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75화 (276/328)

275. 도발

은하궁의 비선당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부명욱은 정찰을 나간 비선무에게서 끊임없이 소식을 받았다.

은하궁으로 다가오는 창천의 무리들.

‘이틀 뒤 정주 초입에 도착하겠군.’

창천에서 보낸 오천의 대군.

적지 않는 인원이기는 하나 은하궁을 상대로 싸우기에는 모자람이 보였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혹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하지만 정주 주위를 살펴도 다른 곳에서 합류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전부였다.

‘궁주님께 보고를 드려야겠군.’

부명욱은 비선당을 나와 곧바로 은하비전으로 향했다.

은하궁주의 건물.

원래는 궁주전에서 지내야 했지만, 유미령은 은하비전에 거처를 잡았다.

은하비전은 은하궁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소박하게 지어진 전각이었다.

드륵.

부명욱이 은하비전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은하총팔군장 적후룡이 먼저 함께하고 있었다.

스윽.

그는 유미령과 적후룡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앉으세요.”

은하궁을 이끌어가는 세 명의 인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명욱은 방금 들어온 전서의 내용을 알렸다.

“창천에서 보낸 대군이 이틀 뒤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창천에서 나온 대군의 목적지가 확실하게 은하궁임을 확인했다.

이틀 뒤에는 어떤 식으로도 부딪혀야 했다.

창천의 대군에 맞서 은하궁의 대응을 정할 마지막 회의였다.

“궁주님,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유미령은 두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물었다.

궁주의 자리.

그녀는 이제 최후의 결정권자이기에 함부로 결정을 내리고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결정이 은하궁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지 항상 고민하며 생각해야 했다.

먼저 부명욱이 의견을 밝혔다.

“궁주님, 저들은 사무련을 향해서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봐서는 무력시위일 뿐입니다. 압박을 가하려는 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그들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본 궁이 굳이 대응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부 당주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유미령은 시선을 적후룡에게 돌렸다.

그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적후룡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으음…….”

그는 천천히 결정을 내린 뒤 생각을 밝혔다.

“소신 또한 부 당주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압박하려는 게 맞습니다.”

“두 분께서는 가만히 지켜보는 게 좋다고 보시는 모양이군요.”

“본 궁이 힘이 없어서 싸우지 않는 게 아닙니다.”

적후룡은 그녀에게 이어 확언하듯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싸움은 하지 않아야겠지요. 하지만…….”

두 사람의 뜻이 최선인 것을 안다.

다만 유미령은 가만히 당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후 정화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그녀는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즉각 행동을 보이며 반응하는 성격이었다.

만약 유미령이 소극적인 성격이었다면 은하궁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적후룡과 부명욱은 유미령의 대담하고 호전적인 성격을 잘 알았기에 적극 찬성했다.

“궁주님, 잠시 물러나 있을 뿐입니다. 본 궁의 힘이 약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미령이 보기에도 그들의 의견이 최선이었다.

적후룡이 말을 이었다.

“창천에서 오천의 대군을 보낸 것은 적당하게 싸워 본 궁의 힘을 소모시키려는 뜻도 있습니다. 그건 사무련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수하들의 목숨은 물론 본 궁도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합니다. 분명 창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싸우도록 유도할 만큼 인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유미령의 목소리에 기운이 살짝 빠졌다.

부명욱은 곧바로 그녀의 기분을 살폈다.

그녀의 기분을 올리는 방법이 있다.

“예전에는 창천주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인가요?”

“대단하긴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듯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유미령은 살짝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걸황 때문입니다.”

“걸황…… 말입니까?”

“창천에서 우리를 압박하려는 이유는 신무맹 때문이지 않습니까? 걸황이 대단하지 않다면 신무맹도 겁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후후후. 부 당주의 말이 맞습니다. 창천주는 이미 걸황에 대해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대단한 청년입니다. 중원에 이보다 더 나은 청년은 없습니다. 아마 고금 제일의 무인이 될 것입니다.”

유미령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미소를 지울 수는 없었다.

남하림을 칭찬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리 없었다.

“두 분의 뜻에 따라 본 궁에서는 방어를 하는 것으로 하겠어요.”

“궁주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감사드립니다.”

똑똑.

그때, 문밖에서 유미령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궁주님. 윤전입니다.”

“들어오세요.”

드륵.

은하비전 호위단주 윤전이 들어섰다.

세 사람을 향해 그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부명욱이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인가?”

“독제와 각제께서 개방도들과 함께 본 궁에 도착을 했습니다.”

