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걸황무적
개방십년대계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언젠가, 개방은 중원 무림에서 개방의 위상을 올리기 위해 각 문파에 공문을 보냈다.
중원의 수많은 문파에 공문을 보냈지만, 도착한 사람은 겨우 다섯 명.
하지만 현재, 그들 다섯 명은 일황사제가 되었다.
중원 무림 역사상 이들처럼 강한 무인을 한꺼번에 배출한 문파는 없었다.
개방의 제자로 지내는 기한인 십 년은 이미 지났다.
일황사제, 그들이 개방을 떠나도 이제는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개방의 제자들이었다.
세상 편한 게 좋다면서 개방의 삶에 만족했기 때문.
그들의 문파에서는 당연히 문제를 삼았지만 당사자들이 확실하게 자신들은 개방도라 쐐기를 박았다.
주작남지의 한 특별한 장소.
개방도들은 그곳을 걸황지(乞皇地)라 불렀다.
그곳에는 개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 층짜리 대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걸황전이라 불린 건물의 주인이 걸황 남하림이었기 때문이다.
덜컹.
문이 열렸다.
방주 오종이 들어서자 준극남이 일어서며 그를 반겼다.
“방주님, 오셨습니까?”
“신창, 오랜만이군. 언제 왔는가?”
“반시진 전에 왔습니다.”
“걸황은 어디 있는가?”
“활개실에 신상군과 함께 계십니다.”
“바쁜가?”
양삼이 왔다면 상국의 일을 의논하는 듯했다.
“사업차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어떻게, 기다릴까?”
“제가 안에 들어가서 여쭈어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네.”
준극남은 조심스럽게 활개실에 다가섰다.
“주군, 오종 방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알겠어요.”
안에서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잠시 후.
오종은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방주님, 사람을 보내시면 될 것을 힘들게 오셨습니까?”
“혼자서 놀고 있는 줄 알았다.”
“아핫, 제가 날마다 놀고먹는 줄 아시는 모양이군요?”
“네 동료들은 무림의 일로 바쁘게 다니는데 혼자 이곳에 남아 있지 않느냐?”
“그건 우리 특외부가 제가 없어도 너무 일을 잘하지 않습니까.”
“음…… 하긴 그렇지.”
“근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아서 직접 찾아왔다.”
“으음…….”
남하림은 팔짱을 끼며 고민에 잠겼다.
방주 오종이 원하는 건 간단했다.
방주 위임 건.
오종은 남하림에게 방주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개방의 주요 인물들에게 이미 밝혔다.
삼십 대 초반 나이의 인물이 수장으로 선출된 문파는 없었다.
하지만 개방의 모든 개방도들은 찬성했다.
남하림의 나이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중원 상계를 최초로 통일시킨 상황(商皇)인 동시에 무림 최고의 무인이었다.
걸황이 방주가 된다면 개방의 위명은 한층 더 위상이 올라갈 터.
“방주가 되어도 별 할 일은 없어. 오히려 지금보다 더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안 그러냐?”
현재와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은근히 꼬드겼다.
남하림은 가장 최측근인 양삼과 준극남을 보았다.
“어때? 두 사람 생각은?”
먼저 양삼이 대답했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종 방주님 말씀처럼 방주위에 오르신다고 해도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음……? 좋은 뜻으로 말한 게 맞지?”
“전 항상 주군을 위해 생각할 뿐입니다.”
“자네도 중원 사람이 다 된 것 같아.”
스윽.
이번에는 준극남을 보았다.
“소신도 개방의 방주가 되신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도 후개의 신분이신데 하시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둘 다 적군이군.”
오종은 두 사람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걸황의 사람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방주를 받아들이게나. 그리고 난 이제 물러날 때가 됐네.”
“만일 제가 방주직을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개편이 되는 것입니까?”
“그건 방주가 알아서 하면 된다. 굳이 직책들을 바꾸지 않겠다면 그대로 계속 맡으면 되겠지.”
“그렇다면…… 뭐, 방주님이 원하신다고 하시니 맡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정말이더냐? 저번에는 안 하겠다고 반대하더만.”
“방주님께서 정말로 쉬고 싶으시다는 게 느껴졌어요. 나이도 많으신 분을 힘들게 할 수 없잖아요. 이제부터 편히 쉬십쇼.”
“허허허, 내 생각을 해주니 고맙군. 그럼 당장에 방장 즉위식을 무림에 알려야겠군.”
“예? 그걸 왜 무림에 알립니까?”
“당연히 알려야지. 우리가 보통 문파이더냐? 중원 최고의 문파가 아니더냐? 당연히 중원 무림에서 알아야지! 더구나 걸황의 일이라면 무조건 소문을 내야 하는 거거든.”
스윽.
양삼이 손을 올렸다.
오종의 말을 들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신상군,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지?”
“방주님, 이런 경우에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천하무림대회를 개최한다고 들었습니다.”
