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구도부마
남하림은 채화미를 업고 곧장 목휴궁으로 들어섰다.
“형! 어떻게 된 거야?”
팽유도가 놀라서 달려 나왔다.
“무독은 어디에 있어?”
“안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데리고 와줘.”
“알겠어요!”
휘리리릭.
팽유도가 비취류신법(飛取流身法)을 펼치자 술에 취한 듯 몸이 흔들거렸다.
팽유도가 사라진 자리에 취향(取香)이 조금씩 진해졌다.
“다들 열심히 수련하고 있군.”
스윽-
남하림은 조심스럽게 채화미를 침상으로 눕혔다.
“누나,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아, 알겠어.”
남하림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이휘연과 성철각이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넷째 누님이야.”
이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아직 모르기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당무독과 팽유도가 침실로 들어섰다.
“부장, 대체 무슨 일이야?”
“무독, 나중에 말해줄게, 화미 누나인데 한번 봐줄래?”
“어……? 어.”
당무독은 침상에 누워 있는 채화미를 보며 단번에 알았다.
투명할 만큼 백색이어야 할 흰자가 색이 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중독…… 같은데?’
얼마 전 당문에서 보았던 연홍의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스윽-
당무독은 항상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 안에서 작은 은갑을 꺼냈다.
딸깍.
은갑을 열리면서 길이가 서로 다른 은침이 나타났다.
당무독은 채화미의 손을 잡은 뒤 손가락 끝을 가볍게 찔렸다.
“음……?”
은침의 뾰족한 끝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뭐지? 반응이 없잖아. 독인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볼까?’
슥.
이번에는 꺼낸 것은 청옥병.
은행잎을 백 일 동안 서늘한 그늘에서 말린 후 압착하여 만들어진 액체다.
뚝!
한 방울 떨어뜨린 후, 그녀의 피가 묻어 있는 은침을 찍어 보았다.
여전히 별다른 변화는 없다.
‘어라, 신기한데? 독이 아니라 마약 종류인가?’
“어때?”
“잠깐만, 마지막으로…… 이것까지는 하기 싫었는데…….”
당무독은 손에 낀 얇은 투장(透掌)을 벗었다.
콕!
그러고는 투장을 벗은 자신의 손가락에 은침을 찔렀다.
‘독성분이 미세하게라도 있다면 분명 반응이 오겠지.’
찌릿!
당무독의 손가락이 부들 떨렸다.
휙!
“와 씨, 부장, 찔렸어.”
“그러네.”
“형제가 찔렸다는데 차갑기는. 호- 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미쳤냐. 너 웬만한 독은 불침이잖아.”
“차갑군, 차가워.”
당무독은 투장을 다시 끼면서 확신했다.
‘이건 마약이 아니라 확실히 독이야.’
가방에서 다른 상자를 꺼내 들었다.
‘차라리 마약이었다면…….’
조금은 편했을 것이다.
“예쁜 누님, 이번에는 조금 따끔할 겁니다.”
“네…….”
쿠욱.
그녀의 손가락에서 피를 뽑아냈다.
스윽.
당무독은 몸을 일으켰다.
“부장,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알았다. 먼저 나가 있어.”
네 사림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남하림은 웃는 얼굴로 채화미를 안심시켰다.
“누나. 잠시 이야기만 하고 올게. 걱정 말고 쉬고 있어.”
“그래…… 갔다 와.”
밖으로 나가는 남하림의 뒷모습을 보는 채화미의 눈동자의 눈물이 맺혔다.
* * *
접객실로 모인 다섯 명은 자리에 앉았다.
당무독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저음으로 변했다.
“부장, 저 방에 누워 있는 여인이 누구라고 했지?”
“대부님의 넷째 채화미 누님이야.”
남하림은 류향궁에서 그녀를 업고 묵휴궁으로 온 이유를 설명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부장도 짐작한 것처럼 저분은 중독된 상태야. 얼마나 심한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겠지만.”
“……대부님은 이 사실을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 하루에 한 번씩 의원들이 온다고 했어.”
“신의가 아니고선 저분이 중독되었다는 걸 알기 어려웠을 거야. 나도 결국 내 몸을 희생해서 알아냈잖아.”
“나도 희생했다. 너를 살리기 위해 엄청나게 징그러운 걸 참아냈지.”
“……참 내.”
당무독은 바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을 한 덕분인지 이들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렸다.
“무독, 부탁해.”
“알겠어. 그렇지 않아도 어떤 독인지 궁금해 미치겠어. 천년고목의 은행잎으로 만든 공손수액(公孫樹液)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독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거든.”
“그 정도로?”
“맞아. 독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하는 의원이라도 몸을 상하게 만든 이유를 모를 거야.”
