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황무적-28화 (29/328)

28. 목사파 지궁

다르르르-

땅바닥의 작은 돌멩이들이 잔잔하게 떨렸다.

이윽고 멀리서부터 바닥을 짓누르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떨리던 돌멩이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거친 말발굽 소리를 치며 기마들이 지나갔고, 그 뒤를 이륜마차가 바짝 따르며 달렸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거지들이야.’

인귀항은 앞서 달리는 다섯 명의 거지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들의 출신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번 개방 거지라는 생각이 박히자 이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조차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스윽-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백리희는 전방을 볼 수 있는 앞문을 살며시 열었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남하림의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리고 있었다.

백리희는 잠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가 이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백리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문을 닫았다.

탁.

그녀는 잠시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 다정다감했던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던 사내가 생각났다.

‘나쁜 놈.’

그는 세상에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한순간에 사라졌다.

처음에는 그가 사라진 줄도 알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여느 때와 똑같이 그녀와 인사도 나눴다.

하지만 이름도, 나이도, 그동안 나눴던 모든 것들도 거짓이었다.

“워워워…….”

그때, 선두에서 달리던 기마 무리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이륜마차도 곧바로 멈췄다.

스윽-

다시금 문을 살짝 열었다.

‘무슨 일이지?’

백리희는 아무렇지 않는 듯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곧바로 인귀항이 말머리를 돌리며 다가왔다.

“부가주님.”

“말씀하세요. 멈춘 이유가 무엇인가요? 혹시 그에 관해 다른 소식이 도착했나요?”

“그게 아니라…… 식사 시간이라고 합니다.”

“식사요?”

“하루 한 번 식사가 원칙이니 지금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어쩔 수 없네요. 잠시 기다리죠.”

백리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곧이어 나온 인귀항의 말에 당황했다.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죠?”

“자기들 식사 시간 이외에는 무조건 움직이겠다고 합니다.”

그녀는 바로 이해했다.

전혀 남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하림은 뻔히 보이는 듯하면서도 모를 사람이었다.

“알겠어요. 우리도 지금 식사를 하는 게 좋겠네요.”

“부가주님. 저흰 따로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

“객잔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게 아닌가요?”

“거지가 무슨 객잔에 가냐면서, 바쁠 때는 따로 준비를 해서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객잔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 물어보겠어요.”

백리희는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려섰다.

길옆으로 떨어진 널찍한 장소에 거지 다섯 명이 앉아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깔아 놓은 천은 화려했다.

‘무슨 거지들이…….’

남하림의 거지 생활은 눈으로 보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백리희가 그들 곁으로 다가섰다.

“오셨습니까?”

남하림이 자리에 앉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식사를 한다면서요?”

“도착하면 따로 먹을 시간이 없어요. 하루 한 번인데 쫄쫄 굶을 순 없죠. 시간이 없으니 그대들도 지금 식사하셔야 할 겁니다.”

“우린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객잔에 가서 식사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 밖에 나오면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인데, 객잔에서 한가롭게 식사하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

그녀는 갑자기 화가 나면서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슥슥-

그녀는 음식을 준비하는 팽유도를 바라보았다. 팽유도는 익숙한지 빠르게 음식을 늘어놓고 있었다.

‘세상에…….’

소풍을 나온 듯 화려한 찬합에, 산해진미로 준비된 진수성찬이었다.

“이게 뭔가요? 도대체 몇 첩…… 인 거예요?”

“한번 세어보세요.”

꼬르륵.

백리희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살짝 눈치를 보던 팽유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부가주님, 혹시 같이 드시겠어요?”

“…….”

우물쭈물 망설이는 그녀를 일별한 남하림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뭐 하십니까? 유도야, 모셔라.”

“하하, 네에.”

팽유도는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실례하겠어요.”

그녀는 그들 사이에 앉아 음식을 하나 골라 입에 넣었다.

“아……! 맛있네요.”

“양 총관이 특별히 준비한 음식이거든요.”

“양 총관이라면……?”

“후후, 그런 분이 계십니다.”

“유도야. 뒤통수가 간지럽다. 보아하니 정말로 간단한 음식도 준비 안 한 모양이다. 쯧쯧, 넓은 중원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늘.”

팽유도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인귀항과 그의 수하들이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스윽.

팽유도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 옆에 따로 걸려 있는 큰 짐을 가져다주었다.

“드세요. 혹시 몰라서 따로 준비한 거예요. 다음에는 잘 준비하시고요.”

“고맙소.”

표정이 밝아진 인귀항은 묵직한 짐을 들고 수하들과 자리를 잡았다.

