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50화 (51/328)

50. 산동악가에 들어오다

쫘아아악!

중년 사내가 앞에 서 있는 청년의 얼굴을 내리쳤다.

악소의 얼굴이 단숨에 붉게 달아올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똑바로 말을 하지 못할까?”

호창수 삼십 명을 끌고 간 뒤, 부상자까지 내고 산동악가로 돌아왔다.

“개방…… 의 거지 놈들에게…….”

“개방 거지라니. 무슨 말이냐?”

묵창대 대주 악경은 개방이란 말에 목청이 한층 더 높아졌다.

“그놈들이 본 가를 비웃기에 싸우다가…….”

“그놈들이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걸협오성…… 입니다.”

“뭣이? 똑바로 말하라. 산동악가를 비웃었다는 게 무엇인지!”

악소는 객잔에서부터 청죽림의 일을 설명했다.

청봉표국에서 일어난 살기대와의 마찰 때문인지, 산동악가의 인물들은 이미 걸협오성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다.

‘감히 네놈들이 두 번이나 본 가를 비웃다니…… 얼마나 잘난 놈인지 직접 확인해 주마.’

* * *

저벅저벅.

악경은 곧바로 악가전으로 향했다.

입을 굳게 다문 그의 표정은 노기가 가득했다.

호위 무사가 그를 보며 허리를 숙였다.

“가주께서는?”

“무림맹 태안 지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무림맹? 그들이 왜?”

“그건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악경은 가주전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호창수!’

한참을 듣던 악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창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과 달랐다.

덜컹.

그때, 가주전의 문이 열리며 중년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파숙은 문 앞에 선 악경과 마주쳤다.

멈칫.

악경이 그를 보며 물었다.

“무림맹 태안 지부에서 오신 모양이구려.”

“그렇소이다.”

“혹시 그곳에 걸협오성이 들렀소이까?”

“맞소이다.”

“하, 그자들은 사내답지 못하군요. 본 가와 있었던 일을 쪼르르 일러바치다니…… 더구나 이런 일에 무림맹이 나서다니 요즘 할 일이 없는 모양이외다.”

“글쎄요. 전 그들이 제소를 했기 때문에 공문을 전달했을 뿐이오. 그리고 이건 원래 무림맹이 하는 일입니다. 그만 가보겠소이다.”

악경은 옆으로 지나가는 파숙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한 말은 모두 거짓이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외다. 굳이 그런 말을 나에게 할 필요는 없소. 아껴두었다가 무림맹에서 조사가 들어올 때 하시오.”

가주전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악경은 미간을 찡그렸다.

드륵.

악경은 가주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에는 이미 세 명의 인물이 모여 있었다.

가주 악군악과 살기대주 악강, 그리고 산동악가의 군사 등민이 그를 맞이했다.

“악경,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고 했다.”

“들어오기 전에 태안 지부에서 온 인물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악군악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호창수 삼십 명이 개방의 후개를 죽이려고 했다는 게 사실인가?”

“후개가 아니라 걸협오성이라 했습니다.”

“단화걸이 후개라고 하더군.”

“그가 후개인 줄은 몰랐습니다.”

“휴우우.”

악군악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고를 친 녀석들은 어디에 있지?”

“부상을 당해서 각자 숙소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거지 놈들과 관련된 녀석들을 모두 잡아들인 뒤 철옥에 처넣어.”

“가주…… 아니, 형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호상도 이 일에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악경, 이 모든 게 그 녀석이 먼저 그놈들을 건드린 탓인 줄은 알고 있나? 아들놈이 걱정되면 똑바로 교육을 시켜야지. 잔말 말고 처넣어. 거지 놈들이 물러가면 곧바로 풀어주겠다.”

“…….”

악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스윽.

군사 등민이 그의 앞으로 나섰다.

“묵창대주님, 지금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호창수들이 개방의 후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대주님도 아시다시피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개방에 명분을 주게 된 셈이지요. 이것을 트집 잡고 곧바로 공격을 해와도 우린 중원 무림에 할 말이 없습니다.”

등민의 말이 사실이었지만, 악경은 아들을 며칠 동안 철옥에 가두는 게 마음 아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개방과 싸울 순 없는 노릇.

“군사, 그 녀석들이 본 가로 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소신이 보기에는 청봉표국 국주가 구천신품에 대해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구천신품이란 말이 나오자 나머지 세 사람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악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자가…… 걸협오성에게 말했을 리 없다. 그랬다면 단화걸이 아니라 방주가 직접 찾아왔겠지.”

“그건 모를 일입니다. 단화걸을 후개로 세운 것을 보면 구천신품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수도.”

“가주님, 만일 개방까지 알고 있다면 하북소가를 포함해서 두 곳입니다.”

“젠장…… 하북소가 하나만으로도 피곤하거늘…….”

