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36화 (237/328)

236. 제갈령 죽다

융중산에 모습을 드러낸 무리들.

마치 갑자기 하늘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제갈세가에서는 전혀 대비조차 하지 못했다.

‘방심했어.’

제갈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안휘성에 있어야 할 혈사천이 나타났다는 보고.

창천만을 경계했던 게 실수였다.

‘그런데…… 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오가련은 혈사천과 동맹의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서로 죽여야 할 적도 아니었다.

그들이 갑자기 쳐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휘이익!

산문에서 다급히 전령이 올라왔다.

“천주님, 방어 삼선이 뚫렸습니다.”

“벌써?”

제갈령은 벌떡 일어났다.

삼선이 뚫린 이상 남은 방어선은 마지막 하나.

‘그것마저 뚫린다면……!’

제갈세가는 적들에 의해 유린될 게 틀림없었다.

“그들을 막을 수 없겠지?”

“죄, 죄송합니다.”

전령은 오직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혈사천주 설백진이 이끄는 혈사천의 사파 무인들은 강했다.

하늘도 가둘 수 있다는 제갈세가의 진법도 그들의 진격을 멈추게 만들지 못했다.

진법을 파훼한 것이 아니라, 그 일대 주위를 폭파시켜 버렸다.

‘미친놈들…….’

천사회가 와해된 이후, 안일하게도 유천인 혈사천을 너무나 간과했다.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제갈민영은 있는가?”

“말씀하시지요.”

제갈령의 주위에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봉황을 새롭게 날려야 할 때가 왔구나.”

“……!”

“내 눈을 통해 똑바로 보고 그에게 전해라.”

제갈령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 뒤 밖으로 나섰다.

* * *

제갈세가 최후의 방어선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혈사천의 무리들.

설백진이 앞장을 서며 올라오는 중이었다.

“커어억!”

설백진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던 염천일군장 제갈용의 목이 단숨에 부러졌다.

염천의 무인들은 그의 손에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웠지만 물러나지 못했다.

뒤로 물러날 곳은 더 이상 없었다.

“멈추시오!”

제갈령은 올라오는 설백진을 향해 소리쳤다.

“후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오랜만이외다.”

“설 천주.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그대가 온 이유를 알고 싶소만.”

“이유가 굳이 있어야 하는 것이오? 내가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지.”

설백진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맞소이다. 구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염천을 지우기 위해 유천인 혈사천에서 쳐들어올 수는 있지요.

다만, 창천이 물러난 시점에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혈사천에서 쳐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니지 않소이까? 어떻게 된 것인지 이유를 알려줄 수 있겠소이까?”

“크큭, 제갈령. 정말로 알고 싶나?”

“…….”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크하하하!”

설백진은 대소를 터뜨렸다.

“그래도 원한다면. 잠깐 이야기나 할까?”

씨익.

설백진이 실소를 지었다.

“……좋소이다.”

제갈령과 설백진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염천과 유천의 전인.

그들이 한자리에 마주 섰다.

“내가 왜 염천을 치려고 할까. 그게 궁금하다는 것이겠지?”

“그렇소. 창천이 존재하기에, 우린 서로 적이지만 힘을 합쳐야……!”

스윽.

설백진이 손을 들어 제갈령의 말을 막았다.

“구천마제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모은 것처럼 말이군.”

“그렇소이다. 창천은 무림을 지배하려는 게 아니오. 그들이 원하는 건 무림의 말살인 것을 알지 않소이까?”

“맞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의 세상. 오직 천주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

“……?”

설백진의 대답이 이상했다.

그는 절대로 창천주를 천주님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제갈령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당신…… 누구지?”

그는 설백진이 아니었다.

“후후후, 금방 알아보는군.”

설백진은 황망한 시선을 한 제갈령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대혼…… 술법.”

“역시 똑똑한 사람이라 단번에 어떠한 상황인지 파악하는군.”

“네놈은 창천의 인물인가?”

“크크크큭!”

설백진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구천마제 그 녀석은 유극지를 이기는 데 실패했지만, 난 설백진을 이기고 성공했다.”

“그렇군……! 폐관을 마친 당신이 유 궁주를 만나러 간 이유는 대혼술법이 성공했는지 확인차 간 것이었어.”

“오호, 제법이군. 그것까지 유추해 내다니. 맞아. 폐관을 한 이유는 대혼술법을 통해 설백진의 혼을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엄청난 계획이다.

창천에서 유극지와 설백진에게 대혼술법을 동시에 펼쳤을 줄이야.

‘정파와 사파를 동시에 장악하려고…… 이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이제 이해가 되었으면 편히 죽을 수 있겠지?”

“……무림은 창천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크크큭, 염천의 전인이여. 본인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없다.”

“자만하는군.”

“크크크, 자만이라……! 한 가지만 더 알려주지. 난 대혼술법을 펼치기 전에도 구천마제였던 녀석보다 더 강했다. 네놈은 믿기지 않겠지만.”

