용해서 불어난 마나를 내공으로 전환시키자 이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타다닷!

그녀가 재빨리 허공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마치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며 상승하는 듯한 보법이다.

뒤이어 그녀는 몸을 회전시키며 연검을 휘둘렀다.

휘리리링!

연검이 허공을 가르며 휘어지는 소리가 아름답게 울렸다.

휙! 휙! 휙!

배후로 돌려 찌르고, 다시 안쪽으로 끌어당겨 찌른다.

그리고 왼팔 아래로 내려 찌르고, 다시 낮은 자세에서 배후로 돌려 찌른다.

쉭! 쉭! 쉭! 쉭!

그야말로 그녀의 품안에 안긴 한 마리의 뱀이 요리조리 움직이며 상대를 농락하는 듯하다.

그녀가 익힌 사사검법(蛇蛇劍法)의 특징이다.

적의 수가 늘어나면 품에 안은 뱀의 수도 늘어난다.

허초와 변초가 난무하는 검법.

해서 연검에 특화된 최고의 검법이라는 찬사가 있으나, 그만큼 대성하기가 어려운 검법이라는 평도 있다.

매설란 역시 사사검법을 익힌 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실력의 정체였다.

이 부분을 극복할 방법은 내공의 증진밖에 없었다.

내공을 증진시켜 검로마다 힘이 실리게 되면 자연히 검술이 향상된다.

하지만 내공 증진이라는 것이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가?

그래서 그녀는 고민했다.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무공이 또 뭐가 있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사부님이 전수해 주신 사사검법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내공까지 증진하는 방법은?

그렇게 해서 익히게 된 것이 바로 매혼섭공이다.

그녀로서는 호신을 하는 것과 동시에 내공을 흡수할 수 있는 절공이었다.

다만, 매혼섭공을 통해 흡수한 내공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쉽게 내공을 향상시키다니.’

매설란은 검을 거두어들이며 천천히 깊은 숨을 뱉었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다리가 후들거렸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숨이 조금 차는 정도.

게다가 소모된 내공이 훨씬 쉽게 회복되는 걸 느낀다.

음양쌍환사를 달여 먹은 것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역시… 으윽. 떠올리긴 싫단 말이야.’

사비강이 직접 달여 준 음양쌍환사는 내공의 증진을 더욱 도왔다.

다만 뱀탕이라는 인식과 그날 보았던 선남선녀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자 한동안은 속이 영 좋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발전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는 누군가 시비를 걸어 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우습게도 지금 딱 그런 심정이다.

‘그나저나… 이 남자는 도대체 또 어디까지 간 거야? 이번엔 애들까지 데리고.’

**

“끄응.”

두 사람은 불안한 눈빛으로 어두컴컴한 동혈 안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조문탁과 곡보옥이다.

팔짱을 낀 곡보옥이 자신의 굵은 팔뚝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한참이나 그렇게 동혈 안쪽을 응시하던 그가 도저히 참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정말 답답하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그제야 옆에 서 있던 조문탁도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안 나오시네.”

“교관님이 들어가신지 얼마나 지났지?”

“반 시진은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조문탁이 기울어진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엿새 전, 사비강은 갑자기 두 사람을 집무실로 불렀다.

“어디 좀 갈 데가 있으니 준비해라.”

조문탁과 곡보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물었다.

“어딜 가는 겁니까?”

“가보면 알아. 내일 아침 떠날 테니까 준비해 둬.”

그걸로 끝이었다.

다음 날, 사비강은 예정대로 두 사람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그는 밤낮없이 달렸다.

조문탁과 곡보옥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사비강은 이 또한 훈련의 일환이라며 길을 재촉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이 여기다.

그리고 사비강은 두 사람을 동혈 밖에 대기시켜 놓고 홀로 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기분 나쁜 동혈 안으로 사라진지 반나절.

“아아, 젠장!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마침내 곡보옥이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불쑥 소리쳤다.

조문탁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돌아보았다.

“설마… 교관님이 잘못 된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하지만… 너무 안 나오시는 것 같은데.”

“흐음.”

“도대체 여긴 왜 오신 거람?”

“역시… 들어가 볼까?”

곡보옥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동혈 안쪽을 노려보았다.

조문탁이 흠칫거렸다.

“그래도 될까?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그러긴 했지.”

하지만 사비강이 들어가고 나서 얼마 후, 동혈 안에서는 괴상한 소음이 들려온 게 신경 쓰였다.

절대 유쾌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때 문득 조문탁의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이거… 시험이 아닐까?”

“시험?”

곡보옥이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왜 지난번에 교관님이 그러셨잖아. 조만간 특목반 반장을 뽑겠다고. 우리 중 가장 상황 파악이 빠르고, 지도력도 갖춘 자를 뽑을 예정이라고.”

“맞아, 그랬었지.”

곡보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혈사련 비밀 분타에서 사비강은 생도들을 모아놓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조만간 특목반 반장을 지정하겠다고.

조문탁이 동혈을 빤히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그 시험이 아닐까?”

“반장 자질을 알아보는?”

조문탁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곡보옥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비강 교관이라면, 이런 괴이한 방식으로 시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조문탁이 추측을 이어갔다.

“사비강 교관님은 너와 나 중에서 반장을 정할 생각이신 건지도 몰라. 우리는 비무대회에도 출전했으니까.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시험을 해보시려는 거겠지.”

