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마무리를 짓다
신형을 감추며 대총관당으로 향해 움직이던 오인.
‘누구지?’
앞을 막아선 사내.
손에 반쯤 짧은 도를 쥐고 있었다.
‘도천걸?’
자화단의 계획이 틀어진 것인가?
낭패를 눈치챈 오인의 움직임이 다급해졌다.
팽유도의 신위.
콰아아앙!
묵흑반도의 위력.
한 번의 부딪힘으로 깨달았다.
자화단에서 가장 뛰어난 그들이지만.
묵흑반도를 든 팽유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죽고 싶다면 검을 들고 있어도 좋아.”
오인은 손에 든 검을 내려놓았다.
콰아앙!
자화당 정문이 부서지며 개방의 방도들이 뛰어 들어갔다.
우루루루루-
검을 들고 달려오는 자화단의 무사들.
개방 방도들은 타구진을 펼치며 자화단의 무사들을 상대했다.
핏핏핏!
당무독의 손에서 쏟아지는 무형비강(無形飛罡)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고 정교해졌다.
“컥!”
“케엑!”
숨이 막히는 소리.
‘대체 어디에서 날아오는 거야?’
무사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독광걸을 먼저 잡아야 해……!’
자화단 부단주 연조는 몸을 숙이며 기회를 노렸다.
파앗!
당무독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순간.
‘지금이다!’
긴 장검을 어깨 위로 올린 연조가 당무독을 향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일검으로 끝을 낸다!’
휘익.
갑자기 당무독의 뒤로 장신의 인영이 나타났다.
“지금 누굴 베려고 하는 거지?”
‘천장……!’
챠르르르-
맹독사각(猛毒蛇脚).
수련 중 남하림이 지어준 이름이다.
한 번 물리면 필즉사.
스걱-
연조의 눈앞을 맹독사각이 지나간다.
독사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린 듯, 그의 목에 붉은 선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으…… 으…….”
털썩!
연조는 신음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탁! 탁탁!
따다다다다다다다-
타구봉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자화단의 무사들은 절망에 빠졌다.
퍽! 퍽! 퍽!
초인관은 밖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끝났어. 난 단지…… 총단장님을 국주에 올리고 싶었을 뿐…….’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드륵-
문이 열리며 눈에 익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단주…… 님.”
진강충은 초인관의 앞으로 다가가,
휙!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모든 게 내 잘못이다.”
“……아…… 닙니다.”
“수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놈이 어찌 상국의 무력단을 맡을 수 있겠는가.”
털썩!
초인관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가…… 책임을 지고 가겠습니다.”
“멍청한 놈. 네놈의 목숨으로 내 잘못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면, 넌 나에게 또 한 번의 실망을 주는 것이다.”
“…….”
“정말로 나를 위한 일이었다면 정정당당하게 책임을 져라.”
“알겠습니다…….”
초인관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일어나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등 뒤로 진강충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스스로 죗값을 모두 치렀다고 생각하면 나를 찾아와도 좋다.”
“고맙…… 습니다.”
* * *
남은 사람은 두 명.
그들이 지내는 곳은 상국이 아니라 외부다.
“흐음. 이번엔 누굴 만나지?”
눈을 감은 뒤 두 장의 쪽지를 섞었다.
쏘옥.
한 장을 골랐다.
#NAME?
“아홉째 사위를 만나러 가볼까?”
그가 사는 위치는 대총관 여의한에게 받아서 알고 있었다.
가릉현.
남하림은 상국을 나온 뒤 혼자 움직였다.
달그락. 달그락.
늙은 소가 끄는 수레가 느릿느릿 움직이며, 어느덧 도양촌의 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이보게, 도양촌이라네.”
“엇차!”
남하림은 수레에서 내려섰다.
“영감님, 고맙습니다. 요건 수고비입니다.”
“이런, 거지에게 수고비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네.”
“제가 이래 봐도 돈이 많습니다.”
“허허허. 자네가 무슨 성인 후개님이시라고…….”
“아핫, 그러네요.”
남하림은 주먹을 쥔 손을 노인의 품 안에 넣어주고는 마을을 향해 걸었다.
‘은행나무 아래에 있는 집이라.’
후다닥!
그때, 다섯 살에서 열 살 정도의 아이들이 이쪽으로 우르르 뛰어왔다.
“앗! 거지다.”
“거지다아아아!”
‘이것들이.’
빙글빙글.
아이들이 남하림의 주위를 둘러싸며 놀려댔다.
주위에서 그 모습을 본 어른들도 웃으면서 지켜보기만 했다.
‘쳇, 조막만 한 것들을 팰 수도 없고.’
스윽-
남하림은 멀리 당과 장수와 꼬지구이 장수를 보며 손짓했다.
“어이! 저기요! 둘 다 이리로 와봐요!”
당과 장수와 꼬지구이 장수는 어이가 없었다.
