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화 (6/670)

# 6

귀환 마교관

6화

무겁게 가라앉은 실내 분위기.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은 교관들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일년생 교관들 중에서도 특히 천세명과 각별한 사이였다.

여운진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며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어찌… 그런 놈이…. 그 녀석이 정교관이 되어서 앞으로 모든 회의에 참여하다 보면 우리의 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말이 좋아서 체계이지, 사실상 각종 비리나 다름없었다.

“혹시 무슨 꼼수를 쓴 게 아닐까요?”

넌지시 입을 연 사람은 또 다른 도법 정교관인 등부형(鄧富衡)이었다.

그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실비실하던 자가 아니었습니까? 하루아침에 그렇게 강해질 수가 없지요.”

“실제로 비무 당시를 떠올려 봐도 그렇습니다. 초식이고 뭐고 없이 그저 두드려 팼을 뿐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실 사 교관의 실력이 우수하다기 보단 맹손덕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던 거지요.”

말을 꺼내던 궁법(弓法) 정교관 언벽(彦璧)은 얼른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천세명의 눈치를 살폈다.

그 실력 없는 맹손덕이 바로 천세명의 추천을 받은 자였기에.

언벽이 헛기침을 하며 실언을 수습했다.

“사실 상대가 그리 예상치 못하게 나왔으니 맹 대협도 당황했을 법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참….”

다른 교관들이 얼른 천세명의 눈치를 살피며 동조했다.

그럼에도 천세명은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을 쉬이 풀지 않았다.

그는 일년생 교관부장이었다.

검법 정교관인 상필지를 제외하면 일년생 정교관 중에서는 가장 무공이 강했다.

때문에 다수의 정교관들은 힘과 지위를 모두 가진 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천세명이 희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소리였다.

하지만 귀가 밝은 여운진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틀림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놈이 어찌 귀야채를 상대했겠습니까? 애초에 그 수급이 귀야채주의 수급이 맞는지도….”

“아, 그건 자문위에서 확인했답니다.”

“그럼?”

“예, 믿기 어렵겠지만 귀야채주 악구검의 수급이 맞다고 합니다.”

등부형의 대답에 여운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가 미간에 주름을 팍 새기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배후 세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딘가의 사파 녀석들과 손을 잡았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사 교관은 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정도를 따지는 자였는데…. 설마 사파와 손잡을 리는….”

언벽의 말에 여운진이 버럭 소리쳤다.

“언 교관께서는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겁니까?”

언벽이 이번에도 얼른 말문을 닫았다.

사실 누구 편을 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천세명이 저런 표정으로 버티고 있는 한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천세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잘 됐을지도 모르겠군. 만약 사비강이 사파와 손을 잡았다면 이번에야 말로 그놈 모가지를 잘라낼 절호의 기회니까.”

“그렇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지 않습니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파락호에게 얻어맞으면서 학관의 망신을 혼자 다 시키던 자가 갑자기 절정 고수가 되다니요.”

“맞습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겁니다.”

등부형이 여운진의 말에 힘을 실었다.

교관들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세명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역시 그림자를 붙여 두는 게 좋겠군.”

“좋은 생각이십니다. 놈을 몰래 감시하면 배후도 곧 밝힐 수 있을 겁니다.”

“혹시 그림자로 쓸 만한 좋은 인재가 있으시오?”

천세명의 물음에 등부형이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이런 일에 적합한 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고맙소. 내 등 교관을 믿고 맡기겠소.”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등부형의 얼굴에 야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분위기를 살피던 언벽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정교관이 된다면 담임을 맡아야 하는데…. 현재 모든 반에 담임이 배정되어 있는 상태 아닙니까?”

“아, 그 부분이라면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엔 여운진이 나서며 대답했다.

그는 일년생 생도들을 관리하는 생도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교관들의 눈길이 여운진에게 집중됐다.

여운진이 씨익 웃으며 품에서 종이를 꺼내 펼쳤다.

“인사위에 보고할 내용입니다. 이 생도들이 앞으로 사 교관이 맡을 반에 배정될 겁니다.”

“이건…!”

“허어!”

명부를 훑어본 교관들이 저마다 탄성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천세명 역시 눈을 크게 뜨더니 곧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이제 보니 여 교관께서 이런 안배까지 생각해 두고 계셨구려.”

