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4화 (44/670)

# 44

귀환 마교관

44화

꽈자아아아아앙!

쿠르르르르!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자양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밖으로 나와 토이산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저게 어떻게 된 거야?”

“화, 화산이 터진 건가?”

누군가 산 위로 치솟은 붉은 기운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곁에 있던 사람이 얼른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멍청한 소리! 토이산은 화산이 아닐세!”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좌이봉이… 좌이봉이….”

사람들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눈으로 보면서도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좌이봉 상단부가 완전히 날아갔다.

마치 토끼의 귀가 찢어진 것처럼 잘려 나갔다.

붉은 기운 주위로는 뿌연 먼지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한편, 객잔에 머물고 있던 생도들 역시 좌이봉 봉우리가 터져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기 좀 봐!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설마 안강에서 있었던 그 폭발이 여기에서도 일어나는 건가?”

“말도 안 돼. 저긴 산꼭대기인 걸? 게다가 폭발력이 훨씬 강해.”

생도들이 마구 추측을 쏟아내며 술렁거렸다.

염자량은 굳은 표정으로 그곳을 보았다.

‘흑도쌍괴가 저지른 짓은 아닐 거야. 저 정도로 강하진 않았으니까.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교관님은 왜 안 오시는 거야?’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흘러가면 목단화 일행이 진짜 위험해질 수도 있다.

‘교관님! 빨리 좀 돌아오시라고요!’

주먹을 불끈 쥐던 염자량은 잠깐 멈칫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비강에게 의지하게 된 것인지.

하긴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급박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

그건 유일하게 사비강 밖에 없다는 믿음이 어느 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단리정과 능소소도 같았다.

**

사비강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존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바닥에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는 자신을 보았다.

제삼의 시선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당황할 만도 하건만, 사비강은 시종 담담하게 행동했다.

이 같은 과정을 이미 한 번 겪은 바 있었기에.

일종의 유체이탈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이 거대한 존재.

녀석은 바로 레드 드래곤이다.

사비강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마나가 생전의 드래곤 모습으로 화한 것.

고고한 자태로 허공에 떠 있던 레드드래곤이 눈을 가늘게 떴다.

- 누가 나를 깨웠나 했더니, 미천한 인간이군.

고막을 찢어발길 듯 웅혼한 목소리!

하지만 이 목소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비강의 뇌리에서만 울리는 자극이다.

아마 다른 누군가 본다면, 대폭발 현장에 붉은 드래곤의 형상이 유유히 떠 있는 것으로만 보이리라.

유체이탈한 사비강이 레드 드래곤의 형상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래. 내가 기다렸다.”

탁한 그의 목소리에 레드 드래곤은 잠깐 흥미롭다는 반응이었다.

- 나를 기다렸다?

“그래. 너의 힘이 필요해.”

- 누구나 내 힘을 필요로 한다. 하나 그 자격을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 특히 그대처럼 하찮은 종족이라면 더욱.

후우우우우웅!

거대한 존재가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휘저었다.

순간, 사비강의 주위로 광풍이 휘몰아치며 돌 부스러기가 마구 날아다녔다.

그럼에도 사비강은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네놈들 방식은 한결 같군.”

- 무어라?

“서로 힘 뺄 것 없어. 어차피 넌 내 힘이 될 테니까.

- 건방지구나. 그러한 객기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목소리의 울림에서 은근한 분노가 느껴졌다.

곧이어,

우우우우우우웅!

좌이봉 전체가 진동을 일으키더니, 드래곤 주위로 점점 붉은 기운이 짙어져 갔다.

다음 순간.

화르르륵. 화르르륵. 화르륵!

레드 드래곤 어깨 위에서 수십 개의 화염구가 형성되더니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초고온 고압 고열의 화염구를 생성해서 날리는 프로미넌스(Prominunce) 마법이었다.

“칫, 쓸데없는 짓을!”

사비강이 얼른 양손을 교차하며 방어했다.

쑤아아앙! 쑤아아앙!

꽈콰앙! 콰아아앙!

고고히 떠 있는 드래곤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내, 좌이봉의 하늘 위에 적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꽈앙!

요란한 소리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곧 붉은 구름 아래로 불길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화르륵! 화륵! 콰르르릉!

