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귀환 마교관
81화
샤샤샥! 샤샥!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사비강이 이끄는 특목반이다.
그 중에서도 조문탁과 목단화를 비롯한 다섯 명.
나머지 생도들은 매설란과 당이협의 보호 하에 조금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었다.
첫 실전.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누구나 첫 경험은 평생의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기에.
이때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에 따라 한동안 성장과 안주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사비강은 생도들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맞춰 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왕이면 최소한의 개입으로 생도들이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런 의미에서 선공을 날리는 단리정이 이미 실전 경험을 치른 바가 있다는 건 유의미했다.
스스슥.
수풀 사이에서 움직임이 멈췄다.
[다시 한 번 적의 위치를 확인해라.]
사비강의 전음에 뒤따라오던 다섯 명의 생도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수풀 너머 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적색 무복을 갖춰 입은 자들이 길목을 막고 있었다.
[단리정이 화살을 쏘면 곧바로 투입된다. 나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 각자 최선을 다하도록.]
사비강의 말에 조문탁과 목단화를 비롯한 생도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문탁은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상상 속에서 수없이 치러온 실전.
하지만 실전은 말 그대로 실전이다.
상상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인의 숙명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되는 순간.
그때였다.
파치지짓!
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빛의 구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저, 저건?’
조문탁뿐만 아니라 다른 생도들 역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비강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빛의 구를 보더니 곧 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빛의 구가 빠른 속도로 적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닌가?
‘교관님이 만드신 건가? 도대체 어떻게?’
어둠 속에서 빛을 만들어내는 무공이라니.
물론 이따금씩 그런 경우가 있다.
기를 이용해서.
하지만 저렇게 완벽한 구 형태로 밝은 빛을 날릴 수 있다는 건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당연하다.
사비강이 사용한 것은 ‘라이트(Light)’라는 마법이었으니.
치지지짓!
한편, 경계를 살피던 다섯 명의 흑살대원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빛에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웬 놈이냐? 모습을….”
찰나.
팟!
빛의 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직후.
쒸에에에엑!
푹!
“커억!”
팍!
“으악!”
화살 한 대가 소리치던 사내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하지만 다른 한 대의 화살은 적의 허벅지에 맞고 말았다.
한 명은 사망, 다른 한 명은 부상이다.
사비강의 눈이 빛났다.
‘구 할의 성공이군.’
두 명 다 죽으면 최고의 결과지만, 한 명이라도 죽으면 구 할의 성공이다.
사실 둘 중 하나 정도만 부상을 입히리라 생각했다.
한데 둘 모두 맞힌 데다 한 명은 죽었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다.
‘단리정, 이 녀석 확실히 발전했군.’
‘쳐라!’ 하는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직전까지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겪은 생도들이었다.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타닷!
가장 먼저 조문탁이 몸을 날렸고, 그 뒤를 목단화가 이었다.
다른 세 명의 생도들 역시 각자의 무기를 쥐고 튀어나갔다.
“적, 적이다! 어서 신호…! 커억!”
흑살대원 하나가 고함을 내지르다 말고 목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조문탁이 날린 비수가 그의 목에 틀어박힌 것이다.
남은 자는 이제 셋!
그 중 한 명은 부상.
“이놈들!”
흑살대원 하나가 칼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쒸에에엑!
따앙!
그가 두 번째로 날아드는 비수를 얼른 칼로 쳐내고는 조문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찰나, 조문탁이 몸을 옆으로 날리며 바닥을 굴렀다.
까앙!
그대로 바닥을 찍은 칼이 금속음을 울렸다.
뒤이어
푹!
“컥!”
흑살대원이 그대로 시선을 내려 자신의 가슴을 내찌른 검을 바라보았다.
‘뭐가 이리 빠른…?’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한 여자 생도가 검을 곧게 내찌른 채로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단화였다.
그녀는 조문탁이 몸을 옆으로 빼내는 것과 동시에 섬광벽력검의 일성비검(一星飛劍) 초식을 펼쳐 곧장 적을 내찌른 것이다.
일전에 상초진과 예설영이 비무대에서 펼쳤던 차륜술을 그대로 응용한 것.
쑤욱!
털썩!
검이 뽑혀 나오자 흑살대원은 피를 뿜으면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순간까지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생도…?’
분명 자신은 생도에게 찔렸다.
지금 저기 달려가는 녀석도 생도 복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진검을 가지고 있는 거지?’
‘게다가 한낱 생도에게 자신들이 이렇게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을 품은 채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편, 목단화는 쓰러진 흑살대원을 내려다보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검을 내지르기 전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숨이 가빴다.
처음으로 살인을 했기 때문이다.
검 손잡이를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내, 내가… 사람을 죽였어.’
그때.
“화! 정신 차려!”
조문탁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목단화가 고개를 드는데, 조문탁의 비수가 얼굴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헛!’
그녀가 얼른 몸을 비틀어 피하자.
푹!
비수는 그녀의 얼굴을 휙, 지나치면서 바로 뒤에 선 흑살대원에게 박히고 말았다.
“크윽!”
처음부터 조문탁이 노린 것은 그 흑살대원이었다.
단리정이 날린 화살을 허벅지에 맞은 자였다.
