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82화 (83/328)

82. 개방신화의 시작

타구진의 기세에 살수들은 몸이 움찔거렸다.

전풍은 뒤로 물러나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내 칼에 먼저 죽고 싶은 놈이 누구지? 저놈들을 죽여라!”

채애앵-

일살군의 살수들은 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한 푼 주쇼!”

남하림의 목소리에 선두에 선 일 열의 개방도가 허리를 숙였다.

곧바로 뒤쪽 이 열의 개방도들이 타구봉을 던졌다.

퍽퍽퍽퍽퍽!

갑자기 날아든 타구봉에 달려오던 살수들이 맞고 쓰러졌다.

“개 잡자!”

부우우웅-

이 열의 개방도가 옆으로 빠지면서, 삼 열에서 대기하던 개방도들이 하늘로 솟구치며 살수들을 향해 그물망을 쏟아냈다.

퍼석!

시커먼 그물에 찐득한 기름이 묻어 있었다.

“개판 난장판!”

곧이어 허리를 숙였던 일 열의 개방도까지 가세하더니, 그물 안에 갇힌 살수들을 향해 타구봉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아아악! 사람 살려!”

퉷퉷퉷.

침까지 뱉자 비명은 더 커졌다.

“으아아아아악!”

번쩍!

철썩-!

스걱.

그사이에 팽유도와 성철각, 이휘연도 살수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전풍은 철부극을 휘두르며 사방에서 밀려오는 타구봉을 막아냈다.

“이…… 거지 새끼들이……!”

전신의 내력을 끌어내며 눈앞 거지 다섯 놈을 향해 철부극을 펼쳤다.

슈우우욱-

‘베었나?’

단숨에 거지들의 목을 베었다고 믿은 순간,

채애앵!

철부극을 막아선 검.

‘이건…….’

휘이익!

전풍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휘연이 발을 뻗어 그의 가슴을 찼다.

퍼어억!

강한 발차기에 그대로 뒤로 쓰러진 전풍.

“커어억! 넌…….”

피이잇-!

이휘연은 태극흑검을 들어 무감하게 앞을 그었다.

파아앗-

전풍은 쓰러진 채로 버둥거리며 철부극을 휘둘러 막아내기에 바빴다.

‘헉, 헉헉…….’

일어나려고 했지만, 자비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누운 채로 뒤로 기다시피 움직여 검을 막아내기도 힘겨웠다.

‘헉…… 헉…….’

결국 이휘연의 검 끝이 목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 보이나?”

“…….”

이휘연이 타구봉으로 신나게 수하들을 패고 있는 인물을 가리켰다.

“저자가 특외부의 수장이자 본 방의 후개다. 살천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조만간 살천성도 지워지겠지.”

“…….”

스스-

이휘연을 노려보던 전풍의 몸이 꿈틀거렸다.

퍼어엉-!

두 사람 사이에 폭연의 연기가 솟구치며 앞을 가렸다.

“어딜.”

스걱-

이휘연은 연기를 가르며 검을 공중으로 올려쳤다.

“커억!”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비명이 들렸다.

“어…… 떻게…….”

“잔재주는 통하지 않아. 네놈의 살기는 손에 잡힐 정도군.”

붉은빛의 태극흑검이 펼쳐졌다.

“커억…….”

서서히 옅어지는 연기 속에서 드러나는 전풍의 죽음.

그와 동시에, 일살군의 살수들도 개방의 타구봉 아래 완벽하게 쓰러졌다.

* * *

휙! 휙! 휙!

수많은 시체들이 분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르-

안본강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마지막으로 던져진 시체는 일살군 전풍의 주검.

“당장에 저놈의 거지들을……!”

“가주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이살군장 한순이 나섰다.

“걸협오성뿐 아니라 개방의 분타를 너무 만만하게 여긴 듯합니다.”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거지 놈들이 무서워서 물러난다는 말은 아니겠지?”

“야간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저놈들은 우리와 달리 어둠 속에선 제약이 많을 것입니다.”

“으으음…….”

“야간에 움직인다면 일살군이 당했던 치욕을 갚을 수 있습니다.”

삼살군 율성도 찬성했다.

“좋다. 더구나 오늘은 삭일(朔日)이다. 야간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빠드득.

안본강은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풍천분타를 보며 이빨을 갈았다.

* * *

풍천분타.

방도들은 대승으로 흥분이 가득했다.

하지만 스스로 참아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모양이군.”

“흐흐흐, 그건 내가 바라는 바지.”

당무독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움직이는군.”

“부장, 어떻게 야간에 공격할 걸 알았어?”

“단순하잖아. 살수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는 덴 어둠이 가장 좋으니까.

처음에는 우릴 만만하게 봐서 대낮에 쳐들어왔겠지. 하지만 그놈들은 기본적인 걸 잊고 있어. 기습이란 모르고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지,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에 좀 어둡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남하림은 분타주 정전국을 보았다.

