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1화 (41/670)

# 41

귀환 마교관

41화

‘어, 어떡하지?’

염자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단 일격으로 검을 놓치고 말았다.

흑도쌍괴만 해도 당해내기 힘든데, 그 수하들이 서른 명에 달한다.

목단화 일행도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예상과 달리 상대의 수가 너무 많고, 실력 또한 만만치 않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

목단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실 납치극을 꾸미다가 흑도쌍괴를 실제로 마주친다고 해도 싸워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데 착각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목단화가 은밀히 민유향과 백미령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의 뜻을 두 사람도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찰나.

“달아나!”

그녀가 버럭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민유향과 백미령이 바닥을 차고 달려 나갔다.

염자량 역시 얼른 몸을 빼내며 줄행랑을 쳤다.

그는 달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품에서 신호탄을 꺼내 던질 겨를조차 없었다.

목단화 일행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누군가를 도울 형편도 아니었다.

게다가 흑도쌍괴에게 잡혔을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적어도 여자 생도들은 납치가 될지언정 죽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자신은….

‘제기랄!’

좌괴의 말이 떠올랐다.

천천히 죽여주겠다며 중얼거리던 녀석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교관님! 어디 계세요! 도와주세요!’

그 어느 때보다도 사비강이 보고 싶었다.

한편, 좌괴가 낄낄거리며 우괴를 보았다.

“우괴야. 너는 어디로 갈 거냐?”

“아까 말했잖아. 그 암캐가 난 제일 마음에 들어. 좌괴야, 너는?”

“좋아, 대신 나는 나머지 둘을 갖지. 불만 없지?”

“그래, 흐흐흐. 그나저나 갑자기 이렇게 재미있는 숨바꼭질을 하게 될 줄이야.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그래도 너무 시간 끌지 말고 잡아와.”

“그래야지. 시간이 남으면 그 수캐도 죽여 버리고 말이야.”

“클클클. 그런데 우리가 여길 왜 왔더라?”

“글쎄, 나도 기억이 안 나네. 뭐, 아무렴 어때? 모처럼 맘에 쏙 드는 암캐들을 찾았는데.”

“그건 그래. 클클클.”

흑도쌍괴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츄아아아!

가슴이 대각선으로 갈라진 사내가 피를 뿜으며 풀썩 쓰러졌다.

“헉, 헉, 헉!”

거친 호흡을 내쉬던 염자량이 얼른 검을 거꾸로 쥐고는 땅에 푹 박았다.

지팡이처럼 의지하고서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은 염자량.

전신의 옷자락은 난도질을 당한 것처럼 찢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자상을 입어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염자량의 주위로는 네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첫 방어에서 상대의 검을 빼앗지 못했더라면, 지금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은 자신이 되었으리라.

‘내,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처음이다.

스스로도 놀랐다.

긴박한 상황에 닥치자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흑사방 소방주와 싸울 때와는 또 달랐다.

목숨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기가 더욱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다만, 필요 이상의 공력을 사용했다.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살인도 익숙하진 않다.

시체를 보고 있자니 구토가 치민다.

“쿠웨엑!”

숨을 헐떡이며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젠장, 누구라도 좀… 도와줘!’

염자량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하늘로 집어던졌다.

삐이이이익, 팡!

신호탄이 터졌다.

**

“아아, 정말 다시는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곳이야.”

사비강은 동혈을 터벅터벅 걸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옷자락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게다가 드러난 피부 곳곳이 시커멓게 그을렸고, 수염이 까칠하게 자라서 몰골만 보면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예상치 못한 출혈도 있었군.”

너무 방심했다.

함정에 걸려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힐링 포션을 하나 낭비해 버렸다.

이곳의 결계는 바깥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밖에서는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나갔다.

그만큼 신경 써서 만든 결계라는 증거다.

동혈 출구까지 걸어온 사비강.

휘이이이잉!

세찬 바람줄기가 그를 훅 떠밀었다.

“멋진 경치군.”

그가 서 있는 위치는 암벽 중간쯤 되는 곳.

밖에서 보면 그저 단단한 암벽이지만, 그곳 중간쯤 되는 위치에는 결계로 이루어진 동혈이 있다.

즉 깎아지른 암벽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셈.

“뭐, 이것 때문에 여길 들어오지 않을 수도 없었으니.”

사비강은 손에 들린 옥빛 돌을 보았다.

그 신묘한 돌을 가만히 보다가 품에 갈무리했다.

