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천사회를 물리치다
환한 웃음을 보이며 마차에서 내린 청년을 향해 주위는 환호했다.
투명할 정도로 밝은 청색의 비단옷으로 만든 거지복.
이런 차림새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었다.
“후개가 돌아오셨다!”
“와아아아아-!”
천사백사군에 밀렸던 개방의 기세가 단숨에 하늘을 뚫었다.
“동삼 아저씨, 저기 뒤로 가세요. 여긴 위험해요.”
“아…… 네에……!”
동삼은 넋이 빠진 얼굴로 마차를 몰았다.
‘아…… 공자님이…… 진짜…… 후개님이셨어……!’
숭산으로 내려오면서 설마설마했다.
“혀어어어엉!”
“대형!”
팽유도와 황보궁이 남하림 곁으로 달려왔다.
“고생들 많았던 모양이네. 궁이도 살이 많이 빠졌어.”
“대형, 괜찮습니다.”
남하림은 한 명씩 손을 잡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역시…… 후개다운 등장이군. 이런 자리에서 육두사륜마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휘연 형, 원래는 악대까지 동원하려고 했는데, 싸움터라서요.”
천사백사군 군장 산구청은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저놈이 후개?’
혈사천주 설백진에게 당한 뒤 모습이 사라졌다고 알려진 인물.
산구청은 남하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짓이 아니군. 정말로 내력이 없어.’
약간 안심이 되었다.
산구창은 내력을 올려 소리쳤다.
“후개, 죽고 싶어서 나타났구나! 네놈이 나타나도 소림사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당무독이 현재 상황에 대해서 남하림에게 간단히 알려주었다.
“부장, 천사멸전군이 숭화삼지 후방을 기습한 것 같아.”
“난 또 무슨 말이라고. 걱정 안 해도 돼. 숭산으로 내려오면서 한 곳에 서신을 보냈어. 나하고 비슷하게 도착한다고 했거든.”
“어디에?”
“화산파라면 충분히 천사멸사군을 막아내지 않을까?”
당무독의 안색이 환하게 펴졌다.
화산파가 합류한다면 당연히 막아낼 수 있다.
천사회 전체를 상대하기에 어렵겠지만 천사멸전군 정도는 충분했다.
“부장, 어떻게 알고 화산파와 같이 내려왔어?”
“소림사를 치겠다는 혈사천주가 설마 철혈방과 신천문, 두 곳만을 보낼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어. 혹시나 싶어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곳인 화산파에 연락했지.”
“아하…… 그렇구나. 다들 머뭇거리고 있었을 텐데. 역시 부장이 부탁을 하니깐 바로 달려오는구만.”
“나 때문에 오는 건 아닐 거고, 천사회가 꼴 보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푸흐.”
당무독은 웃음을 지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화산파가 원군 결정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남하림이었다.
‘하아…….’
드디어 가슴이 시원해졌다.
부장이 오니깐 모든 게 해결되는구나.
그동안 답답하게 막혔던 것이 한 방에 뚫렸다.
“여기만 빨리 정리하고 올라가면 되겠어.”
남하림은 천사백사군을 향해 섰다.
“본인이 딱 한마디만 하겠소이다. 살고 싶은 자, 돌아가면 됩니다.”
단 한마디.
천사백사군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뜻.
군장 산구창은 고절한 고수 단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았다.
더군다나 후개는 화산파와 함께 내려왔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수하들이 동요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런…… 수습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군.’
우우우우웅-
내력을 끌어 올렸다.
“모두 정신 차리지 못할까!”
산구창의 목소리가 천사백사군의 진영에 쩌렁쩌렁 퍼져 나갔다.
“상대는 변한 게 없다!”
한 명.
저들 무리에 단 한 명만이 합류를 했을 뿐.
거기다 내력이 사라졌다고 알려진 후개다.
화산파가 내려왔다고 해서 천사멸전군이 곧바로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놈들을 죽이고 합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산구창이 손에 내력을 쏟아냈다.
“일 단주, 저놈들을 모두 죽이고 숭화삼지로 갈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타앗!
선두에서 먼저 음작수가 달렸다.
목표는 내력이 없는 후개 남하림.
그의 등장으로 충천한 개방의 기세를 꺾은 뒤 단숨에 밀어붙이려는 심산.
두두두두두-
그 뒤를 천사백사군이 따르기 시작했다.
“분명 말을 했건만…….”
슈우욱-
남하림은 달려오는 음작수를 향해 움직였다.
휘이익!
남하림의 움직임은 빛줄기 같았다.
‘헉……?’
음작수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나 일장을 뻗는 남하림.
‘왜 이리…… 빨라.’
끝이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강룡십팔장이 몸 전체로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공격.
천사백사군의 일 단주의 무공은 중원 무림에서 각 문파의 수장급일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컥.”