“과연 그럴듯하군. 그렇다면 더더욱 들어가 봐야겠어.”

“왜?”

“한 조직의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빠른 상황 판단과 융통성이 필요하지.”

“하지만 절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으니. 명령 불복종이 될 텐데?”

“그러니까 융통성이지. 강호에서는 시키는 것만 해서도 안 되는 경우가 있잖아.”

“흐음.”

“뭐, 넌 여기 남아라. 나는 위험을 무릅써서라도 교관님을 찾아봐야겠다.”

곡보옥이 짐짓 동혈 안에 있는 사비강이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마침내 그가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문탁도 내심 조바심이 났다.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인가? 아니면 상황 판단에 따른 융통성인가?

‘에라, 모르겠다!’

결국 조문탁도 곡보옥을 따라 달려 들어갔다.

“같이 가자.”

“야, 너도 날 따라하면 어떡해? 그럼 변별력이 없어지잖아!”

“난 좀 더 신중했을 뿐….”

조문탁이 대꾸하려는데.

그그그그긍...!

아스라이 동혈 깊숙한 곳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서로를 보았다.

“방금….”

“분명 들렸지? 이상한 소리가.”

“맞아. 그러고 보니… 진동도 느껴지는 걸?”

두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스스….

천장에서 흙먼지가 떨어졌다.

바닥에서 울려오는 잔잔한 진동은 점점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곡보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마침 동혈 안쪽에서 한 남자의 비명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

“교관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혈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으아아아아아아!”

길게 늘어지는 비명은 점점 크게 들렸다.

마침 완만한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조문탁과 곡보옥은 급히 멈추고 말았다.

“헉!”

“저, 저게 뭐야?”

뜨거운 용암이 동혈을 가득 채운 채로 해일처럼 밀려오는 게 아닌가?

쿠구구구구구궁!

“으아아아아아아아!”

사비강이 비명을 지르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침내 두 사람을 발견한 사비강이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야 이 개망나니 같은 놈들아! 들어오지 말라니까, 왜 기어들어왔어!”

“어어? 교관… 우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결국 조문탁과 곡보옥도 황급히 몸을 돌리고는 경신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밀려오는 용암 불길에 쫓기며 내달렸다.

“으아아아아아!”

화르르륵!

마침내 가장 뒤처진 곡보옥 등에 불이 붙어 버렸다.

“우아아아악! 불, 불, 불!”

등에 불이 붙은 곡보옥은 순간적으로 조문탁을 앞질러 내달렸다.

그렇게 세 사람이 겨우 동혈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

쿠르르르!

콰콰콰콰콰콰!

용암이 밖으로 밀려나오기 직전, 동혈 입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가까스로 화를 피한 세 사람.

곡보옥은 얼른 풀숲에 몸을 던져 등에 붙은 불을 꺼버렸다.

“으으으으.”

옷자락이 홀랑 타버린 그의 등은 시커먼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화상을 입었는지 살갗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사비강이 역정을 냈다.

“이 자식들아. 왜 말을 듣지 않고 들어온 거냐?”

조문탁과 곡보옥이 눈치를 보다 겨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사비강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뭔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어? 그딴 걸로 시험을 할 리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결국 두 사람이 고개를 조아렸다.

사비강이 한숨을 내쉬고는 품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런데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가죽 주머니보다도 커다란 가죽신이었다.

크기로 보면 도저히 가죽 주머니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신.

사실 사비강이 들고 있는 가죽 주머니는 ‘라겔의 주머니’라는 것으로, 마계의 물건이었다.

일종의 차원을 넘나드는 입구 역할을 하는 것인데, 주둥이 안으로 넣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큰 것도 보관이 가능한 주머니였다.

사비강이 가죽신을 조문탁에게 던져 주었다.

“받아라.”

조금은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가죽신.

조문탁은 이게 뭐냐는 듯 바라보자 사비강이 턱짓을 했다.

“‘하메스의 신발’이라는 거다. 신어라.”

“하메… 그자의 신발을 저한테…?”

“잔말 말고 신어 봐.”

조문탁이 우선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슈슈슈슉.

“어?”

가죽신이 저절로 수축하면서 발에 꼭 맞는 게 아닌가?

게다가 신을 갈아 신고 나자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웠다.

‘이거… 설마 기물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경신법을 펼쳐 보았다.

파바바밧!

‘헉! 세상에!’

확실히 빨라졌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몸이 가벼워지고 발놀림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게다가 자신의 기척이 갈무리되는 느낌이다.

사실 이 신발의 주인인 하메스는 마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도둑이다.

그런 만큼 하메스의 신발은 마계에서도 귀한 물건이다.

기척을 숨기고 속도를 올려주는 패시브 스킬이 걸려 있는 신발.

마계의 침공이 시작되었을 때, 이 신발을 착용한 자는 마계 최고의 암살자인 루인하르크였다.

그의 손에 죽은 중원인만 모두 백 명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문탁의 발에 들어갔으니, 그가 가질 일은 없어진 셈.

‘역시 기물이구나!’

조문탁이 신나게 숲을 내달리고 돌아온 후 사비강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저 주시는 겁니까?”

“그래.”

“우와! 감사합니다, 교관님!”

조문탁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만세를 불렀다.

한편, 곡보옥은 그저 부러움 가득한 눈길로 조문탁을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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