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321화 (322/328)

321. 조사하다

밤이 깊었다.

휘익!

객잔으로 다가선 인영.

남하림은 내력을 감추며 곧바로 이 층 객실로 향했다.

자시가 될 무렵.

안적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 그분이 저녁에 찾아오신다고 하셨는데…….’

저녁 식사를 한 후부터 남하림이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멍하게 기다리던 안적은 문득 혹시나 너무 사람이 많은 곳에 있었나 싶어 조용히 객실 밖으로 나왔다.

스으윽-

안적도 표사이기에 상대의 내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밖에 나온 지 반각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적이 몸을 움찔했다.

‘언제…… 부터 계셨지?’

천천히 뒤로 돌아서자, 미소를 띤 남하림이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내가 찾아온 게 부담이 되지 않나요?”

“아닙니다. 전혀…… 괜찮습니다.”

안적은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다행이네요.”

“아…… 네에.”

그는 대답을 하면서도 긴장이 계속되었다.

몰래 그를 찾아온 걸황.

굳이 그를 따로 만나려 한 이유가 궁금했다.

드디어 남하림이 입을 열었다.

“내가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입니다.”

“아…… 네에…….”

안적은 계속 같은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지금이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말하세요.”

“아닙니다. 걸황님께서 무엇을 부탁하신들 소인이 목숨을 걸고 하겠습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안적이 흠칫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말로 목숨을? 난 별로 무공도 강하지 않는데?’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부탁했다.

걸황의 곁에 강한 무인들이 존재하지 않을 리도 없다.

어떤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닐까?

걸황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엄청날 거라는 것.

안적은 결심이 섰다.

‘사람에게는 언젠가 일생일대의 천운이 내린다고 했다.’

그는 깨달았다.

걸황의 주위에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이 많던가.

그들에게 부탁해도 되었을 텐데, 한 번도 인연이 없던 인물에게 맡겨야 했다면.

극비 중에서도 극비에 해당하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안적의 목소리는 굳은 듯 딱딱했다.

“좋아요. 그럼…….”

남하림은 전음으로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안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일이라면…….’

굳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표국에서 밥을 먹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제법 여러 상단과 표국에 안면이 있다.

“괜찮겠어요?”

“네. 걸황님. 어렵지 않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내일 저희들은 떠나야 합니다만…….”

“내일 일찍 상국에서 사람이 찾아올 겁니다. 어제 했던 계약이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서 시간을 끌 거고요.”

“아…… 네에…….”

“괜찮겠습니까? 상단의 사람들에게 아마 욕 좀 얻어먹을 것 같은데…… 그녀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객잔의 일 때문에 영화령에게 미운털이 박혀 버렸다.

“후후후.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어요.”

휘이익!

안적이 고개를 숙인 뒤 앞을 보는 순간, 이미 남하림의 기척은 사라진 뒤였다.

‘이래서…… 걸황이라고 하는구나.’

꽈아악.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걸황의 부탁을 성공적으로 들어준다면……!

‘무조건 찾아야 한다.’

안적은 눈에 기합을 주었다.

탁탁.

그때, 뒤에서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표두 영구용이 밖으로 나간 안적이 걱정이 되었는지 그를 찾으러 나왔다.

“여기서 뭐 하냐?”

“아, 영 표두님.”

“둘이 있을 때는 편하게 해도 된다.”

“알겠습니다. 형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객잔에 돌아와서 계속 말이 없어서 그 일로 걱정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 아닙니다.”

“오늘 계약도 잘 됐지 않느냐? 걸황도 딱히 문제 삼지 않았고. 그만 들어가자.”

“하하, 알겠습니다…….”

잠시 후, 안적은 객실에 들어가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타악!

객실 문이 벌컥 열렸다.

씩씩거리며 들어선 영화령은 이불을 잡아당겼다.

“으? 으어어……! 영 소저……!!”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어떻게 할 거야!”

“예에? 저, 그게, 무슨 일입니까?”

“아, 어떻게 해! 이번 일이 잘못되면!”