천지가 진동하며 뜨거운 불바람이 사방팔방에서 불어 닥쳤다.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였다.

- 미천한 인간이여, 오늘의 재앙은 그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멸하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지표가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콰아앙!

순간 용암과 돌이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폭발력으로 인해 사비강의 시체가 튀어 올라 한쪽 구석으로 미끄러져 갔다.

드래곤 하트를 삼킨 사비강의 육신은 현재 드래곤의 형상을 만들어낸 근원이나 마찬가지.

때문에 레드 드래곤은 사비강의 유체만을 집중 공격했다.

쿠르르르.

마침내 모든 공격이 끝나고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구름만 일어났다.

허공에 떠 있는 레드 드래곤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 인간이란 하찮은 종족이면서도 그 욕심은 끝이 없지. 그 욕망이 그대를 파멸시켰노라. 이제 나는 영면에….

말을 이어가던 레드 드래곤이 흠칫 거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 이건…!

기다.

사비강의 유체에서 뿜어지는 희미한 기가 느껴진다.

이내 먼지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나자, 허공에 꼿꼿하게 서 있는 사비강의 유체가 보였다.

“후우, 다 끝났나? 역시 화끈하군.”

사비강이 몸을 털며 히죽 웃어 보였다.

레드 드래곤의 표정에 처음으로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 하찮은 인간 주제에 어째서….

“말했잖아. 네 힘은 내 것이 될 거라고.”

- 이건 불가능….

“네가 가진 그 힘. 이미 내가 모두 먹어 치운 힘이야. 즉 너와 나의 힘은 이미 동등하다는 얘기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사비강이 드래곤 하트를 삼켰으니까.

하지만 적응의 문제가 남아 있다.

한낱 벌레 같은 인간이 드래곤의 마나를 온전히 이용한다?

마치 익숙한 제 힘을 사용하듯?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미…!

레드 드래곤의 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 그대는 드래곤과의 조우가 처음이 아니군.

“맞았어. 이번이 두 번째다.”

- 과연. 재미있구나. 하지만 그대의 객기도 여기까지다.

다음 순간, 레드 드래곤이 눈을 부릅떴다.

사비강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뭘 하는 거냐!”

- 후후. 마나 드레인(Mana drain)이다. 그대가 흡수한 내 마나를 모두 거두겠…!

이번에는 레드 드래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 없…다!

분명 눈앞의 인간은 자신을 흡수한 자였다.

한데 상대의 몸에서 단 한 줌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마나를 이용해서 방어하지 않았던가?

한데 그 많던 마나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마나가 없으니 흡수할 방법도 없다.

그때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놀랐나?”

- 그대는 도대체….

“후후후. 역시 마나 드레인을 사용할 줄 알았어. 전에도 그랬으니까.”

- 뭣이?

“마나는 전부 내공으로 치환해 두었다. 그러니 내게서 마나를 빼앗아 갈 수는 없을 거다. 후후.”

-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마나를 없애 버린 그대가 나를 막을 수는 없을 터.

이번에는 붉은 형상이 점점 응축되며 변모해 갔다.

마침내 날카로운 한 자루의 검으로 화한 드래곤이 사비강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쒜에에에엑!

찰나, 사비강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베르타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쉬이이이익!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베르타스가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이기어검이다.

“하앗!”

기합성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붉은 기운의 칼날이 베르타스와 부딪쳤다.

쩌엉!

공간이 뒤틀려 버릴 만큼 커다란 소음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

부서져 나간 좌이봉이 다시 흔들리며 균열을 일으켰다.

솨아아아악!

베르타스와 부딪쳤던 붉은 기운이 돌연 흩뿌려지며 다시 레드 드래곤의 형상을 갖췄다.

- 지금 그건 무엇인가?

레드 드래곤은 이제 더 이상 놀라기도 지친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사비강이 사용한 방법은 마나를 이용한 염력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기운이었다.

그는 생전 저런 식으로 마나를 운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 생경한 방식이 그저 놀라움을 떠나 황당할 수밖에.

사비강 앞에는 여전히 베르타스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 그대는 마력으로 그 검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군.

“후후후. 그렇다. 내공으로 움직이는 거지. 마력을 내공으로 치환하는 건 이제 이골이 나서 말이야.”

- 내공이라는 건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긴 어려워. 단, 한 가지만은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다.”