“와아아, 겁나는 독이구나.”
“그렇긴 하지만 극독은 아닌 듯해. 당장 죽이고자 했다면 이런 독을 사용하지 않았겠지.”
스윽-
당무독은 급히 일어났다.
새로운 일거리.
심각한 사건 내용과 달리 그의 표정의 밝았다.
“난 지금부터 여기에만 집중할 거야. 나중에 봐.”
“수고해.”
당무독은 한 마리 물 찬 제비처럼 연쌍비를 펼치며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남은 사람은 네 명.
“유도야.”
남하림은 팽유도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지금 당장 난충분타에 다녀와야겠다.”
“난충분타에요?”
“그곳에 가서 이곳 서궁상국의 넷째 사위 기현의 신상에 대해…… 아니, 그것보다 대부님의 아홉 사위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탈탈 털어와.”
“알겠어요. 제가 빨리 갔다 올게요.”
“돌아올 때는 난충분타 방도들과 함께 와서 상국 주위에 대기하도록 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네. 다녀오겠어요.”
휘릭!
팽유도는 그림자를 뒤로 남기며 사라졌다.
“부장, 우리는?”
“휘연 형은 철각과 같이 묵휴궁에 한 놈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줘. 그놈 성격이라면 사람들을 보내고도 남아. 난 유도가 오는 동안 상국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봐야겠어.”
“알겠다.”
* * *
우당탕탕!
기현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방은 이미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씩씩.
여전히 그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남하림에게 맞은 턱은 퉁퉁 부어 있었다.
“아…… 이…… 씨…… 버어얼……!”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나름 호신강기를 일으켰는데도 제대로 걷어차였다.
“개…… 때…… 끼…….”
까딱.
그는 잘 나오지도 않는 말 대신에 손가락으로 호위무장 환목을 앞으로 다가오게 했다.
‘아…… 좆됐다.’
환목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휘익.
기현이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어억!
“어어억!”
환목은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이…… 때끼가……!”
위로 찢어진 눈매가 더욱더 가늘게 보였다.
기현은 그가 바닥에 넘어지지 않자 달려들어 얼굴을 연이어 가격했다.
퍽!
퍼어억!
환목은 또 한 번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주룩.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뚝뚝.
기현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를 보면서 손을 멈췄다.
“그…… 년을…… 데꼬…… 와.”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환목의 표정은 착잡했다.
털썩!
호위무사들이 떠난 방.
기현은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망할 계집이…… 괜히 나와 가지고…… 이런 사달이 날 줄이야.’
“흑, 흐흑-”
방구석에서 여인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기현은 옆에 손에 놓인 의자를 잡고 던졌다.
콰당!!
의자는 세 명의 여인들 머리 바로 위 벽에 맞아 산산조각 났다.
“쭉고…… 시퍼?!”
“……!”
채화미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이었다.
그들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 채화미가 방을 빠져나온 것.
‘망할 년. 이대로 조금만 더 있었으면 세상모르게 죽을 수 있었거늘.’
기현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스윽.
옆에 있는 동경 속 자신의 얼굴.
점점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는 쪽팔려서 며칠 동안 향옥이를 볼 수 없겠군.’
하루에 한 번이라도 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근데…… 그 새끼…… 때문에……!’
“……큭, 크큭, 크크크큭.”
기현은 화를 내다가 갑자기 괴소를 내뱉었다.
‘조만간 네놈의 목을 따기 위해 사신이 찾아갈 것이다.’
그는 씨익 살소를 지었다.
“아, 아야야야…….”
인상을 쓰자 부어오른 턱이 따끔거렸다.
* * *
휘익. 휘익.
대식장 안은 바쁘게 움직였다.
서궁상국의 식사를 책임지는 대식장 숙수 안중이 사방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굼벵이 같은 놈들!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할까?”
두다두다.
사내들과 여인들이 야채를 다듬고 끓는 기름에 고기를 튀기고 있었다.
“항충이 이놈이……! 하필이면 사람이 모자랄 때 고뿔이 걸려가지고!”
부글부글.
안중은 칼질을 하면서 아궁이에서 끓고 있는 소리를 듣고 소리쳤다.
“누가 빨리 가서 저어! 망치겠다!”
휘익!
안중의 뒤로 바람이 스쳤다.
스윽-
슥-
슥-
탕국을 젓는 소리가 좋았다.
씨익.
고기를 다듬는 안중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호. 누구냐? 솜씨가 좋은데……?”
안중은 고개를 돌려 탕국을 젓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솥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잘하고 있어. 계속 돌려.”
“언제까지요?”
목소리가 젊었지만, 바쁜 마당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국물이 약간 붉게 오를 때까지 저어라.”
“그러죠.”