“후후. 녀석이 귀야채를 토벌하러 떠났을 때, 혹시나 해서 생각해 두었던 겁니다. 이렇게 써먹힐 줄은 몰랐습니다만.”

“과연 이대로라면 사 교관도 당장 때려 치고 싶어지겠군요.”

다른 교관들 역시 혀를 내둘렀다.

“여 교관의 안배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무서워서 교관 해먹겠습니까?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행여나 사 교관이 자결이라도 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만약 저라면, 그 생도들을 맡을 바엔 멀리 도망이라도 가버릴 겁니다.”

“허허허.”

교관들의 입가에 모처럼 웃음이 돌아왔다.

한참 후에야 등부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뭐, 그것도 임용 대기 기간인 칠주야가 무사히 지난 다음의 일이지요. 만약 그 안에 제가 붙인 그림자가 뭔가를 건지기라도 한다면…. 흐흐.”

“역시 우리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니 묘수가 나오긴 하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답답이가 정교관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끔찍하던지….”

교관들이 넌더리를 치며 말을 쏟아냈다.

천세명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말했다.

“자자, 진정들 하세요. 이러면 마치 우리가 그자를 미워하는 것 같지 않소? 나는 그저 그자의 자질이 염려되는 것일 뿐이외다. 행여나 자격도 없는 자가 생도들에게 그릇된 가르침을 줄까 봐 말이오.”

“교관부장의 뜻을 우리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 또한 교관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요.”

교관들은 이제 웃음을 머금으며 담소를 이어갔다.

**

귀영부(鬼影府).

돈만 넉넉히 주어지면 모든 일을 맡아서 한다.

암살, 감시, 납치, 절도, 정보 수집 등.

주로 은신과 경신법이 뛰어난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홍염(洪焰)은 가장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아 일영(一影)으로 불린다.

홍염이 처음 부주(府主)의 부름을 받고 이 임무에 대해 들었을 때는 참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학관의 교관을 감시하라니?

그것도 사파와 접견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중점적으로 알아보라고?

정말이지 우스운 것은 그 의뢰를 한 당사자가 바로 용천관의 교관이라는 것.

즉 의뢰를 맡긴 자가 이미 사파인 귀영부와 내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다른 교관이 사파와 내통하는지를 알아보라니.

‘하여튼 정파 놈들의 대가리엔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니까.’

홍염은 내심 비웃음을 머금으며 저만치 보이는 상대의 뒤를 밟았다.

‘사비강이라고 했던가? 도대체 어딜 가는 거지?’

홍염은 어느 순간 나무가 되었고, 어느 순간 잎사귀처럼 흩어졌으며, 어느 순간 바람이 되곤 했다.

그렇게 앞서 가는 사비강의 뒤를 소리 없이 따랐다.

**

사암곡(死暗谷).

원래는 이름도 없는 골짜기였다.

하나 과거 정마대전이 벌어졌을 때, 이곳에서 수많은 무인들이 죽어 갔다.

이제는 그러고도 세월이 많이 흘러버려 그 격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어쩐지 음산한 느낌이 드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곳.

그 비극이 펼쳐졌던 날 이후, 사람들은 이 스산한 골짜기를 ‘사암곡’이라고 불렀다.

사비강은 허리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며 저벅저벅 걸어갔다.

‘이쯤 어디일 텐데….’

그가 착 가라앉은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임용 대기 기간인 칠주야 중에서 벌써 사흘이 흘렀다.

이제는 찾아서 돌아가야 한다.

마계에서 보낸 물건들은 대부분 음기가 응집된 지역에 분배되었다.

본래 마계 자체가 음의 기운이 더 강한데다 결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결계도 없이 그냥 뚝 떨어진 물건도 있었다.

지금 사비강이 찾고 있는 것이 바로 그렇다.

누구든 찾으면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것.

마왕이 중원으로 넘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찾았던 물건.

바로 마검 ‘베르타스’다.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기가 힘들다.

사암곡에서는 수천 명이 격전을 치르다가 죽은 곳이다.

그만큼 넓다는 뜻.

‘스캔(Scan)을 할 수밖에 없겠군.’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암곡 전체를 훑어본 후 손을 뻗었다.

지이이잉.

손끝이 가늘게 떨려 왔다.

다음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하얀 빛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이내 사이한 기운이 사암곡 바닥 전체를 훑으며 퍼져 나갔다.

잠시 후, 대략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 희미한 빛이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군.’