악군악은 오랫동안 세웠던 계획에 자꾸 차질이 생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군사,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청봉표국을 습격했던 무리를 찾았습니다. 역시 하북소가 짓이었습니다.”

“하북소가…… 비겁한 놈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계획대로 하북소가에서 훔쳐간 것으로 하면 됩니다.”

“좋아. 우선 개방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서 대응을 하는 게 좋겠어.”

“가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악군악의 결정에 세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 *

산동악가.

산동성의 패자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도전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수좌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은 굴지의 가문.

동평에 들어서자 산동악가로 가는 대로(大路)가 펼쳐졌다.

대로 옆에 늘어선 가게들은 대부분 산동악가에서 관리하는 직영점들.

“대단한 위세군.”

당무독은 동평 전체가 산동악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게요. 본 가인 팽가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이 정도나 되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겠지.”

남하림은 산동악가로 들어가며 동평 일반 백성들의 표정들을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어두워 보였다.

‘오로지 혼자 먹고살겠다는 뜻이군.’

남천상국도 수많은 장사를 하고 있지만, 소규모 장사는 직영으로 직접 운영하지 않았다.

산동악가의 정문이 나타났다.

“부장,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유명한가 봐요. 제법 많은 인원들이야.”

남하림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제 고양이를 잡으러 가볼까?”

“크으, 이런 기분 짜릿한데…….”

산동악가 정문 앞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무인들.

마치 전장에 나가려는 듯, 전운의 기운이 가득했다.

‘허허, 겨우 다섯 명을 상대로…… 이게 무슨 짓인고.’

뒤에서 따르던 만통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초반에 이들의 기세를 꺾겠다는 뜻이로구나.’

하나 만통자의 걱정과 달리, 정문으로 다가서는 다섯 명의 움직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앞장선 남하림의 걸음걸이는 더 빨라졌다.

“멈춰라!”

머리에 푸른 두건을 쓴 중년 사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오성창의 일인.

창수대(槍守隊) 수장 악구정이 정면에 멈춘 다섯 명을 향해 내기를 쏟아냈다.

남하림은 대수롭지 않게 그의 기를 받아쳤다.

“산동악가의 환영식은 심히 불량하군요.”

‘단화걸!’

전방으로 쏟아낸 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악구정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성창인 자신과 대등한 실력!

‘설마 이 정도의 고수일 줄은…….’

악구정은 가주 악군악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산동악가를 위해 정문 담당인 경위대 대신 창수대를 이끌고 나섰다.

가주는 무력을 사용해도 좋으니 본 가의 힘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대들은 무슨 일로 본 가에 왔는가?”

“확인할 게 있어 왔는데, 상황을 보니 서로 싸워야 할 판이군요.”

“겨우 다섯 명으로 싸우겠다고 온 것이냐?”

“당신들이야말로 지금 겨우 다섯 명과 싸우려고 나온 게 아닌지?”

“그건……!”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죠.”

남하림은 팔짱을 끼며 악구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주님. 저놈들이 본 가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따끔하게 혼을 내주도록 하겠습니다.”

타앗!

“이런……!”

창수대 부단주 호질은 악구정이 말리기도 전에 남하림을 향해 달려들었다.

스으윽.

이휘연의 신형이 움직였다.

“부장의 몸엔 누구도 손댈 수 없다.”

부우웅-

파앗!

타구봉 끝에서 빠져나온 태극흑검이 장창을 감은 채 호질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루슬구검(樓膝拘劍)의 초식.

먹이를 감싸는 뱀과 같았다.

호질은 검을 막기 위해 순간 장창을 손에서 놓았다.

“겨우 그 솜씨로 부장을 상대하러 나왔는가?”

스팟!

허공에 뜬 장창을 감고 있던 태극흑검이 튕겨 나가듯 펴지면서 호질의 오른 어깨를 찔렀다.

푹!

“아악!”

짧은 비명을 지르며 호질은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졌다.

산동악가를 상대하는 이휘연의 모습에 만통자는 정신이 없었다.

‘이런 미친놈들이 있나! 환장할 노릇이군. 정말 산동악가 앞마당에서 싸우고 있잖아!’

그는 태연한 남하림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놈들이 상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이놈! 감히 악가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네놈들이 죽고 싶은 게냐?”

“당신들이 먼저 시작한 일입니다. 그럼 내가 저자의 창을 가만히 맞아줘야겠습니까? 악가는 무턱대고 사람을 공격해도 되고, 개방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습군요.”

악구정은 온몸이 부들거렸다.

남하림은 내력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

“본인은 개방의 후개로서 분명히 밝히겠소! 악가에서 싸움을 원한다면, 개방은 지금부터 산동악가와 전쟁을 선포할 것이외다!”

‘후개?’

