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귀환 마교관
40화
우이봉의 어느 동혈 입구.
“이 멍청한 놈들아. 네놈들이 그러고도 흑도파의 일원이냐?”
대머리 사내가 시퍼런 도끼자루를 들고는 노발대발 소리쳤다.
악소가 움찔거리고는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정말 그놈의 무공은 대단했습니다요. 형님도 직접 그놈을 보셨더라면….”
“닥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뭐? 검은 기체가 폭발하고, 화염 창까지 만들어냈다고?”
“그뿐이 아닙니다요. 얼음 화살도 막 날리고, 벼락을 불러내기도 했다니까요. 너희들, 안 그러냐?”
악소와 함께 있었던 수하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라이, 미친놈들!”
결국 참지 못한 대머리 사내가 악소 무리의 뒤통수를 세차게 후려쳤다.
퍽! 퍽! 퍽! 퍽!
“당하고 왔으면 쪽팔린 줄을 알아야지. 어디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에이, 씨벌! 진짜라니까요! 왜 사람 말을 못 믿고 그러시오!”
결국 악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대머리 사내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는가 싶더니.
“이 개새끼가 미쳤지?”
퍽! 퍽! 빡! 뻑!
그의 주먹이 정신없이 악소에게 쏟아졌다.
그 살벌한 광경에 다른 도적들은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마른 침만 꿀꺽 삼켰다.
“됐다. 그쯤 해둬.”
마침 동혈 안쪽에서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시커먼 공간에서 등이 구부정한 노인이 걸어왔다.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에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 양쪽 눈은 각각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어 초점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 마디로 추남 중의 추남.
그의 손에는 자신의 키만 한 도가 들려 있었는데, 온통 시커먼 색이었다.
바로 흑도쌍괴 중 동생인 ‘우괴’였다.
대머리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우괴 형님, 나오셨습니까?”
“그래, 밖이 시끄러워서 영 집중을 할 수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그보다 재미있는 소릴 하더구나. 네놈이 대단한 놈을 만났다지?”
우괴의 시선이 악소에게 향했다.
그는 악소의 처참한 몰골을 흥미롭다는 듯이 살펴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 그놈이 불과 얼음을 마구 다뤘다고?”
“그렇습니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만 같았습니다.”
“호오. 그거 참 재미있군.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냐?”
“거기까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흐음. 하긴 얻어터지고 왔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 이리 와봐.”
우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악소가 얼른 곁으로 다가갔다.
우괴가 처참한 몰골의 악소를 보며 가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심한 꼴이라니… 나쁜 놈.”
“크흑, 형님…!”
“이런 꼴을 하고도 복수할 상대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
“형, 형님?”
“쓸모없는 녀석.”
다음 순간.
퍼억!
악소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순간 주변의 도적들이 움찔거리고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마침 동혈 안쪽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비척비척 걸어오는 사람은 앞니가 하나 빠졌다는 것을 제외하곤 우괴와 똑 닮은 자였다.
바로 흑도쌍괴 중 형인 ‘좌괴’였다.
그의 한 손에는 흑도가, 다른 한 손에는 쇠사슬이 쥐어져 있었다.
“빨리빨리 안 와?”
“윽!”
좌괴가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개처럼 사슬 목걸이를 착용한 알몸의 여인이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우괴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형을 보곤 씨익 웃었다.
“좌괴야. 이 시체가 웃긴 말을 했어.”
“무슨 말?”
“일단, 저 녀석들에게 안내를 좀 해달라고 해야지.”
우괴의 시선이 악소와 함께 돌아온 세 명의 도적들에게 향했다.
**
“정말 신기한 곳이네.”
매설란은 동혈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암벽 안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통로가 이어져 있었다.
동혈 안쪽에서는 암벽 밖의 풍경이 보였다.
다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렁이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녀는 결계로 들어선 것이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통로 좌우에 늘어선 횃불에 저절로 불이 밝혀졌다.
화륵. 화륵. 화르륵.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야?’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을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매설란은 벽면에 열십(十) 자를 새겨 놓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내내 오르막길이었다.
