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4화 (4/670)

# 4

귀환 마교관

4화

맹손덕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방금 자신을 보고 쓰레기라고 한 것인가?

저 애송이가?

불과 며칠 전에 자신에게 죽을 만큼 두드려 맞고 쓰러졌던 녀석이?

‘그때 머리를 다쳤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미치지 않고서야.

맹손덕은 당장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이 자리는 정도맹 산하의 용천관에서 교관을 뽑는 자리가 아니던가?

그는 최대한 기품 있는 척하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이보시오. 지금 말이 좀 심한 것 같은….”

“거, 종알종알 시끄럽군.”

사비강이 천연덕스럽게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맹손덕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척 벌리고 말았다.

천천히 일그러지는 표정.

창을 쥔 맹손덕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 발바닥의 때만도 못한 약골 새끼가 감히 나를 무시해?’

더 이상 왈가왈부해 봐야 소용없다.

이런 녀석은 문답무용이다.

지난번에 자신이 확실하게 손을 봐 줬어야 했다.

아주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빨리 기절시키는 게 아니었어! 내 목소리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하여튼 요즘 무공 좀 한다고 설치는 것들은 평화에 찌들어서 강호가 무서운 줄 모른다.

꼴에 교관이라고 손속에 사정을 두었더니 뭐가 어째?

어지간하면 굳이 비무를 하지 않고 끝낼 생각이었다.

녀석이 기권을 하겠다면 그걸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부교관의 자리도 빼앗긴 마당에 제자들 앞에서 두드려 맞는 치욕까지 안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곱게 보내 주지 않는다!’

어떻게든 비무를 치러서 저 녀석을 묵사발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으리라.

‘개놈의 새끼. 내 발에 엎드려 짖게 만들어 주마. 이번에야말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만들어 주마!’

미간을 팍 구긴 맹손덕이 학장을 향해 돌아서며 포권을 취했다.

“학장님. 이제 참가자가 도착했으니 비무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흐음. 하지만… 상대가 시간을 어겼으니 이번 비무는 실격 처리로 결정을….”

학장의 말을 가로지르며 맹손덕이 외쳤다.

“재고해 주십시오! 비록 사 교관께서 시간을 엄수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 도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에게도 정당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기권승으로 부교관이 된다 하면, 강호가 저를 비웃을 것입니다. 또한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교관이 되었다 하여 생도들이 절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학장 옆에 앉은 천세명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귓속말을 전했다.

“학장님. 맹 대협께서 저렇게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시니, 비무를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운진도 거들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교관들의 비무는 생도들에게도 많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게다가 사 교관이 늦긴 했으나, 아직 미시초가 완전히 지난 것은 아닙니다. 비무를 진행하셔도 무방하다 봅니다.”

학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맹 대협께서 그리 이해를 하신다니 이번 비무를 진행하도록 하겠소.”

학장이 선언하자, 생도들도 나직이 환호했다.

그들로서는 자칫 구경거리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비강이 한 걸음 나서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비무를 시작하기 전에 이자에게 요구 사항이 있습니다.”

“요구 사항?”

학장이 눈살을 찌푸리자, 사비강이 맹손덕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거침없는 걸음걸이에 맹손덕이 저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다.

이윽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

사비강의 눈길을 그대로 받은 맹손덕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 뭐야? 이 새끼. 무슨 사람 눈빛이….’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사과하쇼.”

“뭐, 뭐? 무슨 사과를…?”

“꼬맹이들과 손을 잡고 날 함정에 빠트리지 않았소? 장차 부교관이 될 자가 그런 인간이면 되겠소?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내가 부교관 자리를 당신에게 양보하지. 이 자리가 그토록 탐이 난다면 말이오.”

느닷없는 발언에 생도들이 서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들었어? 손잡았다는 게 무슨 소리야?”

“설마 생도들과 저 사람이 음모를 꾸몄다는 건가?”

“에이, 그럴 리가….”

한편 단상에 모인 일년생 교관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자, 당황한 맹손덕이 버럭 소리쳤다.

“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내가 왜 생도들과 함정을…!”

“발뺌할 생각이오?”

“발, 발뺌은 무슨…!”

“흐음. 혹시 그 녀석들이 당신에게 부교관 자리를 주겠다고 했소? 하긴, 그 정도의 배경을 둔 녀석들이라면 어느 정도 손을 썼을지도 모르겠군.”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실력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이젠 날 모함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당신이 있었잖소? 그리고 날 기절할 때까지 두드려 팼지.”

