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9화 (9/670)

# 9

귀환 마교관

9화

사비강은 천천히 눈을 떴다.

‘중단전의 마나 치환 과정이 좀 더 수월해졌군.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아마도 마계에서 사용할 때만큼이나 자연스러워지리라.

다만, 마나의 양에 있어서는 아직 현저히 부족하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도 겨우 4서클 초반 대.

물론 4서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마계에 있을 당시 사비강은 8서클까지 마스터한 사상 최강의 마검사였다.

4서클부터는 필요한 마나 량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갈 길이 한참 남았다.

급할 건 없다.

차근차근 취해 가면 된다.

그리고 마왕의 군대와 맞서게 될 그날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비강은 침상에 놓아 둔 베르타스를 집어 들었다.

우웅. 우우웅.

베르타스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사비강이 혀를 찼다.

“쳇, 굳이 그렇게 부숴 버릴 것까진 없었잖아.”

자하낙인도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사비강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단 일격에 깨져 버릴 줄이야.

자하낙인도와 부딪친 그 순간, 베르타스가 마력을 터뜨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우웅. 우웅.

베르타스가 변명이라도 하듯 몸을 떨어댔다.

자하낙인도 따위는 감히 자신에게 들이댈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는 듯.

“시끄러워. 그놈의 자존심은. 자하낙인도도 나름 괜찮은 물건이라고.”

사비강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가로 걸어갔다.

첫 수업이 지나갔다.

수업이라고 해봐야 대략적인 자기소개 시간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이 진행되리라.

수련실과 연무장도 제대로 다듬어 두었다.

앞으로 십 년.

마왕의 군대와 맞서기 위해서는 강호의 고수들을 최대한 많이 배출해 둬야 한다.

그가 굳이 정교관이 되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강호의 후기지수를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으며, 그들을 계도하고 더욱 강한 고수의 반열에 올려 둘 수 있는 자리.

그것이 바로 용천관의 정교관이다.

나아가 용천관의 타락해 버린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바꿔 놓을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평화에 찌들어 미적대며 게으름 피울 때가 아니라고.’

사비강은 명부를 들어 다시금 생도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문제아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됐어. 후후.’

특목반 명부를 처음 확인했을 때, 그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명부에 적힌 녀석들은 대부분 학관에서조차 손을 쓰기 힘든 문제 생도들이었다.

그 배경이 워낙 대단해서 함부로 건드리기도 힘든 녀석들.

또는 본인의 능력만 믿고 교관들을 무시하며 안하무인한 놈들.

그런데 우습게도 이들 중에는 훗날 마계 전쟁에서 큰 도움이 될 녀석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지금부터 제대로 계도시킨다면 그 이상으로 해낼 수 있는 녀석들이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우선은 제멋대로 튀어나온 이 녀석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을 함부로 다루려고 했다간 손가락을 찔리고 만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던 녀석들의 눈빛이 떠올랐다.

하나 같이 탐탁지 않았던 시선들.

사비강이 씨익 입매를 치켜 올렸다.

“흐흐. 귀여운 녀석들. 얼마든지 날뛰어보라고. 한바탕 즐겁게 어울려 주마.”

**

후드득.

밤새가 날아와 객잔 삼 층 별실 창가에 내려앉았다.

녀석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등부형이 무서운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날뛰어도 너무 날뛰어.”

카창!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술잔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악력을 이기지 못해 깨져 버린 술잔 파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마침 별실 문을 열고 음식을 가져온 점소이가 화들짝 놀라서 등부형을 바라보았다.

“저어… 괜찮으십니까?”

“가서 술이나 더 내오게. 잔은 필요 없으니.”

“네? 아, 네.”

점소이가 얼른 요깃거리들을 내려놓고는 돌아섰다.

그가 나가자마자 반듯한 옷차림에 콧수염이 팔자로 자란 중년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제가 늦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는지요?”

남자는 얼른 등부형과 마주 앉으며 말을 건넸다.