짧은 단말마를 뱉은 음작수의 숨이 단번에 끊어졌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결전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적이 어린아이일지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음작수의 패인은 남하림이 무공을 펼치지 못할 거라 확신한 것이었다.
‘저…… 놈이…….’
일 단주 음작수가 너무나 쉽게 바닥에 쓰러졌다.
저건 완벽한 강룡십팔장이 틀림없었다.
‘내력이 있다는 말인가? 주군께서 분명 내력을 지웠다고 하셨거늘!’
단 한 수였지만 후개의 무공을 본 이들의 눈에서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후개의 전신에서 흐르는 기운은 주군과 같았다.
절대자의 기가 분명했다.
‘흐읍.’
산구창과 남하림의 시선이 마주쳤다.
미소를 짓는 남하림의 얼굴.
‘……오늘 일진이 사납겠군.’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타앗!
남하림이 허공을 뚫고 달리듯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산구창의 앞에 내려섰다.
“분명 돌아갈 기회는 줬소이다.”
“후개, 난 돌아가도 살아날 수 없다.”
남하림은 조소를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이가 여기 있군.”
산구창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무슨 뜻이지?”
“저들의 생명은 당신에게 의미가 없는 모양이야? 여기서 물러난다면 당신을 따르던 저들은 죽지 않을 텐데.”
“저들은 내가 죽으면 함께 죽음을 택할 것이다.”
“그건 당신 생각이겠지.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시오? 당신은 그들의 목숨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소.”
남하림의 한마디가 가슴에 충격을 주었다.
‘내 생각?’
후개의 등장은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뒤로 밀리던 개방 방도들은 서너 배의 힘을 내며 다시 수하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수하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의 얼굴에 팽배했다.
이미 승패는 끝났다.
의미 없는 싸움으로 수하들의 목숨까지 스러져야 할까?
“후개……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보내줄 텐가?”
“의지가 없는 자를 죽이지는 않소이다.”
산구창은 결정을 내렸다.
“천사백사군은 물러나라.”
마치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천사백사군이 썰물처럼 전쟁터에서 물러났다.
물러나는 수하들 사이에서 안도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하나.
수하들과 달리 산구청은 목숨을 걸었다.
“후개. 한 수 가르침을 받아도 되겠소?”
산구창은 무공 고인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
“좋습니다.”
* * *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사이.
남하림과 산구창이 중앙에서 마주 섰다.
두 사람을 보는 시선들.
팽유도는 염려가 되었다.
“휘연 형, 정말로 내력이 돌아온 게 맞아요?”
“부장의 몸에 힘이 있어. 다만 우리가 아는 내력은 아닌 것 같다. 무단이라는 것을 익혔어.”
팽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단이라…….
무단으로 펼치는 무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찌이이잉-
백호도(白虎刀)에서 내력이 울렸다.
산구창은 숨을 멈추었다.
단 한 수.
절대고수의 대결은 굳이 길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생과 사의 결정은 단 일 초식만으로 충분하다.
일 초를 펼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
광변중강(光變重强).
이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던 본인의 의지이며 자신의 무공이었다.
산구창이 택한 것은 강(强).
그가 백호도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다.
‘일도멸(一刀滅)이다.’
남하림은 백호도를 든 산구청을 향해 걸었다.
만리추풍신법과 취리건곤보가 아닌 일반적인 걸음의 보폭.
스윽-
한 발씩 다가설 때마다 산이 움직이는 듯했다.
거대한 압박에 산구청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조금만 더…….’
뚝.
남하림의 걸음이 정확히 백호도의 사정권 끝에서 멈추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터져 나갈 듯했다.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뗐다.
‘지금…….’
슈우우우욱-
백호도가 빛도강을 뿌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나온 남하림을 내리쳤다.
그때부터, 산구청의 시야에 비치는 흐름이 변했다.
모든 동작들이 하나하나 느리게 보이기 시작한 것.
스르르르르르-
시간을 엿가락처럼 잡아 늘린 듯 천천히 움직이던 백호도가 후개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직전.
남하림의 몸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리고,
어느새 옆으로 몸을 돌린 그의 손이 산구청의 심장을 향해 일장을 뻗어냈다.
‘어…… 어떻게 이런 움직임이…….’
너무나 생생한 움직임.
그 순간의 마디마디가 산구청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쿠가가가가가가가각-!
남하림이 쏟아낸 힘.
아직 세기 조절을 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단번에 밀어 넣은 무단의 힘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퍼어억!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심장에 충격을 받는 동시에, 바닥으로 백호도가 떨어졌다.
슈우우욱-
산구청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단 한 수의 공격.
산구창은 숨이 끊어졌다.
휘이잉-
두 진영에 무시무시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천사회 사대천사군장의 일인이 절명했다.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개방 진영에서 함성이 터졌다.