“헛소리! 그리고 자네는 복면인에게 두드려 맞았으면서 어찌 나라고 장담하는가!”

“호오. 신기하군. 내가 복면인에게 두드려 맞았다는 건 어찌 알았소? 나는 복면인이라고 하진 않았는데.”

사비강의 말에 맹손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눈알을 좌우로 굴리더니 얼른 소리쳤다.

“벌, 벌써 보름이나 지난 일이다! 나도 듣는 귀가 있을 터! 이미 당신의 그 칠칠치 못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흐음.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시, 시끄럽다! 내 너른 아량으로 지각한 자네와 비무까지 하기로 결정했거늘, 나에게 말도 안 되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군!”

“흠, 좋소. 비무를 받아들이지.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어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고 싶어지면 말하시오. 그때는 내가 기꺼이 이 자리를 넘겨 드리리다.”

“뭣이? 넘겨 줘?”

맹손덕이 이를 부득 갈았다.

당장이라도 비무를 펼쳐 눈앞의 이 미친놈을 때려잡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 미친 새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그가 사비강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단상에서 학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비무를 시작하겠소. 두 분은 정도의 명예를 걸고 비무에 임해 주길 바라겠소.”

선언이 끝나자, 사비강과 맹손덕이 서로에게 형식상 포권을 취했다.

맹손덕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창을 쥐고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흥! 이 무적신창의 진가를 보여주마. 나중에 질질 짜며 매달려 봐야 소용없다!’

그런데….

막 공격을 하려던 맹손덕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그 뿐만 아니라 비무대를 둘러 싼 모두가 술렁거렸다.

“뭐지? 왜 아무것도 없는 거야?”

“창법 교관을 뽑는 자리 아니었어?”

“그러게. 사비강 교관 지금 확실히 빈손이잖아?”

그랬다.

사비강은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태연히 서서 맹손덕을 바라보기만 했다.

맹손덕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긴장해도 그렇지. 무인이 병기 챙기는 것도 깜빡하다니.”

“병기? 창을 말하는 거요?”

“그렇다! 어서 창을 가져오란 말이다!”

“아아, 됐소. 창이라면 거기 있잖소?”

“……?”

사비강의 손가락이 맹손덕의 창을 가리켰다.

맹손덕이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이건 내가 쓸 창이다! 당신이 쓸 창을…!”

“거 참, 말 많네. 어쨌든 창으로 싸울 테니 덤비라니까? 싸우다가 창을 놓치면? 그땐 다시 주울 때까지 기다려 줄 셈인가?”

“뭐, 뭐야?”

맹손덕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학장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계속 진행해도 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학장 주유천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진행해 보라는 뜻.

‘흥! 좋다. 네놈이 제대로 미쳐 버렸나 본데. 이젠 정말 후회해도 늦었다!’

맹손덕이 창을 꽉 말아 쥐더니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 나갔다.

‘내 평생을 갈고 닦은 우마신창(牛馬迅槍)의 일 초식이다!’

맹손덕의 창에 희미한 기운이 맺히면서 곧장 뻗어 나갔다.

그런데….

스스슥!

“……!”

맹손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분명 눈앞에 서 있던 사비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이놈이 어디서 잔재주를…! 뒤에 있구나!’

맹손덕이 얼른 창을 거둬들이며 우마신창의 두 번째 초식을 펼쳐 갔다.

허공을 가르며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창살에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파파팟!

하지만 이번에도 창날은 허공을 찌를 뿐이었다.

‘피해?’

사비강이 나른한 표정으로 창날 바로 옆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운… 운이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에게 죽도록 두드려 맞고 기절한 녀석이 아니던가?

맹손덕은 더욱 매섭게 초식을 펼쳐 가기 시작했다.

말과 소가 돌진하는 것처럼 거침없다고 하여 이름 붙은 우마신창.

그 이름처럼 수많은 말과 소가 사비강을 향해 쇄도하는 듯했다.

창로(槍路) 하나하나가 묵직하면서도 날렵했다.

하지만 그뿐.

창끝은 번번이 사비강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운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 상황.