* * *

척.

사내가 순간 걸음을 멈추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흐음…….’

사내는 예리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로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 중 특히 여인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사내의 얼굴을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백옥 같은 피부에 짙은 눈썹과 사내답지 않는 붉은 입술은 기린아를 보는 듯했다.

휙-

사내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사내가 사라진 틈을 메웠다.

스윽.

해가 들지 않는 그늘, 한쪽 벽 아래서 고개를 드는 두 명의 거지.

“그 녀석 맞지?”

“일단 연락을 먼저 하게. 난 뒤를 따를 테니.”

“알겠네.”

휘릭-

두 명의 거지가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끼이익-

사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어선 사내를 맞이했다.

“기다렸소이까?”

“후후, 앉으시오.”

두 사람은 탁자에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영중,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아니외다.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하하하, 영중, 그대의 실력이라면 쉬운 일이겠지요.”

“후후후.”

영중이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

중년 사내의 눈매가 예리하게 변했다.

“크음.”

사내가 슬쩍 헛기침을 했다.

“이제……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렇지요. 계산을 해야지요.”

영중은 팔짱을 낀 채 중년 사내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중년 사내는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이것 봐라?’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다는 말이 떠올랐다.

스윽-

중년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

영중은 그런 그를 보면서 미소만을 지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영중, 본인에게 줄 게 없소?”

“무엇을 달라는 말입니까?”

“하핫, 무엇이라?”

화르르르-

순간 중년 사내의 살기가 뿜어졌다.

“자자, 흥분하지 마시고…… 노여움을 죽이는 게 어떻겠소?”

“노여움이라…… 좋다. 원하는 게 뭐지?”

중년 사내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무엇을 줄 수 있겠소이까?”

“원래 합의한 대로 달라는 말이 아닌 모양이군.”

“따로 알아보니, 이거 참 보통 물건이 아닌 모양이외다.”

“…….”

까닥.

중년 사내가 위협적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거 참…… 입으로 망할 녀석이군.”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십니까? 그냥 물건 가치의 상중하에 따라 수고비가 달라지는 게 아니겠소.”

“크하하하, 맞군. 맞아. 얼마를 원하는지 궁금한데. 두 배…… 세 배?”

척.

영중은 두 손을 모두 펼쳤다.

중년 사내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설마…… 열 배를 달라는 것이냐?”

“그 정도는 돼야 안 되겠소이까?”

“간땡이가 부었군.”

“어릴 때부터 간이 크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요.”

“좋아. 하지만 오늘은 그 금액까진 줄 수 없어. 나머지는 다음에 만나면 주겠네.”

“음…… 그럼, 물건도 그때 만나면 받으셔야겠소이다.”

“…….”

스르릉-

중년 사내가 탁자 위에 있던 검을 잡고 천천히 뽑았다.

“하핫, 지금 날 죽이면 절대로 그 물건을 찾을 수 없을 텐데.”

“역시 약은 놈이군. 목을 베고 싶었지만…… 팔 하나 정도로 참도록 하지.”

스윽.

영중은 팔 한쪽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하, 그럼 맘대로 하시오. 하지만, 내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난다면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게요. 자신 있으면 알아서 하시오.”

“……망할…… 크, 하긴 그 배짱이 아니고선 백리세가에 들어가 사기를 칠 수 없었겠지.”

“나도 백리세가라 해서 처음엔 엄청나게 대단한 줄 알았소이다. 게다가 중원십미라니. 나름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멍청하더이다, 하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는 게 아쉽지만.”

“망할 놈, 다른 건 모르겠는데 그건 부럽군. 좋아,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도록 하지.”

“그렇게 하지요.”

“내일은 서로 좋은 얼굴로 헤어지면 좋겠군.”

“본인도 마찬가지외다.”

그렇게 영중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잠깐.”

“무슨…….”

영중은 살기를 내뿜는 중년 사내를 보며 멈칫거렸다.

“꼬리가 붙었군.”

“…….”

“어떤 놈인지 한번 볼까?”

휘익.

중년 사내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파앗.

기마대 앞으로 한 신형이 내려섰다.

걸비천하 소속의 개방 거지였다.

남하림이 말을 멈췄다.

“특외부장 남하림이오.”

“걸비천하 하남성 소속 구직입니다.”

남하림은 개방을 떠나기 전 방주 오종에 의해 특외부장의 신분으로 올라섰다.

허리춤에 달린 사결 매듭이 흔들거렸다.