“후개 만세!!”
“후개 만세!!”
끊이지 않는 개방 방도들의 함성에 남하림이 손을 번쩍 들었다.
“천상천하유아개방!”
개방의 방도들을 향해 목청껏 광오하게 소리치는 모습.
“흐음…… 어째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부장이잖아. 우리 부장.”
* * *
방주 오종은 타구봉법을 펼치며 천사멸전군의 군장 육호상과 결전을 벌였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수십 개의 타구봉이 육호상의 멸혼검을 막아내기 바빴다.
하지만 육호상은 빈틈을 보이는 오종을 보면서도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화라락!
그의 뒤로 매화향이 피어오르며 붉은 매화가 휘날렸다.
팔수홍매화검법의 진수가 화산파 장문인 명진도인의 검 끝에서 펼쳐졌다.
육호상은 인상을 썼다.
쉽게 이기지도, 지지도 않을 긴장감이 두 무리 사이에서 팽팽하게 이어졌다.
‘쉽게 이기기 힘들 것 같군.’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누구의 편을 들어줄지 알 수 없었다.
서로 방어 위주로 싸우는 탓인지 더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화산파가 원군을 오지 않았다면,
천사멸전군의 기습에 소림사와 개방 연합은 이미 한참 전에 당했을 것이다.
“육 군장,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크큭, 웃긴 소리군. 불리한 건 당신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조만간 천사백사군이 온다면……!”
하지만 육호상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멀리서부터 깃발이 휘날리는 것이 보였다.
“크하핫! 천사백사군이라! 하나 저건 개방의 깃발인 것 같지 않은가?”
‘어떻게 된 일이지?’
육호상은 믿을 수 없었다.
천사회의 천사백사군이 당할 리 없거늘.
사대천사군의 힘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저쪽은 개방도 일천여 명이 다가 아니었던가?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리고 상대의 모습이 또렷해진 순간,
육호상의 당황은 더 커졌다.
육두사륜마차가 나타났으니까.
개방 방도들이 화려한 그 마차 뒤를 따르고 있었다.
펄럭!
마차 지붕 위로는 개방협의기(丐幇俠義旗)를 든 청년이 서 있었다.
방주 오종과 장두철이 그를 단번에 알아보고 대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역시 이 장두철의 제자다!!”
세상 누가 이보다 멋지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개방 방도들도 하나둘 후개 남하림을 알아보았다.
“후개가 왔다!”
“걸협오성이 모두 모였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을 지르는 방도들의 기운이 솟구쳤다.
후개 남하림의 목소리가 숭화삼지를 울렸다.
“개방의 방도들이여! 뭣들 하는가? 장타령을 울려라!”
당다다당당.
퉁두두둥둥둥.
뿌우우우우-
숭화삼지는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허리에 찬 표주박을 한 손에 들고는, 타령의 박자에 맞춰 타구봉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팽유도가 우렁찬 목소리로 선창했다.
“어어어어얼씨이이이이이구 드러러러러러간다!”
“저어어어얼씨이이이이이이구 조오오오타아!!”
개방 방도들의 후창이 끝없이, 끝없이 이어졌다.
육호상의 시선이 마차 위에 선 남하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놈이…… 후개라는 놈?’
주군에 의해 내력이 사라지지 않았나?
화산파 장문인 명진은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정파무림의 구심점이 될 인물이다.’
무림맹이 와해된 이상, 중원 정파무림은 힘을 새롭게 모을 수밖에 없었다.
개방의 후개라면 정통성은 물론 능력이 뛰어나며 부수적인 조건들도 완벽했다.
하나도 모자람이 없다.
또한 중원의 일반 사람들까지 후개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의 나이가 적다고 해서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타앗!
남하림이 개방협의기를 들고 마차 위에서 날았다.
그러고는 개방 방주 오종, 항걸 장두철, 화산파 장문인 명진 앞에 내려섰다.
“세 분,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허허헛! 우리야 늘 똑같지. 넌 어떠냐?”
“그럭저럭 좋아지고 있습니다.”
장두철은 남하림의 몸을 살폈다.
내력이 사라졌다고 알려진 제자.
정말로 몸에 내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분명 신법을 펼쳤다.
남하림은 화산파 장문인 명진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장문인, 먼 길을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후개가 부탁하는데 어찌 안 올 수 있겠는가?”
“세 분은 잠시 쉬고 계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힘이 들었거늘. 후개가 나서준다면 고맙게 받겠네.”
팟!
남하림은 깃발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천사멸전군 육호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죽든지 아니면 물러나든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선택을 강요하는 남하림의 기개 넘치는 모습.
장두철은 큰 감동을 받았다.
“캬아…… 멋지다! 명진 장문인, 저게 내 제자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