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창천을 물리치다
‘잘하고 있군.’
육십사괘진법이 한 겹씩 벗겨지고 있었다.
단저는 팔짱을 끼며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염천을 지울 수 있겠군.’
진법이 파훼된 순간, 단번에 끝을 내기 위해 달려 나갈 준비는 이미 마쳤다.
파아아앙-!
외부를 감싼 팔괘진이 파훼되기 직전.
이제 마지막 하나의 괘만 남은 상황.
‘크크크큭, 이것만 치운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린아이라도 풀 수 있다.’
어기적어기적.
진법으로 다가서는 심지독의 걸음걸이는 더욱 거만해졌다.
그때,
불쑥!
진법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인영들.
‘허억!’
숨이 멈추는 듯했다.
예상하지도 못한 일.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까지 갈라졌다.
“누, 누, 구냐?”
“누굴까?”
장난스럽게 말을 거는 인물.
황금빛 걸복이 눈에 거슬렸다.
이를 보자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걸…… 황.”
“에이,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군. 그래도 소개하자면, 무림 동도들은 우릴 일황사제라고 부르지요.”
“……!”
후다닥!
심지독은 당황한 채 빠르게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그보다 한발 빠른 소리가 들려왔다.
차르르르르-
오른쪽 귓가에 향해 날아드는 날카로운 소리.
퍽!
성철각이 휘두른 환보걸선각이 심지독의 얼굴을 가격했다.
“컥.”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공격.
그는 성철각의 십 성 내력이 담긴 공격을 받아낼 수 없었다.
심지독은 목이 돌아가며 단숨에 절명했다.
“설마…… 양천의 전인…….”
단저는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린 심지독을 내려다보았다.
진법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다섯 명 사이에서도 남하림은 눈에 띄었다.
‘이들이 왜…… 여기에 있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상황에 정신이 혼란했다.
창천은 모두가 겁을 내는 최강의 조직.
당연히 구천에서는 아무도 원군을 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양천의 전인.
단저는 망설였다.
그대로 공격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잠시 뒤로 물러나야 하는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구천 중 최고는 창천이라 확신할 만큼, 창천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눈앞에 나타난 상대는 겨우 다섯 명.
다른 개방의 방도들이나 중원 무림의 무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다섯 명이 아무리 강해도…… 우린 일천 명이다.’
수적인 우위.
단저는 지나간 많은 이들이 했던 착각의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었다.
단숨에 밀어붙인다면, 아무리 무공이 강한 양천의 전인이라 해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명백한 오산.
채애앵!
단저는 검을 뽑으며 소리를 질렀다.
“저놈들을 죽이는 자, 큰 포상을 하겠다!”
“와아아아아-!”
일천 명의 창천 무인들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땅이 울렸다.
지축을 밟고 서 있는 몸이 들썩거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적들.
씨익.
팽유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마음껏 묵흑반도를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몸이 근질근질거렸다.
“오랜만에 재미있겠어요!”
“나도 그래. 요즘 몸이 영 찌뿌둥했는데, 오늘은 개운해질 것 같아.”
성철각도 깍지를 낀 채 몸을 풀었다.
주물럭. 주물럭.
당무독은 가방 안에 손을 넣은 뒤 옥병들을 만지고 있었다.
그동안 심심풀이로 만들어놓았던 독탄들이 손안에서 움직였다.
“가방이 무거워서 곤란하던 참이라 어디 쓸 곳 없나 싶었는데. 흐흐, 잘됐지 뭐냐.”
두려움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들.
“자자, 신나는 건 알겠는데, 조심들 해요. 너무 혼자 떨어지지 말고 같이 움직이-”
“알겠다, 부장.”
파아앗!
이휘연이 가장 먼저 움직여 벌써 십여 장 앞으로 날아갔다.
“어엇, 진짜! 혼자 다니지 말라니깐!”
“휘연 형, 같이 갑시다.”
타아앗!
파아아앗!
먼저 달려간 이휘연을 따라 사방으로 팽유도와 성철각, 그리고 당무독이 흩어져 달렸다.
“거참, 제각각이구만.”
우우우우웅-
먼저 달려 나간 이휘연의 검 끝으로 선명하게 나타난 홍태극이 번쩍거리며 창천의 무리들 사이로 지나갔다.
스걱-
태극흑검이 지나가는 자리 뒤로 홍태극이 창천 무인들을 쓸었다.
쉬워도 너무나 쉬웠다.
정말로 강한 게 맞나 의심이 들 정도.
털썩.
비명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열 명의 목이 떨어졌다.
중원 최고의 무인들이란 자부심을 가졌던 창천 무인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눈만 끔벅거렸다.
휘이이이이- 휙!
퍼어어엉!
퍼어어엉!
당무독은 가방 안에서 옥병과 독탄을 손에 잡히는 대로 사방팔방 던졌다.