“……!”

설백진은 내력을 끌어 올리며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죽여라! 제갈세가를 지우는 거다!”

“와아아아아-!!”

아래에서 대기하던 혈사천의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살기를 내뿜었다.

우우우웅-!

설백진의 전신에 내력이 솟구쳤다.

“이놈의 몸은 예전의 나보다 정말 뛰어나더군.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다.”

휘익!

제갈령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며 봉황선을 흔들었다.

샤아아악-!

운무가 피어오르며 앞을 가렸다.

“크크큭, 잔재주를 피우는군.”

설백진의 손이 운무를 뚫고 튀어나왔다.

휘리리릭!

봉황선이 다시 한 번 움직이며 설백진의 손을 휘감았다.

빙글.

휘감겼던 손이 돌아가자 설백진의 신형도 동시에 돌았다.

“어차……! 장난은 여기까지다!”

슈우우욱-

설백진은 몸을 바로 세우며 운무를 향해 연이어 쌍수를 펼쳤다.

사파최강의 무공.

파황혈장(破晃血掌)이 쏟아지며 제갈령의 가슴을 향했다.

‘큭……! 정말로 엄청나다……!’

휘이익!

봉황선이 다시 움직였다.

구우우우웅-

앞으로 다가오던 일 장을 막기 위해 땅이 솟구쳤고.

콰아앙!

흙먼지가 사방으로 일어나며 또 한 번 앞을 가렸다.

“잔재주가 많군.”

설백진이 기감을 넓혀 제갈령을 찾았다.

우르르르-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뇌전이 번쩍거렸다.

찌지지직-!

검은 구름 속에서 아래로 떨어진 벽력의 힘이 설백진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크큭, 제법이야. 염천도 무시하지 못하겠군. 하지만 이 몸을 상대하기엔 약해!’

설백진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벽력의 힘을 밀어냈다.

콰아앙!

제갈령이 펼친 벽력이 사라졌다.

“다른 공격은 없는 모양이지?”

“…….”

“그러면 안 될 텐데. 이제 재미있어지려고 하는데 아쉽군!”

슈우우우웅-

폭궁혈극(爆穹血極)의 초식이 펼쳐졌다.

‘막아야 한다!’

봉황무화(鳳凰舞花).

제갈령은 봉황선을 공중으로 띄웠다.

마치 꽃잎이 하나씩 흩어지듯 빛무리가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두두두두두두두-

서로 부딪히는 초식들.

무화의 꽃잎들이 눈 녹듯 스러졌다.

콰아아아앙!

제갈령도 전력을 다해 봉황무를 펼치며 공격을 막았지만.

내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내력의 무게만으로도 밀리는 상황.

“커어어억!”

거친 소리와 동시에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한 번의 공격이지만 십이 성 내력이 담긴 힘을 이기지 못했다.

털썩.

제갈령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젠장……!’

그와 동시에 많은 제갈세가인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갔다.

혈사천의 힘은 강했다.

염천은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 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슈우우욱!

설백진의 파황혈장 십 초식 혈음폭천(血陰爆天)이 제갈령을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막아내거나 피할 수 없다.

‘끝…… 인가…… 하지만 내 죽음으로 네놈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퍼어어어억!

최후의 공격.

설백진이 제갈령의 가슴과 복부, 그리고 얼굴을 가격했다.

염천의 전인.

제갈령의 죽음이었다.

처억.

설백진이 죽은 시신 앞에 내려섰다.

‘크크크크. 유극지와 설백진, 제갈령까지 죽은 이상, 창천의 힘을 막아낼 수 있는 자는 없다.’

균천의 전인이 다른 인물에게 전해졌다고 하나, 은하검인 유극지가 아닌 이상 두렵지 않았다.

“하나씩…… 하나씩…… 구천은 창천주님의 발 아래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 * *

신무맹에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왔다.

제갈세가의 멸문.

혈사천주 설백진에 의해 제갈령이 목숨을 잃었다.

남하림은 맹주전에서 일행과 모여 식사를 하는 도중 소식을 들었다.

모두들 수저를 놓은 뒤 식사를 물렸다.

‘설백진, 그자가 왜?’

혈사천에서 제갈세가를 칠 이유가 없었다.

커다란 적을 두고 힘을 아껴야 할 상황이었건만.

정도 무림은 큰 타격을 입었다.

비록 무림맹이 와해된 후 나누어졌다고 하지만, 맹주 유극지에 이어 맹의 군사였던 제갈령의 죽음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피해를 주었다.

“부장, 혈사천주가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니겠지?”

“나도 그 이유밖에 생각이 안 나. 그렇지 않고서야 설백진이 이렇게 빨리 제갈세가를 칠 이유가 없어.”

“심각한데.”

이휘연은 걱정이 되었다.

창천을 상대할 수 있는 구천 중 호천만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황궁수천의 현천은 중원의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했다.

마교인 변천은 중원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구경만 할 것이었다.