사비강은 그곳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가서는 수풀을 마구 파헤치며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구덩이를 팠을까?

마침내 그의 손에 뭔가가 턱 걸렸다.

‘뼛조각?’

정마대전 중에 죽은 자일 것이다.

사비강은 뼛조각을 어깨너머로 던지며 계속해서 땅을 팠다.

그리고 마침내….

“후후후. 찾았군.”

사비강의 입매가 히죽 올라갔다.

검은 손잡이에 황금빛 문양이 새겨진 마검.

손잡이 끝부분은 악마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검과 다르게 검신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어 얼핏 보면 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양날을 가진 검이다.

‘베르타스!’

사비강의 동공이 커졌다.

심장이 마구 격동했다.

베르타스는 소리치고 있었다.

‘어서 날 쥐어라! 나를 쥐고 내게 피를 바쳐라!’

사비강은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베르타스를 검집 채로 꺼냈다.

후두두둑.

베르타스와 함께 뒤엉켜 있던 뼛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마도 과거 마공을 극한으로 익힌 자 중 한 명이리라.

베르타스가 그 시체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증거다.

음의 기운을 가득 품은 시체를 찾아 차원 이동한 베르타스는 그렇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비강은 천천히 베르타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두근!

순간 그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하악!”

거친 호흡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미친 듯한 피의 갈망.

오로지 피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그의 뇌를 뒤덮었다.

‘이거다. 이 기분!’

사비강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베르타스에 아무런 결계를 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누구든 베르타스를 취한 순간, 강렬한 욕망의 노예가 된다.

그 순간 이성을 잃고 피를 갈망하다 못해 제 목숨을 끊어 버리게 된다.

“크윽!”

사비강이 미간을 구기며 신음을 터뜨렸다.

손잡이를 쥔 손에서부터 엄청난 마력이 몸으로 흘러들어 왔다.

주로 마나의 원리로 움직이는 이 마력은 중원의 무인이라면 감당하기가 어렵다.

중원에서 익히는 내공의 흐름과 마계에서 사용하는 마나의 흐름은 전혀 다르기에.

사비강은 눈을 꾹 눌러 감고는 모든 의식을 집중해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그의 손에서 핏대가 서고, 이마와 목에도 시퍼런 핏줄이 툭 불거져 나왔다.

‘크읏! 강하다. 역시…! 특상급 마공석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나?’

사비강의 몸 안에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그는 최대한 마나를 운기하며 베르타스의 마력에 대항했다.

아차 하는 순간 마력에 제압당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인이 되고 만다.

무림인이라면 내공이 마구 뒤엉켜 주화입마에 빠져 버린다.

‘피를…! 피를…! 피를…!’

사비강은 덜덜 떨며 베르타스를 거꾸로 쥐고는 자신의 목을 겨누었다.

여차하면 목을 찔러 자결할 상황.

‘크읏! 그렇게 피를 원한다면… 주마!’

순간, 사비강이 온힘을 다해 팔을 비틀었다.

으드드득!

“크읏!”

곧이어 그가 몸을 휙 돌렸다.

‘하지만 내 피는 아니야!’

**

“어…?”

홍염은 자신의 복부를 뚫은 검신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갑자기 이동했다.

어떤 경신법을 쓰는지 보지도 못했다.

그냥 눈을 깜빡했을 뿐인데, 사비강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가 쥔 검은 자신의 복부를 뚫고 있었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트라이스(trice)’라는 거야. 뭐, 알아듣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내가 죽을 수는 없잖아?”

사비강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트, 트라이스? 그게 뭐지? 그보다 이자… 내가 감시하는 걸 알고 있었나?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이건… 뭐지?’

홍염은 자신의 배를 관통한 검을 보았다.

원래는 시퍼런 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검신을 타고 흐르던 피는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마치 검신이 자신의 피를 꿀꺽꿀꺽 마셔대는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제 그만 처먹어.”

사비강이 싸늘하게 말을 뱉고는 검을 쑥 뽑아냈다.

검신에 묻어 있던 피는 순식간에 흡수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털썩.

홍염이 무릎을 꿇었다.

“아아, 아직 쓰러지면 안 되지.”

사비강이 얼른 손을 뻗어 홍염의 턱을 붙잡았다.

“크윽.”

“자, 지금부터 우리 상담을 해볼까? 이래봬도 난 교관이거든.”

사비강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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