“오오오! 정말 좋은 생각이네. 최근 십 년 동안 중원에서는 천하무림대회가 열리지 않았지. 중원 무림인들의 축제가 될 것이네. 으음…… 근데…….”
오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천하무림대회에는 한 가지 따라오는 게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중원을 대상으로 하는 비무대회라 비용이 많이 들지 않겠는가? 그리고 우승자에게는 특별한 시상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게 없어서.”
“아, 그런 거라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방주님께서는 시작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하하하, 좋아, 좋아. 이거 정말 재미있겠어.”
스윽.
이번에는 남하림이 손을 들었다.
“제 뜻은 없나요?”
“어차피 따로 할 일도 없지 않는가?”
“그렇긴 해도 말이죠…….”
“자네는 가마아아안히 있게. 우리가 알아서 전부 할 테니.”
오종은 들뜬 상태로 밖으로 나섰다.
* * *
천하무림대회.
날짜. 시월 보름날.
장소. 개봉 대광장.
참가 자격. 소속 무관.
새로운 개방의 방주의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한 진정한 무림대회로, 정사마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예선전의 기한은 이틀.
예선을 통해 본선에 오를 무인 열여섯 명을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우승자에게는 포상금이 내려졌다.
우승자의 상금은 황금 일만 냥.
준우승자 상금 황금 오천 냥.
사 강 진출자 상금 황금 일천 냥.
팔 강 진출자 상금 황금 오백 냥
십육 강 진출자 상금 황금 이백 냥.
천하무림대회에 십육강에만 진출해도 개인이나 가문은 큰 금액을 얻을 수 있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 개봉으로 모여 들었다.
우승자 부상으로 걸황이 아끼는 황금타구봉을 걸렸다는 얘기가 돌자,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 * *
둥둥둥둥!
개봉의 대광장에 세워진 비무장 위로 북소리가 울렸다.
오만의 대인원이 비무대를 내려다보았다.
반시진 전부터 개방 방주의 즉위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즉위식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태상장로 장두철의 목소리가 울렸다.
“개방 제자 남하림은 나오너라.”
저벅저벅.
누런 황의 걸복을 입은 남하림은 오종의 앞으로 나온 뒤 무릎을 꿇었다.
장두철의 연설은 반각 동안 이어졌다.
“……후개 남하림을 개방의 방주가 되었음을 무림에 고하노라.”
둥둥둥!
비무대 주위를 둘러싼 개방도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의박운천!”
“협의천하!!”
“정의개방!!”
오종은 부복한 남하림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시게.”
그는 일어난 남하림의 허리에 구결의 자루 매듭을 달아주었다.
“취옥장을 받게.”
“고맙습니다.”
남하림은 두 손을 취옥장을 받았다.
오종은 대견한 시선으로 남하림과 마주쳤다.
“개방을 부탁하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스윽.
남하림은 취옥장을 손에 든 채 비무대를 둘러싼 관람석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력을 다해 소리쳤다.
“무림 동도 여러분. 본 방주의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하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오! 본 방은 고금제일대개방으로 중원 무림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 열심히 목숨을 바치고 있소이다. 중원 무림의 동도들은 잘 알 것이라 보오. 본인이 방주가 된 이상 선대의 방주이신 오종님의 뜻을 이어 더욱더 이 한 몸을 바쳐 열심히 뛰어다니겠소이다. 앞으로 어려운 일들이 생기거나 억울한 일들이 생긴다면 고금제일대개방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외다!”
“와아아아아아-!!”
“걸황무적!”
“고금제일대개방 만세!!”
함성이 비무대 위로 터져 나왔다.
귀빈석 자리 한편에선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개방이 고금제일대개방이 되었지?”
“교주님, 그러게 말이외다.”
초강유와 기성도 즉위식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남하림의 연설은 계속 이어졌다.
“중원인들이여. 마지막으로 고금제일대개방의 방주인 본인 걸황이 말을 하겠소이다. 천하는 개방이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와아아아아-!!”
“걸황무적!!”
“걸황무적!!”
걸황 남하림을 환호하는 함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무대 아래로 내려온 남하림을 향해 사제인 네 사람과 유미령과 신소소가 다가왔다.
성철각이 먼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부장…… 아니…… 방주. 감명 깊게 들었어. 눈물이 나올 뻔했다니깐.”
“철각 형, 나도 그랬는데…… 흑.”
팽유도도 감동을 받았는지 같이 손가락을 세웠다.
타악.
이휘연과 남하림은 손을 마주 잡았다.
“축하해. 이제 고생이 많겠어.”
“고생까지 하겠어요? 예전에 맹주 하듯이 하면 되잖아요.”
“후후후. 얼렁뚱땅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려고?”
“상황에 따라서는…… 휘연 형도 나중에 한자리 줄 테니 기대하세요.”
“…….”
이휘연은 갑자기 말이 사라졌다.
툭툭.