하마터면 목단화가 그에게 목숨을 잃을 뻔한 것.
“지금이야!”
조문탁이 버럭 소리쳤다.
비수를 날려 상대의 공격을 저지하긴 했지만, 죽이진 못했기에.
어깨에 비수가 박힌 흑살대원이 비명을 터뜨리며 주춤 물러설 때, 목단화의 검이 한 줄기 빛을 그리며 지나갔다.
슈칵!
“크륵!”
결국 목이 베인 흑살대원이 피를 울컥 뿜으며 숨을 거뒀다.
이로써 사망자가 네 명.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은 생도 셋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크익!”
상황이 여의치 않자 흑살대원이 품속 손을 넣어 신호탄을 꺼내 던졌다.
그 순간.
‘그래비티!’
사비강이 얼른 의식을 집중해 마법을 펼치자, 하늘로 솟구쳐야 할 신호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아닌가?
툭!
마침 곡보옥이 나타나 신호탄에 불씨가 붙기도 전에 발로 비벼 꺼버렸다.
그러는 사이 흑살대원은 생도 세 명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고 있었다.
털썩!
마침내 마지막 대원까지 쓰러지자, 생도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나직이 환호했다.
“됐다!”
“우리가 이겼어!”
어느새 단리정도 합류해서 승리를 자축했다.
한편, 목단화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 손끝에 남은 감각이 저릿하게 가슴을 후볐다.
검봉이 생살을 찢으며 파고들 때의 그 섬뜩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잊지 마라.”
언제 다가온 것인지 곁에 선 사비강이 불쑥 말을 걸었다.
“… 실수였어요.”
“그 실수 한 번으로 네가 목숨을 잃게 되고, 동료가 목숨을 잃게 되고, 조직이 위험에 빠지게 되지.”
“…….”
“지금 네 손에 남아 있는 그 감각. 네가 강호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익숙해져야 할 감각이다. 그 감각을 매일매일 되새기면서 몸에 익혀 두어라. 앞으로 네가 걸어갈 길은 꽃길이 아니라 혈로가 될 테니까.”
말을 마친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 조문탁이 그녀 곁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괜찮아?”
그녀의 안색이 썩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걱정이 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못했을 조문탁이 이제는 이처럼 편하게 대한다.
‘정말… 내가 이렇게 쉬워졌나?’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건 왜인지….
그럼에도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말이 이처럼 쌀쌀한 것도 왜일까?
“너한테 걱정을 받아야 할 만큼 내가 형편없어 보이니? 아니면 만만해?”
“음? 그런 건 아니지만 안색이 영 좋지 않아서.”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네 걱정이나 해.”
“그럼, 다행이고.”
조문탁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어가는데.
“잠깐.”
목단화가 그를 불러 세웠다.
“음?”
조문탁이 돌아보자 목단화가 먼 산을 보듯 딴청을 부리며 툭 뱉었다.
“아, 아깐 뭐, 고마웠다고 해둘게.”
“어? 아아, 그거야 뭐. 당연한 건데.”
조문탁이 히죽 웃고는 걸어갔다.
‘칫, 저 여유는 뭐야? 재수 없어!’
목단화는 입술을 비죽 내밀면서도 전과 다른 눈빛으로 생도들을 둘러보았다.
서로 자축하는 생도들이 어쩐지 예전과 달리 좀 더 가깝고 편하게 느껴졌다.
사비강이 생도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매설란과 당이협도 나머지 생도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매설란은 쓰러진 흑살대원들의 시체를 훑어보면서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정말 이들을 다 처리했잖아?’
그것도 매우 깔끔하게.
누가 이 상황을 보고 생도들이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할까?
마침 사비강이 생도들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잘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 그게 뭔지 알겠느냐?”
“제가 두 사람을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단리정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사비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넌 네 몫을 다해 주었다. 단 한 명이라도 부상을 입혔다면 된 거다. 하지만 넌 한 명을 제거하고, 한 명을 부상 입혔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도들이 침묵하자, 조문탁을 부르더니 흑살대원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누가 가장 강해 보이냐?”
“이자입니다.”
조문탁이 가리킨 자는 자신을 공격하려다가 목단화의 검에 심장이 찔려 죽은 자였다.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지금처럼 기습할 경우에는 머리부터 쳐야 한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나머지 녀석들은 크게 동요하게 되어 있지. 앞으로는 기습을 가하기 전에 상대의 기도를 확인하고 가장 강한 녀석을 먼저 노리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생도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숲 복판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생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낭아반 부교관이 이끄는 필생조였다.
낭아반 부교관인 소섭랑(召攝郞)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한껏 신경을 곤두세운 채 주변을 경계했다.
이제 해가 저물었으니 본격적으로 남은 자들의 생존 전투가 벌어질 참이었다.
마침 한쪽 수풀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그가 몸을 바짝 숙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엇?”
수풀에서 불쑥 나타난 사람은 상필지 교관이 아닌가?
그의 뒤를 이어 나타난 자들은 모두 낭아반 생도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살상용 병장기를 들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살상용 무기를…?’
소섭랑이 얼른 몸을 날려 상필지 앞으로 뛰어내렸다.
“교관님, 오셨습니까?”
“문제가 생겼네.”
상필지의 표정이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