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133화 (134/328)

133. 채화미

채태황은 진지했다.

절대자의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무게를 잡으면 무서운 분이시지.’

남하림은 그런 그가 부담 됐다.

“남천 아우에게 연락을 띄웠다.”

“기다릴 필요 없을 겁니다. 제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연락이 오겠지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님들의 뜻이 중요하겠지만, 지금이야 본인의 선택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허허, 비록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부모님의 의견 또한 존중해야 되지 않겠느냐?”

“당연히 맞습니다. 세상에 낳아주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을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맞네. 옳은 말이지. 하나 똑똑한 자식은 현명한 부모님이 있게 마련이니, 보고 배워야만 가능한 일이지.”

“현명한 부모님은 자식이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이라 봅니다.”

“자식 뒤에서 불을 밝혀주기 때문이니라. 현명한 자식은 부모를 모심에 제일의 효도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둘은 마치 진리를 깨닫기 위한 선문답처럼 주고받고 있었다.

‘쩝, 개방에 들어가면 언변도 가르쳐 주는 모양이군. 이러다 끝이 없겠어. 그렇다면 먼저 꺼내는 수밖에…….’

채태황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채씨 성으로 바꿀 테냐?”

“대부님, 그동안 한 번 연락도 없으시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되겠습니까?”

“그거야…… 난 네가 연락을 할 줄 알았지.”

남하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채태황을 똑바로 쳐다보며 억울한 표정으로 하소연했다.

“대부님도 제 처지가 어떤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이 열다섯에 느닷없이 개방에 가서 거지가 됐는데. 연락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

“정말로 저를 아들로 맞이하고 싶으셨다면, 단 한 번이라도 저에게 연락하셔야 했습니다.”

남하림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그거야…… 이미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았느냐.”

“대부님.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모르는 척하다가 갑자기 관심을 가지신 이유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흐음.”

채태황과 남하림은 시선을 마주쳤다.

타고난 영안(靈眼)의 능력으로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채태황의 눈빛.

‘이분의 눈동자는…….’

거짓을 말할 수 없게 만든다.

군사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것은 채태황과 달리, 군사는 사람을 짓누르는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좋다. 사실대로 말을 하마.”

“…….”

“네가 열다섯 살이 됐을 때 데리고 올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망설인 것도 맞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굳이 양자까지 들이면서 채씨 성에 상국을 물려줄 필요가 없다고 보셨겠지요. 제가 채씨가 되어도 결국에는 남씨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사위들 중에서 분명 똑똑한 사람이 있다고 자신하셨을 거고요.”

“맞다. 네가 서궁상국의 국주가 된다고 해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남천상국에 유리하게 움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히는 아니죠.”

“뭣이 아니라는 것이냐?”

“대부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셨겠지만, 서궁상국이 남천상국에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바람을 넣는 이들이 있었겠지요.”

‘똑똑한 놈. 제대로 짚었군.’

남하림의 말 그대로, 채태황은 자신에게 가까운 인물의 조언을 따랐다.

“그래서 저에 대해 잊고 계시다가 제 이름이 중원에 떠돌자 뭔가 아쉬움이 생기셨고, 그사이에 상국의 분위기도 바뀌었을 겁니다.”

“하하하, 맞다. 개방의 후개. 걸협오성의 위명이 중원 무림에 퍼지니 내 아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어쩌죠? 저는 그럴 마음이 없는데.”

“……흐음.”

능글맞은 표정이 마치 상왕 남후정을 빼다 박은 듯했다.

‘그 녀석과 닮았어.’

그와 술을 마실 때.

“채 형님, 제 아들 세 놈 중에서 가장 아끼는 놈이 누군지 아십니까?”

“든든한 첫째 경이가 아니더냐?”

“아닙니다.”

“그럼 똑똑한 둘째 동한이냐?”

“아닙니다. 셋째 하림입니다.”

“그 녀석이……? 내가 보기에 귀엽기는 하지만, 나이도 어린 게 좀 건방져 가지고…….”

