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6화 (66/670)

# 66

귀환 마교관

66화

“크윽…! 이런 개새…!”

대도를 든 황기가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을 주체 못하고는 털썩 꿇었다.

콱!

칼을 거꾸로 쥐고 지팡이 삼아 지탱하던 거구는 이내 고목처럼 쓰러지고 말았다.

쿠웅!

비무대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그리고 비무대를 둘러 싼 수많은 사람들 역시 침묵을 지켰다.

저마다 입을 척 벌린 채, 그 벌어진 입만큼이나 눈을 크게 뜨고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춘향제가 시작된 지 나흘 째.

비룡반의 우수 생도인 황기가 쓰러졌다.

그것도 만인이 무시하는 특목반 생도에게.

“후우, 후우, 후우!”

곡보옥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허리를 폈다.

이겼다.

하마터면 황기의 기세에 밀려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며 패할 뻔했다.

하지만 끝내는 이겼다.

“우아아아앗!”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합성을 터뜨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내려앉았던 침묵이 완전히 무너졌다.

“와아아! 대단하다!”

“정말 멋진 싸움이었다!”

“세상에! 특목반 생도가 비룡반을 이기다니!”

“전혀 예상치도 못한 결말이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만큼 비무의 내용은 훌륭했다.

모두가 특목반의 처참한 패배를 예상했다.

교관들이나 생도들뿐만 아니라 춘향제를 구경하러 온 인근 주민들까지 그랬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본래 춘향제의 비무는 개인당 단 한 번으로 끝이 난다.

즉 승자가 계속해서 싸워 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이번 춘향제에서는 비룡반과 특목반이 서로 맞붙게 되었다.

각각의 반에서 네 명의 생도를 반 대표로 선발한다.

일대일의 비무가 먼저 치러지고, 그 다음 이대이의 비무가 치러진다.

마지막으로 다시 일대일의 비무를 치르면 모든 비무가 끝난다.

즉 세 번의 비무를 통해 서로의 성장을 점검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는 취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목반을 불쌍히 여겼다.

하필이면 비룡반이라니.

일년생 교관부장 천세명이 담임인 비룡반은 우수한 생도들이 아주 많았다.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 네 명이 비무대회에 참가할 테니, 특목반 생도가 누가 되든 가망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예상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이다.

비룡반의 황기와 특목반의 곡보옥의 대결.

힘과 힘의 싸움에서 곡보옥은 이겼다.

곡보옥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비무대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비강이 팔짱을 낀 채 씨익 웃었다.

“손목이다. 그리고 가볍게.”

단 두 마디.

사비강은 자신이 비무대에 오르기 전, 딱 그 말만 전했다.

물론,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건 사비강이 내준 숙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비무대에서 떨어질 뻔했을 때, 곡보옥은 무심결에 발을 뻗어 상대의 손목을 걷어찼다.

그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 중심을 잡은 곡보옥이 얼른 자세를 바로하며 상대를 살폈다.

황기는 손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순간, 숙제가 풀렸다.

무시무시한 괴력이 장점인 황기는 손목에 내공이 집중되는 습성이 있었던 것.

한데, 또 하나의 습관이 발견됐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손목을 미세하게 비트는 것이다.

아마도 내기의 압력이 너무 강해서 생긴 습관인 것으로 보였다.

‘정말이지 교관님은 괴물이군!’

황기를 몇 번이나 봤다고 이런 약점을 알아챘을까?

하지만 그 부분만은 곡보옥의 착각이었다.

사비강은 이미 이전의 삶에서 황기의 무공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황기에게 그 약점을 지적해서 수정해 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두 가지 습성을 확인한 후에는 비무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리고 마침내는 비틀려 날아오는 황기의 칼날을 피해 바닥을 굴러 상대의 배후를 선점하기에 이른 것.

그 순간, 곡보옥은 두 번째 마디의 수수께끼를 풀었다.

‘가볍게!’