“준비가 끝났습니까?”

“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당분간 적들은 공격을 하지 않을 테니 쉬고 계세요.”

“넵, 그럼 한숨 때리겠습니다.”

드르릉.

정전국과 풍천분타의 개방도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일각도 되기 전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천하태평이네요.”

신소소는 신기했는지 사방에서 코를 고는 모습들을 둘러보았다.

“자유로운 영혼들이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개방도가 원하는 진정함이라 할 수 있어.”

“그런 것 같아요. 나도 개방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스윽.

남하림은 신소소를 내려다보았다.

진심으로 원하는 듯 초롱초롱 바라보는 신소소.

남하림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안 돼.”

“아, 왜요?”

“그냥. 이유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유가 없다면서 안 된다는 게 뭐예요?”

“요즘 개방에 들어오겠다는 애들이 왜 이리 많아. 여하튼 넌 내 선에서 탈락이야.”

신소소는 입술을 앞으로 삐쭉 내밀었다.

“입 넣고 머리 굴리지 마라. 후개가 반대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너무하네. 그럼 이유 하나만 말해보세요. 왜 안 되는지.”

“이유? 너…… 앞으로 혼자 살 거야?”

“내가 가출한 이유 까먹었어요? 당연히 꼭 결혼할 거라고요.”

“본 방에 들어오면 결혼할 수 없을걸. 아마도?”

신소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말 결혼 못 하나요?”

“오 년 동안 있었지만 한 명도 누가 결혼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후개님은요? 혼자 살 건가요?”

“나? 난 이 좋은 세상에 아들 딸 낳고 떵떵거리면서 살 거야.”

“입방하면 결혼 못 한다매요?”

“우린 십 년 계약직이라서 상관없어.”

신소소의 표정이 밝아졌다.

* * *

‘도착했군.’

멀리 하북소가의 정문이 보였다.

한때 산동악가 최고봉에 올라섰던 그는 산동의 호랑이라고 불린 인물.

산동 동평을 떠나 하북소가까지 오는 길은 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목적은 확실했다.

‘나 혼자 죽을 수는 없지. 소융, 기다려라. 내가 왔다.’

쿵!

악군악은 하북소가의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악성창을 바닥에 짚었다.

“산동의 악군악이다! 하북소가의 가주 소융을 만나러 왔다!”

내력이 실린 악군악의 외침이 정문을 넘어 하북소가 안으로 울렸다.

우두두두-

무장을 한 하북소가의 무인들이 정문을 통해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들 중 내당주 소묵이 있었다.

‘악군악…… 이자가……!’

소묵의 시선에 살기가 비쳤다.

“물러나라.”

앞을 막아선 수하들 사이로 지나쳐 나온 소묵이 악군악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본 가에 무슨 일로 왔지?”

‘나에게 적대감을 보인다?’

그뿐 아니라 하북소가의 일개 무사들마저 마치 원수를 노려보는 눈빛이다.

‘한 발 늦었군.’

하북소가 소융이 뭔가 선수를 쳤다.

‘하나 아직 모르는 일. 일단 만나 봐야겠군.’

악군악은 굳은 얼굴로 소묵에게 용건을 밝혔다.

“소융을 만나고 싶다.”

“가주께선 당신을 만나고 싶지 않을 텐데.”

“만나주지 않겠다면 모든 사실을 공표하겠다고 전하라.”

피식.

소묵은 비웃음을 지었다.

악군악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소묵, 감을 잃었군. 감히 본인 앞에서 비웃다니 죽고 싶은가?”

“악군악. 착각하지 마라. 이곳은 산동악가가 아니라 하북소가다. 어디서 함부로 소리를 치는가?”

“이놈이…….”

부우우웅-

악군악은 옆에 세웠던 악성창을 들어 소묵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휘익!

채애앵-

찰나의 순간 소묵의 앞으로 나온 사내가, 두 자루의 검으로 악성창을 밀어냈다.

소묵은 살기를 뻗어냈다.

“악군악, 네놈은 미쳤군. 어디서 살인을 하려고 하느냐?”

“이…… 노오오옴. 네놈의 가주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아느냐?! 그는 수십 년 전……!”

“전대 가주의 아들 소숭을 죽였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뭣이……?’

악군악은 멈칫했다.

‘이것이었나?’

하지만 알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어떻게……?”

“가주께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청부를 한 내용까지 모두. 가주의 잘못도 있지만, 당신은 전대 가주의 아들을 죽였다.”

“그럼…… 소융은 어떻게 되었지?”

“그분은 여전히 하북소가의 가주시다.”

‘그놈을 용서한다고? 이런 정신 빠진 놈들이 있나?’

악군악은 힘이 빠졌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불쌍했다.

오직 자신만이 가주에서 쫓겨 나온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어떻게 이런 일이…… 소융, 이놈을 만나야 한다.’