그는 부서진 술잔 파편들을 확인했지만, 겉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본디 좋은 일은 먼저 거론하되, 나쁜 일은 굳이 앞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평소 그만의 생각이었다.

가능후(賈狼侯).

천화상단의 용천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자.

“지부장께서 생각보다 늦었소.”

등부형은 불편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오늘 그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가능후가 등부형의 눈치를 살피며 작게 웃었다.

“그것이 좀, 상단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말입니다. 그나저나 이거 상이 너무 조촐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보게!”

가능후가 별안간 소리쳐 부르자, 점소이가 얼른 달려왔다.

용천관 인근에 위치한 이곳 황학루(黃鶴樓)는 천화상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요?”

“귀인을 대접하는 자리에 이게 뭔가? 내 미리 신경 좀 쓰라고 그만큼 이르지 않았던가? 당장 걷어치우고 새로 내오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점소이가 연신 굽실거리며 탁자로 다가왔다.

가능후의 처사에 조금 기분이 나아진 등부형이 손을 저으며 점소이를 물렸다.

“됐으니 술이나 더 가져오게.”

“네, 당장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점소이가 부리나케 별실을 나갔다.

물론, 그가 나가기 직전 가능후는 최고급 술을 대령하라는 언질도 잊지 않았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제야 등부형이 속내를 꺼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온통 흐리고 있소이다.”

“미꾸라지라 하면… 혹시 최근에 검법 정교관이 된 자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알고 있었소?”

“하하하. 이래봬도 그저 그런 장사치와는 격이 다릅니다.”

“과연. 가 지부장의 소식통은 빠르기도 하군.”

“과찬이십니다. 이미 그자에 대한 소문이 제법 났으니까요. 그나저나 그자가 무슨…?”

“자하낙인도가 깨졌소.”

이번에는 가능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자하낙인도는 작년에 그가 직접 선물한 것이었다.

“어쩌다가….”

“단 일격이었소.”

“그게 무슨… 설마 그자가 단 일격으로 자하낙인도를…?”

“그렇소.”

“말도 안 됩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지.”

“그런 일이… 어째서….”

가능후는 입을 척 벌린 채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가 지부장께 묻고 싶군.”

“말씀하시지요.”

“그대가 보기에 내 무공 수준은 어떻소?”

“제가 어찌 감히 등 대협의 무공을 평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등 대협께서는 도법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형식적인 아부는 집어치우고 솔직한 생각을 묻는 거외다.”

“등 대협께서는 더 이상 이 가 아무개를 시험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찌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르신 분이 하찮은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가당치도 않은 질문입니다.”

“그 말. 진심이오?”

“거짓이라면 이 가 아무개가 당장 벼락을 맞아 죽어도 좋습니다.”

물론 거짓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등부형은 일류 고수의 반열에 속한다.

일년생 교관 중에서는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사람은 암영신검 상필지와 천세명뿐이었다.

특히 상필지는 초절정을 앞둔 고수였다.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곧이곧대로 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능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좋소. 그럼 다시 묻겠소. 내가 든 자하낙인도가 단 일격에 박살이 났소. 어찌 생각하시오?”

가능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역시 이거였구나….’

등부형이 제 실력을 운운하고 나선 것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초석이었으리라.

이 자리에서 자하낙인도가 보도라고 떠들어대면 등부형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말하는 셈이 된다.

반대로 자하낙인도가 별 볼 일 없는 칼자루여서 그렇다고 말하게 되면, 자신이 그런 쓰레기를 선물한 셈이 되고 만다.

그야말로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다.

가능후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말했다.

“상대가 사용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검이었소.”

“어떤 검이었는지요?”

등부형이 눈썹을 슬쩍 일그러뜨렸다.

“흐음. 글쎄. 처음 보는 검이었소. 마치 서역의 검처럼 보였지.”

“서역의 검이라…. 어쩌면 그자가 엄청난 보검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보검이라?”

“제가 드린 자하낙인도는 틀림없는 보도입니다. 또한 등 대협의 무공 실력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그렇다면 단 하나, 그자가 가진 검이 천하의 명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자 등부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과연. 일리가 있군.”