“그자를 쫓던 동료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놈은 무공을 모른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사인을 조사한 결과 사파의 무공에 당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사파? 누군가 함께 있었다는 말이군.”

“네, 맞습니다.”

“목표의 행방은 어떻게 됐나?”

“죽은 장소에서부터 일급 경계령을 발동했습니다. 곧바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건봉성 학진촌에서 다시 놈의 행적이 사라졌다.

가까이 있던 성철각이 물었다.

“부장, 어떻게 할까?”

‘중간에 일이 틀어질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빠르군. 사파 놈과 연관도 있고.’

“유도, 이 근처에 사파 놈들은 뭐가 있지?”

“일단 하남성에 기반을 둔 중원사파는 북쪽에 기혈파와 남쪽으로 곡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 중소사파로는 수라신문과 상혈문, 성사진곡, 목사파, 아진혈장, 표용사 등이 있고요.”

“제법 있군. 그럼 건봉에서 가까운 곳은 어디지?”

“목사파(牧死派)입니다.”

남하림은 걸비천하 구직을 보며 말했다.

“구직, 혹시나 모르니 목사파의 주위를 철저히 살피도록.”

“네. 알겠습니다. 곧장 분타주께 특외부장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일단 우린 원래대로 학진촌으로 간다.”

척.

구직은 허리를 숙인 뒤 빠르게 사라졌다.

‘순간적인 대응이 빠르다. 이것이 중원의 모든 일들을 파악한다는 개방의 능력이군.’

인귀항은 점점 남하림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하림은 우선 현 상황에 대해 인귀항에게 알려주었다.

“알겠네. 그렇게 합시다.”

휘익.

남하림은 말 머리를 돌려 선두로 나섰다.

타앗!

“이럇!”

두두두두-

말이 다시금 거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 * *

어둠이 이미 짙어진 시각.

하림 일행이 건봉성 학진촌에 들어섰다.

“인 대주. 오늘은 늦었습니다.”

“알겠소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우선 복장을 바꿔 입도록 하세요.”

“그게…… 무슨?”

“그자를 잡으러 온 마당에 동네방네 소문을 낼 일 있습니까?”

“아, 알겠소이다.”

“마차에 꽂은 깃발도 내리시고.”

인귀항은 곧장 수하를 시켜 마차에 걸린 백리세가 깃발을 뽑았다.

학진촌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멀리 붉은색의 객루가 보였다.

악성객루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우린 잠시 상황을 보러 이곳 개방 분타에 다녀오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서 쉬고 있으면 될 것 같소.”

“그렇게 하지요.”

덜컹.

마차의 문이 열리며 백리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남하림을 보며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고맙습니다.”

“고마울 건 없습니다. 의뢰받은 일을 하는 것이니.”

그 말에 백리희는 서운함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저도 몰랐다.

“먼 길 동안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편히 쉬세요. 그놈은 될 수 있으면 잡아줄 테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뒤에서 남하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전과 달리 살짝 부드러운 말투였다.

두두두-

남하림과 네 명의 특외부가 말을 달려 사라졌다.

스윽.

객루 앞에서 멈춘 그녀는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남하림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부가주님, 들어가시지요. 방을 구했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 * *

개방 형유 분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말을 타고 다섯 명의 거지들이 나타났다.

소문으로만 듣던 특외부 걸협오성.

중원 무림에서는 개방의 최고 후기지수로 알려진 자랑이었다.

분타주 갈영은 아래로 내려선 남하림을 맞이했다.

허리에 찬 사결 매듭이 보였다.

일개 분타주는 삼결의 신분이었다.

“걸협오성을 뵙소이다. 갈영이외다.”

“갈 분타주시군요. 남하림이오.”

“만나서 영광입니다.”

오 년 동안 한 번도 개봉에 가보지 못했던 갈영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 남하림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새경 주위로 본 방의 제자들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군요. 본 방의 제자가 죽었다고 하던데……?”

“방금 사인을 찾았습니다. 사파의 혈강도법 같아 보인다고 했습니다.”

척.

바로 팽유도가 나섰다.

말 허리에 찬 큰 가방 안에서 책자를 끄집어냈다.

차르르르-

오 년 동안 개방의 정보를 이용하여 무림에 대해 팽유도가 개인적으로 집대성한 책자였다.

“혈강도법을 쓰는 자는 중원 무림에 대략적으로 열다섯 명입니다.”

“혹시 그들 중 하남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팽유도는 책자를 빠르게 살폈다.

“부장, 세 명입니다. 그중 목사파의 인물도 있습니다.”

“목사파? 누구지?”

“목사파 문주 지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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