“자아, 그럼 이제 등반을 할 차례인가?”

동혈 끝에 서니 구름이 발아래에 펼쳐져 있었다.

구름이 없다고 한들 다른 사람들이 암벽을 기어오르는 자신을 볼 수는 없으리라.

암벽 전체가 결계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비강이 동혈 옆으로 손을 뻗어 암벽에 매달렸다.

휘이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다시 불었다.

“읏차차.”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틈틈이 트라이스 마법을 쓰면서 이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쉬컥!

저쪽 옆에서 푸른 기운의 칼날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사비강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쒸이이이이이잉!

물리적인 칼날은 아니다.

마법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칼날.

절벽 밖으로 튀어나온 저 칼날에 살이 닿으면 화상과 함께 찢어진다.

사비강이 얼른 몸을 날려 위쪽으로 성큼 올라섰다.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마법의 칼날은 반대쪽 끝까지 달려가서는 소멸했다.

곧이어.

드드드드드드!

“크웃!”

암벽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물론, 이 역시 외부에서 볼 때는 아무런 변화도 없으리라.

어디까지나 차원의 결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사비강은 절벽에서 튀어나온 부분을 손가락이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자 이번에는 마법의 칼날이 위아래에서, 그리고 양옆에서 동시에 날아들었다.

쒸이이이잉! 쒸이이잉!

“젠장! 생각보다 귀찮군!”

이 결계의 마법 칼은 실드가 먹히지 않는다.

때문에 무조건 피해야만 한다.

사비강의 몸이 일순 사라졌다.

트라이스를 사용해서 순간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이동 지점의 지지대가 약했다.

쿠르르르!

튀어나온 돌부리가 부서져 내리면서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찰나, 그가 베르타스를 휘둘러 암벽 깊숙이 박아 넣었다.

콰가각!

가까스로 추락을 면한 사비강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비강은 베르타스에 매달린 채 암벽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좀 더 올라가야겠군.’

사비강이 손바닥에 내공을 집중했다.

퍼컥!

손을 휘두르자 암벽을 부수며 그의 손이 파묻혔다.

“그걸 취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생은 일도 아니지.”

그가 히죽 웃으며 암벽에 묻힌 베르타스를 쑤욱 뽑아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익, 팡!

까마득한 아래에서 아련한 소리가 들렸다.

‘신호탄?’

결계 외부에서는 이쪽의 상황이 보이지 않지만, 이쪽에서는 결계 밖의 상황이 보인다.

조금 전의 신호탄은 틀림없이 생도 중 누군가 쏜 것이리라.

하필 이럴 때.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잠깐 생각에 잠겼던 사비강은 곧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 매설란이 있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

사비강은 곧 신경을 끄고는 트라이스 마법을 사용해서 성큼성큼 암벽을 올라갔다.

도중에 마법 칼과 마법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사비강을 막아내진 못했다.

화염, 빙결, 지진 등의 공격 역시 마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사비강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암벽의 팔 할 정도 되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휴우, 정말 개고생이군.”

꽤나 많은 마력을 소모한 탓에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만약 자신이 평범한 고수였다면, 아예 동혈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으리라.

‘이제 조금만 더!’

사비강은 옆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 장 정도 옮겼을 때였다.

꾸드득. 꾸드드득.

주변 벽면에서 거대한 나무뿌리가 우후죽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온통 시퍼런 나무뿌리는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사비강을 덮쳐 왔다.

‘쳇! 제일 귀찮은 구간이군!’

그래도 마계에서 회귀를 준비했을 때, 기록관을 통해서 결계의 위치와 속성 등에 대해 메모라이즈 해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됐다.

사비강이 얼른 베르타스에 강기를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베르타스가 가늘게 몸을 떨며 검강을 일으켰다.

쉬이이이잇!

스컹!

거침없이 날아들던 나무뿌리 한 줄기가 뎅겅 잘려 나갔다.

잘린 나무뿌리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아래로 추락했다.

바틀리시.

마계의 식물인데 움직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꼼짝 못하게 얽어매는 습성이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결계와 함께 차원 이동이 가능했던 녀석.

놈의 생명력이 대부분 마력에 의해 유지되고, 바다의 산호초와 비슷한 구조이기에 가능하다.

쿠드드득! 꾸드득!

꿈틀꿈틀!

절벽 밖으로 튀어나온 바틀리시가 사비강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쉬익! 쉬잇! 쉬이잇!

뿌리 세 줄기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팟!

