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다
깊은 야밤을 한없이 깨우는 소리
둥둥둥둥둥둥!
승리의 북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훌쩍.
무거우면서도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
덩치 큰 아이처럼 씩씩한 걸음으로 황보궁이 당무독과 성철각 곁에 다가왔다.
황보궁은 만족했다.
“하하하! 이겼다.”
창천무장군이 물러난 모습을 지켜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습 작전이 완벽히 성공했다.
툭툭.
성철각은 당무독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무독, 수고했어. 계획대로 된 것 같아. 역시 머리가 좋아.”
“철각이 전부 했잖아. 궁아도 수고했고.”
“내가 아무리 날뛰고 다녀도 저놈들을 전부를 상대할 수 없잖아. 무독이 아니면 저놈들을 어떻게 전부 상대할 수 있었겠어?”
창천무장군의 기세를 단번에 떨어뜨린 것은 당무독이 펼친 독의 위력이었다.
“물론 독이 한몫을 하긴 했지. 하지만 독은 독일 뿐이야. 모두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길 수 없어.”
따아아앙! 따다다다당!
“얼씨구……! 조아아아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
개방도들은 승리의 순간을 달밤의 타령으로 지새웠다.
* * *
은하궁에서 나온 십여 명의 인물들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개방의 싸움을 면밀히 지켜보았다.
이제 천하일방이라 불리는 그들이 어떻게 싸울지 궁금했으니까.
기습 작전은 완벽히 성공했다.
거기다 창천무장군의 진영에 뿌려진 독은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다.
당무독은 횃불 속에 독을 심어 두었다.
연무독(煙霧毒).
군막이 불에 타며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진영 전체에 연무독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대진영을 중독시킬 때는 살상력이 강한 독은 필요 없었다.
비록 사전에 해독제를 복용했지만 기습해야 하는 아군에게 절명독은 위험했다.
그러니 상대의 움직임을 저하시키면 될 정도의 독이면 충분했다.
“일황사제와 싸우기 전에는 독에 대해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소이다.”
적후룡은 독에 대한 두려움을 여태껏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독제 당무독은 지금까지 알려진 무림의 독과는 발상 자체가 달랐다.
어떻게, 어디서, 어떤 종류의 독이 나타날지 몰랐다.
소문에 의하면 독제는 항상 새로운 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독을 상대하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를 한들, 독제 당무독의 독은 어제와 또 달랐다.
“앞으로 개방과는 싸우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싸우기 전에 독을 뿌려놓는데 어디 겁이 나서 싸우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새로 만든 독의 종류가 벌써 백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독제가 아니라 독광입니다.”
은하천공군의 수장 범기도 질린 듯 몸서리를 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윽.
유미령은 돌아섰다.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그만 돌아가지요. 밤늦게 싸우느라 피곤하실 텐데 우린 준비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하림 일행은 사천성을 넘어 섬서성으로 넘어섰다.
원래는 호북을 지나 하남성으로 곧장 올라갈 계획이었지만, 새롭게 뚫린 뱃길을 이용하기로 한 것.
우연인지 하남성으로 가는 뱃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추금루를 지나가야 했다.
“오늘은 추금루에서 하루를 보내야겠어요.”
“……끄응.”
만통자는 좋지 않는 기억이 떠올랐다.
“노인장, 표정이 왜 그렇소이까?”
“아아아닙니다.”
“여기 싫어했던가요? 제법 술맛도 좋은 걸로 기억이 나는데.”
번쩍!
만통자의 눈빛이 순간 살아났다.
그러고 보니 잊었던 술맛이 생각났다.
“당연히 여기에서 하루를 머물러야지 않겠습니까.”
“엇, 하림 오빠, 여기에 온 적이 있었어요?”
신소소가 물었다.
“예전에 한 번 지낸 적이 있어. 루주도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 그때 재미있게 뱃놀이도 했거든.”
세 사람은 빠르게 말을 몰았다.
* * *
추금루 루주 구만총은 가슴이 뛰었다.
한 시진 전 찾아온 인물이 있었다.
거지 복장의 사내.
“걸황께서 오십니다. 조용한 방을 준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거지가 눈에 보일 때마다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추금루 앞을 지나가는 거지가 있다면 먹을 것을 나눠주고,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거지에게 동냥을 주었다.
구만총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반시진 전부터 추금루 앞에서 기다렸다.
항상 손님들로 차 있던 추금루는 이미 조용했다.
하루 휴무일로 정한 뒤 손님들을 돌려보낸 것.
두두두두두두두-
다그닥. 다그닥.
그때, 백여 명의 기마군사들과 사두마차가 추금루 앞에 멈췄다.
구만총은 인상을 썼다.
‘하필이면…….’
최근 성부에 발령을 받은 성주였다.
술을 마시러 오는 것은 좋다.
그런데 예전 성주와 달리 그의 술주정이 굉장히 심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선을 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둘 뿐이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며 성주가 내렸다.
“하하하하! 루주가 어찌 알고 본인을 맞이하려 나왔는고.”