“개방에서?”

“네. 거의 이만의 개방도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

이만이라는 숫자에 부명욱과 적후룡의 눈이 커졌다.

엄청난 인원이었다.

그것도 촉박한 시일 내에 모은 인원일 것이었다.

역시 개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궁주님, 걸황께서 본 궁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보낸 모양입니다.”

유미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무독과 성철각이 찾아왔다면 앉아서 맞이할 수 없었다.

“그분들은 맞이해야겠습니다.”

그녀는 은하비전을 나온 뒤 곧장 정문으로 향했다.

* * *

기성과 신명항은 수항정으로 들어섰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

이휘연과 팽유도가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군.’

신명항이 반갑게 인사했다.

“허허. 귀찮은 일로 먼 길을 왔군요.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멀지 않았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뭐랄까? 그대들을 보니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소이다.”

창천의 소식이 전해진 후 신명항을 괴롭히던 두통은 두 사람을 만나는 순간, 언제 지끈거렸냐는 듯 사라졌다.

신명항은 현재의 문제는 잊어버린 듯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두 분께서 소소를 잘 보살펴 주신다고 들었소이다.”

“아닙니다. 신무맹의 모든 사람들이 소소를 좋아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신명항은 늘 걱정이 되었다.

신무맹에 가서 괜한 미움을 받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지요.”

신명항은 두 사람에게 자리를 권했다.

척척척척.

네 명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팽유도가 나섰다.

“걸황인 맹주께서 마교에 가면서 부탁을 하셨습니다. 창천에서 신무맹이 아닌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면 개방도와 함께 싸우라고요.”

“걸황께서 예상을 했군요.”

“그분은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팽유도의 말에는 강한 믿음을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소이다.”

“기 련주님. 이번 일은 우리들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사무련은 뒤에서 보고 계시면 됩니다.”

“함께 싸우면 쉽게 이길 수 있지 않겠소이까?”

“당연히 이기겠지요. 하지만 창천에서 사무련을 압박한 이유는 바로 신무맹 때문입니다.”

‘신무맹에서도 알고 있군.’

이휘연과 팽유도가 신무맹이 아닌 개방도를 이끌고 싸우고자 온 이유이기도 했다.

걸황이 원하는 것은 창천과 신무맹을 포함한 중원 무림인들의 전쟁이었다.

“검제의 뜻을 알겠소이다. 그대들을 따르겠소이다.”

* * *

창천멸천군은 사무련의 초입 마을인 중형촌에 들어섰다.

이미 소문을 들었는지 중형촌의 마을 주민들은 몸을 피신한 상태였다.

일반적인 싸움이 아니라 대군을 이끌고 온 전쟁이었다.

무림인들 사이에 있다 괜히 불똥이 터져 다칠 수 있었다.

사무련까지 중형촌에서 빠른 걸음으로 진군하면 두 시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곧장 사무련으로 진군을 해야 했지만, 창천멸천군은 멈춰 섰다.

전방에 정찰을 나갔던 멸천군 일대의 보고.

개방이 사무련의 앞을 막고 있었다.

‘신무맹이 아니라 개방에서?’

가묵풍은 고민에 잠겼다.

사무련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압박을 주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개방이 나타났다.

‘이건 원래의 계획에 없었거늘…….’

예전이라면 개방 정도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천하제일대개방이라며 전 중원 무림의 인정을 받는 곳이었다.

하지만 개방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무작정 물러날 수 없었다.

‘천주님은 절대로 용서할 분이 아니시다.’

창천주에게 후퇴란 죽음과도 같았다.

‘결국 처음부터 하나밖에 없군.’

상대가 개방이든 사무련이든 적당하게 치고 빠지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가묵풍의 생각이었다.

“진군하라!”

둥! 둥! 둥!

가묵풍의 명에 병사들이 진군의 북을 치기 시작했다.

북소리가 울렸다.

이휘연과 팽유도는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창천멸천군의 진군 소리를 들었다.

지평선 위로 붉은 깃발이 펄럭거리며 솟구쳤다.

팽유도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드디어 오는군요.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요.”

“물러날 수는 없었을 거야. 예상대로라면 치고 빠지겠지.”

“그건 저들 생각이지 않습니까? 우리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요.”

“맞아. 여하튼 우리도 저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응. 알겠어요.”

팽유도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탁탁탁탁탁!

이만의 개방도들이 한 손에는 타구봉을, 반대 손에는 표주박을 꺼내 들고 일제히 치기 시작했다.

