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성도평야
청성산은 고요했다.
며칠 전에 날아온 소식.
곤륜파를 전멸시킨 마교의 혈적마군단의 다음 목적지는 청성산이라 했다.
청성파 도천궁에 모인 도인들.
웅성웅성.
도천궁은 웅성거린 소음으로 가득했다.
장문인 윤진 도인은 시야에는 안절부절못한 도인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마교도가 부르는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엄습한 상황.
겁이 나겠지.
곤륜파를 단번에 멸문시켰으니까.
청성파와 곤륜파의 무력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차아악!
장문인 윤진은 의자 손잡이를 가볍게 쳤다.
“조용히들 하시게나.”
하나둘씩 말문을 닫으면서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고요해졌다.
“그대들끼리 웅성거린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소이까?”
장문인의 말이 맞았다.
하나 현 상황에서 다른 또렷한 방법이 없었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면 곤륜파처럼 명예롭게 싸울 수 있다.
그리고 멸문이겠지.
청성파의 선택은 두 가지.
치욕을 선택하여 도망치거나, 명예를 위해 죽거나.
도천궁에 모인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모두들 도천궁에 오기 전에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보오. 여러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아무도 탓할 사람은 없소.”
장문인 윤진의 말에 모두 고개만을 숙였다.
“이번 싸움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청성산을 내려가시면 되오.”
“장문인!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오. 구차하게 목숨을 건질 본 파의 제자는 없소이다.”
“맞소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르지 않소이까? 본파 가 사라진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외다.”
원명궁 장로 윤하 도인이 웅변했다.
평소에 말이 없던 인물이 그였다.
도천궁에 모인 청성파 도인들도 그의 말에 동감했다.
한 명의 도인도 도천궁을 나서지 않았다.
장문인 윤진은 그들을 보면서 두 가지 감정이 섞였다.
고맙기도 하며 미안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
장문인으로서 제자들이 원한다면 싸워야 했다.
그게 멸문의 길에 다가서는 길이라도.
앞장서야 할 사람은 장문인 윤진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당당하게 변했다.
“윤한 사제. 다른 문파에서는 소식이 없는가?”
“장문인, 그들에게 서신을 보냈지만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무림맹은 와해되었다.
다급하게 같은 지역성에 기반을 둔 문파들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곤륜파의 경우처럼 원군이 오지 않는다면 청성파도 멸문이었다.
원군을 가고 싶어도 곤륜파는 너무 멀었고, 마교의 기습은 빨랐다.
“분명 원군은 올 것이오. 그리고 그들이 오지 않더라도 우린 최선을 다해 마교와 싸울 것이외다.”
장문인 윤진의 말에 도천궁의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드르르륵-
그때,
도천궁의 문이 열리며 건영단 소속 이대 제자 한유가 들어섰다.
그의 손에 서신이 한 장 들려 있었다.
“장문인님! 후개에게서 급보가 도착을 했습니다!”
“후개라면…… 개방의 후개란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개방의 젊은 영웅.
걸협오성의 수장이며 개방의 후개 남하림.
윤진은 급보를 받아 들었다.
#NAME?
천사회의 위험에서 소림사를 구해준 인물이 후개였다.
이번에는 청성파를 위해 사천성까지 직접 움직인다고 한다.
“후개와 함께 사천성의 동료들이 오고 있다는 전서가 도착했소이다……!”
“오오, 장문인, 그게 정말이외까? 후개라면 얼마 전에 천사회의 산구창을 한 수만에 죽였소이다!”
천사백사군 군장 산구창을 한 수만에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청성파의 도인은 없었다.
한 장의 서신으로 도천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궁 사제.”
“하명하시지요.”
연단당 당주 윤궁이 앞으로 나섰다.
무작정 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사천성의 동료들이 올 때까지 마교도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연단당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장문인 윤진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올라왔다.
“이 시간부터 청성파의 모든 제자들은 마교와의 전쟁에 들어갈 것이다.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네.”
“장문인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청성파 도인들의 대답에 도천궁이 울렸다.
* * *
사천 개방 총타는 빠르게 움직였다.
후개 남하림의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사천성 전체에 퍼져 있는 모든 분타에 연락을 띄웠다.
#NAME?
후개님께서 한바탕 놀고자 하신다!
사천성에 퍼져 있는 개방의 분타는 총타까지 합하여 열다섯 곳.
후개의 명이 떨어지자 개방 방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도강언으로 향했다.
개방도의 사이에서 퍼져 있는 소문.
걸협오성과 함께하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마교가 사천성으로 쳐들어온다고 하자 단번에 달려와서 놀고 싶다는 후개.
후개와 한바탕 난장을 벌일 수 있다면 그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신이 났다.
숭화삼지에서 개방의 승전 타령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사천의 개방 방도들은 내심 부러웠다.
후개와 함께하며 그들도 넘치는 승리감을 맛보길 원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왔다.
이젠 자신들 차례였다.