‘저 거지 놈은 뭐야? 장사도 안 되는데.’
“아, 빨리 와요! 야, 당과하고 꼬지구이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
당과와 꼬지구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빙글빙글 돌던 걸음을 멈췄다.
번쩍!
한 아이가 손을 들자 나머지 아이들도 너도나도 모두 손을 들었다.
남하림은 은전 한 냥을 꺼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거지님이 사주는 거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야 할 것이다.”
“와아아아!! 거지님! 거지님이 최고다!”
신난 아이들은 당과와 꼬지구이를 먹기 위해 우르르 몰려갔다.
남하림은 아이들 틈에서 은행나무가 보이는 서당으로 걸었다.
‘집이 아니라 서당이군.’
저수지 옆에 지어진 서당.
젊은 부인이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보, 잠깐만 나와 보세요.”
서당 안에서 젊은 사내가 나왔다.
“거지 복장 같은데…… 상당히 깨끗한 걸 보면 우리가 아는 인물 같지 않소이까?”
“아!”
젊은 여인, 채소미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니이이임!”
아이들은 젊은 사내 교신을 보자마자 달려갔다.
남하림은 꼬지구이를 하나씩 빼 먹으면서 젊은 부부에게 다가섰다.
채소미는 걸음을 멈춘 남하림을 보았다.
남하림에게서 흐르는 무형의 기운.
‘거지라면서…….’
어쩐지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네가 하림이야?”
그녀는 남하림보다 한 살 많았다.
“……예전 얼굴이 하나도 없구나. 그때는 예쁜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만나자마자 반말이야? 그리고 그런 말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찔려?”
“얘가 뭐라는 거야?”
“아니면 말고.”
남하림은 교신과 마주했다.
대학사의 아들.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상국의 서류 체계를 완벽하게 처리한 인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서류 작업을 간단하게 변화시켜 기존보다 일 처리가 반 이상 빨라졌다.
‘여 형님이 이건 자랑했었지.’
하지만.
‘……아,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는 가지 않겠다는 거군.’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
그의 시선에서 세속에 찌든 사람으로 바라보는 듯한 작은 경멸도 느껴졌다.
‘이야, 이건 천성이네.’
“여 형님께서 많이 걱정하시기에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
튕.
남하림의 손에 들고 있던 꼬챙이가 날아가 서당 현판에 꽂혔다.
“야, 너! 우리한테 싸움 잘한다고 겁주러 온 거야?”
“통보하러 왔다. 조만간 여 형님이 상국 국주 자리에 오를 테니 알고 있어.”
“누구 맘대로? 아직 정했다는 연락은 못 받았어!”
“고고한 사람이 장사꾼 수장이 되고 싶은 모양이네. 웃기지 않아?”
“…….”
채소미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후개. 상국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법이네. 그게 가능한 인물은 오직 본인이지. 그대 같은 무림인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몰라.”
이건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
“그래. 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잘 모르겠네. 하지만 이건 확실히 알겠는데? 당신은 여기 애들 가르치는 일이 딱 적성이야. 세상에 나오면 뒤에서 칼 맞을지도 몰라.”
피식.
남하림은 돌아섰다.
[잘살아라. 다른 누님들이 저 녀석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겠다.]
신형이 사라지기 전 들린 전음에 채소미의 몸이 움찔했다.
“와아아! 거지가 사라졌다!”
“거지 신선인가 봐.”
남은 아이들이 신기한 듯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교신은 굳은 인상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 *
‘검무를 추긴 뭘…… 찌를 호박도 없구만.’
기대하며 교신을 찾았지만 실망만 했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장시영은?
의뢰해 둔 사천성 총타에서 연락이 왔다.
#NAME?
그는 상국에 관심이 없었다.
‘싱거워라. 저절로 해결됐으니 잘됐다고 봐야 하나.’
남하림은 서궁상국에 돌아온 뒤 곧장 채태황을 찾았다.
“아홉째를 만나러 갔다고 들었다.”
“서당을 세워 애들을 가르치고 있더군요.”
“좋은 일이지. 만나 보니 뛰어나지 않던가?”
“농담이시죠?”
“허어…….”
반대로 남하림이 농담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라는 말인가?”
“사실대로 말해도 됩니까?”
“허락한다.”
“찾아가서 표정 한 번 보고, 한 번 대화를 해본 뒤 알았습니다. 자신은 고고하며 세상의 무지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더군요.”
“그 정도로?”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면 속이 좀 터졌을 것 같았습니다. 소미 때문에 그만뒀지만.”
“이런…… 내가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는가.”
채태황은 여전히 넷째 채화미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기현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다면…… 그 아이가 힘들지 않았을 텐데.’
유난히 얌전하고 순종적인 성격인 그녀는 기현에게 맞은 일까지 비밀로 했다.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자신이 조금만 내조를 더하면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여겼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않았어야 했거늘. 아니면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어야 했다면…….’