남하림은 당무독의 등을 두드렸다.
“이미 무독은 이미 약방의 책임자이니 앞으로 열심히 해주고.”
“뭐야? 벌써 우릴 부려먹을 생각이냐?”
“아하하! 그래도 보수는 많이 줄게. 양 총관에게 말해서 귀물들과 신물들을 많이 구해주면 되잖아.”
“음…… 그건 좀 생각해 보지.”
스윽.
열 살이 된 남연우는 손에 들린 꽃을 내밀었다.
“아빠, 축하해요.”
“고맙다.”
“저또요……!”
남연우 옆에 선 다섯 살의 소동.
신소소와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남연추였다.
남하림은 아이 두 명을 껴안았다.
“후후, 우리 이제 비무 구경을 할까?”
“네. 좋아요!”
“저또!”
개방의 방주가 된 남하림.
진정한 걸황의 시대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중원 무림은 그가 무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그를 가리켜 걸황무적이라 불렀다.
* * *
휘익.
비무대 위로 사내가 올라왔다.
“본인은 북궁세가의 북궁용이라 하외다.”
웅성웅성.
북궁세가란 말에 군중들 사이에서 술렁거렸다.
중원에서 북궁세가는 거의 잊혀가고 있는 문파 중 하나였다.
타아아앗.
북궁용을 상대하기 위해 비무대 위로 화산파의 젊은 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윽.
“본도는 현자배의 삼대 제자 현민으로 이름은 지석환이라 하오.”
“현민? 그대가 화산의 새로운 별이라 소문이 자자한 화산지성 현민이오?”
화산지성 현민.
이 년 전부터 섬서에서 조금씩 알려진 무림인으로, 최연소 나이에 매화검인이 된 고수였다.
“소문이 과장된 게 많아서이외다. 본도가 보기에 북궁 형의 무공이 대단해보이는군요.”
두우우웅!
비무대 위로 북소리가 울렸다.
두 비무자는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잡았다.
먼저 움직인 인물은 북궁용이었다.
북궁가의 독문검법인 칠성북두천궁검(七星北斗天宮劍)은 남궁세가의 창천검과 더불어 중원이대중강검이라 했다.
우우우웅-
칠성검이 움직이는 소리 또한 무거웠다.
그에 비해 화산파의 매화검은 화려하면서도 가볍고 빨랐다.
휘익!
매화향신법(梅花香身法)을 펼친 지석환이 한쪽 무릎을 세우며 뒤로 깃털처럼 가볍게 넘어갔다.
두 비무자가 펼친 비무는 순간적으로 십여 초가 지나갔다.
군중들은 첫 비무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틀밖에 되지 않는 예선전.
강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관망하다가 열여섯 명이 채워지면 나서고 싶어도 비무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휘리리릭!
칠성검의 검로 주위로 매화잎이 휘날리며 떨어졌다.
“……!”
매화잎이 칠성검 위로 내려앉았다.
채애애애앵!
북궁용은 손이 저릴 정도로 매화검의 위력을 알았다.
‘화산파도…… 한때 중원 제일의 위명을 떨친 적이 있거늘. 자만했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한 질 듯했다.
그때였다.
둥둥둥!
승패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뭐지?”
당사자인 북궁용조차 왜 비무를 그만두게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화산파의 지석환의 승이오.”
웅성웅성.
군중들은 물론 북궁용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체 왜 내가 졌단 말이오? 설마 화산파가 개방과 친하다고 해서 이러는 것입니까? 이게 걸황이 말하는 정의란 것이라면 실망입니다!”
휘익.
남하림은 비무대 위로 내려섰다.
‘헉…….’
북궁용은 마주 선 남하림의 기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어…… 엄청나다. 이게…… 천하제일인…….’
스윽.
남하림은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가리켰다.
정확히 매화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대체 언제……?’
만일 상대가 봐주지 않았다면 단번에 가슴이 찔려 죽었을 것이었다.
“죄…… 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승부에 몰입하다 보니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군요.”
“괜찮소. 사내라면 그 정도 오기는 있어야지. 그리고 북궁의 검도 좋았어. 다만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두 푼 정도 빼면 좋을 것 같군. 그렇게 되었다면 이번 승자는 자네가 되었을지도.”
“……!”
북궁용의 눈이 커졌다.
항상 부족했지만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단번에 찾아주었다.
덥석.
북궁용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절을 했다.
“걸황님,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로. 그리고 비무에 졌다고 상심하지 않아도 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하나씩 익히는 게 중요한 것이지.”
“걸황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얼마나 변했을지 보고 싶군.”
휘익.
남하림은 원래의 자리에 돌아갔다.
‘왜…… 걸황님이 대단하시다고 하는지 알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지석환을 향해 포권했다.
“졌소이다. 계속해서 건승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한 번 더 싸웠으면 합니다.”
북궁용은 비무대에서 물러났다.
둥둥둥!
비무대로 다음 도전자들이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