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만통자
짭짭. 찹찹.
노인은 만두를 입에 넣고 맛있게 먹었다.
객잔의 모든 시선들이 창문가에 놓인 탁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지가 식사를 대접하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자네들도 먹지 않고 뭐 하는가?”
“안타깝게도 일일일식(一日一食)이라서요.”
“허허, 중도 속세에 나오면 고기를 먹는 세상이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가 먹어도 안 먹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노인장은 점쟁이가 아니라 달변가시네요.”
“클클클, 원래 점쟁이가 말발이 센 편이지. 그런 면에서는 거지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벌컥.
노인은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커어…… 시원하군. 내 오늘 아침에 점괘를 봤는데 포식한다고 괘가 나오더구만. 신통하지 않는가?”
“신통하네요. 배가 부르시다니 다행이고요.”
“클클, 고맙게 잘 먹었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들 관상이나 한번 봐줄까?”
“관상까지 보세요?”
“점쟁이가 관상도 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성의는 감사하지만 전 관상이나 점 같은 것은 안 믿는 편이라서요.”
“믿고 안 믿고는 단화걸, 자네 맘이고, 난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말을 할 뿐이지. 어떻게, 한번 봐줄까?”
스윽.
팽유도가 손을 들었다.
“저어……! 전 믿습니다!”
“클클, 자네가 도천걸이겠지? 어디 한번 봅세.”
노인은 팽유도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자네는 화상(火像)이야. 어떤 일을 하든지 항상 정력이 넘치는군.”
“와아, 맞습니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라 좋지만 극단적이라서 쉽게 피곤할 때가 많겠군.”
“대단하시네요.”
노인은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흐으음, 그리고 여기 코에서 귀 뒤로 넘어가는 부분을 보면 큰일이 생기더라도 워낙 주위에 좋은 기운들이 많아 쉽게 풀어나갈 운명이야. 다만 성질만 좀 죽이면 좋을 것 같네. 그렇게 된다면 많은 이들에게 큰 존경을 받으며 살아갈 관상일세.”
팽유도는 노인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다른 네 명을 보았다.
“이번에는 누굴 봐줄까?”
탁자 위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런, 예상외로 없는 모양인가 보군. 모두 앞날이 궁금하지 않는가?”
“그건 됐고. 한 끼 사드렸으니 노인장 이름이나 말해보세요. 설마 먹고 튀는 건 아니겠죠?”
“허허, 단화걸의 입담도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니만 사실이구먼.”
“…….”
남하림은 물끄러미 노인을 주시했다.
노인도 남하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허허허, 금안이로구나. 세상의 그 어떤 시선도 마주 볼 수 있다는 눈동자.’
중원에 나타났다는 새로운 걸물.
노인은 오랜만에 호기심이 일었다.
웬만한 관심이 아니었다면 굳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에선 노부를 만통자(萬通者)라고 부른다네.”
중원십기 천외비기 만통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인물이었다.
“아…… 가끔 사부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관상을 조금 보신다고 하더군요.”
만통자는 자신의 별호를 들었으니, 이들이 공손하게 인사부터 할 줄 알았다.
“조금이라고?”
“네. 점이 잘 안 맞는 편이라 사기꾼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뭣이? 늙은 거지가 뚫린 입이라고 제자에게 험담이나 하고 있었군!”
만통자가 벌컥 화를 냈다.
“제가 보니 사부님이 틀린 말씀은 안 하신 것 같은데요.”
‘에잉, 사부랑 제자 놈이 똑 닮아서는…….’
만통자가 무림을 종횡할 당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개방의 구공무적 항걸이었다.
“흥, 네놈 사부는 뭐 하고 있느냐?”
“본 방에서 편히 쉬고 계시겠죠.”
“허허, 이제 제자 한 놈 밖에 던져놓았으니 할 일 다 했다고 방구석에서 노는 모양이구나. 아이고, 나도 진작 제자 놈이나 키워볼걸.”
