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0화 (60/670)

# 60

귀환 마교관

60화

“당이협이라니. 정말 그 ‘당이협’이라니.”

등부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둥근 탁자를 두고 마주 앉은 언벽도 혀를 내둘렀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 당이협을 데려올 줄이야.”

“지금 생도들 사이에서는 난리도 아닙니다. 당이협을 직접 보겠다며 걸핏하면 특목반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하긴. 신기할 만도 하지요. 당이협은 이 시대의 가장 큰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자였으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당이협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왔답니까?”

등부형이 시선을 돌려 창가에 선 천세명을 보았다.

천세명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가만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주군이라니… 미친!’

괜히 화가 치밀었다.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사비강을 바라보는 당이협의 눈빛이 잊혀 지지 않았다.

틀림없는 존경심이었다.

말이 되는가?

강호 백대 고수의 반열에 드는 자가, 한낱 무명 교관을 향해 ‘주군’이라고 불렀다.

정말이지 미치지 않고서야.

마침 언벽이 그 일을 두고 입에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당이협이 사 교관에게 ‘주군’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생도들 사이에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허어 참. 호칭이야 남이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이가 없군요. 진짜 당이협이 사천당가의 소가주였던 그가 맞을까요? 혹시 가짜를….”

“그건 틀림없소.”

등부형의 의문에 대꾸한 사람은 천세명이었다.

그는 오래전에 당이협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었다.

꽤나 오래됐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에 곧바로 당이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언벽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도 동요할 건 없다고 봅니다. 사실 당이협이 예전의 그 명성만큼 대단할지는 두고 볼 일 아니겠습니까?”

“하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라질 리가 없지요. 필시 당이협이 사라진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의 당이협은 예전의 명성만큼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사 교관 같은 자를 ‘주군’이라고 부르며 따르겠지요.”

“그러고 보니, 말이 되는군요.”

마침내 천세명이 몸을 돌려 탁자로 돌아왔다.

“두 분의 말씀이 모두 맞소. 이런 일로 동요할 건 없소. 우린 행사 준비만 잘 해두면 될 거요.”

“옳은 말씀입니다. 이번 춘향제를 통해 특목반 생도들이 다른 반 생도들에게 처참하게 깨진다면 다들 인정하게 될 겁니다.”

등부형의 대답을 언벽이 받았다.

“당연하지요. 괜히 문제아들만 모아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요. 특목반으로 밀려나기 싫어서라도 생도들은 더 정진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사비강의 거품도 꺼져 버릴 테지.”

마지막으로 천세명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

용천관 후원의 정자.

절벽 밖으로 아슬아슬하게 내밀어진 그 정자에서는 은기륭과 사비강이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당이협을 데려올 줄이야. 무척 놀랐다네. 보아하니 애초에 그를 점찍어 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를 어떻게 찾아냈나?”

“자세히 말씀드리긴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하긴, 그 스스로 떠난 것이었으니 이해하겠네.”

은기륭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가문을 버리고 떠난 자의 사연을 자칫 강요로 밝힐 수도 있는 문제라 여긴 것이다.

또로로롱.

다관에서 흘러나온 찻물이 사비강의 찻잔을 채웠다.

“드시게.”

은은한 차향이 정자 안을 가득 채우고 절벽 밖까지 흩어져 갔다.

“향이 좋군요. 동정산의 벽라춘(碧螺春)입니까?”

“호오, 대단하군. 차향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견식이 풍부해야 할 터인데.”

“후후후. 이래봬도 겪을 만큼은 겪었지요.”

어찌 보면 굉장히 버릇없는 말.

분명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샐 만큼 오래 산 사람을 앞두고 꺼낼 말은 아니었다.

한데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딘지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참으로 묘하다.

은기륭은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리고는 차를 음미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 왔다.

“그래, 연무기행은 어떠셨는가?”

“여러모로 얻은 것이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자네의 명성은 여기서도 간간히 들었다네. 특히 창천문주는 직접 본관을 찾아와 사례를 했다네.”

“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사비강이 싱긋 웃고는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멈칫하고는 은기륭을 보았다.

은기륭의 입가에는 여전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역시 그런 거였나?’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차를 마시고 내려놓자, 은기륭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당 대협이 사 교관을 특별히 여기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 ‘주군’이라 불렀다지?”

“예, 그렇게 됐습니다.”

“또 당 대협도 특목반 부담임을 맡기로 했다고?”

“다행히 주 학장님께서 인가해 주셨지요.”

“하긴 정교관이더라도 부담임을 맡지 말란 법은 없으니. 사 교관 덕분에 용천관의 명성이 더욱 높아지겠네.”

“과찬이십니다.”

사비강이 형식적인 대답을 하며 히죽 웃었다.

대략 일다경이 흐르는 동안 사비강은 차를 모두 비웠다.

그러는 사이 정자 입구에 시립해 있던 여영은 이맛살을 슬쩍 찌푸렸다.

‘도대체 관주님은 무슨 생각이신 거지?’

지금 당이협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않나?