- 그게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이런 식으로 너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자, 그건 오로지 나뿐이라는 거다.”

사비강이 히죽 웃어 보였다.

레드 드래곤은 고고히 날개를 흐느적거리며 사비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는 사비강.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 때.

- 그대는 재미있구나. 좋다. 더 이상의 시험은 무의미하겠군. 그대에게 내 힘을 허락한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이미 그럴 줄 알았어.”

- 하나 내 힘을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될 지는 두고 볼 일. 자칫하면 그대는 목숨을 잃으리라.

“그건 내 몫이고.”

- 좋다.

찰나.

쏴아아아아아아앙!

붉은 기운이 돌연 소용돌이쳤다.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비강의 가슴으로 빠르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욱!

순식간이었다.

허공에 팽창해 있던 모든 기운이 가슴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던 사비강의 유체도 어느 순간 모래에 새겨진 낙서처럼 스스슥 지워졌다.

격동의 흔적만이 남은 좌이봉 상층부.

그곳에 바람 한 줄기가 서늘하게 불었다.

잠시 후.

사비강이 눈을 떴다.

화르륵!

그의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불꽃처럼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끝났군.”

가볍게 숨을 내쉰 사비강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있었다.

얼른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드래곤 하트의 모든 마력을 흡수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제는 소화를 할 차례다.

유체로서 마나를 이용하는 것과 신체적 한계와 제약을 지니고 마나를 이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체화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대로 체화시키지 못하면, 결국 그 마력에 압사당하고 말리라.

레드 드래곤의 말대로 다 된 밥 차려 놓고 제사 지내는 수가 있다.

사비강은 마계에서 창안한 심공 구결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심장에 응집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그의 전신 혈도를 따라 줄기줄기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의 몸에 잠재된 마나가 너른 강줄기였다면, 이제는 대해(大海)를 다스려야 한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

결계 안에서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사비강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 보름 동안에는 운공 도중에 살갗이 허물처럼 벗겨졌고, 하얗게 새었던 머리는 모두 뽑혀 대머리가 되었으며, 치아마저 모두 빠져 잇몸밖에 남지 않았다.

그 후 보름 동안에는 피부가 눈부시도록 빛나기 시작했고, 건치가 새로 돋아났으며,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원래의 길이만큼 자라났다.

그야말로 완전한 탈태환골.

이윽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비강이 눈을 떴다.

화르르륵.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어나다가 곧 사라졌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맑아진 눈동자.

사비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바닥을 차고 뛰면 하늘 높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다.

‘예상대로 잘 소화됐군.’

입매가 치켜 올라갔다.

‘대략 한 달 정도 흘렀으려나?’

자신이 예상한 시간이다.

마계에서도 딱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그래서 자양마을에서 이틀을 머문다고 했다.

저만치 바닥에 떨어진 베르타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쑤우우웅!

베르타스가 순식간에 날아와 손에 착 감겼다.

여느 때처럼 몸을 떨며 반항하는 일도 없어졌다.

아주 얌전해졌다.

완전히 자신의 검이 된 것이다.

“후후. 이러니까 서로 좋잖아.”

사비강의 말에 베르타스가 대답이라도 하듯 우웅 떨었다.

무심코 발길을 옮기려던 그가 멈칫하고는 돌아보았다.

“아, 깜빡할 뻔했군.”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너른 터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석탁.

사비강이 손을 스윽 들어올렸다.

다음 순간.

슈우우우웅! 꽈장!

그의 손에서 튀어나간 불덩어리가 석탁을 직격했다.

물론 석탁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면서 그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사비강이 깨진 석탁 안쪽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후후. 이것도 요긴하게 써 주마. 마왕.”

그곳에 들어 있는 것은 마공석과 타미콘의 수액.

마공석은 상급이다.

기존에 취했던 특급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지만 그래도 꽤나 귀한 것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손가락만한 유리병에 든 것은 타미콘의 수액.

생명체에게 한 방울만 닿아도 모든 살이 썩어 버리는 맹독이다.

“잘 받아가지. 아참, 그냥 가긴 아쉬우니 선물이라도 남겨 주지. 흐흐. 먼 미래에 잘 받아보라고. 그때가지 썩지 않도록 결계도 제대로 쳐줄 테니.”

사비강의 표정에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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