만통자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투덜거렸다.
“여기에 오신 건 우리들 때문이죠?”
“그렇긴 하지. 개방에서 오랜만에 인물이 나왔다고 해서 소문이 맞는지 낯짝이나 보러 나왔다.”
“어떤가요?”
“아…… 몰라. 됐어. 말하기 싫다.”
만통자는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래요?”
남하림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눔아, 어딜 가려고?”
“어디 가긴요. 방에 들어가서 자야죠.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요.”
‘허어, 이놈이…….’
팽유도도 따라 일어나며 만통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만통자님, 부장은 웬만하면 항상 취침 시간을 잘 지키려고 하거든요. 그럼 저희들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남하림을 따라 다른 네 명도 객실로 올라갔다.
‘단화걸이라.’
걸협오성이 사라진 뒤, 만통자의 표정은 심란해졌다.
본인은 보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는 남하림의 관상을 몰래 보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저놈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군.’
이런 경우는 하나였다.
황제지상조차 거부하는 운명을 지닌 자.
천명을 스스로 정하는 자.
‘설마…… 저 아이가…….’
만통자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
휙.
남하림은 걸음을 걷다가 뒤를 돌았다.
조금 떨어진 뒤에서 만통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먼저 가세요.”
“아니네. 난 늙어서 걷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이 앞에서 걷는 게 맞지.”
“지금부터는 빠르게 달릴 거예요. 괜찮겠죠?”
“허허, 어차피 같은 곳에 가지 않겠나. 누가 먼저 가고 늦게 간들 만나게 되겠지.”
“그렇긴 하죠. 그럼 천천히 오세요. 우린 먼저 갑니다.”
휙!
남하림은 물론, 나머지 네 명도 신형을 날렸다.
“……진짜 가냐?”
도착지가 같다면 귀찮아도 같이 갈 것이라 생각했다.
만통자는 자신의 예상을 벗어나는 그들을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클클클. 참으로 특이한 녀석들이군.”
스르륵.
웃음과 함께 그의 신형 또한 먼지처럼 사라졌다.
* * *
“어서 옵쇼!”
점소이는 문이 열리자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어어엉?’
고개를 든 점소이의 앞에 다섯 사람이 서 있었다.
‘앗, 그들이다.’
점소이는 긴장했다.
많은 손님들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무림인들.
그들에게 잘못 보인다면 순식간에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충고를 선배 점소이들에게서 수없이 들었다.
점소이 거문은 개방의 다섯 거지, 걸협오성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거지는 객잔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선다.
하지만,
“걸협오성이 아니십니까?”
거문이 큰 소리로 인사하자 객잔의 시선들이 문 앞으로 돌아갔다.
탁자 사이에서 소곤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났다.
휘이익!
그리고 멀리서 손을 흔드는 노인을 본 팽유도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림 형. 저기…….”
“알아. 끈질긴 면이 있으시네.”
남하림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만통자를 발견했다.
“부장, 어떻게 할까?”
“보아하니 목적은 우리들 같군.”
“그런 것 같아.”
남하림은 씨익 웃으며 만통자가 앉아 있는 탁자로 움직였다.
스윽.
중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앞에서 걷는 팽유도의 앞을 한 청년이 막았다.
건장하게 어깨가 벌어진 청년은 팽유도보다 머리 하나 정도 컸다.
“무슨 일이시죠?”
“조그만 놈은 빠져.”
턱!
청년은 손을 뻗어 팽유도를 옆으로 치우려고 했다.
‘……?’
하지만 전혀, 끄덕도 하지 않았다.
퍼억!
팽유도는 그대로 청년의 턱을 올려쳤다.
“크윽, 이 녀석이…….”
청년은 두 팔을 재빨리 앞으로 모으며 팽유도의 공격을 막아냈다.
팽유도는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난 청년을 보았다.
연한 흑의.