“가볼까요?”

“오랜만에 몸을 풀겠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휘연과 팽유도는 서서 창천멸천군을 향해 걸어갔다.

“아이고…… 정신이 없군.”

한편 개방도들과 멀리 떨어져 진군을 구경하던 사무련의 주요 인물들은 귀가 울릴 정도로 멍멍했다.

“저놈의 소리 때문이라도 이기겠소이다. 어디 정신이 하나도 없군요.”

“허허허, 본인도 같은 생각입니다.”

사무련의 인물들만이 아니었다.

개방을 향해 다가오는 창천멸천군 또한 마찬가지.

가묵풍은 이미 마주치기 전부터 인상이 굳어졌다.

수많은 개방도들.

그들 중 선두로 다가오는 두 명의 인물들에게서 흐르는 무공의 기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강한 기운이었다.

두 진영이 진군을 멈추었다.

멸천군 삼대주 상혁천이 가묵풍 앞으로 나섰다.

창천멸천군의 다섯 대주 중 호승심이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군장님, 소신이 저놈들에게 창천의 무서움을 보여주겠습니다.”

“보통 거지 놈이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거지는 거지일 뿐입니다. 제가 따끔하게 혼을 내주고 오겠습니다.”

휘익.

상혁천은 중앙으로 나서 당당하게 소리쳤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개방의 거지들은 들어라! 본인은 창천멸천군 삼대주 상혁천이다! 본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은 놈은 앞으로 나서라!”

팽유도는 피식 실소가 뱉었다.

“웃긴 자네요. 우리가 누군지 알고 떠드는 것 같지는 않는데요?”

“제법 자신이 있는 모양인가 보지.”

“저자가 원하니 제가 가르침을 받고 오겠어요.”

“수고해.”

타아앗!

팽유도는 곧바로 신형을 날렸다.

중앙으로 나오자 상혁천이 보였다.

‘상당히 건방진 사람이군.’

언행일치가 확실했다.

고개를 비스듬히 들고 어깨를 편 채 서 있는 모습을 하고는 팽유도를 아래위로 훑어 내렸다.

상혁천 또한 멀리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팽유도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등에…… 도를 메고 있는 거지.’

도를 주무기로 펼치는 개방도.

“네…… 놈이…… 도제?”

휘릭!

팽유도는 대답 대신 등에서 묵흑반도를 꺼냈다.

짧고 굵은 반도.

‘……도제가 맞다.’

팽유도는 손에서 계속 반도를 돌렸다.

겨우 약관의 나이.

일반 성인보다 작은 듯한 신체.

첫 인상만으로는 화경에 이른 초고수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먼저 공격을…….’

손이 계속 꿈틀거렸다.

기회가 나는 대로 검을 내리치면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딱딱딱!

따따따따따따-!

개방의 진영에서부터 다시금 귀를 거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놈의 거지들이!’

상혁천은 정신이 산만해졌다.

호기롭게 나왔지만, 개방의 진영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싸우고 싶은 생각이 순간 사라졌다.

“조금 시끄럽긴 하지요?”

“…….”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시오. 이게 개방의 싸움이니까. 바로 개싸움. 하하하하!”

팽유도의 대소.

‘망할 거지 놈들.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상혁천은 화가 나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삼류도 아닌 최고의 무공을 지닌 도제라 알려진 인물.

이 정도의 무림인이라면 우아하게 싸워야 하는 법이다.

“격식에 맞지 않게 싸우다니…… 역시 거지 새끼군.”

“어라, 거지에게 격식을 따지다니 안목이 좋지 않소.”

휘익.

상혁천은 검을 들었다.

날카로운 검날에 시퍼런 검기가 더해지면서 예리하게 빛이 났다.

“거지 놈에게 도(刀)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겠지.”

“나름 도발하는 것이오, 아니면 원래 싸가지가 없는 것이오?”

“거지 놈에겐 도발도 아깝다.”

“아하, 당신은 더럽게 싸가지가 없는 것이로군.”

파앗!

팽유도는 가볍게 묵흑반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위력은 가볍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도강이 번쩍이며 상혁천을 향해 날아갔다.

‘도강!’

도기도 아닌 도강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우우우우웅-

상혁천은 전력을 다해 검막을 만들었다.

쿠우우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뒤로 밀려난 상혁천.

두 손으로 검을 세우며 도강을 막았지만 손가락 전체가 저려왔다.

‘이…… 정도의 위력을…….’

그는 단번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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