사천성의 개방도들은 허리에 차고 있던 표주박을 세차게 두드리며 앞을 향했다.
둥둥둥둥!
뿌우우우웅-
사천 개방십오분타는 마치 잔치에 놀러가는 듯했다.
* * *
마교와 싸울 장소는 성도평야.
성도평야에 가장 먼저 도착한 문파는 청성파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천당문이었다.
이천 명의 당문인들을 이끌고 가주 당염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성파 장문인은 버선발로 마중을 나갔다.
“당 가주, 오셨소이까?”
그는 당염청의 손을 잡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본 문을 위해 먼 길을 오시느라 고맙소이다.”
“장문인,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소이까.”
“사천당문에서 오니 이젠 안심이 되는군요.”
“후후후, 좀 더 있으면 검문과 아미파에서도 올 것이외다. 그리고 걸협오성과 함께 개방이 오면 마교 놈들은 피똥을 싸며 물러갈 것이외다.”
당염청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무림맹이 와해가 되었다고 해서 큰 걱정을 했습니다. 사천 무림은 역시 의리가 강합니다.”
“맞소이다. 무림맹 때문에 본 세가도 장문인처럼 걱정을 했지요. 하지만 걸협오성의 서신을 받은 뒤 걱정을 접었습니다.”
“……?”
장문인 윤진은 신무맹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하핫, 그건 나중에 세 곳에서 오면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당 문주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 궁금하외다.”
“괜찮은 일이니 기대를 하셔도 좋습니다.”
“알겠소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사천당문이 도착한 후 한 이틀 뒤.
아미파와 검문에서 하루 사이로 성도평야에 도착했다.
당염청은 아미파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식사를 하던 도중 달려 나갔다.
‘이런…… 쌍눈에 불이 나오는군.’
아미파 장문인 멸화사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추멸선자.
멸화사태와 인사를 나눈 당염청은 추멸선자 앞에 다가섰다.
“오셨소이까?”
“빨리 왔군요.”
추멸선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화가 안 풀렸나?’
스윽-
그때, 당염청 옆에 있던 당서윤이 그녀에게 허리를 숙였다.
“백모님, 오셨습니까?”
“…….”
당서윤은 두 사람의 관계와 현하장의 현선청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비록 한 치만 잘못됐어도 죽을 수 있었겠지만, 당서윤은 결국 추멸선자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잊기로 했다.
복수의 굴레는 가능하다면 끊는 것이 좋으니까.
“피곤하실 텐데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부탁하지.”
당서윤은 정중하게 그녀를 모셨다.
‘저 녀석이…… 잘하고 있구나.’
당염청은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 * *
네 문파의 수장들은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신무맹에 관한 내용 때문.
당염청은 청성파와 아미파 장문인에게 신무맹에 대해서 설명했다.
중간중간 검후 정화진의 추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윤진 도인과 멸화사태는 신무맹에 대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좋은 방법이외다.”
“내원책임이라…… 맹주로는 후개를 내세우지만 신무맹을 실질적으로 운영은 내원의 수장이 한다는 것이군요. 마음에 들어요. 사실 예전 무림맹은 은하궁의 입김과 제갈 군사의 뜻이 너무 강했잖아요.”
정파 무림의 무림맹이라 하나 구파일방과 세가의 의견을 거의 무시되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신무맹이라면 진정한 정파 무림의 연합체가 될 수 있었다.
“소림사와 화산파, 개방에 이어 얼마 전 무당파에서도 입맹하겠다는 뜻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오…… 무당까지.”
“그리고 본 당문도 함께하겠다고 연락을 보냈습니다.”
“검문 또한 신무맹에 연락을 했소이다. 아들이 하는 일을 어찌 의모인 본인이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후개와 같은 청년을 아들로 둔 검후가 부럽네요.”
“호호호, 그렇지요.”
아미파와 청성파의 결정이 남았다.
“두 분께서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청성파도 함께해야지요.”
윤진도인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정파 최고의 문파인 소림사와 무당파가 신무맹에 들어간 이상, 청성파가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미파도 함께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조만간 걸협오성이 오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의사를 밝히면 될 것이외다.”
“알겠소이다. 어찌 무림맹이 와해가 될 줄 알고 미리 준비를 했는지, 대단하외다.”
“그렇기에 무림에서 후개, 후개 하지 않소이까.”
윤진 도인은 극찬을 하는 당염청의 목소리에 후개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다.
* * *
성도평야에 도착하기 하루 전.
막강에 도착한 후 마지막 진지를 구축한 혈적마군단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어제 도착을 했어야 했다.
“날파리 같은 놈들 때문에 하루를 허비했군.”
당주 윤궁이 이끄는 청성파의 연단당에 의해 이만 명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윤궁은 그들이 가는 자리에 항상 진법을 설치한 뒤 빠지기를 반복했다.