창천의 무리들 위에서 독이 터지며 사방으로 날렸다.
“아아아악!”
“독이…… 독이다!”
바닥을 구르는 창천의 무인들.
눈과 코를 막으면서 소리치는 모습들은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콰아아아앙!
챠르르르르-
동시에 팽유도와 성철각의 공격이 좌우에서 펼쳐졌다.
묵흑반도와 철각반이 움직이며 창천 무인들의 목숨을 완전히 끊어주었다.
그리고,
퍼어어어어어엉-
수십 마리의 강룡이 날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남하림은 달려오는 창천의 무인들을 향해 일장을 가볍게 뻗었다.
허공에 깃털처럼 손을 뻗는 동작처럼 보였지만, 남하림의 십이 성 내력이 담긴 힘이었다.
“으으으아아악!”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천의 수하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일황사제의 무력은 그야마롤 독보적.
단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
중원에서 창천의 무인보다 강한 존재는 없을 거란 자부심이 산산조각 났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아니다.’
창천의 인물에게조차 경외의 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황사제라 불리는 다섯 명은 괴물이었다.
그래, 백보 양보해서 걸황 남하림은 양천의 전인이기에 저 가공할 무력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저 네 사람의 무공은?
저들은 천외천의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놀란 건 창천의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오가련과 염천의 무인들까지 입이 다물지 못했다.
일천 명을 상대로 다섯 명이 밀리지 않은 채 싸우고 있었다.
오히려 전장을 누비며 신나게 싸우는 모습에 몸이 저도 모르게 떨렸다.
모용동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세가는 절대로 그와 싸우면 안 된다. 만일 싸웠다가는 멸…… 문이다.’
남궁세가가 전멸당했던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제갈령의 손에 든 봉황선이 평소보다 빠르게 흔들렸다.
남하림의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창천주까지 이길 수 있을지도……!’
승패는 이미 싱겁게 끝이 났다.
아직도 많은 창천의 무인들이 남아 있었지만, 다섯 명의 기세에 밀린 탓에 싸울 의지가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제갈령은 상황을 똑바로 파악했다.
둥! 둥! 둥!
오가련과 염천에 떨어진 공격 명령.
와아아아아-!
오가련과 염천의 무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갔다.
일황사제의 위력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기세의 싸움에서 밀린 창천은 살기 위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스윽.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단저는 전면으로 다가오는 인물을 보았다.
“걸…… 황…….”
“보아하니 당신이 이들의 수장인 듯하군요.”
슈우우욱-
남하림은 손을 뻗어 단저의 목을 잡으려고 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
‘큭, 무시하는군. 애들 장난도 아니고!’
단저는 즉각 반응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지만.
‘뭐, 뭐야!’
다가오는 남하림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설마 잡힐까 방심을 했던 게 실수였을까.
덥석!
남하림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케에엑!”
단저의 얼굴이 노랗게 변해갔다.
그는 내력을 올려 남하림의 손을 쳐냈다.
후다다닥!
겨우 남하림의 손에서 벗어난 단저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다.’
우우우웅-
‘이 새끼가…….’
양손에 내력을 끌어 올린 단저가 남하림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방금 전은 방심을 한 탓이다.”
위이이이잉-
그러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장법을 펼쳤다.
전신에서 흐르는 무형기가 남하림의 몸을 압박했다.
‘이 무공은……!’
남하림은 한 번에 단저의 무공을 알아보았다.
‘창천에서는 아무나 익히는 모양이군.’
스르르르-
남하림이 두 손으로 원을 그리자, 그를 압박하며 들어오던 무형기가 엷어지면서 사라졌다.
단저는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간단하게 공격이 막히자 곧바로 가장 강한 초식을 펼쳤다.
‘이건 피하거나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수천장현(手天藏玄)의 초식.
단저의 양손에서 펼쳐진 수공.
과과과과과-
남하림의 정면으로 거대한 힘이 쏟아져 나갔다.
가까운 거리이기도 했지만, 사방을 감싼 공격의 범위에서 피할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휘이익!
휙!
하지만 단저가 펼친 공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훤히 알고 있다는 듯.
남하림은 보법을 펼치며 간단히 피했다.
‘어떻게?!’
단저는 놀라면서 재차 수공을 펼쳤다.
휘이익!
남하림은 이번에도 보법을 밟으면서 단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두 개의 기가 부딪혔다.
퍼어어어엉!
주르르륵-
굳건히 선 남하림과 달리, 단저는 폭발한 기의 영향으로 충격에 의해 뒤로 밀려 나갔다.
단저의 눈이 커졌다.
밀려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 그 무공은…….’
남하림이 펼친 무공은 분명 무극수신공.
‘이 무공을 어떻게 익히고 있지?’