스윽. 슥…….
탕을 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신의 힘으로 다해 저어야 하는 고노동의 작업.
하지만 사내는 금강수체의 자세를 잡은 뒤 국을 가볍게 저었다.
반각 동안 탕국의 색을 지켜본 후.
“숙수님, 붉은색이 올라오는데요?”
“벌써?”
자신의 예상으로는 아직 반각이 더 필요했다.
칼을 내려놓고 돌아서자,
탕국 앞에서 대자 주걱을 들고 서 있는 남하림이 보였다.
“어…… 너…… 누구냐?”
* * *
대식장에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
스윽-
안중이 잔을 건넸다.
“한 번 드셔보십시오.”
“이게 뭔가요?”
“주방에서 만든 식주(食酒)입니다. 별로 좋은 술은 아니지만 한 끼 식사를 위한 일이 끝난 뒤 기운을 차리게 하는 데는 최고입니다.”
“고마워요.”
남하림은 식주를 받은 뒤 한 모금 마셨다.
짜릿한 느낌이 청량하게 목을 타고 내려갔다.
“오오…… 이 타는 듯한 시원함.”
“광천수를 부어서 만든 술이지요.”
“그래서 이런 맛이 나는군요.”
“어떻게, 한 잔 더 마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또르르르-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네 잔이 되었다.
“꺼억! 상국에는 전부 도둑놈들밖에 없습니다요!”
“그렇군요.”
“국주님이 불쌍해 죽겠습니다요.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분이신데…… 사위라는 놈들이 하나들같이 자신의 몫만 챙기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전부…… 에이구, 전대 상국주님께서 그런 유언만 남기지 않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숙수님, 유언이요?”
“아, 모르고 계셨습니까요? 그게 뭐나면…….”
안중은 주위를 살폈다.
“주위를 막아놨으니 말이 새어 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 네에…… 그게, 전대 상국주께서 유언으로…….”
* * *
남하림은 대식장을 나와 묵휴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채씨의 성(姓)을 지닌 사내만이 서궁상국을 이어야 할 것이며, 만일 아들이 없을 경우 양자로 삼아 서궁상국을 이어야 한다.
‘대부께서 누님들을 아홉 명씩이나 낳은 이유가 이거였어.’
많아도 너무 많은 딸을 아홉이나 가진 대부가 이해되었다.
아홉 명의 사위들.
서궁상국 사람들은 그들을 몰래 구도부마(九盜駙馬)라 부른다고 했다.
‘숙수의 말처럼 완전 도둑놈들이야.’
구도부마.
그들은 저들 중 한 명이 채씨 성 양자가 되어야 한다 믿고 있었다.
‘훗, 그렇게 된 거군.’
기현이 자신에게 적의를 보인 이유.
‘누님들에게 양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모두 알고 있겠군.’
멈칫.
남하림은 걸음을 멈췄다.
묵휴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삼십 대 후반의 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란…… 누님인가.’
국주 채태황의 장녀 채수란과 그의 남편인 대총관 여의한이 걸어오고 있었다.
슥.
남하림이 두 사람의 앞에 섰다.
“네가 하림이구나.”
“반가워요, 수란 누님.”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네.”
“당연하죠.”
휙!
그녀의 옆에서 사내의 손이 앞으로 나왔다.
“나도 기억을 하느냐?”
“의한 형님이 아니십니까? 상국의 대총관이시라고 들었습니다.”
“하하, 알고 있었군. 반갑다.”
“두 분께서는 어딜 가시는 길입니까?”
“자네를 만나러 묵휴궁으로 가는 길이었네.”
“거기서 기다리지 않으시고요.”
“우리보다 먼저 볼일이 있는 자들이 있더군. 나중에 다시 오려던 참이었네.”
“흐음…….”
대충 누구인지 감이 왔다.
“류향궁 소속의 무사들인 것 같더군.”
여의한은 서궁상국 대총관의 직책을 지닌 인물이다.
“무사들이 자리를 이탈해 묵휴궁으로 가는 것을 보고만 계셨습니까? 대총관이신데.”
“대총관이라고 해서 류향궁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네. 난 그저 서궁상국을 관리만 할 뿐이지.”
“아항, 그렇군요.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네요.”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인가?”
“관심 있는 것만 관여한다는 뜻이 아닌가요?”
“……자네, 함부로 말을 하는 듯하군.”
“원래 거지가 성격이 좀 못나고 그렇습니다.”
“…….”
스윽.
남하림은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했다.
“다른 볼일 없으시면 그만 가보겠습니다.”
“…….”
휘익!
남은 두 사람은 남하림이 사라진 빈자리를 쏘아보았다.
‘허어, 진심이 아니면 말이 통하지 않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