당장 천세명을 비롯한 여러 교관들이 사비강을 망신 줄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려 주고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여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마침내 은기륭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춘향제를 준비한다는 소식은 아마도 들었을 것이네.”

“예, 들었습니다. 예년보다 일찍 시작하게 됐더군요.”

“그렇다네. 대신 연무기행이 빠졌지.”

사비강은 다시 차를 마시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뜻밖이었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춘향제 때까지 앞으로 한 달의 기간이 더 남아 있어야 했다.

한데 미래가 바뀐 것이다.

아마 자신이 회귀한 후로 일어난 일들 때문에 몇 가지 계획들이 틀어진 것이리라.

“자네도 들은 바가 있겠지만, 최근 사파 무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네.”

“알고 있습니다.”

“해서 연무기행을 생략하기로 했지.”

“그렇군요.”

사비강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사실 연무기행을 생략한 건 잘 된 일이다.

사비강이 겪은 과거의 기억에 의하면 이번 연무기행에서 많은 생도들이 죽거나 다친다.

‘사망자가 여섯, 부상자가 스물셋.’

그런데 미래가 바뀌면서 연무기행 일정이 사라졌으니, 그만한 피해는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바로 이번 춘향제에서 시작되지.’

사망자 스물둘. 부상자가 예순하나.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는 교관도 포함되어 있다.

춘향제는 개방형 축제로 진행된다.

때문에 강호의 무인들이 찾아와 자유롭게 관람하는가 하면, 인근 주민들까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와 축제를 즐기곤 한다.

이런 분위기는 잘 되면 흥겨운 잔치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면 초상집 분위기가 된다.

누군가 용천관을 노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도 없으리라.

그리고 실제로 용천관은 노려졌다.

‘변수는 춘향제가 한 달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들에게도 이 소식이 들어갔을 터. 자, 이제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들의 예상 밖으로 전개되었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놈들이 놓칠 리가 없다.

‘오히려 잘 됐어.’

연무기행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자신이 막을 방법이 없다.

수많은 반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춘향제라면 다르다.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어쩌면 역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사비강은 찻잔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많은 압박이 있을 걸세.”

천세명 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상관없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

물론 속생각을 꺼내진 않았다.

은기륭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럴 줄 알았네. 역시나 괜한 걱정이었어.”

“그래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너무 기대하진 마십시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를 사람이로군.”

“그게 제 매력이지요.”

“허허허허. 부정하진 않겠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만 일어나려는가?”

“대화는 마무리 되지 않았습니까?”

사비강의 물음에 은기륭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춘향제에서 마음껏 활개를 쳐보시게.”

“물론입니다.”

사비강이 씩 웃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자에서 내려온 사비강이 여영과 눈을 마주치자 씨익 웃었다.

여영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사비강이 멀어지고 나자, 그녀가 얼른 관주에게 물었다.

“이렇게 그냥 보내시는 겁니까?”

“그럼, 뭘 더 해야 하나?”

“애초에 그를 부른 것은 주의를 주고 조언을 해주려는 것 아니었습니까?”

“물론, 그랬지.”

“한데 관주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어요.”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제가 그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일세.”

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그는 내 조언이 필요한 자가 아닐세.”

“설마… 그만큼 그자가 대단하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은기륭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영이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저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떤 게 전부다.

한데 뭘 보고?

그런 생각은 자연히 입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어떤 점을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리셨는지요?”

“그자가 차를 마실 줄 알기 때문이네.”

“네에?”

여영은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고작 다도의 예법을 안다는 이유로?’

도대체 그것과 무공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생각이 다시 입 밖으로 나왔다.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영아, 이리 와서 앉아라.”

잠시 주춤거리던 여영이 정자로 올라가 마주 앉았다.

또로로롱.

맑은 소리가 울리며 다관에서 흘러나온 물이 찻잔을 채웠다.

“들어라.”

“…….”

“사양 말고 들어라. 내 뜻을 알게 될 것이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건지….

이제 와서 자신에게도 다도를 가르치려는 건가?

하지만 여영은 속생각을 갈무리하며 찻잔을 집었다.

관주님이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그래도 어려서부터 존경해마지 않은 관주님이 아닌가?

그렇게 찻잔을 집었을 때였다.

‘헉!’

여영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끼쳤다.

‘무, 무서워…!’

어른이 된 후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숨 막힐 듯한 살기!

그 살기를 쏟아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은기륭이었다.

주위가 캄캄해지고 은기륭의 살벌한 눈빛만 보였다.

‘으윽!’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온몸으로 퍼부어지는 살기에 맞서 찻잔을 들었다.

그 순간,

구구구구궁!

‘크으윽!’

어마어마한 공력이 위에서부터 짓눌러 오기 시작했다.

찻잔은 상에 붙은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찻잔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설마… 사비강 교관은 이런 압박감 속에서 차를 마셨단 말인가? 그토록 태연히?’

믿을 수가 없다.

사비강은 손끝 하나 떨지 않았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나?

괜히 오기가 치밀었다.

여영은 체내의 모든 공력을 끌어올려 은기륭이 내뿜는 공력에 맞섰다.

드드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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