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5화 (65/670)

# 65

귀환 마교관

65화

“하하하! 드디어 내일이면 춘향제군요. 이거 기대가 큽니다!”

등부형이 술잔을 들며 큰소리로 떠들었다.

주변에 앉은 교관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늦은 밤.

용담실 안마당은 큰 행사를 앞둔 전야제로 떠들썩했다.

학관의 모든 교관과 부교관들이 참석하여 술과 음식을 즐겼다.

물론, 그곳에는 사비강과 당이협도 참석해 있었다.

이따금씩 두 사람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두 사람 곁으로 매설란이 걸어와 앉았다.

“휴우, 정말. 좀 도와주면 덧나나요?”

지금까지 그녀는 수많은 교관들에게 둘러싸여 인기를 한 몸에 받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것이다.

‘당신이 눈요기가 되어 주니, 내가 운신하기 자유롭지 않소?’

라는 말을 꺼냈다간 어떤 원망을 들을지 알 수 없기에, 사비강은 그저 히죽 웃을 뿐이었다.

매설란이 입술을 비죽 내밀고는 물었다.

“무슨 얘기 중이었나요?”

“마나에 관해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당이협이 나직이 대답했다.

매설란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지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 그랬군요. 사실 저도 그 얘기 좀 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시선이 사비강에게 향했다.

사비강은 생도들을 훈련시키는 동안 매설란과 당이협에게도 마나 치환법을 익히도록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라면 자신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해낼 것이라 믿었기에.

다만 매설란은 마나 치환을 성공한 반면, 당이협은 아직이었다.

토납법을 통해 몸을 만들어 두지 않은 탓이다.

매설란은 그간 연무기행을 함께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사비강의 토납법을 함께 해왔기에 가능했던 것.

매설란이 사비강을 빤히 보며 물었다.

“마나를 느끼긴 했지만, 그 기운을 어떻게 사용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도대체 이걸 뭐에 쓴다는 거예요?”

“내가 알려 준 구결들은 모두 암기해 두었소?”

“물론이죠. 하지만 의미도 모르겠고, 암기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어요.”

매설란의 말에 당이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비강을 보았다.

그 역시 매설란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우선은 확실히 암기만 해두시오. 어느 순간 저절로 ‘마나’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그게 최선이다.

지금 와서 마나를 이용해서 마법을 캐스팅하는 방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사실 사비강이 알려 주었다는 그 구결이라는 것은 마법을 캐스팅할 때 필요한 주문이었다.

본래 마법을 캐스팅할 때는 굉장히 긴 주문을 읊어야 한다.

태고의 전지전능한 존재여, 뜨고 지는 태양 아래 창궐한 어둠이 어쩌고저쩌고….

이 답답한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 마계의 중하급 전사들은 매일 아침마다 자주 사용하는 주문들을 메모라이즈 해둔다.

시동어만 외치면 곧바로 마법이 발출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급 전사들부터는 메모라이즈를 하지 않아도 긴 주문을 생략하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마계니까 가능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하급 전사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진다.

‘같은 마계의 존재들이면서, 왜 중하급 전사들은 메모라이즈 과정이 필요한가? 이걸 중원에서 익히던 방식으로 요결을 만들어 극복할 수는 없을까?’

결국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수십 년에 걸친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연구를 시작한 지 무려 31년 만에 사비강은 기적적으로 그 답을 얻었다.

그리고 연구 자료들을 집대성한 다음 분석을 통해 독문무공을 창안하게 된다.

그때 탄생한 것이 바로.

마나기환심공(魔羅記幻心功)!

즉 캐스팅 주문을 평상시 몸이 기억하게 만든 다음, 필요할 때 언제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심공이다.

마치 운기를 통해 검강을 사용할 때는 주문이 필요 없듯이.

마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는 엄청난 업적이었다.

마계의 중하급 전사들도 마나기환심공을 익히면서 상급 전사들처럼 메모라이즈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다만 머리가 나쁜 자에게는 좀 어려운 방법일 수 있었다.

마나기환심공을 익히더라도, 온갖 종류의 긴 주문들을 모두 암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침마다 귀찮은 일을 생략한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이 획기적인 독문심공을 창안하면서 사비강은 마왕으로부터 마계대공의 칭호를 받게 된다.

‘물론,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 크크크.’

회상에 잠깐 잠겨 있던 사비강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매설란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생도들에게도 마나기환심공을 알려 주었나요?”

“물론이오. 뭐,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내공을 마나로 치환할 줄 알게 됐지만, 서클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깊은 깨달음이나 어떤 촉매가 될 만한 계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서클을 개방하고 나면 2서클 까지는 최소 일 갑자 이상의 내력이 필요하다.

그 후에는 서클이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대략 일 갑자의 내공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해,

3서클은 이 갑자.

4서클은 삼 갑자.

5서클은 사 갑자.

이런 식이다.

다만, 8서클부터는 필요한 내공이 두 배씩 증가하게 된다.

즉, 8서클은 팔 갑자의 내공이 필요하다.

9서클은 십 갑자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최소치다.

또한 내력이 충분하다고 해서 반드시 서클이 오르는 것도 아니며, 서클이 오를수록 깨달음이나 촉매 효과를 얻기는 어려워진다.

“그 아이들… 이번 춘향제에서 잘 해낼까요?”

매설란의 질문에 사비강이 웃었다.

“후후. 두고 보시오. 내가 가르친 녀석들은 최고가 될 거요.”

대단한 자신감.

결국 매설란도 피식 웃고는 긴장을 풀며 말을 돌렸다.

“그런데 뜻밖이네요. 사 교관님은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소.”

사비강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중해졌기에 매설란과 당이협은 잠깐 굳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당이협이 물었다.

“이유가 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번 춘향제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어.”

“뭐라고요?”