사실 특상급 마공석을 복용한 사비강은 며칠 전에 비하면 탈태환골을 한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흡수한 마나로 인해 단전이 커지고 내공 또한 넘쳐났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마계의 전장에서 지겹도록 굴렀으니 이 정도의 비무는 그에게 그저 아이들 장난 수준에 불과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숱한 전장의 기억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흐아아앗! 죽어엇!”

마침내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맹손덕이 일갈을 터뜨리며 창을 내리쳤다.

우마신창의 초식 중 낙우창(落牛槍)이었다.

하늘에서 소가 떨어질 정도로 묵직하게 내려친다 하여 이름 붙은 초식이다.

비록 창날로 찌르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이 낙우창에 맞으면 온몸이 으깨져 죽는다.

그런데….

타앗!

사비강이 오히려 맹손덕을 향해 몸을 부딪쳐 오는 것이 아닌가?

내려친 창살이 그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가면서 사비강은 맹손덕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훗.”

섬뜩한 웃음.

맹손덕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 새끼는… 도대체 정체가 뭐야?’

찰나.

탁!

“어엇?”

사비강이 맹손덕의 손에서 창을 뺏어 드는 것이 아닌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얼른 힘을 주었지만, 이미 그의 손에서 창은 벗어나고 없었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계도를 시작하지.”

“무, 무슨 소릴…!”

쉬이이잇! 따악!

“아악!”

거침없이 떨어진 창대가 정확히 맹손덕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곧이어.

쉬이이잇! 따악! 쉬이잇! 딱!

“악! 크악!”

사비강의 손에 들린 창이 회초리처럼 날아다니면서 맹손덕의 몸 여기저기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딱! 따닥! 따악! 쉬이익! 딱!

“컥! 억! 허억! 크아악!”

일방적인 구타였다.

지켜보던 천세명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사비강의 공격 방식이 워낙 생각 밖이었기에 제대로 된 실력조차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그건 지켜보는 생도들도 마찬가지.

“어, 어이. 저게 지금 어떻게 된 거야?”

“글, 글쎄. 사 교관님이 강한 건지… 저 맹손덕이라는 사람이 약한 건지… 도통 구분이 안 되네.”

“지금 연극하는 건 아니겠지?”

“저 사람을 봐. 진짜로 울고 있어. 연극일 리가 없잖아.”

생도들의 술렁임에 계속되는 가운데, 사비강의 매질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마치 시정잡배가 몽둥이를 들고 마구 휘두르는 것과 진배없었다.

게다가 생도들의 말대로 맹손덕은 눈물까지 흘렸다.

온몸이 너무 아팠다.

“크헉! 악! 제발… 컥! 그만…! 악!”

쉬이익! 딱!

“컥! 내가 졌… 커억!”

복부를 창대 끝으로 찔린 맹손덕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숨을 쉬기도 힘들 지경.

사비강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어떻소? 사죄할 마음이 좀 생겼소?”

“크, 크윽. 내, 내가… 내가…”

“음. 잘 안 들리는군. 뭐라고?”

사비강이 쓰러진 맹손덕 옆에 쪼그려 앉았다.

맹손덕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졌….”

“아니, 아니지.”

“……?”

“난 사과할 마음이 생겼냐고 물었잖아.”

“그, 그게 무슨… 난 사과해야 할 이유가….”

“그럼, 어쩔 수 없고.”

사비강이 다시 창을 번쩍 치켜들었다.

맹손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마침내 사비강이 창대를 거침없이 내려치는 순간.

“흐이이익! 잘,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맹손덕이 얼른 사비강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사정했다.

고요한 비무대.

그곳에 오로지 맹손덕의 목소리만 아련하게 울렸다.

그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선배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사비강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을 툭 던졌다.

뎅그렁.

승부가 났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

그리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비무 과정.

마침 단상에 있던 일년생 교관 중 한 명이 더듬거리며 학장을 불렀다.

“학, 학장님… 선언을….”

“아… 알겠소.”

주유천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번 비무의 결과는….”

그때.

“학장님. 저는 창법 부교관 자리를 이자에게 양보하겠습니다.”

“뭐, 뭣? 그게 무슨….”

“이자가 잘못을 빈다면, 자리를 넘기기로 약조했으니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뜻밖의 상황에 교관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생도들 역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비강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저는 이 자리에서 검법 정교관 자리를 요청합니다.”

“뭣이?”

비무대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