마치 암벽을 안쪽에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르고. 오르고….
터벅. 터벅….
‘하아,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동혈 안에 있으니 시간 개념도 사라져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타오르는 횃불 때문인지 공기도 희박하고, 더위도 점점 심해졌다.
“하아, 하아, 하아.”
그녀는 호흡을 거칠게 내쉬면서도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막다른 길이 나타나면 다시 돌아 나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암벽 꼭대기까지 올라갈 것만 같았다.
‘지겨워. 또 갈림길이잖아.’
또 나타난 갈림길에 멈춰 선 그녀가 암벽에 다시 흔적을 새기려는 순간,
“……!”
그녀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그녀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벽에 선명하게 새겨진 칼자국.
기울어진 각도를 보니, 틀림없이 그녀가 처음 나타난 갈림길에서 새긴 십(十) 자 흔적이다.
처음으로….
‘돌아왔어!’
“그, 그럴 리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매설란이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
“이쯤인 것 같은데?”
목단화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도 한옆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고, 반대편으로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확실히 몸을 숨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다행히 아무도 안 보이네. 이제 이대로 몸을 숨기고 며칠 동안만 잠적하면 난리가 날 테지.”
목단화가 조소를 지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실 이곳은 흑도쌍괴가 자주 출몰하는 장소.
그래서 사람들이 가급적 지나가기를 꺼려하는 길이었다.
때마침 길옆 풀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목단화 일행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방, 방금 저기서 소리가….”
민유향이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목단화가 짐짓 당당한 자세로 풀숲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누구죠? 우리에게 볼일이 있나요?”
잠시 후, 풀숲에서 한 그림자가 불쑥 솟아올랐다.
움찔 떨며 물러서던 세 여인은 뒤늦게 상대를 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염자량?”
“어….”
염자량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목단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네가 왜 거기서 나타나지?”
“너희들을 뒤따라왔어.”
“우리를? 어째서?”
염자량은 목단화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어.”
순간 목단화를 비롯한 여자 생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계획을 엿들은 건가? 아니면, 방금 내가 중얼거린 소리를 들었나? 하지만 정말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건데….’
하지만 이쪽에서 먼저 인정할 수는 없다.
목단화가 미간을 곱게 좁히며 물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우리가 무슨 짓을 한다는 거야?”
“설마 여기까지 와서도 시치미 뗄 거야?”
“글쎄, 네가 하는 말을 전혀 못 알아듣겠어.”
목단화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염자량이 마음을 굳힌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어. 그럼 너희들의 그 계획, 사비강 교관님께 전해 주도록 하지.”
“뭐라고?”
“그럼 잘해봐. 나는 갈 테니.”
염자량이 손을 흔들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쯤 되자 목단화를 비롯한 여자 생도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수군거렸다.
“단화야, 어떡해?”
“쟤가 다 말해 버리면 헛일이잖아.”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 아냐?”
결국 목단화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소리쳤다.
“야! 염자량!”
“왜?”
염자량이 태연한 얼굴로 돌아서자, 목단화가 이를 빠득 갈고는 물었다.
“원, 원하는 게 뭐야?”
그제야 염자량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작전, 나도 끼워줘.”
“뭐?”
“말했잖아. 나도 끼워 달라고.”
목단화는 물론 민유향과 백미령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끼워 달라니.
같이 납치를 당한 척하겠다는 건가?
흑도쌍괴가 남자도 납치한다던가?
게다가 염자량은 사비강 교관에게 호의적으로 돌아섰던 생도가 아니었나?
“너, 우리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도….”
“당연하지. 너희들만 그런 공을 세우는 건 지나친 욕심이잖아. 나도 같이 하자.”
“공… 이라고?”
“이 상황이 되어서도 모른 척 할 거야? 너희들이 여기 온 이유, 흑도쌍괴를 처치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뭐?”
“솔직히 너희들만으로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나도 같이 하게 해줘. 걸림돌은 되지 않을 테니까.”