“화령아, 그만해라.”

그녀 뒤로 영 표두가 빠르게 들어섰다.

“오빠. 지금 안 표사 때문에 일이 잘못됐잖아요.”

“허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들이 말하기를 잠시 서류상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다시 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안 표사 때문에 잘못됐다고 말을 한 적은 없어.”

“그, 그렇지만…….”

“어제도 걸황님을 만나지 않았느냐? 그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설마 걸황님께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영화령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안 표사에게 사과해라.”

“아, 아닙니다. 표두님. 영 소저의 잘못은 없습니다. 제가 영 소저의 심정을 알 듯합니다.”

안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도 다녀가셨네.’

얼른 옷을 입은 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안 표사, 어딜 가려고?”

“혹시라도 저 때문이라면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걸황을 만나러 가겠다고?”

“어떻게 된 일인지 누구라도 만나서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국에 안면이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를 만나보고 이유를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알겠다.”

안적은 건방진 태도가 가끔 문제 되긴 하지만, 상명상단의 다른 인물들보다 발이 상당히 넓었다.

‘빨리 움직여야겠어. 우선 호남 남부를 책임지는 남부상단을 알아봐야겠지.’

그는 이미 누구를 만나야 할지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정리를 해놓았다.

‘우선…… 여기 마당발을 찾으러 가볼까.’

* * *

남하림은 아침부터 상단을 나온 뒤 곧바로 마죽거리로 향했다.

개봉으로 떠나기 전에는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이곳에 개방 분타가 있을 줄이야.

‘내가 여기에 오다니…… 후후.’

장사에서도 가장 더러운 장소라 알려진 마양촌.

남하림은 마을을 지나 마죽거리라 불리는 마양촌에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주위의 시선들이 남하림의 움직임에 집중됐다.

다다다다-

멀리서 빠르게 달려오는 무리들의 소리.

수십 명의 개방도들이 분명했다.

‘역시 소식은 빨라.’

장사분타주 구문상은 걸황이 마죽거리로 들어섰다는 말에 빠르게 달려 나왔다.

분타에 들어서는 청년.

‘오우…….’

그는 달려오면서도 감탄이 나왔다.

남하림의 신형에서 흐르는 절대자의 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위엄이란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분타를 맡은 구문상이라 합니다.”

가슴이 배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구 분타주군요. 반갑소이다. 진작 찾아봐야 했는데.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아닙니다. 지금 오신 것만 해도 무한의 영광이옵니다.”

스윽.

남하림은 손을 들어 주위에 모여든 개방도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 반갑소이다.”

“걸황님을 뵙습니다.”

개방도들의 외침에 마죽거리가 들썩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죠.”

“아 이거, 누추한 곳이라…….”

“들어오는 길에 보니 본 방보다 깔끔하게 청소도 되어 있더군요. 게다가 누추하면 어떻소이까? 본인도 개방의 후개이외다.”

“아, 하핫, 네. 드시지요.”

구문상은 얼른 앞장서며 분타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남하림은 안을 살피고는 바로 바닥에 앉았다.

“내가 온다고 청소를 한 모양이네요.”

“걸황님께서 오신다고 하는데 가만히 있기도 뭐해서…….”

“모두 앉으세요.”

“넵. 알겠습니다.”

분타의 개방도들은 걸황을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여기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걸황님 덕분에 잘 보내고 있습니다.”

“상국에서 잘해주는 모양인가 보네요. 잘됐습니다.”

남하림은 가볍게 서너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분타주께 부탁할 게 있소이다.”

“부탁이라니! 당연히 시킬 일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셔도 됩니다.”

“화엄호를 압니까?”

“화엄호라면…… 형산에 있는 그 장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예전에 형산을 지나치다가 화엄호라는 호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구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큰 호수는 아니에요.”

“그곳은 왜?”

“화엄호에 새로 지은 건물이 있다고 하더군요. 나도 열 살 때 가본 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 건지 모릅니다.”