악구정의 인상이 구겨졌다.

악군악에게서 걸협오성 단화걸이 후개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악군악…… 과연 몰랐는가?’

악군악은 다른 이야기는 없이 호창수들과 시비가 붙은 이야기만 전했다.

창수대를 대하는 단화걸의 태도가 당당했던 이유가 있었다.

‘후개를 다치게 해서 본 가에서 날 내쫓으려고? 나를 엿 먹이려고 했군.’

그는 악군악의 뜻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창수대는 정문에서 물러나라.”

악구정의 명에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겼다.

남하림과 네 사람은 악가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스윽.

마지막으로 만통자가 악구정의 앞에 섰다.

“만통자님께서도 오셨습니까.”

“윤우창, 내가 한마디 해도 되겠는가?”

“말씀하시지요.”

“방금 들어간 걸협오성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게.”

“그게 무슨…….”

“내가 누군가? 점이나 보면서 밥 먹고사는 늙은이네. 자네가 어떻게 받아들이지 모르겠지만, 산동악가의 대운은 이미 떨어졌다네.”

“……!”

악구정은 가슴이 철렁했다.

“만통자님, 방금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이보게. 천명은 거역할 수 없다네. 현재의 산동악가는 무너질 것일세.”

‘아…….’

악구정의 다리가 순간 풀리면서 휘청거렸다.

처억.

만통자는 그의 팔을 잡으며 가까이 붙어 섰다.

그리고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산동악가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한 가지 있네. 방금 들어간 단화걸이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따르게. 그러면 산동악가의 끊어진 맥은 다시 이어질 걸세.”

말을 마친 만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으로 들어갔다.

만통자의 뒷모습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악구정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단화걸을 따르면 맥이 이어진다니…….’

* * *

가주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산동악가에 들어선 지 한 시진.

그제야 가주전에서 만나겠다는 연락이 왔다.

중앙 가주좌에 앉은 악군악과,

그 한 칸 아래로 군사 등민이 자리를 잡았다.

바닥 양옆에는 각 당의 당주들과 산동악가의 장로들이 불쾌한 인상으로 정렬했다.

“흐음!”

“크흠…….”

그들은 만통자와 함께 가주전으로 들어선 다섯 명의 개방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엄청 째려보는군.’

산동악가 인물들의 노골적인 기에 주눅이 들 만도 했지만, 남하림은 물론 다른 네 명 또한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다.

‘걸협오성이 이 정도였다는 말인가?’

악군악은 살기대주 악강을 보았다.

살기대는 일전 청봉표국에서 걸협오성을 상대했다.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

‘사실대로 말을 하지 않았나?’

나란히 선 다섯 명의 걸협오성.

들은 소문과 모양새만으로 각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남하림.

“그대가 후개인 단화걸이오?”

“그렇습니다. 산동악가의 가주님을 처음 뵙습니다.”

“개방의 새로운 영웅인 걸협오성을 보게 되니 반갑소.”

남하림과 악군악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본 가로 오는 길에 서로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소이다.”

“죽림에서 기습으로 죽이려 하더군요. 개방의 후개인 본인을.”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본인도 갑작스럽게 보고받고 굉장히 놀랐소.”

“산동악가에서도 잘못을 안 모양이군요. 그들을 철옥에 넣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소이다. 다만 그 일을 저지른 것은 본 가의 뜻을 모르는 미숙한 이들이외다. 산동악가와는 연관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이오.”

악군악은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남하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주님의 말씀대로 산동악가의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이다.”

“철옥에 보내는 것만으로 끝인지 묻는 겁니다.”

악경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계속해서 남하림을 노려보던 중이었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불쑥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단화걸, 그대는 모두 죽기를 바라는 건가?”

“누구신지?”

남하림은 노기로 가득한 악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가주 악군악이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허어. 묵창대주, 가만히 계시게.”

“가주님……!”

“…….”

악군악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한 발 나섰던 악경이 다시 뒷걸음으로 들어갔다.

“후개, 미안하오. 묵창대주가 흥분을 잘 하는 편이오. 분명 잘못한 쪽은 본 가이니, 이번 일에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하오?”

“무림맹에 제소했으니 산동악가에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흐음, 굳이 우리들끼리 서로 해결을 잘 할 수 있는 문제를 무림맹까지 끌고 갈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소.”

“그건 산동악가에서 얼마나 큰 성의를 보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군요.”

‘흐음, 큰 성의? 역시 상국 출신이라는 것인가?’

악군악은 이미 남하림의 출신에 대해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좋소이다. 후개께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되겠소이까?”

“시원시원하십니다. 그럼 저도 곧바로 원하는 것을 꺼내도록 하죠. 산동악가에 구천마성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순간, 만통자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허, 이 아이들이 산동악가에 온 목적이 구천신품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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