주천 또한 지켜봐야 할 곳이다.

“무독, 혈사천이 뭐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유를 알아보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야. 그게 제일 급해.”

“알았어, 부장. 지금 이 시간 이후 혈사천의 모든 움직임을 빠짐없이 지켜보라고 연락을 보낼게.”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들키지 않도록.”

그때, 팽유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림 형, 그게…… 혹시 은하궁은 괜찮을까? 정말로 혈사천이 창천과 연관이 있다면 은하궁을 칠지도…… 모르잖아요.”

“…….”

남하림 또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하궁에 갈 순 없었다.

그들은 이미 폭풍의 중심.

당분간만이라도 창천의 관심에서 은하궁을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유 소저가 잘할 거야. 믿어야지. 게다가 은하궁의 무인들은 강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신무맹에 들어와서 하루 이틀 정도는 여유롭게 쉴 생각이었지만, 돌아가는 무림의 상황을 보니 한가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구천신품의 비밀을 풀어야 했다.

이미 여덟 개의 붉은 문장을 지니고 있었다.

남은 구천신품은 한 개.

혹시나 싶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비밀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마지막 하나 남은 구천신품을 찾아야 했다.

“할 수 없군.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마지막 구천신품을 찾으러 가죠.”

“어……? 부장. 그게 어디 있는지 아는 것 같은데? 맞아?”

“저번에 기억이 났어. 내 기억이 맞다면 그곳에 있을 거야.”

“하, 잘됐네. 그것까지 찾으면 전부 찾게 되는 건가?”

“하림 형, 모두 찾으면 나 눈물 나올 것 같아.”

“나도…….”

“아…… 하긴,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하긴 했어.”

다섯 명.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개방의 제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만난 뒤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점점 그 일의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 * *

다음 날 새벽 아침.

일행은 일찍이 신무맹을 나섰다.

내원 각원장 진후 도인에게는 어제저녁 마지막 구천신품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가 없는 동안 은하궁과 동맹을 맺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살신성인한 유극지의 뜻을 안 진후 도인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였다.

거부감 없이 은하궁과 동맹을 맺을 수 있을 듯했다.

“양 총관은 마저 하던 일을 마무리해 줘.”

“알겠습니다. 북방상국을 접수하는 날, 천하제일상국을 중원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이 끝난 뒤엔, 양 총관도 원하는 상국이 있으면 가져.”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공자님의 곁에 있는 것만 해도 즐겁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조만간에 중원을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간다.”

남하림은 손을 흔들며 신무맹의 정문을 나섰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호남성 장사였다.

정확히는 중원오대상국의 남천상국.

나이 십오 세에 떠난 뒤.

처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일행은 호북성으로 들어섰다.

* * *

“천주님.”

“들어오도록.”

드륵.

중년 사내가 열린 문으로 들어섰다.

유천지령 한조는 설백진 앞에 부복을 했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나라.”

“감사합니다.”

한조는 허리를 숙인 채 섰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걸황이 신무맹을 나섰습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지?”

“현재 호북으로 남하하는 중이라 합니다.”

혈사천은 남하림의 행적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호북이라.’

설백진은 그때 남하림을 살려 보낸 게 너무 아쉬웠다.

‘남천상국이 껄끄럽다 해도 끝을 냈어야 했어.’

하늘이 준 좋은 기회를 놓친 게 분명했다.

“한조, 아무도 모르게 살천성과 신려세가에 전서를 보내라.”

“무슨……?”

“그들에게 걸황을 잡도록 연락을 띄워라. 내 뜻이 아니라 자네의 이름으로.”

창천주의 명령.

남하림을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사파만을 보내는 이유는, 창천에게 습격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천주님, 그들만으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일황사제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녀석들이 아무리 강해도 살천성과 신려세가가 합공한다면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들만으로도 걸황의 무리들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본 천에서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한조의 생각으로는 유천과 함께 나선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린 움직일 수 없다.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그들에게 맡기면 된다. 물러가라.”

“천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조는 뒤로 물러난 뒤 밖으로 나갔다.

설백진은 얼굴에 아쉬움이 나타났다.

창천주에게서 온 전령.

#NAME?

창천주의 명은 절대복종해야 했다.

그의 뜻을 어길 시 곧바로 죽음이었다.

남하림을 건드리지 말라는 이유.

설백진은 이유를 알 듯했다.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청년은 걸황 남하림이다.

‘천주님께서 원하시는 육신이군.’

남하림의 신체라면 최상의 몸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그의 신분은 상권을 쥐고 흔들 수 있었다.

남하림의 몸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었다.

지금 그는 현천의 전인까지 이어받았으니까.

‘흐음…… 천주가 없다면……!’

설백진은 욕심이 났다.

예전에는 창천주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였다.

그런데…….

설백진의 육신을 얻게 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그 또한 대혼술법을 펼칠 수 있다.

한번 해볼 만했다.

창천의 전인.

그는 넘보지 못할 사람은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