“아하핫, 그 녀석이 건방지긴 하죠. 근데 세 놈 중 가장 저를 빼닮은 놈이 그 녀석이지요. 뭐, 양자 얘기가 나오긴 했어도, 형님께서 굳이 받지 않으실 거라는 건 압니다만.”

남후정의 말.

‘아아…… 그래서…… 내가 미적거리는 사에 이 녀석을 개방으로 보냈구나.’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는 느낌을 받았다.

아우님은 남하림의 출중한 모습을 넘보지 못하도록 개방에 보내 버린 것인가.

개방과의 약조도 지키고, 어린 하림이 재능을 드러내 상국에 도움이 될 때까지 시간을 벌 셈이었을 것이다.

“한 번 더 생각을 해볼 수 없느냐?”

“굳이 대를 이어야 한다면, 제가 아니더라도 뛰어난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누님들 전부 혼인하신 걸로 아는데요. 대부님께는 아들 같은 아홉 명의 사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

남하림의 말에 채태황은 머뭇거렸다.

무엇인가 할 말이 많은 듯한 그의 표정.

“뛰어난 녀석들이라…… 다른 한편으론 매우…….”

채태황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남하림을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외롭고 외롭구나. 어느 누가 내 외로운 마음을 알아줄꼬.”

‘……어째 협박하는 방식이 아버지랑 똑같은데.’

벌떡!

슥 눈치를 본 남하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 어딜 가느냐?”

“피곤해서요. 오늘은 쉬고 싶습니다.”

“밥 때가 되었는데 같이 먹지 않겠느냐?”

“개방의 식사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먹어야 하고요.”

“음, 그럼 술이라도 나중에 한잔할까?”

“아, 어제 누님들이랑 너무 많이 들이부어서 당분간 금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대부님.”

꾸벅.

남하림은 고개를 숙이고 슝 사라졌다.

‘매정한 놈.’

채태황이 아쉬운 표정으로 남하림이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 * *

‘냉정하게 잘라서 말했으니 내 뜻을 아시겠지.’

뚝.

잠깐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던 남하림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국주궁을 나서는 문 옆에서 느껴진 기척.

‘누구지?’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다.

‘복장으로 봐선 상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고.’

상급의 광비단으로 지은 의복.

청년 사내도 남하림을 보았는지 곧장 앞으로 걸어 나왔다.

중간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그대가 남하림인가 보군. 내 이름은 기현이다. 국주님의 넷째 사위지.”

‘넷째 사위라…… 내력이 느껴지는데 무공을 익혔나?’

상국의 여인이 무인과 혼인을 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넷째 화미 누님과 혼인을 하셨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

남하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자식이 적의를 보이네?’

“여기에 서 계시던 이유가 본인을 기다린 모양이군요.”

“맞네. 잠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까?”

“중요하다고 하면 중요한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지.”

“그 말은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을 한다는 뜻이네요.”

“멍청하지 않아서 좋군. 다행히 말이 통하겠어.”

남하림은 입술을 굳게 닫았다.

‘태생적으로 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새끼군.’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어떠한 심성을 가진 놈인지 바로 파악 가능했다.

“알겠소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기나 하죠.”

“흥, 나를 따라오게.”

기현은 자신 있게 앞장서며 류향궁으로 향했다.

류향궁은 서궁구봉(西宮九鳳) 아홉 명의 자매들 중 넷째 채화미의 개인 전각.

기현은 본채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을 지나 정자로 안내했다.

“앉지.”

‘와, 이거…… 완전 아랫사람 취급하는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될 정도다.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봐줄까.’

척!

남하림은 의자를 꺼내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며 앉았다.

은근히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모습.

기현은 그런 남하림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건방지군. 후개라고 해서 내가 대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만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버리는 게 좋다.”

“…….”

“서궁상국에 비하면 개방은 아무것도 아니지. 무림 문파인 개방은 무림에서야 알아주지만 상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휴우- 지금 나를 부른 이유가, 개방은 여기서 먹히지 않으니 조용히 있으라는 말을 하기 위함인가요?”

“당연하다. 그리고 다치고 싶지 않다면 조용히 상국을 떠나.”

“이유가 있소?”