이 진법으로 마교도의 수를 줄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루라는 귀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단주 수강마(水鱇魔)는 성도평야의 정찰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성도평야에 사천성의 네 문파들이 모두 모여 있단 말이지?”
정찰대에서 보고한 네 문파.
청성파, 사천당문, 아미파, 검문이라 했다.
“킥, 마뇌 인후마(刃吼魔)님의 예상대로 되는군.”
“곤륜파를 치면 사천성은 뭉칠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이만 명의 혈적마군단이 전부라고 생각하겠지. 성도평야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야.”
“인후마 님,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클클클, 그놈들이 성도평야에 모였을 때가 마지막이 될 것이다. 혈적마군단 뒤로 마혈갑주단이 끝을 낼 테니…….”
넓은 평야에서 기동성이 좋은 마혈갑주단의 위력은 마교의 무력단들 중에서도 최고였다.
“마혈갑주단은 언제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지?”
“내일 정오에 도착할 것이라 합니다.”
“정확하군.”
그들이 도착하는 즉시 성도평야에 모인 사천 연합문파를 칠 것이었다.
“내일이 기대되는군.”
수강마는 아침 일찍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 * *
‘우와…….’
황보궁은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개방의 방도들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삼만 명이 넘은 대군.
열다섯 개의 분타에서 각각 이천 명의 방도들이 모였다.
아무리 못해도 삼만 명은 넘어 보였다.
개방의 방도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어찌 체감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백번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개방의 무서움은, 다른 게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방도들의 수였다.
‘대형이 천하제일대개방이라고 한 게 그냥 한 말이 아니었어.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아.’
“유도 형, 내가 보기에 진짜 천하제일문파는 개방이에요.”
“응? 왜?”
팽유도는 뜬금없이 말하는 황보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황보궁은 뒤를 가리켰다.
“저기…… 끝이 안 보이잖아요. 누가 개방을 이기겠어요? 지금 모인 방도의 수도 사천성에 한정되어 있잖아요. 중원 전체에 있는 개방의 방도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만 있다면 아무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아하하.”
팽유도는 웃기만 했다.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중원 무림이 그동안 무시했던 개방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고 있었다.
후개 남하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앞서 움직이는 걸협오성 다섯 명과 황보궁, 그리고 유미령의 뒤로 열다섯 명의 총타주와 분타주들이 함께했다.
그들 중에서 안면이 있는 난충분타주 오조융과 장구분타 창걸이 후개와 반갑게 재회했다.
‘다섯 분은 그때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아.’
각자의 신형에서 흐르는 무형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無)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강언에서 모인 삼만 명의 개방 방도들은 사대 문파와 만나기로 한 성도평야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당무독은 성도평야으로 가는 도중 중간중간에 마교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부장, 이상해.”
“뭐가?”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성도평야에 어디에서 원군을 왔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야.”
“음, 무독의 말처럼 알면서도 오는 게 이상하긴 해.”
“물론 마교의 혈적마군단이 강하긴 해. 곤륜파를 단번에 전멸시켰으니…… 하지만 네 문파를 상대로, 그것도 좁은 장소가 아니라 성도평야처럼 넒은 장소야. 미치지 않고서는 그곳으로 오지 않을 텐데.”
“흐음, 그럼에도 전혀 상관없이 오고 있다. 답은 하나네.”
남하림과 당무독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평야에서 싸우는 이유가 있다는 거지.”
차르르르-
팽유도는 무림대사전을 꺼냈다.
마교의 편을 펴서 살피자,
“형, 마교의 기마군을 보면요. 마혈갑주단과 천혈갑신단, 묵갑천혈단, 철갑마단이 있어요.”
“많네? 음…… 그들 중 장거리를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기마대가 어디지?”
“마혈갑주단이 가장 빨라요. 천혈갑신단과 묵갑천혈단은 중갑기마대이고 철갑마단은 강갑기마대라서 빨리 움직일 수 없어요.”
“그렇다면 성도평야에 마혈갑주단을 준비했군. 넓은 평야를 빠르게 이용하겠다는 뜻이야. 마교에서도 제법 머리를 쓰는 인물이 있구나.”
“유도 형, 마교에 마뇌라는 인물이 있어요.”
“그래? 우린 전뇌(戰腦)가 있잖아.”
“전뇌요?”
스윽.
남하림은 당무독을 가리켰다.
“부장, 무슨 말이야. 내가? 부장이 더 똑똑하지 난 아니야.”
“물론 난 똑똑하지. 세상에서 가장.”
“…….”
뭐, 맞는 말이긴 한데 말이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세상의 모든 것을 잘하진 못해. 무독은 나보다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군사 방면에서는 훨씬 뛰어난 직감력이 있어. 그래서 내가 전뇌라고 한 거야.”
“부장…… 지금 나 칭찬하고 있는 거 맞지?”
“응? 당연하지.”
“나도 칭찬같이 들리기는 하는데 뭔가 찝찝해.”
걸협오성의 대화.
놀라우면서도 가끔씩 왠지 모르게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