“성주님, 안녕하십니까?”
그는 추금루를 둘러보았다.
화려했던 불빛들과 지금쯤이면 들려오던 악기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오늘 손님들이 없구려. 장사는 안 하는가?”
“그게 아니라 귀빈이 오신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손님들을 받지 않습니다.”
“오호? 귀빈이라?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기에 장사까지 안 하는 거요?”
“걸황께서 오시는 중이십니다.”
“……!”
성주 양지후는 순간 멈칫거렸다.
걸황 남하림.
황제와 그가 어떠한 사이인지 관부의 인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왕 주민을 황제로 추대한 인물이 바로 걸황 남하림이었다.
성주가 추금루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루주가 걸황과의 친분이 있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뭐, 뭣들 하느냐? 오늘은 속이 안 좋구나.”
“성주님, 돌아가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게…… 낫는가 싶었는데 여기에 오니 안 좋군. 크흠!”
두두두두.
그때였다.
추금루에 달려오는 기마의 소리였다.
“앗, 걸황님이시다.”
“……!”
소문으로 친분이 있다고 들었기에 조심하긴 했지만, 객잔의 루주와 정말로 친할까 의심했었다
입구에 멈춘 세 마리의 말.
휘익!
남하림이 말에서 내렸다.
“아하하, 루주님, 오랜만이외다.”
“걸황님……!”
구만총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성주 양지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 * *
세 사람이 별관에 들어섰다.
“여기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네요.”
신소소가 그들을 바라보는 추금루의 사람들을 살피며 환하게 말했다.
남하림은 그들과 일일히 반갑게 손을 잡으며 인사했다.
그러고는 각자 편안한 자리에 앉았다.
“천주님, 이제 급하게 갈 필요가 없는 듯합니다.”
그동안 다급하게 움직였던 세 사람이었다.
추금루에 도착하기 직전, 걸비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사제(四帝)들이 개방과 함께 나서서 사무련과 은하궁에서 완벽한 대승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이라면 쉬운 일이겠지요. 근데 정말로 창천에서 두 곳을 건드릴 줄은 몰랐군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신무맹은 아직 건드리기 어려울 테니, 혹시 두 곳을 건드리지 않을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쨌든 두 곳에서 모두 대승을 거두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했다.
하지만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에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준 것 같았다.
‘천주님께서 왜 그러시지?’
남하림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계십니까?”
“의도하진 않았지만, 창천에게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르쳐 준 것 같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창천과 한 번의 결전으로 끝을 내고자 했어요. 그 힘이 바로 신무맹이었고요.”
“……아…… 하.”
만통자는 이해가 되었다.
창천과 상대할 신무맹.
신무맹은 연합 세력이었다.
단단한 지속력을 지니고 있지만 무너뜨릴 방법은 많다.
그렇기에 남하림은 단 한 번으로 신무맹의 힘을 모아 창천을 상대하려고 했었다.
근데…….
이번 일로 창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려준 꼴이 되어 버렸다.
“천주님, 창천에서 신무맹에 속한 각 문파들을 공격할 것 같으십니까?”
“맞아요. 얼마 전까지라면 모를까. 그는 이제 신무맹을 향해선 전면전을 하지 않겠지요. 내가 그라도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위험을 부담하지 않았을 겁니다.”
남하림의 말이 맞았다.
굳이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었다.
“창천주는 신무맹의 힘을 줄이고자 할 테죠. 창천이 각 문파를 빠르게 공격한다면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 문파가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일이네요.”
“…….”
“창천주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어요. 무림을 오늘 무너뜨리나, 일 년 뒤에 무너뜨리나 그에게 의미는 같은 것이지요. 차근차근 하나씩 신무맹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대응을 너무 잘한 것이 오히려 최대의 악수를 둔 게 아닌가 싶었다.
‘창천주가 정말로 내 생각대로 한다면…… 무림은 절망으로 빠지게 되겠지.’
남하림은 기우이기를 바랐다.
* * *
“크하하하하!!”
창천궁이 무너지도록 대소가 터졌다.
가부좌를 취한 젊은 사내.
공신 해정의 몸에서 용문자의 신체로 대혼술법을 펼친 창천주였다.
목옥창은 숨을 죽이며 허리를 숙였다.
중원에서 날아온 소식.
창천멸천군과 창천무장군에 관한 보고를 전해 주었다.
뚝.
허리를 숙인 그의 얼굴에서 맺힌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단하군. 기대 이상이야.”
“…….”
창천주의 한마디.
다행히 노기가 아니었다.
뭔가 신나는 장난감을 찾은 듯한 아이의 들뜬 목소리였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군.”
창천주는 이 짜릿한 느낌을 계속해서 만끽하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대항한 인물들은 많았다.
하나 다들 얼마 가지 못했다.
비슷한 일들이 서너 번 이어지자 따분해졌다.
그들도 충분히 강했지만, 결국에는 쉽게 무너졌다.