“서궁의 일은 서궁의 가족이 처리할 것이다. 이방인은 필요 없다는 것이지.”

“그게 이유요?”

“그렇다.”

“굳이 몇 마디 되지도 않는 말을 해주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소? 상국에 있는 사람이 시간 귀한 줄 모르는군.”

“후개. 무사히 나가고 싶다면 조용히 하는 게 좋을 텐데.”

기현은 남하림을 처음부터 후개라 불렀다.

남천상국의 셋째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불리한 부분이기에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흐음…….’

남하림은 어렴풋이 이해했다.

국주가 결국 자신을 서궁상국으로 부른 이유.

양자라고 하나 아들은 사위보다 한 끗발이 높다.

“서궁의 가족들이 뭘 처리하는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관여할 생각은 없었소.”

“후후후, 잘 생각했다.”

“잠깐. 성격이 급하군. 말이라는 게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인데.”

“……무슨 뜻이냐?”

“당신이 내게 해준 말을 들으니 서궁이 처리하는 일에 아주 관심이 생겨서 말이지. 내가 워낙 청개구리 같은 놈이라…… 이제 관심을 가져볼까나? 하하하!”

‘이 새끼가…… 사람을 놀려?’

파앗!

기현이 몸을 실어 주먹을 날렸다.

이미 준비를 한 듯 온전한 내력이 담긴 일권이 제법 강맹하게 뻗어 나왔다.

‘다 보이네.’

기현의 움직임은 달팽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느릿했다.

“늦어. 어디서 한숨 자고 와도 되겠군.”

남하림은 왼손을 들어 기현의 주먹을 잡았다.

손에 힘을 주자 그의 손목이 꺾인 채로 눌렸다.

“우욱!”

짧게 울려 퍼지는 비명.

꾸우우욱!

남하림은 기현은 손을 세게 쥐며 천천히 내리 누렸다.

“아아아악!”

처음과 차원이 다른 고통이 밀려왔다.

“놔라, 이 거지 새끼야!!”

‘완전 말이 개차반인데. 고우신 화미 누님이 왜 이런 놈과 혼인을 했지?’

“아아아악! 이 자식이…… 손을 놓지 못할까?!”

“그래? 원한다면 놓아줘야지.”

타아앗!

남하림은 내력을 올린 뒤 그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주루루룩-

기현 또한 내력을 끌어 올려 대항하려고 했지만 너무나 쉽게 뒤로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자존심은 살아 있었다.

“허억, 허억, 제법이군. 후개라고 하더니 한 수 정도는 있는 모양이야.”

“기현이라고 했나? 까불다가 맞으면 상당히 아프다고. 지금 화미 누님 때문에 엄청 참고 있는 거거든.”

“크하하! 역시 무림인들은 무식하다니깐! 말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람들이니 이 내가 이해를 해야지.”

“방금 전에 먼저 주먹을 휘두른 사람이 누군지 벌써 까먹었냐? 지 몸에 똥 묻은 줄도 모르다니. 이런 생양아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이 새끼가…… 죽고 싶은 모양이지?!”

척!

기현이 손을 번쩍 들자 류향궁 호위 무사들이 나타나 정자 주위를 포위했다.

휙! 휙! 휙! 휙!

약 오십여 명의 호위 무사들이 언제든지 검을 뽑을 수 있게 자세를 잡고 있었다.

“큭큭, 여기서 내가 명을 내리는 순간 네놈의 목숨은 사라진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멍청하잖아.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나를 죽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안 돼? 아,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는데 이 정도의 인원 가지고는 나를 못 죽여.”

샤아악-

남하림이 곧바로 취리건곤보를 펼쳤다.

‘헉, 이놈이 갑자기 어디로……!’

술에 취한 듯 갑자기 흔들거리는 남하림의 모습.

기현의 눈앞이 순식간에 어지러워졌다.

터억!

남하림이 기현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커억! 놔라!”

“무공을 배웠다는 놈이 놓으라는 말밖에 못하고.”

창졸지간 일어난 일에 호위무사들은 곧바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채애애앵!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린 호위무사들이 검을 꺼내며 남하림을 겨누었다.