가능후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등부형은 지극히 단순하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자였다.

간혹 이런 자가 어찌 정도맹과 연을 쌓을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편리한 점도 있지.’

생각을 마친 가능후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그자가 어떤 경로로 그 검을 입수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소.”

“그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검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그자는 원래 창법 부교관에 지나지 않았소. 검을 쓰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소.”

“흐음, 냄새가 나는군요.”

“무슨 냄새 말이오?”

“하하하! 저 같은 장사치가 맡을 냄새가 돈 냄새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호오, 그렇군.”

등부형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놈의 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들….

“돈 냄새가 나더라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닌 이상에야….”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이 내 것이 되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지요.”

“무슨 생각이 있소?”

가능후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후후후. 등 대협께는 제가 특별히 다른 보도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보도를?”

등부형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물론입니다. 제가 사죄하는 의미에서 자하낙인도보다 좋은 녀석으로 안겨 드리겠습니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하지만 하나만 약조해 주십시오.”

“말해 보시오.”

“혹여 앞으로 그자의 검이 어떻게 되더라도 등 대협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가능후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등부형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설마 사람을 쓰려는 거요?”

걱정이 섞인 질문.

제아무리 용천관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외부 사람이 들어와 도적질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끔 절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생도들의 치기어린 행위들이었다.

가능후가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제가 그자에 대한 정보를 어찌 그리 빨리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야 그대의 소식통이 곳곳에… 아?”

등부형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쳤다.

가능후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천화상단의 이 공자. 우리 단주님의 둘째 아드님이 바로 그 특목반에 있지요.”

“그랬군.”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었다.

천화상단의 단주가 애물단지처럼 여긴다는 둘째 아들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사고뭉치였기에 내놓은 자식이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이미 이 공자께서도 저와 같은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래도 단주님의 혈통 아니겠습니까? 후후후.”

등부형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었다.

“과연. 하하하! 하하하하!”

모처럼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능후가 술병을 들어 등부형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모쪼록 우리 둘째 공자님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내가 뭐 할 게 있겠소? 염 공자는 스스로 잘 하는 성격인데!”

“후후. 그저 지금처럼 너그럽게 대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지요. 보도는 곧 사람을 통해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가 형도 참. 너무 신경 쓰지 마시구려. 그러고 보니 옛 생각이 나는구려.”

짐짓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가능후를 향한 호칭이 지부장에서 ‘가 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일인지요?”

“내가 생도였을 때였소. 나는 도법 교관님이 사용하시는 도를 한 번이라도 휘둘러 보고 싶었지.”

“호오, 그래서요?”

“어느 날, 몰래 친우들과 함께 그 교관님 숙소에 잠입해서 도를 가져오기로 했소. 잠깐이라도 만져 보고 싶어서 그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지. 어린 마음에 그 도가 무척 멋있어 보였거든.”

“하하. 그래서 어찌 됐습니까?”

“성공할 리가 있겠소? 그 자리에서 딱 걸리고 말았지. 그런데 교관님이 내게 그 도를 건네주며 실컷 휘둘러보라고 하시더군.”

“좋은 분이셨군요. 만약 그때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 도는 등 대협의 것이 되었을까요?”

“허허, 가 형도 참. 하긴 뭐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렇게 잃어버릴 정도라면 낯이 팔려서라도 어디에 얘기도 못하지. 암.”

“하하하. 그럼 생도로서 교관의 병기를 슬쩍 하는 건 잘 되면 보약이고, 못 되면 추억 같은 것이군요?”

“음? 말이 그렇게 되나? 하하하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황학루 삼 층.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울리는 가운데, 창가에 앉아 있던 새가 다시 후드득 날아올랐다.

밤하늘을 날던 녀석은 어느 순간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휘청거렸으나, 곧 중심을 잡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

사비강이 하얗게 뒤집혀 있던 눈을 바로 떴다.

동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옵저버(Observer) 마법을 해지한 것이다.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 두 사람,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군.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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