그제야 목단화 일행은 염자량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바보는 아무래도 우리가 흑도쌍괴를 물리치려고 온 줄 아는 모양이군.’
목단화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돼. 이건 우리끼리 해결할 거야.”
“뭐? 그럼 내가 사비강 교관님에게 가서….”
“말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 여긴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넌 빠져.”
뜻대로 되지 않자 염자량의 표정도 구겨졌다.
그때였다.
“이거, 이거. 뜻하지 않게 좋은 상품이 기다리고 있었네?”
문득 등 뒤에서 들려온 카랑카랑한 목소리.
목단화 일행이 흠칫 놀라며 돌아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수풀을 헤집으며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란 머리카락에, 검버섯이 가득 핀 얼굴, 형편없이 뭉그러진 코.
두 눈뜨고 봐주기 힘들만큼 추한 몰골의 두 남자가 커다란 도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목단화 일행은 그들이 누군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흑도쌍괴!’
염자량이 검을 뽑아 들고는 소리쳤다.
“너희들이 흑도쌍괴냐?”
“음? 어르신들을 알아본 네놈은 누구냐?”
“난 염자량이다! 정도를 익힌 무인으로서 너희들의 악행을 처단하러 왔다!”
흑도쌍괴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학!”
“크헤헤헤헥!”
“뭐, 뭐가 웃기는 거냐?”
“고놈 참, 재롱을 귀엽게도 떠는구나. 뭐, 오늘은 우리가 기분이 좋으니까 곱게 보내 주마. 돌아가라.”
“뭐라고?”
“그보다 여기 아가씨들은 어디에서 오셨을까? 이 오라버니들을 따라가지 않으련?”
우괴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목단화 일행에게 다가갔다.
목단화가 염자량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
흑도쌍괴와 마주할 생각은 전혀 없었건만.
“가까이 오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다치진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염자량이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우린 네 명이나 되니까 얌전히 항복해!”
“크크크. 머릿수가 중요한 건가? 뭐, 우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정 그렇다면….”
우괴가 킬킬거리더니 어깨너머를 슬쩍 돌아보았다.
“얘들아.”
그러자 숲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이내 수풀을 가득 메운 사람들.
어림잡아 서른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뭐, 뭐가 이렇게 많아?’
염자량의 눈동자가 퀭해졌다.
놀란 것은 목단화도 마찬가지.
‘뭐야? 두 명이 아니잖아?’
여차하면 약한 척 납치를 당해 줄까도 생각했는데….
이래서는 진짜로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마침 흑도쌍괴가 목단화 일행에게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들이 놀란 모양이네. 달래 줘야지.”
“흐흐흐. 좌괴야, 저 년은 내가 달래 주고 싶은데?”
우괴가 목단화를 가리키며 헤실헤실 웃었다.
목단화의 이맛살이 팍 구겨졌다.
“당, 당신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예요?”
“아가야. 네가 ‘정도맹주’라고 한들 우리가 두려워할 것 같으냐?”
“뭐, 뭐라고요?”
“오늘만 사는 우리 같은 인간은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단다. 클클클. 그저 쾌락만 있을 뿐.”
좌괴가 눈을 희번덕이며 입술을 핥았다.
“머, 멈춰라! 이놈들아!”
염자량이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찰나.
쒜에에엑!
흑도 한 자루가 번개처럼 날아갔다.
따앙!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른 염자량.
그 순간 흑도가 좌괴의 손으로 돌아갔고, 염자량의 검은 허공을 날아가 나무 기둥에 처박혔다.
염자량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강, 강하다…!’
흑도쌍괴는 생도들이 어떻게 해볼 만한 상대가 아니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확실히 깨달았다.
이들은 그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엄청난 고수라는 것을!
뒤늦은 깨달음.
한편, 좌괴는 흑도를 쥐고는 짐짓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흑섬도(黑閃刀)를 막아내다니. 제법이구나. 좀 더 가지고 놀다가 천천히 죽여주마.”
좌괴의 흑도에서 시커먼 도기가 풀풀 휘날리기 시작했다.
“으으.”
염자량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