“기 당주님을 내려놓아라!”

꾸욱.

남하림은 손에 점점 힘을 더 주었다.

“커어억!”

숨이 막힌 기현에게서 고통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스스스-

호위무사들이 조심스럽게 정자 앞으로 다가섰다.

우우우우웅-

“죽고 싶지 않다면 모두 멈춰라.”

남하림은 전신의 내력으로 목소리에 살기를 실었다.

파아아아앗!

마치 연못에 돌멩이가 떨어져 일어나는 파문처럼, 웅혼한 목소리가 호위무사를 사이로 퍼져 나갔다.

찌이이이잉!

온몸에 느껴지는 살기의 따가움이 본능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두려움을 끌어 올렸다.

슬금슬금.

호위무사들은 남하림의 곁으로 다가서지 못한 채 반대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후개 남하림.

걸협오성의 중원 무용담은 사실이었다.

기현은 목덜미가 잡아채인 채로, 물러나는 호위무사를 보았다.

‘크으으. 죽일 놈들이……! 으윽!’

점점 정신이 희미해질 쯤.

“하림아……! 그분을 놓아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류향궁의 주인 채화미.

“하림아…….”

남하림은 채화미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당신…… 운이 좋군.”

휘익!

우당탕탕.

기현이 몸의 중심을 잃고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남하림이 채화미에게 다가갔다.

“화미 누나.”

“바, 반가워. 잘 컸구나.”

억지로 웃음을 보이는 듯한 미소.

창백한 얼굴에 기운도 없어 보였다.

덜덜덜.

남하림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뭐야? 설마……?’

남하림이 채화미의 눈동자를 자세히 바라봤다.

“누나. 어디 아픈 거야?”

“……아니…… 난 괜찮아.”

채화미는 고개를 돌리며 남하림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쿨럭쿨럭, 크, 에이…… 망할 년이……! 그냥 처박혀 있지 나오고 지랄이야!”

“죄…… 송해요.”

기현은 겨우 몸뚱이를 일으켜 채화미의 앞으로 다가섰다.

“누가 이년을 방에서 나오게 했어? 빨리 안 들어가?”

“죄송해요. 하림이와 잠깐만…… 이야기를 하면 안 될까요?”

“이게 어디서……! 화악……!”

기현은 손을 올려 그녀를 때리려고 하는 순간!

휘익-

퍽!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기현의 몸이 정자 밖으로 떨어졌다.

남하림은 고개를 돌려 안절부절못하는 채화미를 보며 물었다.

“대부님도 알고 있어?”

“…….”

“아, 진짜……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아버지인 태청황이, 그 상군이, 그것도 서궁상국 내에서 이 상황을 모른다고?

남하림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하림은 당장 국주 채태황에게 달려가서 당신의 넷째 딸이 어떤 상황인지 따지고 싶었다.

휙!

남하림은 세차게 돌아서며 그녀의 앞에 앉아 무릎을 굽혔다.

“업혀.”

“…….”

“뭐 해?”

“어딜…… 가려고?”

“치료해야지!”

“의원이 아침마다 찾아와.”

“됐어. 의원이 고칠 수 있었으면 벌써 나았을 거야.”

스윽.

머뭇거리던 채화미는 남하림의 등에 몸을 맡겼다.

‘젠장…….’

몸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울 정도다.

“지금은 안 물어볼 거야. 일단 몸부터 치료하자.”

“으, 으응.”

남하림은 정자를 포위한 호위무사들 앞으로 걸어갔다.

“물러나라. 모두 죽여 버릴지도 모르니까.”

호위무사들은 살면서 이보다 강한 살기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마, 맞서면 죽는다.’

그들은 옆으로 물러났다.

“끄으응.”

정자 밖으로 떨어진 기현은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했다.

채회미를 등에 업은 남하림이 기현의 앞으로 다가섰다.

“당신. 조금만 기다려. 물어볼 게 많으니깐.”

휘리릭!

성철각의 각법을 눈여겨본 환보걸선각.

터어억!

“커어어억!!”

또 한 번 턱주가리를 맞은 기현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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