양천의 전인이 창천의 무공을 익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걸황, 어떻게 무극수신공을 알고 있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외다.”
“…….”
두 사람은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승패를 가를 열쇠는 내력의 차이.
단저는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자신이 걸황 남하림에게 내력이 밀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이길 수 없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물러나야 했다.
주위에서는 이미 일천 명의 창천 무인들이 당하고 있었다.
‘제에에에에엔자앙!’
상대도 되지 않을 이들이어야 했다.
“창천이라 해서 다를 줄 알았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맞군.”
“큭, 걸황, 자만을 하는군. 창천에서 난 겨우 이십 위에도 들지 않는 실력이다.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창천에 대해 실망을 내뱉다니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제발 후회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소만.”
‘건방진 놈!’
단저는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걸황을 때려눕히는 것.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보다 살아서 걸황 남하림에게 제대로 복수할 것이다.
“걸황, 오늘은 물러가겠다. 하지만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다를 것이다.”
“착각하는군. 내가 당신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소이까?”
“…….”
마치 눈치 싸움을 하듯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
누가 먼저 움직일지.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타아앗!
파아앗!
남하림의 신형이 먼저 움직였다.
앞으로 달려 나오는 남하림을 피해 단저는 뒤로 몸을 뺀 뒤 신법을 펼쳤다.
누가 먼저 달리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더 빠르냐의 문제였다.
단저는 늦게 움직여도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차라리 먼저 움직이는 게 더 좋았을 것이었다.
만리추풍신법은 이미 한 단계 벽을 넘어선 지 오래되었으니까.
남하림이 단저의 곁으로 바짝 붙어 섰다.
처억.
남하림은 손을 뻗어 단저의 어깨를 잡았다.
‘헉!’
단저는 깜짝 놀랐다.
움직인 지 십여 걸음도 밟지 않는 사이, 남하림에게 잡혔다.
휘익!
남하림은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눌렀다.
“욱.”
단저의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털썩.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력을 끌어올렸지만 단전에서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걸…… 황…… 내 몸에 무슨 짓을 했지?”
“내가 누군지 잊은 것입니까? 양천의 전인, 양천주가 바로 이 사람이외다.”
“망할 새끼가…….”
슈우우욱-
남하림은 일어나려는 그를 향해 강룡십팔장을 뻗었다.
콰아아앙!
굳이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단저의 죽음은 곧 창천 무인들의 죽음.
그들은 살기 위해 후퇴하고자 했지만,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강 유역을 빠져나갈 길목을 막아선 다섯 명.
일황사제를 넘어서야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다.
일황사제는 투신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에 미친 귀신들이 틀림없었다.
창천의 무인들은 겁이 났다.
그들뿐만 아니었다.
다섯 명의 무공을 본 염천과 오가련의 무인들도 머릿속 깊은 곳까지 두려움이 가득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함부로 싸워서는 안 될 상대가 일황사제였다.
* * *
한강 대전은 시간이 흐르면서 끝이 났다.
“휴우…….”
남하림은 호흡을 길게 내쉬며 주위를 살폈다.
겨우 살아간 창천의 무인들은 겨우 백 명.
나머지 구백 명은 목숨을 잃었다.
“다들 괜찮아?”
“허억, 허억, 숨이 차지만, 아직 버틸 만해요.”
팽유도는 허리를 숙인 채 고개만 들었다.
“으으, 휘연 형은 어때요?”
“괜찮다.”
그의 대답은 늘 간단명료했다.
성철각과 당무독이 다가왔다.
“휴, 우리도 괜찮아.”
“모두 수고했어요! 힘은 들어도 몸을 제대로 풀었으니 개운하지 않나요?”
“맞아. 간만에 꿀잠 자겠어.”
다섯 명의 대화.
멀리서 그들을 보던 무인들은 일황사제의 무서움에 몸이 떨렸다.
제갈령도 마찬가지.
‘내가 실수했군. 저런 인물을 한때 거둘 생각을 했다니…….’
걸황 남하림은 거인이었다.
제갈령은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주위를 보았다.
‘창천이 이렇게 대패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한 가지 다행인 건 이제 창천은 한동안 염천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게 분명하는 것.
결국 마지막은 창천과 균천의 싸움이 될 것이라 여겼건만.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양천과의 싸움이 진정한 구천의 승자를 가를 것이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결정을 내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걸황, 수고했소이다.”
“같이 고생했지요. 우리만 고생을 했겠습니까.”
“그것도 맞지만, 저들의 기세를 꺾지 않았다면 쉽게 대승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외다.”
“련주가 인정을 했으니 우리의 할 일은 끝났군요.”
구천신품에 대한 대가.
남하림은 대가를 확실히 매듭지었다.
“알겠소.”
“오, 이런 면에서는 깔끔하시네요. 혹시나 우길까 봐 걱정했는데 말입니다.”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