“소묵! 당장 내 앞에 소융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네놈을 살려두지 않겠다!”

“허, 더는 보고 있을 수가 없구나. 뭣들 하느냐? 이자를 포위하라!”

두두두두-

하북소가의 무인들이 악군악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한때나마 산동악가의 가주로서 예우했건만. 물러나지 않겠다면 더 이상의 예우는 없다.”

“크으……!”

수백 명의 무인들을 악군악 혼자 상대할 순 없었다.

악군악이 치욕에 몸을 떠는 그 순간.

“잠깐만요.”

정문으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연 소저.”

“소 당주님, 가주님께서 저자를 보고자 하십니다.”

“가주께서?”

* * *

벌컥.

악군악은 손에 든 차를 한 입에 마셨다.

타악!

스르르르-

손을 뗀 뒤 숨을 한 번 내쉬는 시간.

다시 상 위에 내려놓은 찻잔은 가루가 되어 스러졌다.

“허허, 너무하시는군. 악 형께서는 그 잔이 얼마나 귀한 찻잔인지 모르고 있소이다.”

“…….”

“쯔쯔, 사람이 그리 생각대로 움직이니 바보같이 당하기나 하고…… 보기가 참으로 좋소이다.”

“이봐, 소융. 나를 놀리는 거라면 그만하지. 안 그래도 짜증이 올라와 폭발 직전이니.”

“후후후, 폭발하면 나야 좋은 일이지요. 언제 폭발하십니까?”

“내가 자네와 농을 따먹기 위해 이 길을 왔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니겠지요. 쫓겨난 마당에 협박을 빌미로 구천신품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 온 것 아닙니까?”

“그렇다. 그 물건은 어디에 있지? 그건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것이다.”

“이거 참…… 그걸 나에게 물어보면 어쩌자는 것인지.”

“네놈이 가져갔으니까.”

“쯔쯔, 그렇게 정보가 없어서야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 산동악가에서 나온 구천신품은 개방 후개를 통해 무림맹으로 넘어갔지요.”

쿠웅!

악군악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바, 방금 뭐라고 했는가?”

“다시 말하란 말입니까? 무림맹에 있소이다.”

소융의 대답은 같았다.

그리고 무림맹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빠짐없이 알려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북소가에 대한 악군악의 적의를 후개에게로 돌린 것.

콰앙!

악군악은 주먹을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모든 일의 원흉.

그 새끼가 온 날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후개, 그 거지 새끼가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감히 거짓을 말하다니…… 절대로 그놈만은 용서할 수 없다…….”

“허허, 악 형. 본인도 같은 생각이오. 그놈은 가만히 두기에 위험한 놈이지요.”

뿌드드득-

악군악의 손아귀에서 뼈마디의 소리가 울렸다.

* * *

부어어엉. 부어어엉.

밤이 깊었다.

칠흑같은 밤이 찾아오자, 풍천분타는 긴장감이 흘렸다.

샤샤샤샤-

이살군과 삼살군은 소리를 죽이며 풍천분타로 다가섰다.

척.

이살군의 군장 한순과 살수들이 담벼락에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분타 안 소리를 듣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기척이 전혀 없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분타.

‘설마 자는 것은 아니겠지?’

휘익!

한순은 손짓으로 수하를 먼저 안으로 보냈다.

열 명의 살수가 담을 넘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최대한 몸을 숨기며 앞을 살폈다.

분타의 건물 안에도 불이 꺼져 있었다.

사방이 암흑으로 가득했다.

끼이이익-

수하 한 명이 정문을 열었다.

[한순 군장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위를 살펴라.]

분타로 들어선 살수들이 옆으로 퍼져 나갔다.

‘이놈들이…… 어디로 갔지?’

풍천분타 거지들이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내 포위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지 못했을 텐데…….’

분명 분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스르르르르-

‘뭐지?’

그때,

눈앞으로 흰색의 분말이 흘러내렸다.

킁킁.

몇몇 살수들은 분말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조심스레 냄새를 맡았다.

“……커억!”

“도…… 옥…… 독이다.”

“컥…….”

갑자기 울려 퍼진 단말마.

사방에서 살수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순은 재빨리 해독제를 입에 넣고 깨물었다.

“해독제를 복용해라!”

살수들이 한순의 말에 해독제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안으로 들어선 살수들의 절반이 독에 의해 바닥에 쓰러진 상태.

핏핏핏!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날아들었다.

푹! 푹! 푹! 푹!

몸에 독침을 맞은 살수들이 고통에 겨워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아…… 아아악!”

한순은 수하들의 상태를 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놈들, 비겁하게 독을 사용하느냐?!”

찌릿.

‘헉……!’

한순간 어둠 속에서 느껴진 살기.

휘릭.

그는 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수하와 몸이 부딪혔다.

주룩.

등에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살기가 사라졌다.

기감을 최대한 끌어 올렸지만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누군가…… 살기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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