그런데 이번 녀석은 달랐다.
항상 대응을 하고, 반응을 보이며, 다른 행동을 했다.
‘크크크크. 재미있어! 계속 싸우고 싶군.’
이번 싸움은 오래 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상대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무맹을 압박하도록 했더니 그놈들은 그대로 둔 채 거지들로 이겨 버리는군. 이건 생각지도 못했어. 그렇지 않은가?”
“넵. 그렇사옵니다.”
“세월을 살았지만, 난 거지들이 이렇게 잘 싸울 줄은 몰랐군. 개방은 그저 정보나 줍고 다니는 거지인 줄 알았지. 큭, 새롭게 봤어.”
“…….”
“혹시 거지 소굴에도 우리 사람이 있는가?”
“송구하옵니다. 개방에는 없습니다.”
“왜 없지?”
“그게…….”
목옥창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더러워서…… 죄송하옵니다.”
“그것이 이유였나? 더러워서 개방에 보내지 않았다?”
“아닙니다.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그들은 거지 생활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밖에서 자는 것과 하루 한 끼의 음식, 그리고 목욕도 하지 않는 생활에…….”
“음…… 걸황이란 놈은 그런 생활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소신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겠사옵니다.”
“쯧쯧.”
중원의 대문파이면서도, 유일하게 창천의 인물이 들어서지 못한 곳이 개방인 셈이었다.
“멸천군과 무장군이 깨져도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군.”
“무슨 말씀이신지요?”
“걸황, 이 녀석이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신무맹을 아껴놓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최후에 신무맹과 싸우고자 했지. 하지만 이 방법은 아니었어. 그랬다면 어쩌면 우리가 당했을지도 모른다.”
남하림의 뜻대로 되었다면 위험 부담이 컸을 것이다.
“두 곳이 당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긴 것이다.”
“아…… 네에.”
목옥창은 안심이 되었다.
창천궁으로 들어오기 전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가.
“그래도 실패한 그놈들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지.”
“소신이…… 한 말씀……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그대가 그들을 살려주라는 말을 할 거란 생각은 안 드는군.”
“…….”
목옥창은 말문이 막혔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잘라 버렸다.
“왜 말을 하지 않지? 혹시 그놈들을, 아니, 가묵풍은 죽었고. 우초문을 살려주라고 하는 말이 아니겠지?”
“……송구하옵니다. 그들은 은하궁과 사무련과의 싸움에서 진 것이 아닙니다.”
“목옥창.”
“넵. 창천주님, 말씀을 하십시오.”
“많이 약해졌군. 예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텐데.”
“송구하옵니다.”
창천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물러가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목옥창은 곧바로 창천궁을 나섰다.
창천주의 시선은 밖으로 나간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향했다.
“영원함이 모두를 약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도…….’
* * *
급박하게 돌아가던 무림의 상황은 당장에라도 큰일이 벌어질 듯 긴장감이 휘돌았다.
사무련과 은하궁을 동시에 공격했지만, 창천은 대패를 당한 채 물러났다.
하나 창천을 막은 곳은 사무련과 은하궁이 아니었다.
개방이 홀로 두 곳을 상대하여 창천의 두 대군을 막아냈다는 소문이 중원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중원 무림은 환호했다.
일황사제와 개방이 있으니 무림은 안전할 것이라 자신했다.
남하림이 신무맹으로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다.
무림의 눈은 또다시 신무맹으로 향했다.
“공자님, 서장에서 들어온 황금 오만 냥과 환비균장 십만 관을 처리했습니다.”
“잘했어. 태원평은 어떻게 됐어?”
“환금호 또한 십만 관을 의국단에 보냈습니다.”
“혹시 손해는 아니겠지?”
“얼마 전까지는 환각 성분을 추출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현재는 숙달이 되었는지 줄어들고 있습니다. 올해 말까지는 흑자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다행이네.”
“그리고…… 태원평과 재계약을 해야 합니다.”
“벌써?”
“그때 당시 급하기도 했지만, 기간을 짧게 정했습니다.”
“양삼이 알아서 해. 아, 그들과 다른 문제가 있는 모양인가 보네.”
보통의 경우 선조치 후보고를 했었다.
“태원평에서 공자님과 계약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를 만나겠다고?”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상당히 먼 길인데 굳이 힘들게 왜 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힘든 거야 그들이 힘들 테고. 알아서 잘 오겠지. 알겠어. 오면 만나보자고.”
양삼은 보고할 내용들을 전부 마치고, 가지고 온 서류를 모두 접었다.
“끝난 모양이네?”
“보고는 전부 마쳤습니다. 이건 보고와는 다른 건입니다.”
양삼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중앙상국에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하남성에서 식량과 황금의 물동량이 급격하게 많아졌습니다.”
“어느 정도?”
“세 배의 양입니다.”
“세 배?”
엄청난 물량이 틀림없었다.
남하림의 표정이 단번에 변했다.
식량과 황금의 물량 변화는 거의 일정하다.
‘이건…… 뭔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