곡보옥은 손에서 도를 놓고 일 권을 내질렀다.

그 결과 도를 들었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경쾌한 움직임이 나타났다.

퍼억!

그의 주먹은 곧바로 상대의 등을 타격했고, 황기는 그렇게 고꾸라지고 말았다.

척!

곡보옥이 사비강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사였다.

사비강은 팔짱을 낀 채 거만한 표정으로 히죽 웃어 보였다.

[앞으로 날 더욱 존경해라. 흐흐.]

역시 사비강답다는 생각에 곡보옥도 픽 웃어 버렸다.

한편, 반대편에 서 있던 천세명은 어금니를 꾹 깨물고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저딴… 쓰레기 녀석에게 패하다니…!’

분노가 지나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 같소.]

사비강의 전음이었다.

천세명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개를 휙 들었다가 얼른 표정을 다듬었다.

[후후. 축하드리오. 사 교관.]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소.]

[허허, 하나 방심해서는 곤란할 거요. 황기는 비무 출전자 중에서 가장 약한 아이였다오.]

[그렇게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뭐, 그렇다고 해드리겠소.]

‘크윽…!’

천세명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가 최대한 차분하게 전음을 날렸다.

[다음 비무는 기대해도 좋소.]

[얼마든지.]

천세명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소리쳤다.

“뭐하느냐? 설영과 초진은 다음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라!”

“예, 교관님.”

상초진과 예설영이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번 비무는 이대이.

지켜보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역시 저 두 사람이 올라왔군.”

“특목반에서는 누가 올라올까?”

“역시 연우경과 목단화가 아닐까? 그 두 사람이라면 그래도 해볼 만할 테니까.”

“아마 그렇겠지.”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세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흥! 연우경이든 목단화든 박살을 내주마!’

그런데….

“음?”

천세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무대 위로 올라온 특목반 생도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비무대를 에워싼 사람들의 표정도 마찬가지.

“어라? 누구지?”

“저 두 사람이 같이 싸운다는 건가?”

“아무래도 특목반 교관이 이번 비무는 버리기로 한 모양이야.”

“괜히 저들이 불쌍하군.”

사람들이 안쓰러운 표정까지 지으며 비무대 위에 오른 두 사람을 보았다.

특목반 참가 생도는 바로 조문탁과 능소소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잔뜩 받는 조문탁이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능소소를 돌아보았다.

“소, 소소. 너무 걱정 마. 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걱정 안 해. 그보다 긴장 좀 풀어.”

“누, 누가 긴장했다고 그래? 나, 난 괜찮다고.”

“풋. 그래, 알았어.”

한편, 상초진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조문탁과 능소소를 보았다.

“뭐야? 또 너희들이냐?”

“우, 우리가 어때서?”

조문탁이 발끈해서 소리치자 상초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됐다. 뭐 빨리 끝내고 내려가자. 너희들과 같은 비무대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창피하니까.”

“뭐, 뭐라고!”

조문탁이 발끈해서 소리치는데, 마침 등부형이 비무를 시작하라고 일렀다.

결국 네 사람은 서로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다음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다만 능소소만이 편안한 자세로 서 있을 뿐이었다.

상초진과 예설영의 입매가 올라갔다.

‘정말이지 상대가 안 되잖아.’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상초진은 오른발을 뒤로 빼며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태세를 갖췄고, 예설영은 천천히 양손에 비수를 쥐었다.

훈련용 비수인 만큼 끝이 뭉툭하여 맞아도 치명상을 입진 않는다.

다만 요혈에 직격하면 한동안 일어서거나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상초진이 예설영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짓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전속결로 처리하자는 뜻.

찰나.

타앗!

상초진이 먼저 조문탁을 향해 쇄도했다.

그가 쥔 도가 허공을 가르며 조문탁의 가슴 부위로 짓쳐들었다.

조문탁이 얼른 단검을 뽑아 들며 상초진의 도 측면을 때렸다.

따앙!

“……!”

상초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번에도?’