장창을 보니 그가 어디 출신인지 한눈에 보였다.
“이유도 없이 다짜고짜 길이나 막고. 산동악가엔 전부 이런 놈들밖에 없는 건가?”
청년의 이름은 악호상.
그도 청봉에서 퍼져 나온 소문을 알고 있었다.
살기대와 싸웠다는 개방의 다섯 제자.
걸협오성의 명성이 커질수록 산동악가는 치욕을 당하고 있었다.
악호상은 호승심이 지나치게 강한 반면, 보는 눈은 좋지 않았다.
그에게 걸협오성의 겉모습은 만만해 보였다.
팽유도와 악호상이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맞섰다.
“네놈이…… 본 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다니 죽고 싶나?”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파앗!
악호상은 옆에 놓인 장창을 집으며 팽유도를 향해 겨누었다.
“당신, 지금 객잔에서 싸우자는 건가?”
“왜, 겁이 나는 모양이지?”
팽유도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림 형, 어이없는 놈이야. 어떻게 할까?”
남하림은 그의 뒤로 서 있는 인물들을 살폈다.
십여 명의 호위 무사들과,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세 명의 사내들.
남하림이 연장자로 보이는 인물을 보며 물었다.
“객잔에서 싸울 시 모든 책임은 산동악가가 지겠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아니면 나가서 한판 붙든지.”
“…….”
호창수(虎槍手) 악소.
삼십 세 이하의 산동악가 제자로, 최정예 창법을 펼치는 단계가 호창수다.
악소는 그 호창수 중에서도 상위에 드는 고수였다.
악강은 개방이 대인원으로 급습하여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고 했지만,
어찌 됐든 저들은 얼마 전 살기대를 물리쳤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떠오르는 개방의 후지기수.
악소 또한 이들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다.
악소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상, 자신 있느냐?”
“네. 악소 형님! 이놈은 일초지적도 되지 못합니다!”
“좋아. 그렇다면 악가의 창이 어떠한지 보여주도록.”
* * *
후다닥.
객잔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밖으로 몰려 나왔다.
산동악가와 개방의 대결.
소문으로만 들었던 걸협오성의 무공을 직접 견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부우우웅-
악호상의 장창이 허공을 가르며 거친 소리를 냈다.
“후후후, 나를 상대하고 싶은 놈은 앞으로 나서라.”
팽유도는 허리에 메고 있던 가방을 풀어놓았다.
“하림 형, 내가 나갈게.”
“그래. 수고해.”
“근데…… 어디까지 하면 될까?”
“하고 싶은 대로 해.”
“알겠어. 반쯤만 죽여놓을게.”
팽유도의 손에는 이미 묵흑반도가 쥐어져 있었다.
악호상은 걸어 나오는 팽유도를 보며 비웃었다.
“훗, 제대로 된 도(刀)를 들지도 못하는 녀석이 과연 장창을 받아낼 수 있을까?”
“넌 살기대보다 더 강해야 할 거다.”
“미친놈들. 네놈들이 떼로 덤비지만 않았다면 살기대는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뭐라는 거야? 아, 보아하니 우리한테 얻어터진 게 쪽팔렸던 모양이군.”
타앗!
팽유도가 먼저 앞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놈! 더 이상 앞으로 못 온다!”
악호상은 양손으로 장창을 잡은 뒤 팔자를 그리며 팽유도의 전진을 막았다.
“느려. 그 정도 움직임으론 못 잡아.”
팽유도는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악호상의 한 자 앞까지 다가섰다.
‘헉, 뭐 이리 빨라?!’
쉬이이익-
단순한 사선.
파아아앗!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간 묵흑반도의 힘에 장창은 그대로 악호상의 손에서 떨어졌다.
“……!”
당황한 악호상의 눈동자가 떨렸다.
퍽!
텅 빈 가슴을 향해 묵흑반도를 내리칠 수도 있었지만, 팽유도는 왼손으로 일장을 뻗었다.