매설란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가 얼른 주변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뜬금없이. 농이라도 그런….”

“농이 아냐.”

사비강이 매설란을 빤히 보며 대꾸했다.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지만, 그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기에 그런 걸 따질 정신이 없었다.

“농이 아니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근거 따윈 없어. 하지만 이번 행사에 사파 녀석들이 끼어든다는 건 확실해.”

“사파라니…!”

“아까 전야제에 왜 내가 참석했는지 물었나?”

사비강의 질문에 당이협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강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고는 두 사람에게 전음을 흘렸다.

[두 사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이곳에… 사파와 내통하는 배신자가 있다.]

“……!”

당이협과 매설란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나 소리칠 뻔했다.

‘배신자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죠? 배신자라뇨!]

매설란이 쏘아붙이듯 물었다.

[말 그대로 사파를 물밑에서 도와주는 검은 손이 있다는 말이지.]

[그게 누군데요?]

[나도 몰라. 아직은. 애석하게도 그때 밝혀내지 못했거든.]

매설란이 미간을 잔뜩 좁혔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때 밝혀내지 못했다니?

과거에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사비강으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당이협만이 그 뜻을 알아들었다.

[하면 의심 가는 자가 따로 있습니까?]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두 사람이란 매설란과 당이협을 가리킨 것이다.

과거 용천관에는 이 두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아, 또 한 명 있다.

[학장도 제외다.]

주유천.

그는 이번 춘향제에서 죽는다.

그러니 내통자라고 볼 수 없다.

[믿을 수가 없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이건 자칫하면… 정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아. 다만 사실을 말할 뿐이야. 그러니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두는 게 좋을지도.]

[말도 안 돼….]

매설란은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죠?]

[음? 내가 그랬소?]

[… 됐어요.]

매설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마침 천세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오오, 사비강 교관이 여기 계셨구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사비강이 천세명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세명.

‘춘향제가 끝나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자.’

그렇다.

천세명은 춘향제가 끝남과 동시에 자취를 감춘다.

완벽한 실종.

그가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사파와 손을 잡고 어디론가 잠적했을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천세명도 유력한 의심 인물 중 한 명이다.

천세명이 히죽 웃었다.

“하하. 요즘 고생이 많으시오. 그 낙오자 녀석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얼마나 힘드시오?”

말투에 섞인 비웃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앞날이 창창한 생도들에게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다니. 교관으로서 입에 담을 말이라고 생각하시오? 아무래도 천 부장께서는 교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지 않나 싶소.”

송곳 같은 말이 날아들자 천세명은 당황해서 주변을 의식했다.

“아, 하하. 이거 참. 이렇게까지 생도들을 아껴 주다니. 감격했소. 하지만 그 녀석들을 굳이 감쌀 필요는 없소. 뭐, 연우경이나 목단화 같은 인재도 있다지만, 대부분이 구제불능에다 망나니 같은 녀석들이라는 것을 여기 교관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오. 안 그렇소? 여러분!”

아무리 그래도 패검연가와 섬검목가의 눈치는 보인 모양.

천세명의 말에 몇몇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심하군.”

사비강이 나직이 말을 뱉고는 술잔을 들었다.

천세명도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었는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뭐요?”

“그딴 쓰레기 같은 생각으로 어찌 생도들을 계도할 수 있는지 의문이오. 오히려 생도들에게 계도를 받아야 함이 옳지 않겠소?”

사비강의 눈빛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천세명의 입매가 연신 실룩였다.

‘이런 개망나니 같은 새끼가 감히…!’

그가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떠는데.

“말이 지나치군.”

한쪽에서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던 사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를 돌아본 교관들이 나직이 침음을 흘렸다.

바로 상필지였다.

일년생 교관들 중에는 유일하게 초절정을 눈앞에 둔 고수.

“그래도 선배인데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나?”

은근한 압박이 느껴지는 중저음의 목소리.

하지만 사비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배가 선배다워야지. 선배답지도, 교관답지도 않는 자에게 갖출 예의는 이게 최선이오.”

“후후. 과연 재미있는 자군.”

상필지가 저벅저벅 다가오자, 당이협이 스르르 일어나 그 앞을 막아섰다.

상필지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진짜로 그 소문의 당 대협이로군. 만나서 반갑소.”

당이협은 대답 대신 고개만 까딱였다.

상필지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상필지 교관은 이번 춘향제에서 사 교관과 비무를 하게 될 거요.”

천세명이 침착함을 되찾고는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비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흥! 끝까지 허세구나! 언제까지 그 허세가 유지되는지 두고 보마!’

천세명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짐짓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다들 그리 경직될 필요 없소이다. 소제가 많이 부족하여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를 들었을 뿐이오. 그러니 모두 신경 쓰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소 긴장이 누그러진 표정으로 저마다 술잔을 기울여갔다.

천세명이 사비강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토록 생도들을 아낀다니 이번 춘향제에서 기대가 크겠소. 참, 비무표를 짜다 보니 우리 비룡반과 특목반이 서로 맞붙게 되었소. 이것도 인연이니 서로 잘해 봅시다. 아, 우리 생도들에게 살살 대하라고 일러 두었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오.”

“당연히 살살 대해야지요.”

‘이제야 수준 차이를 인정하는구나.’

천세명이 내심 고소하게 여기는데, 뒤에 이어진 사비강의 말이 전혀 뜻밖이었다.

“명검일수록 살살 다뤄야 상처를 입지 않을 테니 말이오.”

“허허. 그 말은 특목반 생도들이 명검이다?”

“뭐, 적어도 비룡반의 좀 모자란 녀석들 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소.”

“뭐라….”

“아무튼 비무 상대라니, 기대하겠소이다. 우리 생도들에게 적당히 대하라고 일러 두겠소.”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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