조문탁은 확실히 빠르다.

그렇다면 지난 번 조문탁의 움직임은 우연이 아니라는 뜻.

‘조금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군. 하지만….’

이제 예설영이 비수를 날리면 그걸로 끝이다.

상초진은 미끄러지듯 옆으로 스르륵 빠져나갔다.

찰나.

쒜에에에엑!

예설영의 비수가 허공을 가르며 조문탁에게 날아갔다.

먼저 날아간 한 자루는 조문탁의 이마에 직격할 것이고, 두 번째는 가슴을 때릴 것이다.

조문탁의 민첩성으로 볼 때, 이마에 날아드는 것은 막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가슴으로 향하는 비수는 막아내지 못한다.

애초에 두 사람은 조문탁을 먼저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수식도 제대로 취하지 않은 능소소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생도를 왜 비무대에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어차피 그 정도가 특목반의 교관 수준이라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쒸에에엑!

따앙!

역시나 첫 번째로 날아간 예설영의 비수가 조문탁의 단검에 튕겨 나갔다.

하지만 두 번째로 날아든 비수가 진짜다!

‘헛!’

조문탁 역시 뒤이어 날아드는 두 번째 비수를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는 사이 능소소가 움직였다.

‘실라페!’

그녀의 부름에 푸른 형상이 눈앞에 맺히더니 이내 아름다운 매 한 마리가 소환되었다.

- 실라페가 그대의 부름에 답했다.

‘얼른 저 비수를 막아 줘!’

실라페가 시선을 돌려 조문탁을 향해 날아가는 비수를 보았다.

실제로 찰나에 지나지 않는 순간이지만, 능소소와 실라페의 대화는 시간을 초월한 정신의 대화였다.

가령, 죽음이라는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에서 일생의 주마등이 스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때문에 이 순간 능소소는 비수가 날아드는 모든 과정들이 몹시 느리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실라페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 실라페는 그러고 싶지 않구나.

‘뭐…?’

능소소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라페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실라페는 저 비수를 막고 싶지 않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나와 맹약을 했잖아!’

- 그 맹약은 소환에 응한다는 것. 그대의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 안 돼! 저 비수를 막아야만 이길 수 있단 말이야!’

- 저 비수는 그대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다. 실라페가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더니 실라페는 아예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화해 버렸다.

정말이지 턱을 괴고 차라도 마실 것 같은 느긋함이었다.

문득 사비강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수준의 마력으로는 소환된 실라페가 네 요구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명심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로 내공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나보다.

능소소가 입술을 꾹 씹었다.

‘실라페! 부탁이야! 어서 저 비수를 막아 달란 말이야!’

- 실라페는 그러지 않겠다.

애간장이 탔다.

그러는 사이.

쒜에에엑!

퍽!

“커억!”

결국 비수가 조문탁의 심장을 직격하고 말았다.

허공을 날아간 조문탁이 비무대 가장자리까지 밀려나며 쓰러졌다.

“아, 안 돼!”

능소소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

애초에 알려지지도 않은 저 생도들이 우수 생도인 상초진과 예설영을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휘유.”

상초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남은 건 그쪽뿐이군.”

상초진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능소소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능소소가 반사적으로 물러나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주먹을 꼭 말아 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돼! 하지만 이제 무슨 수로….’

그런데.

“기다려…! 아직 안 끝났어.”

놀랍게도 조문탁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예설영 역시 눈을 찢을 듯 부릅떴다.

‘어떻게?’

자신이 날린 비수를 맞았으니, 틀림없이 기절했으리라 여겼다.

기절하지 않더라도 요혈을 맞았으니 당분간 움직일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빗나갔어!’

조문탁은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부위를 붙잡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비수를 막아낼 수 없다고 여긴 조문탁이 몸을 비튼 것이다.

어지간히 민첩한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조문탁이 목을 우두둑 꺾더니 말했다.

“한 방 맞으니 좀 긴장이 풀렸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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