자책을 하는 채태황의 표정.
“아닙니다. 대총관 형님은 잘 고르지 않으셨습니까? 제대로 된 사람 찾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변하기도 하잖습니까. 자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래. 그렇지. 중매를 믿은 경우도 있고, 딸애들이 결혼 안 시켜주면 집 나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총관은 내가 직접 고른 사위지.”
방금 전까지 풀이 죽은 채로 있던 채태황은 기운이 난 듯 대답했다.
“대총관 여 형님이라면 상국을 훌륭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 겁니다.”
“너도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대부님이 너무 머뭇거려서 그런 겁니다.”
지나간 일은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궁상국 내부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남하림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부님, 사천신교를 그대로 둘 생각이십니까?”
채태황은 오래전부터 사천신교를 벼르고 있던 중이었다.
서궁상국 여러 지부에 강제적으로 찾아와 기부금을 내도록 강제하고.
내지 않는다면 신도들을 시켜 장사를 하지 못하게 계속 방해했다.
“작은 문제들로 다투는 것보단 저들이 크게 사고를 치면 한번 혼을 내주려고 기다렸다. 신교가 종교집단이면서 무림단체인지라 상국이 무력으로 계속 대항할 순 없었지.”
“상국도 무력이 약하지는 않지만 상국은 상국답게 싸워야죠.”
“어떻게?”
“그들의 주수입원을 찾아서 자금줄이 마르도록 해야 합니다.”
“자금줄을 끊을 수는 있지만, 사천신교에서 보복 공격을 해오면 그들과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는 저희들이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오오, 네가 확실히 처리를 하겠다면 우리야 좋지.”
사천신교가 사라진다면 서궁상국의 입장에서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다.
“면양에 가면 본 지부가 있다. 그곳에 가면 그놈의 목줄을 틀어쥘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 * *
한사코 거절했어야 했다.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대부는 절대로 방심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뿌우우웅-
두두두둥!
나팔 소리와 북소리가 잔치를 연상시켰다.
송별식.
걸협오성이 서궁상국을 떠나는 날.
상국 소속의 전 인원이 송별식 광장에 모여들었다.
[형, 떠나는 마당에도 축사를 하시는데?]
[그, 특이한 분이시잖아.]
특이하다는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한 시진 후 송별식이 끝나자,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이 물결처럼 걸협오성의 옆으로, 옆으로 이어졌다.
남하림은 그동안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스윽.
안중은 천에 조심스럽게 싼 술병을 내밀었다.
“식주입니다. 가는 길에 출출하실 때 드시면 됩니다.”
“숙수님, 고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하,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후개님께 도움이 많이 받았지요.”
남하림은 길을 떠나기 위해 밖으로 나와 국주 채태황이 내어준 마차를 찾았다.
“면양에 갈 때까지 작은 마차를 빌려주겠네.”
스르르륵-
얼음 위로 미끄러지듯,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다가오는 마차.
‘오호.’
남하림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육두사륜마차(六斗四輪馬車).
티 한 점 없는 여섯 마리의 백마와 황금색으로 치장한 사륜마차가 당당하게 멈췄다.
“……멋있네요.”
“후후, 아주 가벼운 성의다.”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사실 그냥 걸어가는 게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게 더 가볍고 빠르거든요. 이런,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걸어서 가겠다고? 거리가 먼데?”
“중간중간 신법을 펼치면 멀지도 않습니다. 개방 신법이 좀 빠릅니다.”
“음, 혹시 내 마차가 부끄러워서 걸어간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렇게 번쩍번쩍 멋진데.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툭툭!
채태황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떠나는 남하림의 등을 두드렸다.
* * *
‘나왔군.’
서궁상국을 떠나는 다섯 명을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
문령이다.
저들을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완벽한 기회를 찾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했다.
현재 거리가 저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안전한 범위였다.
‘이번에는 필히 내 모든 것을 쏟아 네놈의 목을 따주마…….’
그리고 아주 잠시 그들에게서 시선이 뗀 사이.
‘뭐지?’
다섯 명이어야 하는데.
‘네 명. 한 명이 안 보이는데?’
좋지 않다.
문령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한심걸이군. 이놈이 어디로 간 거야?”
“네놈 뒤.”
“……!”
흠칫.
등 뒤로 다가온 목소리.
온몸에 닭살이 돋는 듯 찌릿했다.
“천천히 돌아서라.”
“…….”
‘일…… 장.’
뒤에 선 인물과 거리를 확인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둘 사이를 내리눌렀다.
휙!
문령이 부지불식간 앞으로 몸을 날렸다.
파앗!
그와 동시에 이휘연이 태극흑검을 휘둘렀다.
스걱.
‘욱.’
문령의 허리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살갗만 스쳤을 뿐인데.
‘쯧, 한심걸. 이놈도 괴물이야. 내 기를 어떻게 찾은 거지?’
이휘연의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이런…… 천살성을 간과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