구문상은 아직 남하림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내가 알기로, 십 년 안에 새로 지은 건물은 상국의 사당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국의 사당이시라면…… 걸황님의 선조분들을 모신…….”

“나도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곳에 가서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나도 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화엄호에 접근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정확히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평소에 누가 출입을 하는지 조사를 해주세요.”

“…….”

구문상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장소도 아닌 남천상국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다.

“이 일은 여기 분타 외에는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입니다.”

“본 방에도 말입니까?”

“당분간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나가는 즉시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특별한 게 나오면 연락 주세요. 그리고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중간에 그만둬도 됩니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스윽.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죽거리를 나왔다.

분타에서 머문 시간은 반시진 정도.

남하림은 바로 남천상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거닐었다.

‘곤란한데.’

주위에서 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나오는지 확실치 않았다.

분타에서부터 뒤를 따르는 기.

남천상국에는 하루 전에 도착했으니,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이미 무림에 소문이 났을 것이다.

‘누군지 한 번 잡아볼까?’

남하림은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 * *

‘허어…… 어디로 가는 것이지?’

남하림의 뒤를 따르던 사내.

걸황은 남천상국이 아닌 마을 밖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망설였다.

마을을 벗어난다면 미행을 들킬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헉?’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사라졌다.’

지금까지 미행을 했던 남하림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망설인 순간 놓친 것이다.

‘내가 미행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실감이 났다.

중원 최고의 무림인.

툭툭.

어느샌가 가까이 접근한 걸황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후후후, 허튼짓하면 바로 죽습니다.”

웃음이 깃든 목소리였지만, 사내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살기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뒤로 돌아서세요.”

남하림의 목소리에 사내는 돌아섰다.

팔짱을 낀 채 미소를 띤 표정이었지만, 눈빛에는 언제라도 죽일 수 있는 살기가 가득했다.

‘나를 죽일 수도 있겠어.’

사내는 점점 몸이 굳어져 갔다.

“일단 이름부터 물어보겠어요.”

“천무영이라 하오.”

“천무영?”

사내의 이름을 되새겼다.

어디선가 들은 이름.

끄덕.

남하림은 바로 기억을 해냈다.

“아버지의 호위 중에서도 특호위가 있다고 지나가는 듯 말한 적이 있지요.”

“……!”

정말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얼핏 지나가면서 들었던 그 일까지 기억한다는 것인가?’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맞는 모양이군요.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비밀리에 호위를 따로 붙여놓은 건가?”

“…….”

천무영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분명 그게 아님을 잘 안다.

하지만 남하림의 말을 인정하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 네. 맞습니다. 국주님께서 혹시나 좋지 않는 일이 생길까 걱정을 하셨습니다.”

“고맙기는 하나, 아버지께서 내가 누군지 잘 모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무림에서는 걸황이라고 하면 제법 알아주는데. 큰일 날 뻔했습니다.”

‘큰일? 뭐가 큰일 날 뻔했다는 거지?’

남하림은 마치 그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내가 만일 물어보지 않고 무작정 죽였으면 어떻게 될 뻔했겠습니까?”

“그…… 러게…… 말입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이 호위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조심해라고 주의를 주세요. 오늘부턴 묻지 않고 바로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타악.

남하림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친 뒤 돌아섰다.

“상국으로 가는 길이니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

‘욱.’

천무영은 움직일 수 없었다.

어깨를 가볍게 쳤던 남하림의 손짓에 온몸에 흐르던 내력이 사라진 듯했다.

다행히 반각이 흐르자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들킨 것도 있지만, 방금 전 어깨를 치는 짧은 순간에 내력을 거두었던 것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걸황이군.”

직접 상대를 해보니 걸황의 이름이 얼마나 무겁고 대단하지 알 수 있었다.

“국주님께 보고를 드려야겠어.”

남하림의 경고는 분명했다.

건드리지 말라.

천무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두 분께서는 무슨 일이시기에…….”

아버지와 아들.

하지만 천무영이 보기에도 서로에게 비밀이 있는 듯 보였다.

‘큰일이 아니기를…….’

천무영은 굳은 표정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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