개방의 회선장법.
“커어억!”
입에서 피를 한 모금 토해낸 악호상이 그 자리에서 허리를 숙였다.
“방금 부장한테 말했거든. 반쯤 죽여놓겠다고.”
빙글.
팽유도는 묵흑반도를 뒤로 돌리며 악호상의 다리를 내리쳤다.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악호상이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악소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악호상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살기대는 기습에 당했다고 했는데…… 설마 거짓을 말했다는 것인가?’
팽유도는 쓰러진 악호상을 향해 다가섰다.
“이 정도 가지고는 반쯤 죽었다는 말이 안 나오겠지.”
팍! 팍! 팍!
거침없이 가격당하는 악호상.
악소가 나서야 했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으…… 으…….”
악호상은 서서히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척.
남하림이 팽유도의 어깨를 잡았다.
“됐어.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아, 그러네요.”
“이제 내가 처리할게.”
스윽.
남하림은 악소의 앞으로 다가가며 뒤로 상의 자락을 젖혔다.
허리에 숨겨져 있던 붉은 매듭이 드러났다.
‘저건……?’
못 박힌 듯 굳어 있던 악소의 눈에, 남하림의 허리에 매인 홍색 매듭이 들어왔다.
홍팔겹.
개방의 후개라는 증표.
‘왜…… 이자가……?’
중원 무림에서 개방의 후개를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
후개가 되었다는 의미는 언제든지 개방의 방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대체 언제……?’
단화걸이 후개가 되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이봐요. 싸울 의지가 없는 모양인데, 이제 그만합시다.”
“…….”
싸울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후개와 싸우겠다는 것은 개방과 싸워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산동악가에 인사 겸 볼일이 있어 가는 중인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
“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데. 다른 일 없으면 이제 각자 볼일 봅시다.”
“……알겠소이다.”
악소는 겨우 한마디 했다.
* * *
다시 객잔으로 들어선 다섯 명이 만통자의 곁으로 갔다.
흔들흔들.
만통자는 후개의 팔결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허허, 방주가 이상한 녀석을 후개로 세웠구나.”
달가닥달가닥.
그러고는 점괘통을 꺼내 흔들더니
스윽.
남하림 앞으로 점괘통을 내밀었다.
“하나 뽑아.”
“전 이런 거 안 믿어요.”
“어허, 어른이 뽑으라고 하면 낼름 뽑아야지. 그리고 넌 안 믿어도 내가 믿는다.”
“완전 어거지 왕이네요.”
“클클, 억지는 네놈 사부가 전공이고. 아, 팔 아파. 빨리 뽑도록 해.”
남하림은 뽑기 싫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귀찮게 할 것 같아 점괘통에서 긴 막대기를 뽑았다.
점 세 개가 일렬로 있는 삼인괘.
“두 개 더 뽑아.”
“몇 개가 필요한데요?”
“세 개.”
“그래요?
뚝. 뚝.
남하림은 손에 든 막대기를 두 번 부러뜨리며 세 개로 만들어주었다.
“여기 있어요. 세 개 맞죠?”
“…….”
만통자는 부러진 점괘를 받았다.
스윽.
손안에 든 세 개의 작대기.
‘원래는 삼인(三人)을 가리키는 괘였거늘…… 세 개로 자르면서 천(天)의 괘가 세 개가 되었다.’
삼천(三天).
점괘통에서 나올 수 있는 삼천(三天)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삼천지괘가 가리키는 운명.
하늘을 초월한 우주를 가리키는, ‘삼천대천세계’에 이르는 자.
“엇…… 제가 부러뜨려서 마음에 안 들어요? 표정이 영…… 좋은 걸로 사줄게요. 에이, 겨우 한 개 부러뜨렸다고 인상 쓰시기는…….”
‘……하, 하늘은 어째 이런 놈에게 세상을 맡기려고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