사비강이 순간 사라지더니, 옆의 벽면에 매달렸다.

동시에.

콰과과광!

세 줄기의 뿌리가 암벽에 곤두박질치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꺼져!”

사비강이 일갈을 터뜨리며 검강을 휘둘렀다.

쑤커엉!

길게 뻗은 검강이 바틀리시 뿌리를 한꺼번에 잘라냈다.

굵직한 뿌리 세 줄기가 퍼덕거리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꾸드득. 꾸드드득. 꾸득.

바틀리시는 계속해서 자라났다.

‘제기랄, 귀찮아 죽겠군.’

그때였다.

쿠르르르. 드드드드.

암벽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돌 부스러기가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암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오며 어떤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고일!’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후웅! 후웅! 후웅!

가고일은 그 육중한 몸으로도 날개를 펄럭이며 날았다.

녀석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

“쿠어어어엉!”

녀석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했다.

찰나.

쑤아아아앙!

가고일이 창을 들고 사비강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와 동시에 바틀리시가 이번에는 뿌리 다섯 줄기를 동시에 뻗어 왔다.

“후후후! 와라!”

사비강이 버럭 고함을 지르는 순간.

팟!

그의 형상이 이번에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콰가각!

꽈자자자장!

가고일과 바틀리시의 공격으로 암벽 중앙이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움푹 파였다.

가고일이 훌쩍 물러나며 몸부림을 쳤다.

눈앞에서 사라진 사비강은 가고일의 등 뒤에 매달려 있었다.

“크르르러렁!”

녀석이 포효를 내지르며 마구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사비강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시끄러운 녀석!”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내려찍으려고 할 때였다.

가고일이 돌연 몸을 돌리더니 등을 암벽에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꽈앙!

“큭!”

사비강의 손에 힘이 풀리는 찰나, 녀석이 휙 돌아서며 창을 휘둘렀다.

따앙!

베르타스와 부딪친 창이 불꽃을 터뜨렸다.

찰나, 가고일이 뒤로 훌쩍 날아올랐고, 바틀리시의 뿌리가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악착같이 매달려 주마.”

사비강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번쩍!

이번에도 사비강이 가고일의 등 뒤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달리는 대신 베르타스를 검집 채로 휘둘렀다.

떠엉!

고막을 울려대는 소리와 함께 가고일이 암벽으로 튕겨져 나가며 처박혔다.

콰당탕탕!

움직임이 감지되자 바틀리시가 이번에도 미친 듯이 꿈틀대며 가고일을 향해 쇄도했다.

퍽! 퍼퍼퍽!

“쿠와아아악!”

가고일이 몸부림을 치며 포효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바틀리시 뿌리가 가고일의 온몸을 꽁꽁 옭아매고 있었다.

녀석들이 가고일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빨리 움직여야 한다.

추락하던 사비강이 암벽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트라이스!’

순간 사비강의 몸이 사라지면서 암벽으로 이동했다.

콰드드득. 쿠드드득.

바틀리시는 여전히 가고일을 옭아매는 중이었다.

바위나 다름없는 가고일의 몸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좋아, 지금이다.’

사비강은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옮겨 갔다.

지금부터는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트라이스를 써서 멀리 갈 수도 없다.

그렇게 얼마나 옮겨 갔을까?

품속에 넣어 둔 옥빛 돌이 환하게 빛을 뿜어냈다.

‘여기구나!’

스르르릉.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그때.

파스스스스.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린 가고일.

목표물이 제거되자 바틀리시는 곧장 사비강을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취리리리릿!

사비강이 얼른 강기를 일으키며 베르타스를 암벽에 찔러 넣었다.

“하앗!”

기합성과 함께 암벽 깊숙이 꽂힌 베르타스.

다음 순간.

퍼콰아앙!

암벽이 터져 나갔다.

그 바람에 암벽 가운데 둥근 구멍이 뻥 뚫리면서 그 반발력으로 사비강도 튕겨 나갔다.

바틀리시가 이번에도 허공을 할퀴며 지나갔다.

쒸이이잉!

사비강은 추락하기 직전, 트라이스 마법을 사용해 뻥 뚫린 동혈 안으로 순간 이동했다.

“후우우. 힘들군.”

가까스로 동혈 안으로 들어선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중원인은 들어올 수도 없는 곳에 이 정도의 방어 장치라니. 과잉 방어라고. 마왕.’

턱 끝에서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뭐, 나는 예외지만.”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베르타스를 어깨에 걸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